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벙이 부부 태국+캄푸챠 가다(앙콜왓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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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벙이 부부 태국+캄푸챠 가다(앙콜왓2)

꺼벙이 5 840
4/1~(목) 주마간산 (走馬看山) 왕코르 유적 (2)

05:05분.
어제 저녁 일몰의 여운, 꿈속에서 공주일행이 목욕하는 장면을 도적질한 탓인지 눈이 뻑뻑했다. 그래도 우주의 바다를 상징한다는 ‘앙콜 왓’ 일출을 마다 할 순 없다.
5:00 모닝콜을 약속했던 건모 총각이 소식이 없다.
기다리다 못해 묵직한 싸립문(걸리버 G.H)을 젖히고 나가 주위를 둘러본다. 어둑신 미명의 골목은 이미 잠에서 깨어있다. 일출을 보러가는 일행인 듯 모토소리가 카랑카랑 어둠을 뚫고 지나간다.

더위를 머금은 어둠은 쉽게 껍질을 벗기 시작했다. 이십분이 넘어서야 건모의 빠른 걸음이 나타났다.

인파가 줄을 잇는다. 새벽 숲 속은 일출을 맞이하려는 자들의 숙연함이 느껴진다.
장엄한 의식을 기다리며 조심스럽게 옮기는 발소리만 들릴 뿐이다. 여기저기 분주하게 터지는 플래시 빛만이 시간을 재촉해댔다. 사람들의 걸음은 점차 빨라진다. 저 마다 좋은 관망, 촬영 포인트를 선점하기 위한 이동이었다.

기다림도 잠시, 불그스레한 기운이 3층 첩 탑 사이로 번져왔다.
파란 이끼가 끼고, 바닥이 거의 드러난 못에 잠시 얼비치는 그림이었다. 크지 않은 붉은 덩어리는 첩 탑 사이를 지나, 큰 형체의 나무 사이로 빠르게 번져 올라갔다.
화려함도 미진함도 아닌 예전부터 있어왔을 그 만큼 이었다.

시·지각을 가진 동물만이 보고 느낄 수 있는 해의 형상을 정확히 본 자는 누구인가?.
어느 누구도 해의 속성을 알지 못해 각기 다른 의미를 부여하며 추앙하는 것은 아닌지.
꺼벙이는 12세기 이전, 역사의 유적 저편에서 떠오르는 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그 곳에 영존하는 나의 신에게 소원했다.

‘떠도는 것은 바람이게 하소서’

일출은 하루의 시작 일 뿐이었다.

07:00
좋은 일을 기대하는 하루는 짧다.
몸의 먼지도 씻고, 정갈한 마음으로 오전출장(투어)을 준비했다.
야채샌드위치, 과일샐러드, 된장찌개를 조합한 2인에겐 비교적 풍성한 식탁이다.

일행을 태운 봉고는 아침 길을 나섰다. 황토먼지가 일상인 시엠렙의 아침은 생동감이 있다.
사람들의 표정은 적지만 갈 길은 여전히 바쁜 모양이다. 다이어트가 필요 없는 체형의 남루한 복장의 남녀, 하얀 교복을 차려 입은 학생들의 자전거 행렬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모습이었다.

어제 건모총각이 가르쳐 준 반듯한 병원 건물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그늘도 없는 햇볕에 아이를 업고, 앉고, 서 있는 저 사람들은 진료를 기다리는 사람들 이라고 했다. 멀지 않았던 우리의 과거를 보는 듯 아련하게 유년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짐씨도 전적으로 동감했다. 사람들의 겉모습, 빈(貧)함과 무표정만이 전부는 아니다.
가슴에 남아있는 이전의 모습을 반추해 본다. 그들은 우리의 거울이었다.
“여보, 산 날 보다 살날이 줄어드니 해피하게 살어유”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반티아이 쓰레이’로--
앙코르톰에서 동 떨어진 25km 지점으로 향했다.
아짐씨, 송&조는 변함없이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돌아가서 역사고시 치르나’
꺼벙이는 초지일관 차창풍경을 응시한 채 주마간산 격이다.
그러나 간간히 낙서하듯 적는 모습도 있었으니... 아마도 수첩에 적는 내 모습을 보고 ‘뭔 남자가 낫살이나 먹어 가지고 시시콜콜 돈 계산이냐’고 궁시렁 거리진 않았을까.

땅은 비를 맞아본지 오래인 듯 조그만 울림에도 갈색 먼지가 일어났다.
높낮이가 별로 없는 논과 밭에는 흙덩이를 둥지처럼 틀고 앉은 나무가 듬성듬성 서있다.
주변의 만물은 모두가 목이 말라 애타는 모습이 역력했다.
물이 고였음직한 흔적의 못이며, 높은 원두막 모양의 가옥은 우기에 내리는 비의 양을 짐작할 만하다.

날씨는 여전히 뜨거워도 노출된 피부가 별반 타지 않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조금은 내성이 생긴 몸을 무기로 ‘반티아이 쓰레이’로 걸어간다.
길도 붉은 빛이 선명한 황톳길이다.
지금은 바닥이 완전히 드러나 있지만, 전에는 주변에 제법 많은 양의 수심을 이루어 사원이 물에 떠있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표면에 보이는 색조는 황토 빛과 구리의 질감을 연상케 하는 것이 이전의 본 모습과는 이질감이 느껴진다.

가까이서 보는 기둥, 벽화, 용두와 첩 탑의 조각은 금방 깍아 놓은 목 조각 같았다.
침침한 꺼벙이의 눈에도 칼끝의 예리함이 묻어났다.
송**의 감각은 예사롭지 않은 것 같다. 벽의 부조된 ‘압살라’를 눈에 담을 듯 쳐다보더니 이내 카메라에 담는 모습이 보였다.
사원의 한쪽 면에서는 같은 질감의 구멍이 숭숭 뚫린 정사각형의 돌로 복원작업이 한창이다.
돌아 나오는 외곽 돌담 밑에서는 도마뱀 한 마리가 손님을 배웅하고 있다.

더위는 점차 인내심을 시험해 왔다. 보이는 것이 점차 비슷한 돌조각으로 밖에 비치지 않는다. 쉬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반티아이 삽레’ 관광객의 발길이 뜸한 곳이었다.
아마도 왕콜왓의 축소판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걸러 가는 모양이다. 태양을 피해 한 쪽 테라스에 걸터앉아 땀을 식히고 공부와 토론에 열중하는 일행은 역시 학구적인 분위기다.
외곽을 지키는 사자상(정확한 명칭은 모름. 몸은 사자 얼굴은 코브라)의 안면은 여지없이 뭉개져 있었다. 역사 속에 굴절된 종교와 이념 탓이려니.
머릿속의 사상까지도 도말하려던 전쟁의 승자는 지금 어디서 안식하고 있을까.

입구에서부터 따르던 어린 아이들의 천진한 손과, 전흔의 상처인 듯 한쪽 다리를 절단한 중년의 작은 가판에서는 부다, 압살라, 전사를 미니어쳐한 장식물이 태연하게 그들의 생계를 이어주고 있다.

융성했던 번영이 정글 속에 공존하는 방법은 'Ta prohm' 이 대변한다.
붉은 돌에서 느끼던 더딘 세월의 흐름을 이곳에서는 쉽게 따라 잡을 수 있다.
석조기둥을 옥죄이고, 지붕을 침투한 고목의 힘은 과연 자연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임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느릿함 혹은 완만한 힘의 가시적인 모습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무너진 돌 틈에서도 푸른 이끼를 덕지덕지 뒤집어 쓴 벽화, 여인의 부조는 알듯 말듯 묘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뒤뜰에 늘어진 거대한 고목에서는 잔잔한 바람이 느껴진다.
붉은색의 돌도 무수한 세월의 흔적을 감추지 못하고 닳아져 모서리가 패이고 구멍이 숭숭 뚫려 바람을 흘려보내고 있다.
인위적인 손길이 배제된 ‘타프 론’의 시간은 너무 멀리서 밀려온 바람의 힘 같이 느껴졌다.

2:30
오가는 차안에서 잠 또는 역사공부는 정설이 되어 버렸다.
더위를 저감시켜 주리라는 바램으로 점심 먹거리는 비빔메뉴(비빔국수+비빔밥+과일접시)로 했다. 오수의 달콤한 맛도 잊지 않고 한 줌 때렸다.

변방을 맴돌던 때를 기다리던 여리고성 함락작전은 이제부터다.
체력이 완전히 호전된 땅콩 아짐씨는 갈수록 전의를 불태우며 기세 등등 했다.
입성했다.

사원이라는 통념보다는 전장과 성을 연상하는 것은 꺼벙이의 고정관념 탓이다.
방벽처럼 느껴지는 석조건물을 들어서니 과거로 통하는 직선도로가 반듯하게 이어졌다.
좌. 우편으로는 물이 차면 배도 띄울만한 못이 바닥을 드러내 채 광활하다.
일층부터 왼쪽으로 돌며 벽화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캐어 낼 듯 벽화와 책자를 번갈아 보며 눈동자가 바쁘다. 한 무리의 일행이 유창한 가이드의 구연에 실처럼 따라가며 경청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주판알을 세워 놓은 듯 올록볼록한 석조 창살의 크기는 중학생 키만 하다.
시간이 정지해버린 참호에서 바깥세상을 본다. 바로 전에 지나온 환한 세상의 모습이 석조창살사이로 굴곡져 맺혀 온다.
al_ss11.JPG

역사의 창살 속에서 바라보는 꺼벙이의 눈은 난시 기운이 한층 고조되는 기분이다.

사방의 회랑(回廊) 벽마다 그려진 그림의 분위기는 한 눈에 보아도 전쟁과 군대, 천국과 지옥의 장면임을 알 수 있다.
전장(戰場)과 종교를 떠나서는 역사의 실타래도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금방이라도 벽화의 병사가 달려들 것 만 같다. 몸과 머리가 부조화를 이룬 동물들이, 몸집 큰 코끼리가 소리치며 나타날 것 같다.

좁아진 2층 구조물을 거쳐 올라가 ‘3층 천상’을 바라보는 계단은 가파른 절벽이다.
고개 숙이며 올라간 자, 절하며 내려오라는 설계자의 배려가 지나치다 싶다.
신이 다닐만한 계단이기에는 너무 안이(安易)하고, 사람을 위한 것 이기에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이 계단을 두고 나는 한참 고민했다. 관점의 차이인가 보다.
내려다 볼 때와, 올려다 볼 때의 각기 다른 방향에서의 꺼벙이의 시각차이는 아닌지.

‘천상’을 상징한다는 3층으로의 수직상승 고행 길은 그 만한 가치가 있다.
미천한 발상이지만 돈으로 환산 할 수 없는 조망권(한강변?)이 사면에 열려있기 때문이다.
앙코르 톰의 많은 유적들을 한 눈에 깊숙이 넣고도, 통증은 불구하고 시원함, 뿌듯함을 느끼는 것은 꺼벙이의 지나친 감상 탓일까. 아닐 것이다.

프리미엄 없는 조망권이다. 꺼벙이는 맘 것 향유하기 위해 눈이 아파오길 기다리며 마냥 무성한 북쪽 숲을 관망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살며시 팔을 붙잡는 느낌이 왔다. 애원하는 듯한 처자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아니 이 처자가 이곳 ’천상‘에서 같이 뛰어 내리자는 소린가’
머리에는 두건을 두르고 빨간 숄이 너풀거리는 넓은 허리띠를 맨 밉지 않은 처자였다.

‘그러면 그렇지’
처자의 요구대로 다정한 포즈로 북쪽 창문 밖을 배경으로 천상에서의 한 컷을 남겼다. (물론 내 카메라에도) 또 다른 보너스의 기회였다.
ak_ss2.JPG
(혹시 초상권 침해?)
‘프놈바켕’ 일몰은 얕은 등산부터 시작한다. 땀을 흘려야만 볼 수 있는 높은 지형이다.
마지막 일몰도 놓칠 수 없어 열심히 올라갔다. 어떤 이들은 코끼리의 힘을 빌어서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힘들게 올라간 우리의 기대를 져 버리기 부끄러운 모양이다.
서쪽하늘에 새악시 볼처럼 발그레하게 번지는가 싶더니 이내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기다림으로 족했다.
사방에 둘러선 수많은 돌탑들이 일몰의 빛에 그을린 탓인지 붉게 변해있다.

“더워요? 집에 가요.” 건모의 차분한 가이드는 그 말로 맺어야 할 때가 되었다.
우리는 돌아가는 차중에 의기투합해 ‘평양냉면’ 맛을 보기로 했다.
들어오는 날부터 눈에 찍었던 간판이다. 맛보다도 호기심이 더 큰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기휴일, 가는 날이 장 날.’ 좀처럼 오기 힘든 기회는 우리를 피해 갔다.

“내일 톤레샵 갔다가 모레 같이 방콕으로 가요”
사흘간의 동행으로 친숙해진 송&조의 유혹이 내심 구미가 당긴다.
캄푸챠의 상징인 ‘톤레삽’과 ‘리엘’을 코앞에 두고 물러나려니 너무 아쉽다.

내일 아침 5시 출발을 위해 3일간의 방값을 지불했다.
도움이 되어준 송&조와는 방콕에서 ‘랍스터 만찬’ 재회를 약속하며 각 방으로 향했다.

한 동안은 그리워지겠지.. 황토먼지도, 건모도, 졸졸 따라 다니던 아이들의 눈동자도.
가야할 내일의 일과 염려로 족한 꺼벙이 부부의 일상은 남아 있다.
-꺼꾸로 보는 꺼벙이 세상 -
P..S
1. 위 내용은 저 혼자만의 시각일 뿐 입니다. 지명이나 표현, 어휘가 틀릴 수도 있음을 첨언합니다.
2.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특히 리플로 응원해 주시는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3. 지적이나 의견이 있으신 분들은 vtmk40@hanmail.net 로 편지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5 Comments
summer 2004.04.21 17:10  
  다음편 빨리 올려줘요
Hello 2004.04.22 04:57  
  You know? I'm reading your travelling in Canada.
I'm always looking for your story.
Great!
찡쫑 2004.04.22 11:17  
  설마..이글이 마지막이신건 아니죠? 윗글중에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이부분을 읽고 제가지금 읽고 있는책제목과 같기에 혹시..? 하였으나 그책을 쓰신분은 1925년생 전우익 선생이신걸 깨닫곤 그 혹시..를 접었답니다.^^;;  다음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몬테크리스토 2004.04.22 12:49  
  늘 한편의 멋진 여행기를 공짜로 보고 있습니니다.
차분하게 여행을 시켜주시기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프놈바켕에서 일기가 도와주지 않아서 일몰을 못 봤는데..멋있었으리라
사료됩니다.
그곳에서 제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했던 곳이라서 아쉬운마음에 담에 다시 갈겁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다음글을 기다리겠습니다.
슬리핑독 2004.04.23 13:33  
  이글을 무료로 읽게 해주신 꺼벙이님과 태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좋지 않은 일이 있어도 님의 글을 읽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다음에 한국오시면 꼭 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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