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여행 보고서, 그 마지막 이야기

홈 > 여행기/사진 > 여행기
여행기

가을여행 보고서, 그 마지막 이야기

sarnia 11 1940

태국에서 라오스 땅을 밟아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메콩강을 가로지르는 배를 타고 단사오 마을로 가는 것이다. 뱃삯은 태국 돈으로 300 . 캐나다 달러로 환산하면 약 10 불이고 한국 돈으로는 12000 원쯤이다.

 

1155921F4B6C8FDC1E00F1

미얀마 메콩강변에 형성된 '파라다이스' .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카지노 구역 이름이다.  


현지물가를 기준으로 한다면 결코 싸다고 할 수는 없지만
10 불만 내면 국경도 넘고 배도 탈 수 있는 곳이 지구상에 몇 군데나 있는지 모르겠다.


길쭉한 목선을 타고 메콩강을 따라 올라가다 건물에 새겨진 커다란 십자가를 발견하기도 했다
. 불교인구가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작은 강변 마을에 이렇게 큰 교회가 있다는 게 좀 의아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 교회도 외국인 전용인가? 상념에 잠겨있느라 그랬는지 사진도 못 찍었고 좀 엉뚱한 착각을 하기도 했다.


그 교회에 붙어있던 커다란 황금색 표어가 인상적이었는데, ‘Gold Loves You’ 라는 영어로 된 표어였다. 그걸 보고 역시 골든트라이앵글에 있는 교회라 표어도 현실적이고 특색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췍old’가 아니라 ‘God’라는 걸 알고 좀 맥이 빠졌다.      

 

12420E264B6BB4AA06F124

 

어느 나라에 입국하던 우선 검역관-입국심사관-세관원 순으로 그 나라 사람들을 처음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게 상례다. 그러나 라오스 단사오 마을 선착장에서 나를 가장 먼저 반긴 사람은 저 계단 꼭대기에 요상한 포즈로 앉아있는 걸인 아주머니였다.

 

1754E1254B6BB4F01CF444

 

어찌된 셈인지 이 마을에서는 어른들 코빼기를 보기가 쉽지 않았다. 관광객을 상대로 구걸을 하는 어린아이들뿐 이었다. 모두 일들을 나갔나 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란다. 여자들은 어디선가 구걸하는 아이들을 감시하고 있을 거고 남자들은 모두 움막 안에서 낮잠을 자고 있을 거라는 게 안내인의 설명이었다.           

 

165466274B6BB52B0B6607

남자들이 낮잠을 자고 있을거라는 어느 가정집 입구


놀랍게도 나는 이 거짓말 같은 안내인의 설명 중 일부가 사실이라는 걸 곧 알 수 있었다
. 선착장에서부터 따라다니던 열 살쯤 되는 여자아이에게 20 밧 짜리 지폐를 쥐어주자마자 그 아이는 쪼르르 달려가더니 어느 집으로 돌아가 엄마로 보이는 어떤 여인에게 그 지폐를 건네는 것 이었다. 뭐랄까, 다른 생각은 안 들고 그냥 좀 어이없고 허망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벌어진 더 놀라운 사태가 나를 당황하게 했다. 내가 한 아이에게 지폐를 준 것을 알고 어디서 몰려들었는지 십 수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우리 일행을 포위하고 일제히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 (라오스 말이겠지) 를 중얼거리며 손을 벌리기 시작한 것이다.   

 

184776274B6BB5992A37DC

 

나는 이런 비슷한 광경을 치앙라이 근처 Long Neck hill tribe village에서도 목격한 적이 있었다. 비슷한 광경이란 어른들은 잘 보이지 않고 아이들만 방문객들을 상대하는 모습을 말한다. 그 마을에서는 구걸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다만 관광객을 상대로 물건을 팔고 실로 무엇인가를 짜고 있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2041BE264B6BB5F404916F
목에 쇠링을 차고 있는 카렌족 소녀

이 동네 여자들은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목에 쇠로 된 링을 차고 있었는데 5~6 세부터 차기 시작한 그 쇠링은 죽을 때까지 벗는 법이 없단다. 어른이 되면 링의 무게가 무려 23 kg에 달하는데 쇠링에 의해 길들여진 목에서 그 쇠링을 제거하면 경추골절로 사망한다고 한다.

 

196BA6104B6C85C6254CB1

국경수비대 소속 태국 병사다. 근무자세 꼬라지 하고는. 비껴 찬 M16 A1 소총 탄창에 들어있는 탄약은 아마 공포탄이 아닌 실탄일 것이다. 어쨌든 무장 경계병을 단독근무를 세우다니. 저런 식으로 근무서다 총이라도 빼앗기는 날에는 모가지 달아날 피플이 한 두 명이 아닐 텐데……

 

미얀마에 인접한 국경검문소다. 태국과 미얀마의 국민소득차이는 무려 30 1 이다. 그러다 보니 국경경비가 삼엄한 편이다. 국경마을인 메사이로 가는 길목 요소요소에서 검문을 하고 있는 태국 군인과 경찰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1211ED254B6BB64496FBC8

근무 중 틈틈이 관광객들의 사진도 찍어주고 있는 태국 군인. 하얀 셔츠 차림의 배 나온 아저씨의 복장과 포즈가 아주 점입가경이다. 애국기동단이나 재향군인회 회원인가? 그래도 자세히 보니 어떤 아줌씨가 팔짱을 끼고 있는 걸 보면 다 짚신도 짝이 있다는 게 정설 맞는가 보다. 편견섞인 발언이었나?

 

146CD0134B6C864A13A04F

버마 마을 따찌렉 쪽에서 넘어오는 사람들. 태국인이 대부분이다.  


저 개천 너머가 미얀마다
. 난생 처음 보는 미얀마가 내게 떠 오르게 하는 이미지나 기억은 무엇이지?


어떤 사물이나 개념이 등장했을 때 처음 떠오르는 생각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 예들 들어 명성황후 하면 청나라와 일본을 번갈아 가지고 놀았던 이이제이 외교를 떠 올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을미사변의 여우사냥꾼 칼잡이들을 떠 올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상상력의 폭이 좁아서 그런지 명성황후 하면 가장 먼저 떠 오르는 게 고작 이미연이다 (여기서 고작이란 나 스스로의 폭이 좁은 상상력을 겨냥하는 단어이지 탤런트 이미연 선생을 가리키는 말이 절대 아님을 밝혀둔다)
.


같은 인물이라도 표현하는 단어에 따라 떠 오르는 이미지가 또 제각각이다. 예를 들어 명성황후와 민비는 같은 인물이지만 각각의 단어에서 연상되거나 떠 오르는 이미지는 아주 다르다. 즉 민비 하면 떠 오르는 이미지는 이미연이 아니라 일본공사 미우라가 가짜로 만들었다는 왕비복장의 식모사진이다.   

 

137A24284B6BB6AF147BBE

 

그러면 미얀마 하면 또 오르는 생각은 무엇일까? 군사독재, 88 8 8 , 아웅 산 수지 선생 등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의 경우 미얀마 하면 떠 오르는 게 별로 신통한 게 없다. 그 나라의 옛날 이름 버마는 좀 다르다. 버마를 생각하면 즉시 떠 오르는 단어는 다름아닌  한글날이다.

 

1983 년 그 날 “DDD 아저씨가 버마에서 죽었다는 성급한 소식을 전해 준 후배의 전화를 받고 TV를 켜며 잠시나마 기뻐서 어쩔 줄 모르던 그 환희의 순간, 그 해프닝이 벌어진 날이 바로 한글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DDD 아저씨 만큼 인복이 좋아 명줄 또한 긴 인간도 흔치 않을 것이다. 그에게는 남다른 장점이 하나 있는데 어느 분야에서 자기가 범접할 수 없는 실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나이가 어리거나 지위가 낮더라도 고개를 숙이고 배울 줄 아는 일종의 지적 솔직함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런 그가 스승으로 모셨다는 서석준 (경제부총리) 과 김재익 (경제수석비서관)의 그 날 죽음은 그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다. 언젠가도 한 말이지만 좋은 놈이건 나쁜 놈이건 조직의 보스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1955BC254B6BB7082538F4

저 회색지붕 건물 뒤로 넘어가면 미얀마다. 저 바지 아랫단 접은 애국기동단 아저씨 여기서 또 만나네.

 

203F84274B6BB77926AC24

태국 국경마을 메사이에 형성된 상가. 불과 30 년 전 만 해도 이곳은 골든트라이앵글에서 생산되는 생아편의 집산지 역할을 하던 곳이다.  

  

1448BF204B6C924E35BF66

엄마 등에 업혀 손가락을 빨고 있는 아이. 아주아주 오랜 만에 보는 모습이다.  

 

183CDA114B6C87D1147333

찌는듯한 더위, 강렬한 햇볕, 앵앵거리는 파리떼, 채소 썩는듯한 재래시장 특유의 냄새, 무표정한 사람들. 나는 전생에 이 마을에서 산 적이 있었을까? 아니면 스미즈 타카시 감독의 일본 영화 '환생'에서 어느 대학강사가 이야기한 단순한 은재기억의 작동일까?  

 

2010 년 9 월에 또 태국에 간다...... 나 혹시 미친 거 아니지?  



  



11 Comments
곰돌이 2010.02.06 14:20  
그날이 83년 한글날이였군요....


태국은,  적어도 일년에 한번은 가셔야...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그러니, sarnia 님은 지극히 정상이십니다 ^^*
sarnia 2010.02.06 14:32  
사실 글을 올리고도 많은 분들이 댓글을 달아주실 때 일일이 답을 할 수가 없어 미안했습니다. 일빠로 올려주신 곰돌이 님에게만 대표로 한 말씀^^

예, 그 날이 10 월 9 일 한글날이었던 걸로 똑똑히 기억합니다. 저는 이제 곧 80 인 그 아저씨가 오래 오래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죽기 며칠 전 기력이 남아 있을 때 아무도 몰래 밤중에 혼자 망월동 국립묘지에 내려가서 어느 묘지 앞에서 참회의 눈물이라도 흘릴 수 있다면......

제가 방콕을 제대로 못 봤습니다. 아유타야와 칸짜나부리도 파타야도, 그래서 올해 태국열전 3부작을 찍을 계획입니다.
sarnia 2010.02.06 14:44  
아, 나가려고 하는데 '마녀' 님이 들어오셨네요. 아이디 참 마음에 듭니다. 도로시는 과분한 것 같아 동쪽마녀를 택했다는 마녀님의 설명을 어디에선가 읽고 숙연한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나서요.

여기는 금요일 밤이 깊어가는군요. 친구녀석이 전화가 와서 만나러 나가봐야 합니다.

안냥히들 계셔요.
나와너 2010.02.06 15:15  
재미있는 여행기 읽고 갑니다.... 역사도 한줄 되새길 수도 있고...
DDD가 무언지 한참 생각했더니.....
두... 대... 돌....의 약자였던게 생각나네요....ㅎㅎㅎ
어라연 2010.02.06 16:14  
ㅋㅋㅋ..DDD..두.대.돌..

정말 한 이십년만에 듣는 말 같네요..

X환이..X가리는..XX가리...^^;

그때 초딩이었지만, 너무 무서웠었습니다..버마..아웅산..단어자체가 주는 공포감이랄까..

나중에 미얀마로 되며 꼭 가보고 싶은 나라가 되었지만요..
열혈쵸코 2010.02.06 22:12  
잘보고 갑니다. 저 바지접은 아저씨도 젊었을때는 달랐을거에요.
세월이 흐르니 내 자신도 변하고 사람들도 변하게 되더라구요.

태국은 1년에 한번이상은 가줘야한다는 윗분들 말씀에 깊히 공감합니다.
저도.. 이미 태국에 미쳤다는 사실을 즐기게 되었네요. ^^
stopy 2010.02.06 22:43  
댓글 보고 DDD의 의미를 알았네요^^;
sarnia님의 글을 읽고 있자니 첫 태국여행 때 생각이 나네요.
그 때는 태사랑이란 싸이트도 몰랐고 아무런 정보도 수집하지 않아
무식하고 용감하게 태국을 향해 덤벼 들었었거든요.
그 때를 회상하면서 참 어리석었고, 조금만 더 준비했더라면 더 제대로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지금 그 생각이 좀 바뀌게 되었어요.
그 땐 무식하고 용감해서 시간이나 동선 따위 고려 하지 않고
가 보고 싶은 곳 그냥 무작정 가고 했었거든요.
지금으로는 결코 갈 것 같지 않은 골든트라이앵글에도 갔다 왔었구요.
그 때의 추억들이 여행기의 음악과 어우러져 묘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네요.
글 잘 보았습니다^^
훈빠 2010.02.06 23:19  
이 쏴람이~~!!
나도 떵배 완전 튀어나와도
초미녀 와이프랑 살구마는...
편견을 버려요. 나도 한 때는 초콜릿...
을 많이 먹었지요.ㅎㅎ 농담입니다.
한 때 그쪽 동네 총알이 빗발치던 곳입니다.
지금은 세월의 무상함이 
구걸의 슬픈 페노메놈만 남겼군요.
낡은등산화 2010.02.09 01:59  
sarnia님....이건좀 다른 질문인데...캐나다에 사시는 분으로 알고 있어서요.
한국 사람은 태국 무 비자 입국인데...미국 사람은 입국 전에 비자 만들어야 하나요?
물론 캐나다와 미국이 다를수도 있겠지만...혹 이글 보시는 분중에 답 아시는분 답글
달아 주시기 바랍니다...감사합니다.
곰돌이 2010.02.09 13:01  
미국사람들은,  30일 무비자입니다.
sarnia 2010.02.09 13:56  
아, 답글 달려고 보니 곰돌이 님께서 답을 벌써 주셨네요. 캐나다와 미국 여권 소지자 모두 30 일 무비자구요.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들은 90 일로 알고 있는데 맞나요?
포토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