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er Together ::: story 002. CNX to PAI
5월 12일_
Blind date with "PAI"

내게 말했지.
"잊기 어려운 곳이 있어, 그래서 더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있어."
대체 어떤 곳이기에...
태국 북쪽의 빠이라는 작은 마을이 그토록 마음에 남아있나요.
"어떤 기억이 있기에 그토록 잊기 힘들어 매번 그 곳으로 돌아가나요?"
잊기 어렵거나 힘든게 아니라, 단순히 "좋아해." That's it.
누구나 가슴 한구석에 보석같은 장소 하나쯤은 있는거잖아요?
질투...
아니 어쩌면 단순한 "부러움."
"빠이에 놓고 온 처자식이 있어."
"그 처자식이랑 지금 나랑 대면 시키려는거야 시방?...머리채 잡을 준비 하나요?"
나는 아무래도 감상적이 되기엔 성격이 너무 시트콤 지향의 집안에서 자랐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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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르는 타인의 기억. 타인과의 기억.
바라건데, 이 여행이 끝나면 부디 내가, 그리고 당신이 조금 더 자유로워지길.
+
아직 치앙마이, 아침.
8시 무렵에 일어나 군장을 꾸리고 빠이로 이동할 준비를 한다.
하지만 그전에, 방콕으로 돌아갈 "기차표"를 사기 위해 썽태우를 타고 기차역에 들렀다.

방콕으로 돌아가는 날이 16일 이니까 12일인 오늘 기차표를 사도 넉넉할거라는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없다."
있어도 시간대가 우리의 경로와 맞지가 않는다.
어머, 미네랄.
"Kat, 야간버스는 싫으시죠?"
"뭐 상관 없긴한데 기차가 로망이죠."
"근데 아무리 시간을 맞춰보려고해도 기차는 조금 무리다, 어쩌지?"
"어쩌긴요, 야간버스 타야죠. 아님 우아하게 아침 비행기. 근데 비행기는 이제 그만."
늘 쾌적한 여행을 지향하는 나때문에 시작하는 날부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제와 말하건데, 쾌적한 여행을 지향하게 된 건 최근이고.
배낭보다 캐리어가 예쁘다는 이유로 캐리어녀가 되었을 뿐인데.
죽음의 구간이었던 맬번-시드니를 주파하던 12시간짜리 그레이하운드 버스도 타본 나에게
10시간도 안되는 야간버스쯤이야.

조용한 치앙마이 기차역. 근데 표는 왜 없는건데...
"그럼 이러고 있을때가 아니라 버스터미널로 move, m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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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맛있던 생망고주스를 마시고 버스터미널로 이동해 10시 30분에 올거라는 로컬버스를 기다린다.
...라기 보다는 기다렸었다, 고 해야하나.
도착했을때 앞에 서있던 미니버스가 10시 30분 버스라고는 생각도 못했네.

버스터미널에서 "하염없이,"라는 단어를 온 몸으로 체험한 날.
11시가 다 되서야,
"나 그때 파타야 갈때도 버스가 늦게 오긴 했는데- 이건 뭐...오긴 오는거냐?!"
그제서야 우리가 탈 버스는 12시 30분에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남는 시간을 터미널에서 보낼 수 없으니 일단 점심을 먹으러 근처를 배회하다가,
노란 건물이 마음에 들어 NICE라는 식당에 들어가 까우만까이와 팟 까파오 무쌉으로 배를 채우고,

버스터미널 근처의 "NICE"라는 로컬식당에서 먹은 점심-
방콕으로 돌아갈 야간버스의 시간대를 알아보고 이동경로를 다시 생각해본다.
그리고,
또.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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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시작된지 이틀동안 이동만 하는 일정에 자꾸 처진다.
12시간 30분에 걸쳐 도착한 치앙마이에서 또 네시간에 걸쳐 빠이...
아 정말 빠이빠이하고 싶은 일정...
하지만 나는 이번 여행에 관한 아무런 플랜도 세우지 않았으므로.
그냥 멍하니 더위에 익숙해 지고 있을 뿐이다.

12시 30분.
제대로 달리기는 하는걸까, 라는 의문이 들게 생긴 빨간 버스가 눈앞에 나타났다.
이 것이 말로만 듣던 로컬버스...
말도 안되는 외관과 할말을 상실하게 한 내부를 보자니 웃음만 난다.
하하하...
"이 것은 내가 80년대에 외할머니댁 근처에서나 보던 버스 잖아요...?"
바닥에 널부러진 짐들 사이로 무거운 다리를 들어 겨우 넘어가 자리를 잡고,
오늘따라 더욱 거대해 보이는 나의 배낭은 앞좌석 아무 곳에나 뒹굴거리게 던져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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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PAI를 만나러 간다.
하지 말았어야 할, 약간의 기대를 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