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남자의 인도차이나 표류기 4. 도미토리 인 카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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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남자의 인도차이나 표류기 4. 도미토리 인 카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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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토리. 사전적으로 공동침실, 기숙사라는 뜻을 지닌 숙소 형태로 한 방에 여러 침대를 놓아두고 학연, 지연을 떠나서 안면과 친분의 여지에 관계 없이 쌩판 처음 보던, 엇그제 한번 봤던, 지나가다 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던 어쨋던 간에 그냥 배정받은 데로 자빠져 자야 하는 비개인적인 공간이다. 물론 욕실이나 화장실도 공용.

그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도미토리의 가장 기본적인 미덕은 가격의 저렴함에 있다. 보통은 그렇타. 허나 도미토리의 미덕은 가격적인 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며 사람에 따라 가격적인 부분을 훨씬 상회하는 장점이 있게 마련인데, 내 경우가 그랬다. 가격은 중요하지 않았다.

도미토리를 처음 만나던 그 역사적인 순간을 잉태한 장소는 인도의 뭄바이였다. 아시는 분 다 아시고 모르시는 분들도 한두 번 소문을 통해 들었다시피 뭄바이의 밤이 보여주는 혼돈은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하여 그 충격적인 첫날 밤을 위로 받고자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 시내로 뛰쳐나갔고 거기에서 만난 친구들의 소개로 도미토리에 묶게 되었는데, 이게 참 멋지더란 말이다.

사정 없이 후려친 가격은 물론이거니와 독고다이 여행자에게 최악(또는 최고)의 적인 외로움을 토닥여 줌과 동시에 듣도 보도 못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에 불을 집혀주는 것까지. 타고난 성정이 삐뚤어진 반면 길러진 성격이 지나치게 활발한 내게(그래서 문제가 더 많치만), 심심한 것을 오 분도 못 참고, 지루한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내게 도미토리란 완벽한 여행숙소였다.

두 번째로 만난 도미토리는 방콕에서 였는데, 이 또한 역사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마셨던 술이 비행기에서 마신 술과 버무려져 화끈하게 올라와 있던 상태, 거기에 피곤에 쩌들어 있던 나는 이 한 몸 편하고자 더블 룸을 원했으나 마침 풀, 비어있는 도미토리를 구경이나 하자 싶었는데... 이거 웬 걸. 웬 '걸' 이냐 이말이다. 사내들의 땀 냄새로 그득하리라 믿었던 그 방에 아, 정말이지 이 웬 걸(girl) 이더냐.

당장에 계약체결. 이후 나는 도미토리가 얼마나 제대로 멋진 장소인지 분명히 깨달았으며, 특히 '믹스드 룸(Mixed Room)' 이란 '미녀' 란 단어와 함께 지구상에서 영원불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녔다(그러고 보면 '피메일 룸(Female Room)이란 그 얼마나 시대착오적이며 불평등함과 동시에 부조리하며 잔인한 단어란 말인가. 통탄을 금할 길이 없다).


인도차이나 여행을 앞두고 곳곳의 도미토리를 수소문했으나 하찮은 서핑실력과 끈질기지 못한 인내력 탓에 몇몇 도시에 몇몇 도미토리를 찾아내는 것에 그치고 말았던 차, 우연히 알게 된 호스텔 월드라는 싸이트가 내게 구세주로 다가왔다. 도미토리는 내가 여행하고자 하는 모든 곳에 있었고 또 다양했다.

무규칙과 무대책의 낙천주의를 집안의 도도한 가풍으로 물려 받았기에 품행이 방정 맞으며 또한 자유로운 내게 '예약' 이란 말은 남의 일이었으나, 최소한의 양심(?)으로다가 첫 날 밤의 잠자리는 미리 정해두자 다짐하였던 것으로 호스텔 월드와의 인연을 시작했다. 올레~. 내가 딱 원하는 잠자리들이 거기 모두 있었다. 결국 나는 인도차이나 열두 개 도시 모두를 도미토리로 결정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그렇게 묶게 된 도미토리가 참으로 각양각색, 가격별로 수준별로 옵션별로 3.95불 부터 20불이 넘는 것까지, 4인실에서 26인실에 이르기까지 아침식사, 에어컨 장착여부 수영장의 존재유무에 관한 것까지 아주 그냥 버라이어티 했다. 물론 그로인한 즐거움 역시도 버라이어티 했다.

그 중, 20불 전후로 무장한 최고가의 도미토리는 상대적으로 물가 높은 방콕에서 였고 각각 카오산과 시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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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Nap Park Hostel at Khao San.

아시아의 관광허브라는 방콕에서 여행자들의 베이스 캠프로 불리는 카오산 로드. 어느 때부터 거의 공식화 되었던 그 카오산에 대해 옛날 같지 않으니 어쩌니 하는 말들이 심심찮케 들린 지 꽤 되었지만 뭐 그거야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카오산으로 갔다.

"카오산이 왜 좋아?"

"카오산은 뜨겁잖아. 카오산이 상업성으로 인해 설령 라스베가스로 변해간다 할 지라도 이 뜨거움이 있는 한 나는 절대로 카오산을 미워할 수 없을 거야". 내가 이렇게 근사하게 말했다. 그것도 영어로. 아 놔, 내가 또 이런 매력이 있다. 하하하.


카오산 메인 로드 살짝 위에 람푸트리 로드 그 살짝 더 위에 타니 로드, 거기에 내가 묶어야 할 Nap Park Hostel at Khao San(이하 Nap Park)이 있었다. 큼지막한 가방을 어깨에 짊어지고 보무도 당당하게 문을 열어 젖힐려고 했는데 열리지 않았다. 문은 미닫이였다.

직원들은 친절했고 한 직원은 유독 예뻤고 하여 유독 친절하게 느껴졌다. 호스텔의 내부는 한 눈에 봐도 제법 훌륭헀다. 그럴 수밖에. 가격이 하룻밤에 19.5불이니. 카오산의 물가가 가격대비 품질로 치자면 그렇게까지 싸다고 말할 수 없는 요즘이라 하더라도 19. 5불이면 더블 룸이 충분히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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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자빠져 낮잠을 즐기기에 훌륭한 메트리스가 쭈욱 깔려있었고 무료 인터넷을 자랑하는 Lcd 컴퓨터가 여럿, 마음 놓고 꺼내볼 수 있는 책이 즐비하고 그 옆으론 독서, 토론, 논술이 용이한 책상과 걸상이 준비되어 있었으며 무엇보다 각색의 맥주를 아련하게 품고 있는 냉장고가 위풍당당하게 한 면을 장식하고 있는 '커뮤니티 룸' 이 그럴싸했다.

호스텔은 호텔과 달리 내처 주무시는 것 외에 상호간의 호환성에 대해 보다 열려있는 공간임으로 커뮤니티 룸이 차지하는 비중이 있고 근래에 들어설 수록 그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인데, Nap Park 은 그 중요성을 제대로 증명해주고 있었다. 미학적으로도 실용적으로도 시설 빼어나고 미학적으로든 실용적으로든 빼어난 시설에서 너나없이 자유로워 보였다.

뭐, 그런 것 아니겠는가. 여행자라는 동일한 꼬리표 만으로 쉽사리 친구가 되고(그럼으로 술을 마시고), 여기가 어쩌네, 거기가 그렇네, 어디가 괜찮네, 저기는 잣같네, 따위의 정보를 주고 받으며(그러면서 술을 마시고), 앞으로의 일정에 동행이 되기도 하며(물론 술을 마시고), 그런 총체적인 것들을 빌미로 눈이 맞아 얼레리 꼴레리 하는 사이로 거듭나기도 하는(절대적으로 술을 마셔야 하는!) 최척의 공간이 바로 커뮤니티 룸이 아니던가.


촌스러운 팔지 비스무리한 것을 손목에 채워주길래 "나 이런 것 필요 없다" 했는데, 그게 방 열쇠란다. 그 팔지를 인식하는 문의 일부에 대고 문지르니, 삐리릭~ 하고 잠금이 해제됬다. 오호라, 이런 최첨단(?) 기술력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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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하롱베이 투어에서 만났던 여자애들)


방은 더 없이 깔끔하고 깨끗했으며 커튼과 수납공간을 비롯 도미토리임에도 개인적인 공간을 최대한 배려하고 있었다. 더불어 욕실 또한 근사했다. 무료로 제공되는 수건과 세면도구를 포함. 다시 말하지만 그럴 수밖에. 하룻밤에 19.5불이니. 다시 말해 미안하지만 그 금액이면 카오산에서 더블 룸이 가능하다.

방의 종류는 6인실과 22인실, 22인실은 베이직 22인실과 스텐다드 22인실이 있었으니, 총 3가지 타입이 있다. 나는 가장 비싼 6인실을 사용했다(이게 얼마라고?). 실은 보다 많은 인원을 수용하는 하여 보다 많은 확률을 제공하는(무슨 확률이냐고? 에이~ 암씨롱) 22인실을 쓰고 싶었으나 미리 예약하지 못한 관계로 6인실로 내려 앉았다. 22인실은 Full 이었다.

예약을 위해 호스텔 월드로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예약을 할 수 없었던 것은 빈약한 한도를 지닌 내 카드 또한 Full 이었기 때문. 호스텔 월드를 통해 예약하는 방법은 카드 결제로 금액의 10%만 결제하면 된다. 내 카드는 단돈 2불이 남아 있지 않았다.

"안녕. 앉아도 되?"

"물론".

물론 안 될 리가 없다. 야외 테라스가 니들 껏도 아니니. Nap Park 이 최고의 호스텔로써 빠지는 부분이 있다면 레스토랑과 수영장의 부재를 꼽을 수 있다. 허나 쉽사리 수긍이 가능한 부분이었다. 카오산의 특성상 음식은 지천에 널려 있었고 호스텔 레스토랑에 죽치고 있느니, 먹거리를 찾아 거리를 쏘다니는 것이 훨씬 즐거운 일이다. 더불어 카오산의 특성상(카오산은 수 많은 특성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일이 사방천지 분분하니 느긋하게 수영을 즐기는 망중한과는 동떨어진 느낌이기도 하다. 또는 어딘가로 바삐 이동하거나 바쁘지 않터라도 이동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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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의 부재를 야외 테라스가 일부 담당하고 있었다. 가벼운 식사와 차와 술을 제공하고(물론 돈 내야 된다) 담배 테우며 노가리 풀기 괜찮은. 그 존재의 취지에 부합하여 나는 생판 모르는 백인 아이들 여럿과 친구 먹고 술 먹었다. 대화의 끝은 "Jin(내 이름이다)! I'm falling in love with you". "It's my pleasure!" 라는 화목한 상황으로 귀결되었다.

사위가 어두워진 시각, 나는 방콕이란 도시가 추천하는 환락을 맞이하고자 반듯한 수트차림으로 환복, 문을 나섰다. 나와 사랑에 빠졌다는 백인 여자아이는 느닷 없는 수트 차림에 놀라고 또 칭찬하더니 "달링, 저녁 같이 먹자" 라기에, 밥이나 한 끼 사줄까 싶어 동행했으나, 여기저기 음식값을 비교하고 다니며 시간을 끄는 통에 나는 그만 '안녕' 을 고하고 택시를 집어 탓다. "이따, 봐" 라는 약속이 있었으나, 우린 이따 보지 못 하고 그걸로 완벽한 안녕 이었다. 나는 그 길로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까지.

환락과 쾌락을 담보하며 미쳐 날뛰는 방콕의 밤은 언제나 내게 즐거웠다. 그 날은 더더욱 그러했었다. 생애 가장 특별한 원 나잇 스텐드. 결국 나는 더블 룸도 얻을 수 있는 19.5불 짜리, 더불어 미학적으로도 실용적으로도 합당하며 그럴싸한 커뮤니티 룸을 지니고 있음은 물론 최신식 시설로 무장한 더 없이 깨긋하고 깔끔한 도미토리 호스텔에서 체크 인과 체크 아웃을 한 것 뿐, 호스텔이 제공하는 본래의 이유를 말끔하게 쌩 까버렸다.

그 하룻밤의 손해를 메우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은 물론 아니다. 나는 이미 19.5불, 마지막으로 말 하지만 더블 룸도 얻을 수 있는 그 가격에 상응하는 즐거움에 대해 뽕을 뽑아버렸다. 이미 충분했고 그 기억으로 인해 다시 방콕을 찾을 때 나는 Nap Park 에 머무를 것이다. 설령 또 쌩을 까더라도.

추신. 본래는 방콕을 한 편으로 엮어 두 개의 호스텔에 대해 애기하려 했으나... 내가 좀 그렇타. 말이 좀 심하게 많타. 이번 여행에 있어 최고가를 기록한 태국 시암의 Lub D 호스텔(무려 21.5불)에 대한 애기는 다음에 쓰겠다. 그게 바로 다음이 될 지 아니면 시간의 순서상 제일 마지막에 올 지는 모르겠다. 언제나 술을 마시며 쓴다. 쓰다 보면 취한다. 그래서 지금 더 이상 못 쓰곘다.  
7 Comments
쌍예 2012.02.22 11:42  
매력적인 여행자!!!!.... 글은 씨크씨크 하신데요? ㅋ.ㅋ 잘읽었습니다 !
다동 2012.02.22 18:25  
제가 좀 시크합니다. 하하.
angmar 2012.02.22 12:25  
자유로움이 묻어나는 좋은 사진과 글 이네요
읽고있는 순간이나마 갑갑한 사무실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로
다동 2012.02.22 18:25  
과찬, 기껍게 듣습니다.
R♥해운대 2012.02.23 01:59  
사진집 같아요. 글이 길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활자마저도 흑백처럼 참으로 멋지네요 ^^)b
다동 2012.02.23 07:48  
놀러 다니기 바빠서 사진이 몇 없네요. 하하.
백만분의일 2014.10.02 19:39  
흥미진진 + 아트 + 유머러스 하네요~
너무 아부스럽지만 진짜 그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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