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만난 사람9 – 반신불수의 태국인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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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만난 사람9 – 반신불수의 태국인할머니

스따꽁 8 1020
핫야이에서 방콕으로 돌아오는 기차.. 2등석, 선풍기, 윗칸…
아래칸이 매진되었다.
높은곳에서 내려다 보는건 좋아하지만, 높은곳에서 잠자는건 싫다.
화장실갈때나, 아침에 일어날 때, 잠이 덜깨서 떨어질것만 같다.

혼자 이동을 할 때, 특히 침대기차처럼 좌석이 단 둘이 마주보고 있을때는..
내 짝꿍이 누가될까 잔뜩 기대하게 된다.

가족이라고 생각되는 태국인들이 짐을 기차에 싣고 있다.
창문을 통해서 짐을 올린다.
휠체어도 접어서 올린다.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 있는걸까..
할머니 한분이 두명의 부축을 받으면서 아주 천천히 내쪽으로 온다.
할머니가 내 짝꿍이다.
할머니가 자리에 앉기 편하도록 일어서서 비껴섰다.
자리에 앉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할머니는.. 왼쪽을 전혀 쓰지 못한다.

자리에 앉자.. 할머니가 “컵쿤막카” 하고 천천히 얘기한다.
내가 할머니에게서 알아들은 유일한 말이다.
할머니는 청력도 떨어지는듯 했고, 목소리도 작고, 발음이 정확하게 되지 않는듯 했다.
정확하게 얘기를 하더라도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태국어가 몇단어 안되기 때문에 별 상관은 없다.

일행들은 바로 뒷좌석에.. 서로 마주보고 얘기를 할수 있는 곳에 앉았고,
할머니만 따로,나와 앉았다.
태국어든 영어든 아무것도 소용이 없다.
우리는.. 소통을 할 때, 각자의 언어로 바디랭귀지를 구사했다.
사람이 언어를 쓰는건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할머니와 내가 정치토론을 할것도 아니니까.... 의사소통에는 별 문제 없다..

할머니의 일행은.. 할머니또래의 건강한 할머니, 딸이나 며느리쯤으로 생각되는 아줌마, 손자뻘로 생각되는 건장한 청년, 그리고 한명이 더 있었던듯..
왜 하필 몸이 불편한 할머니를 따로 앉혔을까..

딸 정도의 아줌마가 주로 할머니의 시중을 들었다.
할머니에게 얘기를 할 때, 웃고있지 않는다. 약간 짜증스런 무표정이다.
하지만 난 그 아줌마가 할머니를 잘 돌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몇 달째인지, 몇 년째인지, 몇십년째인지 알수 없는....
지금껏 반신불수의 할머니 시중을 들고, 앞으로도 계속 그래야 할꺼다.
그런 상황에서 누가 보더라도 상냥하게 돌볼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무리 효성이 지극하다 하여도.. 사람은 지친다..

아줌마는 할머니에게 여러가지 잔소리도 하는듯했지만, 상냥하지 않았지만, 자리도 따로 앉혔지만,
할머니가 도움을 필요로 할때는 반드시 나타났다.
식사때는 내내 옆에서서, 음식과 물등을 챙기고,
수저도 도시락을 사면 딸려오는 플라스틱수저를 쓰지 않고, 할머니것은 따로 집에서 챙겨온듯 하다.
할머니가 군것질꺼리를 파는 장사꾼들과 한마디라도 하면,
쪼로록 와서 먹고싶은거 있냐고 물어보는 듯했다.
그리고 아무일 없을때에도 가끔 와서 뭔가 필요한게 있는지 물어보는 듯하다.
아줌마는 시중에 지쳤을뿐 할머니를 정성껏 돌보고 있었다.

차장이 와서 표검사를 했다.
내 기차표를 꺼내고 있는데,
“찬락무엉타이~ 찬락무엉타이~” 라고 얘기한다.
왜그러나 하고 빤히 쳐다보니, 내 힙쌕에 달아놓은 태사랑뱃지를 손가락질한다.
아하~ 드디어 이 뱃지를 알아봐주는 태국사람을 만났다.
어디서 왔냐고 물어본다. 한국이라고 대답해주니..
“아.. 한국.. 좋아.. 찬락무엉타이~” 그러면서 노래부르듯 뱃지에 새겨진 글을 반복하면서 딴자리로 이동했다.
어느나라 사람이건, 외국인이 자기나라를 좋아하면 흐뭇해한다. 괜히 나도 따라 흐뭇해졌다.

할머니와 처음에는 어색했다.. 내가 태국어를 못알아듣는게 이상한듯..
빤히 쳐다본다.. 눈둘곳이 없다.
이럴땐 뭔가 같이 먹는게 도움이 된다.. 과자를 꺼내서 같이 먹자고 뜯었다.
할머니가 목말라서 안먹겠다고 하는듯하다.. 할 수 없이 뜯었으니 혼자 몇 개 먹었는데.. 목마르다.. ㅠ.ㅜ
그래도.. 어색하게 동문서답의 대화를 몇번 나누고 났더니.. 할머니가 나를 편하게 대하는 것 같다. 외국인인걸 이제야 알아차린 모양이다.

말레이시아에서 몇날며칠을 걸어다니고, 마사지도 못받아서.. 다리가 무척 피곤한데..
할머니한테 단정한 몸가짐을 배우는 중이다.
발을 하나 의자위에 올리니, 하지 말라면서 손으로 한쪽 뺨을 문지른다.
얼굴을 찡그리면서 그 동작을 하는 것을 보면, 뭔가 나쁜 뜻이다.
아.. 얼굴 대고 잠잘 곳에 더러운 발을 올리지 말란 뜻인가…
이번에는 다리를 앞으로 쭉 폈다.. 정말 다리가 천근만근이었다..
할머니가 또 빰을 손으로 문지르면서 하지 말라고 한다…
아까의 내 해석이 틀린 것 같다..
창피한 짓이니까 하지 말라는걸까..
다리를 벌리고 앉지 말고 모으고 앉으라는 것 같다..
다리를 꼬고 앉으니.. 그것도 하지 말란다..
무릎을 딱 붙이고 차렷자세로 앉으니 할머니가 좋아한다..
너무 힘들다..
할머니 일행들은 다리를 의자위에 올리고, 다리벌리고, 아주 편안하게 가고 있다.
‘할머니 일행은 다 저렇게 편하게 가는데, 왜 나만가지고 그래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온몸의 피가 다리로 다 몰린 기분인다..
할머니는 의자가 침대로 바뀔때까지…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 기차에서 내릴때까지, 내 몸가짐에 대해서 주의를 줬다.

카메라 건전지가 조금 남아서..
창틀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그냥 셔터를 눌러댔다..
심심한 할머니는 내가 하는 모든 행동에 눈길을 떼지 않는다..
카메라에 찍힌 화면을 보여주니.. 할머니는 눈이 나빠서 못본다..
그리고, 허리를 옆으로 돌려서 앉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허리아프다고..
사진을 찍으려면 돌려앉을 수밖에 없는데… 몇초정도만 바로 앉았다가 다시 돌려서 사진을 찍으니… 할머니가 “으이구~” 하는 표정으로 웃는다…

할머니도 한장 찍었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씩~ 웃는듯했다.
다 찍고 나니까… 앞머리를 쓸어내리면서, “머리도 엉망인데~” 하는 표정이다..
반신불수에 나이많은 할머니지만…
몸가짐이라던가, 예의라던가 그런것들이 몸에 배어있는것 같았다.
자기몸을 스스로 다 움직이지도 못하지만,
남은 반쪽만로도 단정한 몸가짐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남에게 피해주지 않으려고 한다.

아줌마가 와서 할머니에게, 나를 귀찮게 하지 말라고 잔소리 하는듯했다.
그 이후, 할머니는 내게 말을 걸 때,
더 작은 목소리로 뒤쪽의 눈치를 보면서 얘기했다..
전혀 귀찮거나, 방해되지 않았다. 다리를 펼수 없는것만 빼고는…

열어놓은 창문으로 날개달린 빨간개미같은게 들어와서 유리창에서헤매고 있다.
내게 해를 끼칠것만 같은 벌레다.
할머니는 개미를 빤히 쳐다본다.
그리고는, 손으로 그 개미를 잡으려고 한다.
움직임이 불편한 할머니에게 쉽게 잡혀주지 않는다.
5분정도 개미를 잡으려고 하다가.. 결국 잡았다.
그리고는 창밖으로 날려보내면서, 흐뭇해한다.

할머니는.. 다리가 불편하니까, 아래칸에서 자겠다고,
나더러 윗층에서 자라고 한다.
당연히.. 나는 윗칸인데..
바디랭귀지로 설명하기 힘들어서 그냥 그러겠다고 했다.
할머니는 내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또 얘기한다.

나는 할머니를 보면서… 내가 느끼는 태국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예의바르고, 상냥하고,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

방콕에 도착하면, 환전해서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사고,
조금 남는 돈으로.. 밥은 굶어도 타이마사지는 풀코스로 받아야겠다고 다짐했다.
8 Comments
돌돌대빵 2004.03.31 12:55  
  스따꽁님은 가슴이 따듯한 사람이거나, 글을 아주 잘 쓰는 사람이거나 둘 중의 하나... ^^; 근데 지금까지 주욱 살펴보니까 전자에 해당할 듯~~!!
사랑 2004.03.31 13:18  
  가슴도 따뜻하고 글도 잘쓴다...에 한표...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계속 연재해 주세요.
레아공주 2004.03.31 14:23  
  [[원츄]]
2004.03.31 16:03  
  이 글을 읽다보니 작년 여름 춤폰에서 방콕까지 타고 왔던 야간열차 생각나네요..뒷좌석 꼬마아이에게 과자를 주었더니..그 아이 어머니가  람부탄 듬뿍 꺼내 주시더군요.. 가는정이 있으니 오는정이 있더군요...사진같이 찍고 한동안 장난 같이 쳤었는데....
아부지 2004.03.31 22:41  
  언제 어디서나 아이킬러~ 크하하핫~
2004.04.01 14:42  
  부지얌..내가 아이킬러라구??  난 아직 한번도 아이를 죽인적이 없단다...
Cedar 2004.04.01 17:15  
  집떠난지 3개월째.. 가뜩이나 가족들 그립고 엄마 보고싶어 죽겠는데... 눈물납니다.. 아침부터 우울했는데 이글 읽고 또 웁니다..ㅠ.ㅠ..
아부지 2004.04.02 00:39  
  헉...아이에게 상해를 입힌다고 생각만해도..안어울려.......[[고양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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