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 말레샤, 인도네샤 여행기-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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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말레샤, 인도네샤 여행기-19

필리핀 0 748
1월 6일 맑음
아침부터 하루를 무척 바쁘게 시작했다. 아침 5시에 일어나서 마지막으로 똔사이 해변을 한 바퀴 돌아본 후, 짐을 꾸리고 나와서 식당에서 토스트와 오믈렛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긴꼬리 배를 타고 아오낭으로 나와서 썽태우를 타고 끄라비에 도착, 다시 오토바이 택시(20밧)을 타고 타이항공 사무실로 가서 모레 귀국하는 항공편을 예약했다. 다시 끄라비 타운으로 나와서 오후 4시에 출발하는 방콕행 여행자버스(400밧)를 예약하고 나니 겨우 오전 11시. 지금부터 5시간을 이 조그만 도시 끄라비에서 보내야 한다.
끄라비는 작은 조개껍질처럼 예쁜 어촌이다. 웬만한 곳은 걸어서 다닐 수 있을 만큼 아담하다. 보트 터미널을 중심으로 미니 여행자 거리가 형성되어 있다. 주로 꼬 피피를 드나드는 관문으로 이용되었지만, 최근에 꼬 란타와 꼬 잠 등이 개발되면서 서해 일대의 섬을 여행하는 허브 도시로 발전해가고 있다.
보트 터미널 벤치에 몸을 눕히고 낮잠을 자려고 하는데, 현지인 하나가 다가와서 묻는다.
“어디 가냐?”
“방콕 간다.”
“표는 끊었냐?”
“응.”
그래도 그 남자는 무슨 볼일이 남았는지 쉽게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 그 남자가 사라지고 10분쯤 되었을까? 다른 현지인이 다가왔다.
“어디 가냐?”
“방콕.”
“아오낭 안 가냐?”
“안 간다.”
“피피는?”
“안 간다.”
“란타는?”
정말 미치겠군. 무식한 건지, 무례한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화를 낼 수도 없고, 내가 피하는 수밖에.
유일한 백화점을 향해서 발길을 옮긴다. 마땅히 살 물건은 없지만, 에어컨 바람도 쏘이고 시간도 때울 작정이다.
백화점 구경을 하는데, 어제 4아일랜드 투어에서 만났던 한국인 여성 3명과 마주쳤다. 그들은 싱가폴에 사는 교민으로 3박 4일 에어텔(항공권과 호텔만 예약하는 여행)로 왔다고 했다. 오늘은 시내 투어에 나선 길이란다.
그들과 헤어져서 3층에 있는 푸드 코트로 갔다. 손님은 거의 현지인이다. 국수 한 그릇을 시키고 밥을 한 공기 시켜서 같이 먹는다. 한국에 돌아가면 찰기가 없어서 물에 말면 밥알 하나하나가 풀어져서 둥둥 떠다니는 이 안남미마저 그리울 것이다. 내려오다 보니 백화점 1층 입구에 있는 맥도날드에 외국인 관광객이 바글거리고 있다. 
다시 보트 터미널로 간다. 날씨가 더우니 너무 멀리 가기도 싫고, 버스표를 예매한 여행사가 보트 터미널 근처라서 자연히 그쪽으로 발길이 갔다. 이번에는 삐끼들이 달라붙지 않는다.
버스 출발시간까지는 아직도 2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 암튼 여행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아니, 인생 자체가 기다림의 연속이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무언가를 기다리고, 휴일을 기다리고, 월급날을 기다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날을 기다리고, 종국에는 죽을 날을 기다리며 사는 것이다.
지루한 기다림 끝에 4시가 되어 여행사로 갔다. 10여명이 트럭 짐칸에 구겨진 채로 태워져 교외에 있는 식당을 겸한 여행사로 옮겼다. 그곳에서 다시 다른 곳에서 오는 승객들을 기다리다가 저녁 6시가 다 되어서야 승차가 시작되었다. 여행자 버스는 좌석이 좁아서 다리가 긴 사람은 불편한데, 다행히 다리를 좀 뻗을 수 있는 맨 앞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태국의 해는 일찍 지고 일찍 뜬다. 버스가 출발하기 시작할 때는 이미 사방이 어둠의 장막에 휩싸여 있었다. 커튼을 살짝 젖히고 창밖을 내다보니 가로등 하나 없는 시커먼 시골길을 버스가 달리고 있었다. 저 멀리서 어둠의 눈알처럼 휭휭한 보름달이 세상을 주시하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아니면 내일이 보름인 것 같다. 지금쯤 꼬 팡안 핫린에서는 광란의 풀문파티가 벌어지고 있겠지. 태초의 낭만이 가득한 해변에서 벌어지는 젊음의 용광로. 몸은 비록 야간버스에 실려서 방콕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저 달이 가장 환하게 비추고 있을 꼬 팡안 해변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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