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er Together ::: story 003. road to P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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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ter Together ::: story 003. road to PAI

케이토 20 3312

5월 12일_


12시 30분.
로컬버스에 몸을 싣는다.

덥다.

세븐에서 산 생수는 벌써 현재의 기온에 알맞게 미지근하다.

오랜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용한 듯한 시트는 체형대로 구겨져 있어 왠지 불편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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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cs by. pai1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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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더운데 잠이 온다.

비행기에서 제대로 못잔 밀린 잠을 로컬버스에서 자버리기로 마음 먹은 사람처럼 버스가
치앙마이 버스 터미널을 떠나자마자 밀려드는 잠 속으로 빠져든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도시의 흔적이 사라져 갈 무렵에 눈이 떠져서 시계를 본다.

한시간이 조금 지났나...

여전히 "덥다."
야무지게 달궈진 버스의 알루미늄 창에 기대기가 뜨거울 정도로.

"이런 더위에, 이 상황에서 잘자네요?"
비행기에서 두 눈 똑바로 뜨고 주섬주섬 가방을 열었다 닫았다 하던 애가,
버스에 타자마자 자고 있으니 신기한 듯, 그가 묻는다.

"아...나 졸리면 아무도 못말려요, 
 어떤 극한상황에서도 잘 수 있는 신경을 가지고 있달까..."

몇년전엔가 너무 피곤한 상황에서 여행을 떠났을 때, 내가 20시간 가까이 자고 있으니 
일행들이 깨우려고 방안에서 가라오케 기계를 켜놓고 난리 굿을 하는데도 꿈 속을 헤매던 신경이다. 



태국의 더위조차도 나의 잠 앞에서는. 



막상 눈을 뜨니 할일이 없다. 

동행인과의 대화를 나눌 만큼의 기력도 없다.


무심히 팬이 돌아가는 버스 안. 다들 말이 없다.
버스는 생전 처음 보는 길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뜨겁고...



음악을 듣는다.



30분쯤, 아니 한시간쯤.
사실 시간따위야 어떻게 흐르고 있건,
나는 몇곡의 노래를 듣는다.




빠이까지 얼마나 걸린다고 했더라.





멍한 정신이 절정에 달했을 무렵에, 어디선가 젖어드는 흙냄새에 나는 직감한다.

'비가 오겠구나...'

비를 몰고 오던 어떤 바람과 그 독특한 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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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할 것 없다고 말하는 듯 끝없이 구불구불한 산길에서 만난 소나기.
낭만적이 되기에는 엄청나게 쏟아지는 빗줄기에,
허름한 버스 안으로 당연하다는 듯이 물이 새어 들어온다.

건너편에 앉은 유러피안 아가씨는 상반신만 샤워라도 한 듯 흠뻑 젖는다.


그렇게 한차례 시원한 빗속을 뚫고 휴게소에 도착해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잦아드는 빗줄기를 보며, 점점 시원해지는 바람을 느끼며 남은 여정을 향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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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거 없었는데." 라고 말하던 휴게소에서 잠깐 멈춰서서...                pics by. pai1095




after the rain...


비 그친 창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
상쾌하게 씻긴 숲으로부터 날아드는 향기들,
녹아들것만 같은 더위가 잠시나마 한풀 꺾이자 이런 이동도 꽤 즐겁다는 생각을 한다.


담아 온 음악은 계속해서 트랙이 넘어가고,
이어폰 밖으로 들려오는 바람소리와 낡은 로컬버스의 엔진소리,
그리고 나의 음악들이 뒤섞여 만들어 내던  그야말로 여행자의 시간이 흐르던 세계.


눈을 감고, 



그저 소리와, 공기의 감촉에 몸을 내맡기고...



다시 얕은 잠 속으로 빠져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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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뜨니 이 곳은 PAI로군요.


"KAT, 다 왔어요."



"...여기예요?"



당신이 꿈에 그리던 그 곳이, 여기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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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 PAI. 노란 은행 앞에서...





+



빠이에 도착해서 찍은 사진들은 모두 필름에 담아온지라...
디지털이미지로 남아있지가 않네요...
필름스캔이 언능 끝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자느라 정신이 멍해서 감각만 남아있고 기록이 없어서
동행인이 남긴 기록을 슬쩍 해왔습니다 (...)



20 Comments
시골길 2010.05.23 17:17  
헛..1등..??
더운 날에 로칼버스로 찾아간 그 곳은...어떤 느낌으로 다가왔는지 궁금하군요..^^
케이토 2010.05.23 17:25  
빠..르시군요 (...)

그 곳은...단 이틀밤을 보냈을 뿐이지만...
그렇게 까지 감상이 길어질 줄은 몰랐던 곳이 되었답니다... ;-)
zoo 2010.05.23 17:37  
나...졸리면 아무도 못 말려요...미투!!라고 외치고 싶습니다.ㅎㅎ
요즘들어 잠을 충분히 못자면 생활이 안되요.ㅠ.ㅠ 푹~잠자는게 제일 좋아요^^;
빠이가는 길을 보니 예전 비포장도로 시절에 다녀온 캄보디아 씨엠립 육로가
생각나네요^^ 빠이!! 말로만 듣던 곳인데 이렇게 다시 글로 보게 되서 반가워요^^
케이토 2010.05.23 17:44  
정말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 상황에서도 잠들고 마는 -_ㅠ...
빠이 가는 길은 전부 필름으로 남겨서 (졸리니까 무거운 카메라는 쳐다보기도 싫은 -_-;;;)
지금 몽환적인 느낌밖에 남아있지가 않네요...왠지 열흘 전 이었음에도
굉장히 먼 기억이예요...캄보디아...저도 언젠가는 꼭... ;-)
날자보더™ 2010.05.23 20:01  
ebs 다큐영화주간에 심야에 해주곤 하던 독립영화비스므레한 것들이 떠올라요.
무성영화도 아니건만...등장인물들이 끈적끈적한 땀을 흘리며 내리쬐는 볕을 받으며
건조한 풍경을 뒤로뒤로하면서 버스를 타고 가죠.
막상 내가 그러고 가고싶진 않은데...참 몽환적인 장면이에요.
비가 왔군요. 그 구비구비길에 비라...스릴넘칠 일인데...자버리셨구만요. -_-;
케이토 2010.05.23 22:38  
비 올때는 깨어있었어요 ㅎㅎ 시원해서!
근데 더워지기만 하면 다시 잠이 오는-;;;
왜 더우면 잠이 올까요...저 이번 여행 내내 늦잠 작렬이었어요 ㅠㅠ

여튼 드라마틱한 날들이었습니다...가는길에 나무가 번개맞아 쓰러져있고...
날자보더™ 2010.05.23 23:13  
흠...전생에 <손목가는 나무늘보>?
웃자고 한번 더 끄적거렸습니다.

전 날이 슬슬 추워지기 시작하면 잠이 한없이 쏟아져서 남편이 <동면 곰>이라고 하죠.
케이토 2010.05.24 01:41  
전생이 손이 큰 팬더..였을지도 ㅋㅋ
저 다크서클 지존입니다. ㅋㅋㅋㅋㅋ

이런 자기 무덤식 댓글...저 괜찮을까요 ;ㅂ;?
열혈쵸코 2010.05.23 20:46  
저 하얗고 가는... 여자분의 손목은 케이토님의 것이로군요!!
동행님의 사진이라고 하시니 그렇게 짐작이 됩니다. ^^
무거운 카메라와 잦은 이동의 후유증은.. 피로이군요..
피곤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주무실 수 있다는 이야기가 왠지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케이토 2010.05.23 22:43  
손목이 가는게 아니라 손이 큰거랍니다 ㅠㅠㅠㅠ

짐을 줄일때 가장 줄이고 싶었던 짐이 카메라여서 DSLR절대 안가지고 가려고
똑딱이를 하나 새로 주문했는데 -_-;;; 저 귀국하는 날 배송되어 왔지 뭐예요 (...)

피곤할때 정말 퓨즈가 나가는 것처럼 "팟" 하고 잠들어요...눈을 뜨면 목적지...
혹은 아침...
동쪽마녀 2010.05.23 21:27  
치앙마이에서 버스로 이동할 자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없고,
그렇다고 항공편을 이용하면서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싶어 접은 곳이 빠이입니다.
케이토님께 빠이는 많은 것들을 남겨 주었나 보구먼요.
그래도
빠이엔 가지 않을테야,
고집스럽게 버티고 있는 동쪽마녀입니다.^^

저 하얗고 여린 케이토님의 손, 죽도록 부럽사옵니다.ㅠㅠ
케이토 2010.05.23 22:46  
음- 저는 동행인이 pai1095일 만큼 빠이를 사랑하는 분이셔서,
이 두눈으로 그 곳이 어떤 곳인지 꼭 확인하고 싶었기에...
방콕..기껏해야 파타야가 전부인 제가 머나먼 여정을 떠나게 된거랍니다 ;-)

손은...;;; 사실 손가락이 무척 긴편이긴 하지만 크기가 남달라서...
왠만한 남자보다 손이.................
민베드로 2010.05.23 23:08  
빠이로 가는 완행버스에서 비가 온다면..
제대로 엑티비티..혹은 죽음의 공포?를 느낄 수 있을거 같습니다.
그것도 폭우 정도 였다니...

케이토님의 빠이 여행의 감상이 어떨지..
치앙마이가 더 좋으셨다지만 빠이 특유의 한가로움과 아기자기함은
느끼셨을지 궁금하네요..

커피인 러브같은 언덕 위 카피도 좋겠지만
타운 안의 작은 카페와 봉고차(예쁜..뭔지 아시죠?)에서 파는 커피도
너무 그립습니다.^^
케이토 2010.05.24 01:42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는데...
번개맞고 두동강 난 나무가 도로에 널부러져서 반대 차선으로 돌아 간 경험은
굉장했다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ㅂ=;

빠이는...
개인적인 감상이 많은 마을이어서- 왜 이렇게 할말이 많은지..
천천히 풀어가 볼게요 ㅇㅅㅇ...좋았다,라는 기억은 같지만 둘중에 고르자면...이랄까요 ^^
타운의 봉고차 커피는 없어진건지...제가 못본건지...
동행분 말로는 원래 있던 자리에 없다고 이제 없어졌을런지도 모른다고 하더라구요...
들어온 이야기와 참 많이 달랐어요...
옌과제리 2010.05.24 16:01  
빠이 정보 많이 올려주세요..
케이토 2010.05.24 17:54  
저는...이렇게 수동적인 자세의 여행이 처음이어서...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드릴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ㅠㅠ
하지만 사진만큼은 부족하지 않을 만큼 많이 담아왔어요... :-)
지금 사진 찾으러 가는 길인데...떨립니다...
블루파라다이스 2010.05.26 02:19  
로컬버스...

정겨워 보이네요~

때론 느린것에서, 뒤쳐진듯한 것에서...

지난날에 대한... 연관도 없을법한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그런 여행이 저도 좋습니다...

올초.. 카오산에서 싸얌 나갈때...

일부러 15번 로컬버스를 자주 이용했습니다...

여름에는 에어컨없이는 못사는 저 이지만....

더운 로컬버스에서의 느낌이 괜챦았어요...

하루는 일행과 같이 제가 우겨서 로컬버스를 탔다가...

사서 고생한다고 엄청난 투정?을 들었지만요...ㅎㅎㅎ

빠이에서의 여정이 기대 되네요~
케이토 2010.05.26 12:18  
사람을 굉장히 감성적으로 만들어주는 버스라는 생각입니다.
거기에 비까지 내리니 꿈인지 현실인지 몽롱한 상태가 되더라구요...

빠이...블루파라다이스님에게는 어떻게 다가올 지..궁금해집니다...
Lantian 2010.08.08 18:47  
극한의 더위에 몸이 자동으로 현실도피하려는 일종의 신호 아닐까요 ㅋㅋ
잠을 잠으로써 더위를 잊어보겠다는... 쿨럭..
뭐 그런 신경조차 없이 더위에는 앗싸리 맥을 못추는 저로서는...
참으로 부러운 신경구조입니다 :)
케이토 2010.08.22 10:32  
란티엔님, 즐거운 여행중이시겠네요 ;-)
저는 더위는 별로 안타는 편인데 로컬버스에서는 정말...
달궈진 창틀이 뜨거웠음에도 불구하고 피곤한 몸을 가눌 길이 없었답니다 -ㅂ-;;;
저는 극한의 무신경인지도 몰라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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