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켓에서의 추억 -1-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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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켓에서의 추억 -1- 만남

트라이크 3 1460
직장 3년차에 젊은 시절 처음으로 해외출장 명령을 받았다. 시장이 급성장 추세인 동남아시아의 거점도시 방콕사무소를 법인으로 전환하고 관광도시 푸켓에 지점을 개설하는 일이었다. 영어도 그리 잘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방콕 임무는 상당이 떨리고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나와는 전혀 다르게 생긴 사람들만이 있을 도시와 내가 살아온 세계와 전혀 다른 풍물로만 되어 있을 풍경들, 내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만 가득찬 도시는 매우 흥분되는 젊은 시절의 도전이었다.



패기와 열정으로 뭉쳐있던 시절이었으므로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호기심이 많고 낮을 안가리는 천성 덕택에 이국의 풍물은 하루아침에 정겨운 고향처럼 나에게 다가 왔다. 가무잡잡한 얼굴이었지만 독특한 매력을 풍기는 태국 여성들, 다양한 인종에 익숙한 그들의 친절함, 여전히 후진국이었지만 풍부한 자연자원으로 넉넉한 인심, 불교 신앙으로 미소를 잊지 않는 여유가 보기 좋았다.



주말은 나에게 태국에 대한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주말에는 일이 없었으므로 관광을 하였고, 지사장은 친절하게도 영어를 좀 할 줄 아는 가이드를 내게 소개해 주었다.



첫 인상이 순진해 보이는 태국 여성이었는데 방학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는 방콕대학생이었다. 나는 그리 영어가 익숙한 편이 아니었으므로 말보다는 보디랭기지를 주로 사용하였고 내가 보디랭기지를 익살스럽게 표현할 때마다 그녀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곤하였다. 그녀의 이름은 푸이(Pui)였다.



말소리가 매우 조심스럽고 나직한 편이었으며 약간 상기된 듯한 반옥타브 올린 음성은 때때로 내게 묘한 이국에서의 감성을 자극시켰다. 그것은 젊은 시절 이성에 대한 그리움이 매우 예민한 일반적인 것 그 이상이었으며, 외국 여성을 친구로 받아드리는 것에 준비되지 않았던 어색함을 단번에 뛰어 넘는 그 무엇인가였다.



약 2주간 방콕에 머물렀었는데, 그 주말이후 나는 평일에도 그녀에게 다이얼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으며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라 어렵게 그녀와 통화할 수 있었다. 무슨 인연인지 묘하게도 그녀는 푸켓이 고향이었으며 2주후 푸켓으로 떠날 때 나는 다시 그녀와 동행할 수 있었다.



푸켓에서는 그리 오래 머물를 수 없었다. 대략의 자금 운용계획만을 마련하고 사무실을 구한 다음 나는 다시 귀국해야만 했다. 짧은 푸켓 체류였지만 아름다운 해변에 둘러 싸인 휴양도시의 파란 하늘과 반짝이는 모래 사장에서 그녀와 나는 밤이 이슥하도록 맥주를 마시곤 하였다.



적극적인 행동을 서슴치 않을만큼 나이가 많은 시절이 아니었고 그녀 또한 어린 학생의 시절이었으므로 우리는 끝없는 모래해변에 무수히 많은 발자욱만을 남기고 돌아서야만 했다.



짧은 일정을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푸켓공항에서 숨기는 듯 고개숙인 그녀의 눈가에 비치는 눈물을 보면서도 나는 그 어떤 말도 연락처도 주지 못한체 돌아서야만 했다. 이성을 사귀는데 익숙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으므로 그녀의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차릴 수 없었다.



아니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은 정확한 표현은 아닐 것이다. 그녀의 감정과 나의 감정이 분명 보이지 않는 그 어떤 지점에서 만나고 있었고, 매우 밀접히 뒤엉켜 있엇지만 나는 여전히 나의 감정과 그것을 표현하는 말 사이에서 끊없이 갈등하는 어린아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한 나의 실수는 시간의 지우개가 매우 천천히 푸켓 해변의 기억을 지워가는 동안 계속 아파해야만 하는 후회의 날들을 만들었다. 많은 시간들이 흘러갔고 알콜을 들이키는 시간들이 계속될수록 푸켓의 밤하늘은 조금씩 나의 머리속에서 지워져갔으며 어느새 서울의 밤하늘과 똑 같이 되어버린 기억이 되었다.
3 Comments
사랑 2004.05.21 19:55  
  대단한 글솜씨 !!
다음편이 기대됩니다.
트라이크 2004.05.21 20:02  
  감사합니다....다음편 금방 올리겠습니다....
골드 2004.05.22 01:14  
  ...추억..너무 아름다운..전  몇년전  오랜기억이지만..

호주의 골드 코스트의  추억을 생각하며..............

이 글을 읽으니..그립군요..그 느낌..오늘도  그 시절을  함께  나누던 친구들과 한잔하며  추억속의 이야기를.........9년전........난  이젠..푸켓으로 갑니다..

푸르른 하늘과 신선한 공기...난..대 자연을  무지 좋아 하나봅니다................. 이 글을 읽고  참 ,많은 추억 속으로 갔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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