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메이징 타일랜드 -태국 마실기 .15 (Fin.) ◈ 안녕이란 말대신...
#15
오랜만에 꿈을 꿨다.
장소는 학교 기숙사 앞마당이고,
시간은 2년전 아주 더운 7월의 어느날이다.
열대여섯명정도 되는 태국애들과 함께 하는
한여름밤의 맥주파티였다.
이상하다, 이미 집으로 돌아가고 없을 낫도 있고
아직 여기 있어서는 안되는 떤도 있다.
부드러운 통기타 연주와 함께 올려다 본 밤하늘에는
별이 은하수마냥 총총히 떠있다.
나는 그들과 멀찌감치 떨어져서 맞은편 계단에 앉아
그들이 노는걸 쳐다보고 있었다.
곧이어 누군가 나에게 손짓을 했다.
"할모니! 빨리와"
빙구 '옷'이 이쪽으로 오라고 난리다.
됐다고 손사래 치고 있으면,
굳이 이쪽으로 와서 끌고간다.
아마 그때부터 알았을 것이다.
언젠가 오늘을 기억하며 매우 아쉬워 할거란걸...
손에 쥐어도 쥘 수 없는 흘러가는 추억을
그리워 할거란걸..
따뜻한 온기와 익숙한 환대에 기쁜것도 잠시
나는 이내 서글퍼 졌다.
즐거운 봄소풍, 떠들썩한 배구대회, 한여름밤의 축제..
그리운 추억들과 소중한 기억들이 하나 둘 씩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친구들과 함께 웃고 울었던 순간들을
이젠 더이상 함께 공유할 수 없게 된다.
자꾸만 흘러 넘치는 모래알을 주워담고 싶어서
안절부절 할 뿐이다.
모래알이 눈물로 변하고,
쉼없이 그대로 그대로 아래로 떨어졌다.
눈물도 떨어지고,
내 몸도 떨어지고,
끝이 안보이는 나락으로 자꾸만 끌어내리는 기분이다.
기가막힌 허탈감에
눈을 떴다.
이것은 어메이징 타일랜드 -태국 마실기 그 마지막 이야기
멍하니 누워서 천장만 보다 커튼을 살짝 들춰봤다.
마지막으로 돌아가는 날 치곤
날이 너무 좋았다.
그동안 2년전 일을 꿈꾼 적은 없었다.
아주 오랜만에 옛날 꿈을 꾼건
모처럼 태국에서 애들을 다시 만나 그리웠던 탓이라고
나혼자 합리화시켰다.
-Rrrrrrrrrrr
아침부터 전화벨이 울리자 나는 그게 팜일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팜이 아니라 '보'였다.
보는 깐자나부리에서 방콕으로 왔을 때 저녁 모임에서 한번 보고
다시 못봤던 친구였다.
-보 왠일이야?
-오늘 가는 날이라며, 란티엔 미안해 배웅 못해줘서
-뭐야 그거 때문에 전화한거야? 괜찮아
-보고싶을거야~
-응 나도 보고싶을거야~
보는 혹시라도 내가 돌아가는날 울적해 할까봐
성심성의껏 날 달래주었다.
역시나 친구들이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니구나..
고맙기도 하고 안심이 되기도 했다.
나중에 한국에 오면 만나기로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오전에 팜이 졸린눈을 비비고 날 데려다 주기 위해 왔다.
녀석은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확실히
날 책임지고 케어해 준 녀석이다.
큰 신세를 지고 돌아가니 마음이 무겁다.
"점심 안먹었지?"
"응"
"공항에서 발권하고 먹자"
"오케이"
그동안 정들었던 레지던스를 떠나자니
정말 알게모르게 섭섭한 감정들이 물밀듯 밀려왔다.
내가 이렇게 익숙해져 있었나 싶었다.
어딘지 모르게 친숙했던 편의점..
매일 저녁 지나가면서 봤던 룸사롱 언니들..
작은 천막아래서 음식을 파는 사람들..
스치듯 지나가는 일상적인 풍경이지만
한번 본 풍경은 좀체 잊지 못하는 탓에,
아마도 계속 두고두고 생각나겠지...
팜의 차에 짐을 싣고 떠나는 순간까지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괜찮아?"
"응~ 배고파서 그래 ㅋㅋ"
"좀만 기다려 가서 먹자"
애써 아무렇지도 않아 했지만..
그렇다, 난 기분이 매우매우 안좋아지고 있었다.
울고불고 난리 필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물먹은 솜 마냥 기분이 축 가라앉는건 어쩔 수 없으리라...
그만큼 즐거웠으면 됐잖아,
그동안 재밌었잖아..
스스로 최면을 걸듯 달래보아도
눈에 들어온건
미쳐 다 둘러 보지 못한,
태국의 일상적인 모습들 뿐이다.
내가 다시 이 뜨겁고 활기찬 나라에 올 수 있을까..
다시 이런 파란하늘과 뽀얀구름들 속에
달리는 에어컨차 안에서
그때 그 감정을 또 한번 느껴볼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다.
갑자기 모든것이 내 맘대로 컨트롤 되지 않음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지루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날 더 우울의 수렁으로 끌어내렸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린 땀과 합류했다.
"뭐야, ㅋㅋ 배웅 안와도 된다니까"
"그래도 혼자 가면 섭섭하잖냐"
"됐다니까 그러네.."
"고맙지?고맙지?"
맨날 나랑 투닥거리던 땀이 일부러 배웅 나왔다.
깐족대며 내 심기를 건드리는건 여전하지만,
그마저도 없으면 난 그자리에서 울어버렸을거다.
"밥이나 먹자"
(일단 아쉬움을 달래줄 땡모반하나 시켜줬다 ㅋㅋ)
그렇게해서 밥먹으러 들어갔는데..
게이트로 들어갈 시간이 1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설마 그안에 밥 다 못먹겠어? 란 생각을 했지만..
도대체가 난 왜 가는 날까지 평범하지 못한거야!
다들 비슷하게 시켰지만, 난 예전에 낫이 먹었던
닭다리 카레 비슷한 음식이 먹고 싶어졌다.
모르겠다 마지막 추억쯤?일거라 생각하고
먹고 싶으니 시켜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친구들 음식이 다 나올동안
내 음식은 나올 기미가 안보이는거다.
ㅡ.,ㅡ;;
이미 게이트 입장 시간은 30분도 채 안남았다.
난 슬슬 초조해졌는데..
음식이 안나오는데도 친구들은 더 여유다.
사람이 없으면 뭐 부르거나 조치를 취할거니 걱정말랜다.
ㅡ.,ㅡ;; 그게 말이 됩니까? 님들아?
난 천성 불안증 환자다.
음식은 정말 안나오고 나는 1시간 가까이 기다린 셈이다.
원래 이게 미리 만들어 두는데, 그렇지 않으면 조리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한다.
OMG......
안먹는다고 취소하라고
한바탕 난리부르스를 치면,
친구들은 좀만 더 기다리라고 한다.
결국 몇번이나 지배인에게 채근한 통에
10분전에 음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빡칠대로 빡친 상태고..
(레알 빡쳐있었음 이때.. 분노의 나이프질 ㅋㅋㅋㅋㅋㅋㅋㅋ)
(표정 쩔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그래도 우울해 죽겠는데..
더 우울해졌다.
힘들게 기다렸다 먹어도 그때 그맛처럼 맛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한없이 우울하기만 했다.
마지막 가는 길까지 웃으며 가고 싶었는데..
이놈의 밥때문에 기분 완전 잡치고 말았다.
그럼에도 녀석들은 끝까지 날 달래서 무사히 수속까지 마쳤다.
사실 평소라면 나도 그냥 웃으며 여유있게 넘기겠지만..
안그래도 떠나는거 때문에 기분이 별로 였는데..
ㅜㅜ...
이래저래 미안하고 찝찝했다.
그러나 내가 빡치든 말든
팜과 땀은 쿨하게 신경안쓰는 모양새다.
그래그래.. 태국사람 느긋한거 못알아본 내가 죄인이다.
(그게 날 더 빡치게 만든다고!!-_-+)
"이제 슬슬 들어가야지"
"와.. 진짜 덕분에 잘 놀다 간다"
"담에 또 시간되면 놀러와"
"빈말이라도 쌩큐하네 ㅋㅋㅋ"
"대신 이쁜 여자랑"
"껒 ^^ㅗ++"
질질짜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팜을 꼭 끌어안았다.
"귀찮을텐데 돌봐줘서 고마워"
"됐어 임마"
그리고 땀과 가볍게 포옹하면서
한마디 날려주는것도 잊지 않았다.
"나중에 놀러와라 ㅋㅋ"
"알아 갈거야 ㅋㅋ"
잠시 아쉬움에 머뭇머뭇 거리자
애들이 괜찮다고 등을 팡팡 두드려준다.
안녕이란 말대신 그냥 웃고 싶었다.
안녕이라고 말해버리면 울어버릴거 같아서..
"야 나 간다! 고마웠어"
"조심해서 가~"
(안녕이란 말대신 웃자!!!^________________^)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이서 셀카를 기념으로 한장 찍고
나는 그렇게 비행기에 탑승했다.
(파김치 *10000)
워낙 쉴새 없이 진행된 강행군으로 지쳐 있던 나지만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그동안 썼던 일기장을 보면서 잠시 추억에 잠겼다.
기내식은 햄버그 비스무리한게 나왔다.
돌아오는 시간 내내 이리저리 노트에 끄적이다가
결국 너무 심심한 나머지
옆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말걸고 수다까지 한바탕 떨고 나서야
인천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해서 밖으로 나오자마자
훅 끼쳐오는 끝내주게 더운 바람에 움찔했다.
어째 기분탓인가..
한국이 태국보다 더 더운것 같다.
-Rrrrrrrr
-피낫~나 한국이야
-잘 도착했냐?'
-응! 근데 왜이렇게 시끄러워?
-아, 나 지금 깐짜나부리야
-또 갔어??
-응, 친구들이 또 놀러가자고 해서 ㅋㅋㅋ
하여간, 못말린다.
낫과 옷과 팜에게 국제 전화를 걸어 한국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목소리를 들으면 여전히 그곳에 있는거 같은데도..
나만 혼자 한국에 떨어져 있으니 슬퍼졌다.
집에 돌아와, 짐을 풀었다.
말린망고를 사오는걸 깜박한 덕에
엄마에게 잔소리를 메가톤급으로 먹고..
어쨌든, 짐은 풀어봐야지 하고 열심히 해체작업을 했다.
(깨알같이 있다. 식탁보, 가방, 바디로션, 핸드크림, 비누, 아로마향초, 젓가락, 야돔, 호랑이기름, 악어이빨핸폰줄, 코끼리지갑, 컵라면, 코끼리인형, 벤또쥐포, 전등, 머플러, 귀걸이, 바지, T셔츠...)
갠적으로 너무 예쁜 코끼리 그림 핑크색 천가방이다.
닉과 아이린과 보가 선물해 준 가방이다.^^
그리고 옷과 낫이 선물로 인화해준 코끼리 트래킹 사진!
(처음 타봐서 해맑게 웃고 있는 나와 이미 몇번이나 타서 지루한 옷 ㅋㅋ)
별로 안사갖고 온거 같은데..
막상 풀어보니 짐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중에 선물로 받은게 반정도 차지했다.
보부상만큼이나 가져갔지만
올때도 그만큼 챙겨왔으니..
아무래도 운이 좋았다.
당분간 아쉬운 마음은 이번에 사온 태국 물건들로 달래야겠다.
선물을 너무 많이 받아서 정말 어쩔줄 모르겠다.
(그래서, 옷과 낫에게는 따로 선물을 챙겨서 EMS로 보냈다.)
그리고 옌타포를 끓여먹었다.
거기서 먹은 그 맛은 아니지만
나름 지독한 향수를 채워줄 정도는 되었다.
(식탁보를 깔아놓고 아로마 오일 사온걸 셋팅해 놓으니 그럴싸하다)
저 아로마 오일은 위에 움푹 들어간 그릇에 물을 넣고
아로마 오일 몇방울 뿌리면 향이 퍼지는데
그게 정말 향이 끝내준다.
떤의 탁월한 초이스로 엄마한테 이쁨 많이 받았다.
그리고 잠시 내방을 "기숙사방"화 시켰다.
ㅋㅋ 알알이 전등을 사와서 저렇게 꾸며놓으니
아늑하기가 이루 말할수가 없다.
저렇게 해놓고 맥주 한잔하면..캬~ ㅋㅋ
아 이로써,
아쉽게도 8박9일의 짧디 짧은 여정의 여행기가
드디어 끝났다.
아쉽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법.
이것이 모든 인연의 끝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분명 기회가 있다면 또 다시 만날 날이 올 것이다.
이게 란티엔과 그 친구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니까..
또 다른 추억을 위해, 이만 고이 펜을 내려놓을까 한다.
Say Good-bye, Thai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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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친구들과 함께한 어메이징 타일랜드 시리즈를 읽어주신 모든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냥 이대로 끝내버리면 제가 너무 아쉬울거 같아서요 ㅋㅋ
옷이 보내준 미공개 사진 몇장을 추가로 공개할께요.
저와 함께 즐기며 공감해주신 태사랑 가족분들!
열심히 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사랑합니다 ㅋㅋㅋㅋ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