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이 가족의 어메이징 타일랜드(2)
- 방콕에서의 첫 아침 -
전날 늦게 잠자리에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침 7시도 안된 시각에 눈을 떴다. 아직도 잠들어 있는 다른 가족들을 두고 조용히 베란다로 나와 봤다.
싱그러운 아침 공기.
아침의 이런 신선함은 내가 태국을 사랑하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담배 한 개피를 피워 물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조용하니 참으로 좋다. (여행오면서 아내에게 한 부탁: 태국에서만큼은 담배를 원없이 피워보게 해달라는 것. 대신 한국에 돌아가면 절대 안 피우겠다고 약속했다)
아침식사는 파아팃 거리에 있는 [나이쏘이]로 갔다. 여기 소갈비국수가 그렇게 맛있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어온터라 나도 꼭 맛보고 싶었다.
로컬음식점으로는 드물게 한글 간판까지 떡-하니 달려 있는데, 아이들은 주문도 하기 전에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코를 움켜쥐고 난리들이다.
‘ 어.. 이게 아닌데...’
그래도 호기롭게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고 “꿰이 띠오 느어 뚠” 네 그릇을 시켰다. 가격은 40밧.
마침내 주문한 [소갈비국수]가 나왔는데 아이들은 불과 한 젓가락 먹고는 못 먹겠다고 하고, 아내도 그냥 말없이 국수만 건져서 겨우 입에 넣고 있었다.
“야.. 먹기 싫은 사람은 다 아빠한테 가져 와”
결국 내가 혼자 세그릇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왔다. 사실은 내가 이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 “탐마다”(보통)를 시킨거다. 만일 “피셋”(곱빼기)이었으면 난 배 터져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길에 Take a seat에 들러서 아이들의 허기를 해결했다. 녀석들이 서양음식은 좋아하더만..
- 오전 투어 -
첫 나들이를 위해 아유타야 은행 환전소 앞에서 뚝뚝을 세웠다. 매캐한 공기지만 암튼 시원하게 가르며 내달리니 아이들이 엄청 좋아한다. 첫 번째 목적지는 [아난타 싸마콤 궁전]
1925년 라마6세 때 완공된 이 건물은 단일 건물로는 태국에서 가장 큰 대리석 궁전이다. 지붕에 멋들어지게 돔까지 얹은 이태리 르네상스 네오 클래식 양식의 이 건물은 라마7세까지 궁전으로 사용하다가 1932년에 입헌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었다. (현재의 국회의사당은 두씻공원 안에 있고, 이곳은 관광지로 개방되고 있다)
뚝뚝기사가 거스름돈이 없다고 하는 바람에 차비로 거금 100밧을 내고 들어가니 입장료가 150밧이다. 그런데 왕궁 입장권만 있으면 무료라고 한다. 게다가 아내의 7부 바지와 나의 카라 없는 티셔츠가 모두 복장위반이 되어 각각 40밧짜리 천을 구입해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 천을 한국에 사 가지고 가면 어딘가에라도 쓸모가 있으면 좋으련만.. 며칠 후에 처제 가족이 오면 왕궁을 갈 것이므로 그 때 다시 오기로 하고 돌아섰다.
결국 마당에서 사진 몇 방을 찍고 돌아서 나와 걷는데 [라마5세] 동상이 보인다. 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평가받는다는 쭐라롱껀 대왕.
우리의 광화문에 이순신 장군이 계시다면 이곳에는 이 분이 있다. 오전시간임에도 몇몇 시민들이 제단에 꽃을 바치고 향을 올리며 기도를 한다.
동상을 지나 사거리에서 좌회전해서 약 5분쯤 걸어 닿은 곳은 [왓 벤짜마보핏]. 위에서 설명한 라마5세가 대리석을 이용해 만들어서 방콕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으로 손꼽힌다고 한다.
불당인 “우보쏫” 입구에 세워진 사자 모양의 조각상 “씽”앞에서 불공을 드리기 위해 기다리던 스님으로부터 이 사원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데, 설명의 내용보다 감탄스러운 것은 스님의 영어 실력. 예전에 왔을 때 탐마삿 대학의 식당에서 만난 여학생의 영어 실력에 놀랐었는데, 이 분도 그에 못지않았다.
아름답게 꾸며진 경내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승려들의 숙소가 나와서 그들의 생활상을 곁에서 볼 수 있었고, 맨 안쪽에는 노점들도 있다.
사원 바로 옆의 학교에서는 무슨 운동회를 하는지 학생들도 많고 대단히 시끌벅적했다.
- 카오산로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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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에서 나와서는 점심을 먹기 위해 뚝뚝을 타고 [카오산로드]로 왔다. 전 세계 배낭여행자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곳. 어쩌면 “성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많은 여행자들은 자석에 이끌리듯 방콕에만 오면 습관적으로 이리로 모여드니까...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우연히 박 준 선생의 책 “On the road, 카오산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을 접했다. 그 책에는 이곳을 거쳐 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서 자신이 소유한 가치만이 최고라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파격으로 생각될지도 모를 이야기들이지만, 어차피 그것도 또 하나의 인생인 것만큼은 분명하지 않은가 생각된다.
점심을 먹으러 간 곳은 [샴록]. 밖에서 보니 가게가 크고 시원해서 절로 발길이 머물게 된다. 메뉴를 가져왔기에 살펴보니 두께가 웬만한 백과사전이고 태국음식은 물론 다양한 서양음식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팟타이”를 제대로 된 음식으로 먹으니 담백하고 맛이 아주 좋다. 티본 스테이크도 양이 풍부한데다 맛도 베리 굳!!
오전에 잠깐 돌아다니고도 피곤해서 숙소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들른 곳은 [왓 차나쏭캄]. 카오산 지역의 지리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이정표의 역할을 하는 이곳은 관광이나 종교적인 목적이 없이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서양인들이 찾는 사원이 아닐까 싶다.
밖에서 볼 때도 규모가 짐작되었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법당도 넓고 신도들도 많다. 문득 “여기는 왜 관광지가 아닐까?”를 생각했다. 법당에서 나와 후문으로 향하니 여기도 노점이 형성되어 있어서 옷과 음식을 판다. 뒤로 돌아서서 건물을 보니 정말 웅장하다.
숙소로 들어가기 전에 잠깐 [동대문]에도 들렀다. 내일의 칸짜나부리 투어를 예약하기 위함이다. 그동안 인터넷 상으로만 보던 “재석아빠”님을 만날 수 있었다. 머리가 하얗게 세서 실제보다 연세가 더 들어보였는데, 우리 애들을 예뻐해주셔서 고마웠다.
몸이 힘드니까 여행이고 뭐고 만사가 귀찮다. 일단은 잠이나 좀 자고, 다음 일은 일어나서 생각해야지..
- 운하투어 -
한 시간쯤 자고 일어나서 [태사랑]에 소개된 “70B으로 떠나는 운하투어”를 했다. 원래는 씨암 스퀘어에 가서 쇼핑도 하고, 태국 최고의 명문 [쭐라롱껀대학] 도서관에도 들어가 볼 생각이었는데, 그것보다는 이게 더 재미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먼저 결론을 말한다면 1,000밧 짜리 크루즈를 한들 이보다 좋을까 싶다. 최고의 경험이었다.
[타 파아팃]에서 수상버스를 타고 [타 창]까지 가는 것은 좋았다. 하지만 타 창에서 순간적으로 무엇에 홀린 듯 착각을 일으키는 바람에 논타부리행 수상버스를 탄 게 문제였다. 배 안에 들어와서야 이게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결국 출발점인 타 파아팃에서 내려서 다시 아까의 여정을 반복해야 했다.
타 창에서 내려 잠시 기다리니 [방야이]행 운하버스가 왔다. 근데 이건 타는 위치가 수상버스보다 많이 낮았고, 나도 예전에 다친 왼쪽 팔이 다 낫지를 않은지라 불편한데, 그만 작은 녀석을 태우다가 넘어져서 놓칠뻔했다. 만약에 놓쳤으면 아이는 강물에 풍덩 빠지는 상황. 그 바람에 뒤에 앉은 아줌마한테도 민폐끼치고...
태사랑에서 배운 대로 맨 앞에 앉기는 했는데 자리가 엄청 비좁다. 키 165에 숏다리인 나도 다리가 저린다.
이윽고 운하버스가 속력을 내며 달리기 시작하는데,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는지 모른다. 청평에서 모터보트 타는 거보다 훨씬 재미있다. [짜오프라야 강]을 달리던 버스는 잠시 후 [방콕노이운하]로 접어든다.
운하의 좌우로 펼쳐진 모습은 방콕 저소득층 시민의 생활상 그대로이다. 예전 서울의 청계천과 중랑천 변에도 판자집들이 즐비했다는데 이곳 사람들의 사는 모습도 고단해 보인다. 처음에는 신난다고 좋아하던 아이들도 나중에는 “우울하다”는 말을 한다. 수상가옥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나보다.
아까 민폐를 끼쳤던 아줌마랑은 곧 친해져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아줌마가 간단하게나마 영어를 할 줄 아셨고, 또 우리 애들을 예뻐하셨기 때문. 그렇게 1시간 정도를 달리니 [방야이] 종점에 이른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방야이의 마을 풍경은 한가롭고 좋다. 배 안에 가득했던 사람들은 중간에 다 내려버렸고, 종점까지 온 사람은 우리 가족 넷과 아줌마, 그리고 현지 꼬마애들 둘 뿐이다.
우리를 태우고 온 롱테일보트는 다시 손님을 태우지 않고 빈 배로 돌아갔다. 선착장을 지나 밖으로 나오니 운하 주변의 마을처럼 초라하지는 않다. 노점에서 뭔가 신기하게 생긴 것을 발견하고 먹어보려 했으나 혼자 먹기엔 양이 너무 많아서 포기. 조금 더 걷다가 [까시꼰 은행] 앞에서 [타남]행 버스를 탔다.
이건 현지인들만 타는 로컬버스인데 사람이래봐야 운전수, 차장, 우리 식구 그리고 현지인 1명이 전부였다. 재미있는 것은 문을 아예 열어놓고 운행한다는 거. 자세히 보니 문을 닫을 수 없게 아예 줄로 매놓았다. 약 20분쯤 지나서 [타남] 도착
선착장을 등지고 바라본 도시의 모습은 분주했다. 선착장에서 “르아캄팍”을 타고 강을 건너면 [논타부리]. 수상버스(르아두언)의 북쪽 종점이다.
아까 타남에서도 그랬고 여기 논타부리에서도 아내는 자꾸 택시를 타자고 하고, 아이들은 뚝뚝을 타자고 했는데, 그랬으면 교통비가 엄청나게 나올뻔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기는 방콕이 아니더라구.
논타부리에서는 다시 수상버스를 탔는데 일몰을 보지는 못하고 야경을 보면서 왔다. 저녁식사는 숙소 부근의 [싸왓디 테라스]에서 피자+카우팟 꿍(새우볶음밥)+팟타이 꿍(새우볶음면)에 싱하 맥주를 곁들였다. 여기는 람부뜨리로드에서 가장 크고 멋진 식당으로 아이들이 특히 좋아했다.
사족
1) 아난타 싸마콤 궁전의 복장 규정은 특별히 까다롭습니다. 반바지와 민소매, 슬리퍼가 안 되는 것은 기본이고, 7부바지와 카라 없는 티셔츠도 안됩니다. 이런 경우 보증금을 내고 천을 빌리는 다른 곳과 달리 여기서는 40밧을 내고 천을 사야 합니다.
2) 방야이는 작은 마을이고 시장이 하나 있습니다. 거기 노점에서 본 음식입니다. 이게 무엇일까요?
3) 운하투어에 든 교통비는 수상버스(9B)+운하버스(50B)+로컬버스(7B)+르아캄팍(2B)+수상버스(14B)해서 총 82B입니다. 수상버스는 어린이 요금을 안 받던데 운하버스는 어린이 요금을 받더군요. 똑같이 50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