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이. 그 아련한 기억. 결국은 사람이네.
2008년도의 일을 2011년도에 쓰려고 하니 정말이지 아련하고 아득하기만 하다.
하나 하나 기억을 더듬어 토해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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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한 여름.
태국 북부 빠이를 같이 가볼래.? 했던 일본인 친구는 원래 계획대로 중국으로 다시 돌아가야겠노라 이야길 한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거의 한달 간 우연히 여행을 같이 하게된 친구였으나,
중국에서 라오스로, 라오스에서 태국으로 같이 넘어와선, 마지막으로 치앙라이에서. 우리는 그렇게 so cool하게 헤어졌다.
She is Iyo. 리브 인 카고시마.
'꼭 빠이에 가야지~' 하는 마음은 그렇게 없었으나,
여행중에 만난 동생 김영진군이 빠이에 간다고 했고,
또 여행중에 만난 언니 송수진씨가 빠이에 간다고 했으니,
뭐 나도 가볼까..했던 참이었다.
치앙라이에서 빠이까지 몇시간 걸렸는 지 모르겠다.
기록을 생활화하지 않는 탓에 종종 몇시간이 걸렸는지, 며칠이 걸렸는지 숫자와 연관된건 기억을 하지 못하나,
그 느낌. 했던 일, 봤던 것.. 이런건 잘 잊지 않는다.
이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무래도 그 탓이겠지.?
빠이로 가기 위해선 치앙마이에 먼저 도착했던 것 같은데,
거기서 또 다른 직각의자를 탑재한 버스를 타고 네시간가량 더 갔던 것 같다.
산으로 산으로 고개를 넘고 넘어 가는 길이라서 그런가 치앙마이와는 전혀 비교되지 않을 만큼의 시원함을 느낀다.
빠이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쌀국수 한그릇 먹는곳에 무선인터넷이 잡혀 먼저 가있던 김영진군에게 쪽지를 남겼었다.
나 글로 간다고.
마중오라고.
빠이에 꼬딱지만한 버스장에 내려 카메라가방을 옆에 들고 부시시한 머리카락이 정돈되지 않아 푸석푸석한 몰골에, 쓰레빠를 달-달- 끌고 오던 나의 모습을 영진군이 멀리서 필름카메라로 찍어줬다.
영진군이 오토바이를 7일 렌트 했다고 하면서 오토바이를 태워줬는데,
그 오토바이 덕택에 내가 묵을 게스트하우스를 쉽게 돌아볼 수 있었다.
200밧트였나.
조그만 테라스가 딸린 목조식 건물이었는데. 아침마다 뜨거운 물과 커피와 설탕이 테라스 테이블에 놓여져 있었다.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하는 탓에, 종종 커피가 치워지고 난 후에 주섬주섬 밖을 나오곤 했다.
개인적으로 정말 마음에 들어했던 게스트 하우스 중에 하나다.
가끔 물이 안 나오기도 했는데.
한번은 샤워를 하는 도중에 물이 나오질 않아 비누거품을 네슬레 생수로 씻어냈을 때 이런 생각을 했었다
'왜 오늘따라 네슬레 생수가 먹고 싶었던 걸까... 왜 더 저렴한 생수를 사지 않았을까..'
아무튼 내가 그 게스트하우스에 묵고 얼마지나지 않아 영진군이 옆집으로 이사왔으나, 내부구조등은 내집이 더 나았다.
빠이에서 게스트하우스에서 많은 일이 일어났었다.
인도에 여행하게 된 계기를 마련해준 친구들도 여기서 만났다.
미남과 효진. 거기다가 명희언니도.
한번은 명희언니와 내가 나의 노트북으로, 당시 큰 센세이션을 일으킨 10인치 미니컴퓨터,. 아수스꺼.. 젠장... 지금은 어디갔는지 딱 일회용이다. 젠장.
천일의 스캔들을 보다가 야한장면에 둘이 눈이 돌아갈 정도로 모니터에 빨려들어갈 뻔 했는데 쏙 사라져버려 둘이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저~ 기 멀리 시내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는 낚시터 방갈로에 홀로 외롭게 살고 있는 이도 있었으니, 그 이름 송수진.
며칠전에 우연히 연락했는데,
오래전 일인데도 불구하고 둘이서 어제 만난냥 수다를 떨었다.
우리 송수진씨는 라오스에서 안 좋은 일이 좀 있어서 태국 북부 빠이 외곽마을에서 은둔생활을 잠시. 하다가
곧 세상밖으로 나왔다.
그녀가 말아주는 홍통은 가히 최고였다고 할수 있다. 홍통이라고 하는 술인데 태국술인지는 모르겠으나 꼭 진 같은 데가 콜라를 넣었었나.? 그리고 라임을 넣어주면, 그것도 비율이 있는데 어찌나 잘 맞추던지.
그렇게 그녀의 방갈로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술을 들이켰었다.
그녀는 당시 30대 중반이었는데, 화끈한 성격과 거침없는 말투를 보아 일반적으로 판단되어지는 사람이길 거부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그녀의 로맨스.
한 외국인의 기습적인 키스에 당황하여 그녀가 외쳤던 외마디. "Finish!"
영어를 잘 못하는 그녀였기에, No 도 아니오, Stop도 아니오, Finish를 외쳤으니, 옆에 이야길 듣던 모든 이가 데굴데굴 굴렀었다.
한번은 수진씨가 제공한 팁을 가지고 영진군과 수진씨와 내가 오토바이를 타고...(우리중에 영진군이 젤 말랐었음.) 온천이 있는 리조트에 투숙객인양 몰래 침투하여 사가지고 간 맥주를 온천욕과 함께 즐겼으니 세상이 내것이었다.
물론 나오는 길에 리셉션 직원에게 걸려 온천비를 강제정산당하고 왔으니 타국에 가서 한국망신시킨다고 개욕은 삼가길.
도중에 수진씨의 카메라를 내가 온천속으로 빠뜨리는 일이 발생했는데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하던 나에게
"천주야. 나는 이렇게 있는게 너무 재미있고 즐겁고 그러니깐, 이것 때문에 신경 쓰지마~"
라고 말해주었다.
하늘이 도왔을 까. 며칠 후엔 카메라가 잘 작동했다.
수진씨에게 오토바이를 가르치는 기쁨을 맛봤고,
천하를 호령할 것 같은 수진씨가 까치발을 들고 "어머어머"를 백번 연발하여 오토바이 타는 모습은 몇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자..
영진군 이야길 좀 해볼까.
그는 이제 곧 다시 태국으로 떠난다고 하는데 어찌나 부러운지,
그때 당시만 해도 그는 첫 배낭여행이라서 어딜 가든 정확한 계산과, 절약 모드가 SET되어있었다.
거기에 비해서 나는 대책없고, 사소한 계획없이, 되는대로.
안되면 말고,
돈 없으면 가고, 있으면 쓰자는 타입이라서 영진과는 정 반대였다.
그는 나보다도 두살 어린 한국인이지만 현지인과 같이 있을 때는 누가 한국인이고 누가 태국인인지 모를 정도로 동남아인 싱크로율 100%를 웃돌고 있었다.
물론 당시는 애가 좀 마니 타서 그렇지, 지금은 완전 핸섬서울가이다.
라오스 루앙남타에서 만났는데, 당시 나는 중국에서 라오스로 넘어갔으니, 따지고 보면 처음 만난 한국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많은 이들이 빠이를 여행했고, 여행을 하고, 여행을 하려고 하는데,
정말이지 빠이에선 할 게 없다.
그냥. 논다.
기억이 남는 것 하나가.
저기 외곽으로 빠지는 길에 멋진 수영장이 있는 리조트가 있는데, 거기 일인당 50바트 내고 한 밤중에 수영을 했다.
난 수영을 못하지만 물을 좋아해서 첨벙첨벙거리면서 수영을 했고, 영진군은 애법했던 것 같은데...
아무튼 빠이에선,
먹고자고싸고보고먹고자고싸고보고..뭐 딱히 볼 것도 없다만.
그렇게 여유로운 나달들을 보낸 것 같다.
아...
이렇게 장황하게 빠이에 대해서 적고 보니,
결국 빠이에 대한 기억은 사람이었네.....
후후.
다시 기회가 되어 여행갈 날이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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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17일
회사에서 서른 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