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er Together ::: story 006. 아무래도, Chiang mai.
5월 14일_
PAI, 언젠가는.
간밤에 일어난 두드러기에 정말 없어 보이게 벅벅 긁으면서 잤더니 어깨 부분에 딱지가 앉았다.
아침에는 어느정도 가라 앉은 걸 보니.
이건 뭐...
그냥 단순한 술독이었나보다 -_-...작작 좀 마실걸...
아무래도 알콜을 분해하는 능력이 저하되고 있는게 분명해...
이런 식으로 나이가 들어가는 걸 깨닫는건 싫지만.
물갈이가 아니어서 다행이란 생각.
희안하게 찬물을 아무리 들이켜도 속앓이 한번 안한다.
문제는 알콜이구만. 쌩쏨이 안받나? 안되는데...
간밤에, 빠이는 이걸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치앙마이로 돌아가기로 하고 눈을 뜨자마자 짐부터 챙긴다.
여운도 없이, 어쩌면 꽤 건조하게.
버스터미널로 가서 치앙마이로 가는 버스 시간을 확인한다.


의미없이 담긴, 내게 있어 PAI의 마지막 풍경_
로컬버스, 미니버스, 밴...
12시가 임박한 지금 로컬버스는 눈앞에 있지만 타고 싶지 않다.
돌아가는 길마저 감상적이 되기엔 나는 별다른 미련이 없기 때문이다.
미니버스 12시 30분.
바이크를 반납하고, 세븐에서 차 안에서 간단하게 먹을 빵을 사가지고 왔다.
그리고 12시 30분에 칼같이 출발하는 미니버스.
출발하기 전에는 간단한 간식까지 나눠주던 미니버스 (...나 세븐에서 빵 왜 사왔니)
그렇게 싱겁게 빠이를 떠났다.
가는 길에는 그렇게 오만가지 잡생각에 삼라만상이 나와 함께 하는 기분으로 도착했건만.
"어땠어요..,?"
라는 물음에 할말을 찾지 못했다.
그냥 간단하게. 한번이면 충분한 곳이네요.
별다른 이유가 없는 한 다시는 머물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좋았다, 나빴다. 이분법적인 이런 문제가 아니었다.
결코 간단하지 않은 나의 마음에 그저 마침표를 찍어 주었을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내 친구의 말버릇.
That's it.
.
.
.

치앙마이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거쳐간 휴게소에서...
back to Chiang mai.
미니버스로 약 세시간.
빠르고 쾌적하게 치앙마이에 돌아왔지만,
지난 밤에 카메라에 흘린 음식물 때문에 카메라에 개미가 꼬여 신경이 곤두설대로 곤두서서
치앙마이에 도착하고도 신경이 쓰여 한마디도 하고 싶은 기분이 안든다.
말을 하면 나는 왠지 불부터 뿜을 것 같은 상황이었어.
필름 돌아가는 소리가 심상치 않아 사진을 찍을 때마다 신경이 쓰여 더위 따위 잊은지 이미 오래.
내 성질머리가 이렇지 뭐.
일단 집을 구해야 하니까,
타페 게이트로 이동해서 치앙마이에서 발이 되어 줄 바이크를 대여하고,
구글링을 통해 찾아두었던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간다.

"빌려줄게."
와로롯 마켓 앞에 흐르고 있는 삥 강 건너에 있다고 하는데...
뭔가 굉장히 번화한 가운데, 홀로 고즈넉해 보이는 게스트 하우스가 보인다.
이것은...
제대로 수상하다.
영업도 안하는 것 같아.
원래 묵으려고 했던 게스트 하우스 옆에 하얀 외벽의 밝아보이는 곳이 눈에 들어와,
일단 초크보드에 프로모션중, 399밧. 이라고 써있으니 저기 먼저 가보자고 들어갔다가,
우리가 요구하는 모든 조건과 일치해 그대로 체크인.
(일단 방에 냉장고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 ㅠㅠ 맥주를 쟁여놓고 마실 수 있어!)
BAAN CHONPAKORN이라는 이름의, 아마도 생긴지 얼마 안되어 보이는 게스트 하우스.
리셉션 옆쪽으로 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일반 가정집 같은 내부가 참 친근하다.
16일 밤,
기차표를 구하지 못한 탓에 야간버스로 방콕으로 이동할 계획이어서,
체크아웃을 일찍 하게 되면 중간에 짐이나 동선이 모두 엉켜 버릴거라는 생각에,
2nytes and half day분을 지불한다. 아마도 지금이 비수기여서 프로모션 가격에,
1/2금액으로 늦은 체크아웃까지 가능했던 것 같다.
그리하여 방콕으로 출발하는 날 저녁 8시까지는 거점이 생긴 셈.

오른쪽에 보이는 집이 원래 계획했던 Bussaba B&B.

바로 뒤에 WAT이 있다.


늦은 오후의 빛이 들어오던...
기쁜 마음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간다.
역시나, 치앙마이에 와서도 나는 no plan.
수동적인 여행자의 극치를 향해가고 있는 기분.
패키지 투어 온것도 아닌데 이렇게 아무것도 안해도 되는건가 싶지만,
궁금한 것도 없고, 불편한 것도 없고, 음식이 입에 안맞는 것도 아니고~
그냥 태국에 있다, 라는 사실하나로 기분이 둥둥 떠다닌다.
아무것도 안해도 좋은...이 곳이기에 가능한 그런 기분.
+

큰 건물이 보이는 걸 보니 도시가 맞다.
바이크를 타고 달리자니 도시에 온 실감이 난다.
숨이 턱턱 막히는 매연,
그런 번잡함이 싫지는 않다.
빠이에서 하루를 열흘같이 보낸 나의 이틀은 약 20일 같은 기분.
머리 위에 멈춰 있는 구름을 볼때면,
누군가 시간을 멈추고 나는 그 멈춘 시간안에 그저 움직이기만 할 뿐인 생물 같았다.
지구의 일부라는 기분을 적절히 느낀 후인지라,
어느 정도 선택의 여지가 있는, 하지만 생각할 여지는 적은 도시에 온 기분이 신선했다.
+
한시간 정도.
엉덩이가 짓무르기 시작 할 것 같은 시점에 적절하게 바이크에서 내린다.
그러고 보니 오늘 미니버스에서 먹은 세븐에서 사온 빵이랑 버스에서 준 주스와 과자가 끼니의 전부였었다.

말 그대로 "창고형 뷔페".....라고 부르면 좋을 듯한 여긴 대체 뭐여.
뷔페계의 코스트코. 뭐 그런느낌?;
"고기뷔페라면 단연 여기! 라고 태사랑에도 나와있어. 수천명이 모여서 고기를 굽고 있을거야."
뭐? 고기?
고기...
나 고기 별로 안좋아하는데.
그래도 해산물도 있고, 경험삼아 한번쯤은 괜찮겠지, 라는 생각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앞에서는 알아 들을 수 없는 말로 경로잔치풍의 공연이 진행중이다.
하하하.

진짜 수천명이 모여 앉아 고기를 굽고 있다. 이 박력. 이 곳에서 본의 아니게 느껴버리는 어메이징 타일랜드.
결국 엑스트라 페이 30밧이라는 태국어를 읽지 못한 나는 새우 두개에 빈정이 있는대로 상해서
화해의 망고스틴을 주고 받을 때까지 침묵 속의 식사를 지속했다.

문제의 새우.
엄청난 분위기의 무까타 수키집...
엄청난 분위기의 무까타 수키집...
배가 부를대로 불러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님만해인을 지나치고,
나이트 바자에 들러 한껏 관광객 기분에 젖어본다.

하이바흔적이 선명한 내 뒷머리 -.- pics by. pai1095
+


NIGHT BAZAAR...Chiang mai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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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곳에서도 이어지는 나의 그저 그런 이야기_
커피가 이유가 아니더라도 스타벅스는 도시를 여행하면 꼭 들르는 곳이 되어버렸다.
전세계 어디를 가도 똑같은 분위기를 고수하는 스타벅스가 제공하는 "익숙함"의
노예라서가 아니라, 내가 여행 중에 수집하는 것을 이 곳에서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커피는 스타벅스가 아니어도 맛있는 집은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나와 동행하는 사람들이 "여기까지 와서 스타벅스?" 라는 말을 하지 않는 이유는...
꽤 오래전에, 아마도 2004년 4월로 기억한다.
길었던 여정의 여행에 지쳐 두문불출 숨어버렸던 어느 도시에서였다.
내가 그 곳을 여행했을 때가 그 시기니까...
높은 창으로 참새가 날아 들어오던 백팩커즈의 공동주방에 앉아 샌드위치를 한 입 물었을 때였다,
여행 중에 드물게 듣게 되는 한국말, "한국 아가씨가 다 있네...?" 나는 그때 스물 두살이었다.
정년퇴직을 하시고 홀로 여행하시는 노신사 분이 내게 말을 걸어 오셨다.
긴 여행의 막바지에 다다른 시점이라,
다양한 국적과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났지만 고희를 바라보는 연세의 백팩커를,
그것도 한국사람을 만나는 건 처음이라,
놀랍고 신기한 마음에 그 분과 꽤 많은 시 간을 보내며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거의 좋은 말씀을 해주시면 듣는 입장이었지만.
자녀들을 모두 출가 시키고 "진정한 자유"를 느껴보고 싶어 그냥 배낭을 메셨다고 한다.
알아주는 대기업에서 앞만 보고 달려오다보니 이 나이가 되버렸지만,
당신의 마인드 만큼은 누구보다 젊다고 말씀 하시며, 이런 젊은 애들이나 오는 백팩커즈 같은
싸구려 숙소에 오는 이유도 여행 중의 "우연한 만남"이 즐겁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바로 지금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지."
그리고 몇번이나 같이 저녁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백팩커즈 근처의 대형마트에서 공동주방의 냉장고에 채울 음식들을
사들고 돌아오는 길에는 노천까페에 앉아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어느 날, 따뜻한 커피를 한잔 사주시면서, 다음 목적지를 향해 떠나신다며-
서로에게 남은 여정에 행운을 기원함과 동시에, 나에게 물어오셨다.
"여행지의 기억을 위해 특별하게 하는게 있니?"
"저는...음...사진을 찍고, 일기를 써요. 그림도 그리고."
"그런 당연한거 말고. 뭔가 물질적으로 남기는 것 말이야. 수집하는 거라던가."
"아직까지는 없는데요...어릴때 아버지와 여행을 다닐때는 들르는 도시마다
그 도시가 각인 되어있는 뱃지를 사주시곤 했어요,
그 도시가 각인 되어있는 뱃지를 사주시곤 했어요,
물어보시니까 문득 생각났는데 혼자 다니면서는 그런 일들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고 있었네요..."
"아버지가 제대로 여행할 줄 아시는 분이구만."
사실 그랬다, 아빠가 엄마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를 "혼자"여행을 보낸 이유도
"귀여운 자식일 수록 여행을 보내라." 라는 말 때문이었으니까.
"아직 기억을 남기기 위해 특별히 모으는 게 없다면 내가 헤어지는 선물로 하나 가르쳐 줄게.
나는 내가 거쳐간 도시마다 그 곳을 잊지 않기 위해 머그컵을 사는데, 이게 꽤 괜찮아.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가서도 내가 모아놓은 머그컵들을 보면 그 도시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상황에 이걸 사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사진으로도, 문서로도 남아있는게 아닌데
아주 또렷하게 기억나거든. 치매예방에도 좋고. 머그컵도 실용적이고.
혹시라도 깨먹으면 다시 사러 나와야 한다는 명분도 생기고 말이야.
아주 또렷하게 기억나거든. 치매예방에도 좋고. 머그컵도 실용적이고.
혹시라도 깨먹으면 다시 사러 나와야 한다는 명분도 생기고 말이야.
괜찮지? 쓸데없는거 사서 가져가 서 버릴 짐 늘리지 말고 그냥 컵 사, 잘지내고."
그 날 이후로 나는 여행지의 컵콜렉터가 되었다.
스타벅스는 "시티머그" 라는 이름으로 해당국가나 특정 도시의 이름을 넣은 머그컵을 판매하는데,
다른건 몰라도 시티머그 만큼은 해당국가에서 제조하도록 하는지 한국에서는 Made in Korea,
일본에서는 Made in Japan, 그리고 태국에서는 Made in Thailand로 출시 된다.
(치앙마이 머그를 사러 들어가서 에이 설마~ 이러면서 확인했더니 제조국가 태국 맞더라...)
스타벅스의 시티머그는 여행의 기억을 모으는 나에게 일종의 기준과도 같아서,
아무리 헝그리 여행을 한다고 해도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 되어버렸다.
밥한끼 굶지 뭐, 이런 마음이랄까...
밥한끼 굶지 뭐, 이런 마음이랄까...
이렇게 모으는데, 여행지에 스타벅스가 없다면?
depends on situation. ;-P

+ STARBUCKS, Night Bazaar, Chiang mai.
수집하는 "여행지의 기억"을 손에 넣은 후, 한잔의 커피는 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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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는 이렇게 치앙마이로 돌아왔다...

도시의 밤을 밝히는 오렌지색 조명들은 어딜가도 현재의 화석 같다는 생각을 하며...
"있잖아...나 빠이에 다녀왔어,"
나는 지금, 치앙마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