롭부리 2 - 왓 프라씨 라따나 마하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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롭부리 2 - 왓 프라씨 라따나 마하탓

SOMA 2 3465
보통 '왓 프라 탓' 이라고도 불리는 이 사원은 롭부리 기차역과 인접해있으며 쁘랑 쌈엿의 남쪽방향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왓 프라 씨 라따나 마하탓을 보기 위해 일단 먼저 기차역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조그만 쌈러(삼륜자전거)들이 약간의 호객을 하는것외에는 크게 신경쓰였던 점은 없습니다.
 롭부리라는 지명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혹자는 사라진도시라는 의미로 롭부리라 쓰인것이라고 하지만
그때 지워졌다는 의미의 롭과 롭부리의 롭은 스펠부터 다른 단어입니다. 때문에 지워진도시라는 의미로 롭부리라는 소개는 잘못되었다 볼 수 있습니다.


13-14세기 경에 건축된것으로 보이며  크메르(카멘)의 후기에 해당하고 아유타야를 거치면서 많은 개 보수 작업을 또한 거치게 됩니다.
 왓 프라 씨 라따나 마하탓은 입구에 쌀라 쁘르엉 크르엉 이 있고 ,
위한 루엉이 있습니다. 이 주법전은 9개방의 법전이란 뜻의 위한 까우헝 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으며 안쪽의 각 문들은 아치형으로 프랑스 고딕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주법전을 통과하여 들어가면 뒤쪽으로 크메르식의 프라쁘랑이 나옵니다.
프라쁘랑을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으로 크고작은 쁘랑과 제디들을 볼 수 있습니다.

입장 하자마자 만나게 되는 장소인 '쌀라 쁘르엉 크르엉' 입니다.
 '쌀라 쁘르엉 크르엉'이라는곳으로 쌀라는 장소를 말하며 , 쁘르엉 은 벗어내는것을 의미하고 크르엉은 장신구 혹은 의복을 말합니다. 장소의 이름으로 미루어 이곳은 왕이 의복을 갈아입는곳을 말하는것이겠죠.
 이곳은 불교행사를 진행하기에 앞서 국왕이 이곳에서 옷을 갈아입은 후에 법전이나 우보솟으로 들어가기전 준비를 하는곳입니다. 지금은 모두 훼손되고 기둥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쌀라 쁘르엉 크르엉 너무로 법전의 모습이 보입니다.
정면에 보이는 법전은 '위한 까우 헝' 이라고 합니다. 위한은 법전을 말하는것이며
까우 헝은 아홉개의 방을 말합니다. 즉 아홉 방의 법전입니다.
실제로 위한 까우헝을 들여다보면 아홉개의 방문이 덩그러니 남아있습니다. 방자체는 이미 법전과 마찬가지로 살짝의 모습만 남아있습니다.  아유타야의 나라이왕때 지어진것으로 보이는 이 법전은 규모로보아 당시 롭부리에서 가장 큰 법전입니다.


들어가는 문은 각이 진 태국스타일이지만, 안의 작은 통로 문들은 프랑스의 고딕스타일을 따르고 있습니다. 나라이 왕 재위때 나라이왕은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려 많은 노력을 했고 , 또한 여러가지로 교류가 많았습니다.
위한 까우 헝에서 보이는 외부의 모습입니다.




위한 까우 헝의 내부에는 이렇게 훼손된 불상들이 어스러이 방치되어있습니다.




실제로 왓 프라씨 라따나 마하탓 에서 가장 중요한곳은 이곳입니다.
크메르 스타일의 쁘랑입니다.  왓 프라 시 라따나 마하탓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으며  홍토벽돌 (라테라이트 : 실라랭) 으로 만들어졌으며 높이는 30.70미터 정도.  외면은 회반죽을 이용해 만든 여러 장식들과 부조들이 있습니다. 장식은 주로 불상이나 부처의 생애와 관련된것이 많습니다. 롭부리시대, 즉 라워(ละโว้  - Lavo)시대에 만들어진것으로 보이며, 크메르가 강성했을때, 추가 건설이 된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유타야로 들어와 라메수완 왕 시대 그리고 나라이왕 시대에 재 보수공사들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여러 시대의 양식이 섞여있는것이 특징입니다.




원래 이 쁘랑에는 많은 붓다이미지들이 출토되었는데, 프라 후얀, 프라 루엉과 같은것들이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프라쁘랑의 모습







쁘랑의 회반죽 장식들


쁘랑을 중심으로 왼쪽 방향에서 볼 수 있는 쁘랑들과 제디들




또한 아래에 보이는 쁘랑중에 솟아보이는 선인장같이 생긴탑이 있습니다.
이것은 프라쁘랑의 서북쪽 (쁘랑의 입구는 동쪽이므로) 에 위치한것인데, 마프앙식의 기둥이 특징입니다.
이곳에는 모든면에 합장하고있는 신상의 스투코장식이 있습니다. 사각의 얼굴과 연결된 눈썹이 우텅시대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삼각의 차다(태국의 일종의 왕관모양)와 삼각으로 된 오오라가 있다고 합니다.
 이런 쁘랑은 전 태국을 통털어도 매우 희귀한것이라고 하는데 저는 미처 보지못했습니다.
다음기회에 꼭 가서 확인해봐야겠네요 .

쁘랑의 오른쪽 방향




법전의 뒤로 프라쁘랑이 있고 그 왼편으로 볼 수 있는 쁘랑과 제디들입니다.



서로 대조가 되어보이는 크메르식 쁘랑과 스리랑카식 종모양 제디,




종보양제디의 좌불 회반죽 부조들은 모두 머리부분이 훼손되어있습니다.
나라이 왕 이후 아유타야는 버마의 침공으로 나라가 멸망하는 수모를 겪고 국가의 보물들이 이렇게 참담하게 훼손되게 됩니다.



다소 쌩뚱맞아보이는 이 건축물은 프랑스식의 건축물입니다.
쁘랑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나라이왕시절에 왓 프라 씨 라따나 마하탓을 보수하며 더 확장할때 지어진것으로 보입니다.





왓 씨라따나 마하탓의 크메르식 쁘랑은 프라쁘랑 쌈엿(삼봉) 과는 다르게 한 '봉'만이 단독으로 있지만  서기 1400-1500년 경의 동시대에 만들어진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사리와 더불어 가장 아름다운 스투코장식(회반죽장식)을 가지고 있었을것입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보수 작업시에 많은 훼손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도 이 쁘랑의 입구에 들어설때는 아래와 같은 최고의 작품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입구에서 올려다보이는 이 장식은 연꽃위에 아미따 불 앉아있는 극락을 표현한것으로 라워 (롭부리시대)의 양식입니다.
 

                                         왓 씨 라따나 마하탓의 프라쁘랑



크메르시대부터 아유타야 시대까지의 양식이 혼합되어있는 왓 씨 라따나 마하탓을 간략하게 보았습니다.
역시 많이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최근 쑤코타이와 더불어 부쩍 관심이 많아진 태국의 역사와 동남아의 역사 그리고 , 건축물들 , 불교지식들...
 저는 사실 다른종교를 가지고 있지만, 태국에서 사는관계로 이들의 역사와 불교에 대한것을 알면알수록 태국사람들에 대한 이해도 커져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역사나 문화와 관련한 자료들이나 사진들은 기회가 되는대로 방문하고 찾아보고 공부하고 게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적어도 이런곳들을 방문할때 방문객들이 한가지라도 더 알고 본다면 더욱 유익하고  한가지를 통하여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게 될테니까요.

 크메르시대부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온도시 롭부리, 그가운데 역사의 흐름속에 가장 중심에 있는 유적지인 왓 씨 라따나 마하탓입니다.
2 Comments
동쪽마녀 2012.05.18 23:40  
역시 크메르 양식의 유적들이었군요.
방콕 새벽 사원이 크메르 양식인 것을 모르고 봤을 때부터 저는 그 양식에 매혹되었었습니다.
역시 아름답네요.
저는 라테라이트의 그 붉은빛이 참 좋습니다.
그저 무심하게 내가 밟고 서 있는 발판 삼은 돌이 천년 전의 것임을
문득 떠올리는 것도 정말 좋구요.^^
SOMA 2012.05.19 11:10  
크메르부터 아유타야까지, 또 크메르양식을 적극수용하여 초기 아유타야의 건축물들은 크메르양식을 많이 따르기도 합니다. 중간중간에 개 보수한 흔적이 쌩뚱한경우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보면 역사의 중간중간 개 보수 한것이 지금의 이런 역사적 유물로 온전히 남아있는게 아닌가 싶네요.

제가 다시 읽어보니 태국역사에 그다지 관심없는 분들이 읽기에는  부담스런 내용들이나 단어들이 많은것 같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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