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만난 사람5 – 로스리와 얀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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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만난 사람5 – 로스리와 얀띠

스따꽁 6 811
말레이시아의 말라카..
말레이시아가 얼마나 많은 외적에게 침탈을 당했었는지 쉽게 알수 있는 역사적인 곳이다..
작은 도시 곳곳에는 각종 나라의 오래된 건물들을 볼 수있다..
말라카에서 나는 말레이시아를 찾기 어려웠다.

거리에서도 나는 말레이시아 사람을 보기 힘들었다..
중국계는 쉽게 구분이 갔지만, 인도계 사람도 많이 있었고, 만나는 사람마다 너는 말레이시아사람이냐고 물어서 확인된 사람만이 내가 만난 말레이시아 사람이다.
물어보지 않고는 알수 없었다.

가끔 내가 있는 곳이 말레이시아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난 말라카가 좋았다.
내 여행스타일에 잘 맞는 도시다. 지도 한장 들고, 걸어다니기에 좋다.. 그리 복작거리지도, 심심하지도 않다.

그날도 나는 이른아침을 먹은 후, 지도 한장을 들고, 거리탐험에 나섰다.
이리저리 구경하면서 돌아다니다가…
거의 그렇듯, 나는 또 길을 잃었다.
내가 완전히 길을 잃은 곳은… 주택가 한가운데였다.. 내가 그곳까지 간 이유는,
그곳에 분명 있어야 할 것이 없어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고...
배가 고프길래, 일단 숙소쪽으로 방향(제대로 된 방향일리 없다)을 돌리고는…
내 딴에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고 직진을 계속 했는데… 주택가에 갖혀버린거다…
일단 직진을 계속하면 그곳에서 빠져나올수도 있었겠지만…
방향감각이 떨어지는 사람은, 그게 쉽지가 않다..
막다른 골목과 꼬불꼬불골목은 방향을 완전히 잃게 만들어서 맴맴돌게 된다..

한 주택의 앞마당에 식당을 차려놓은 집이 있었다.
주인남자와 눈이 마주쳤는데, 오라고 한다.
나는 빨리 그 주택가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그냥 지나쳤다.
골목길이 점점 좁아졌다. 막다른 길일지도 모른다.
한참을 헤매다보니 짜증도 나고, 배도 고팠다. 일단 그 식당으로 되돌아갔다.

3~4살가량의 아이가 하나 있는 젊은 부부가 주인이다.
남자는 로스리, 여자는 얀띠.
로스리는 말레이시아사람이고, 얀띠는 인도네시아사람이다.
대부분의 말레이시아사람이 그렇듯 이들도 무슬림이다.

그곳에서 나는 나시레막을 먹었다.
로스리가 코코넛을 쪼개고 있었다. 코코넛쥬스를 먹겠냐고 물어본다.
얼음을 넣어 시원했지만, 역시나 맛이 없다. 난 코코넛의 그 밍밍한 맛이 싫다.
로스리는 내가 맛이 없다고 하자, 나시레막은 어떠냐고 묻는다. 나시레막은 맛있었다.
로스리는 쪼개고 있던 코코넛 두개를 가져와서 설명해준다.
“쥬스는 어린 코코넛이야.. 봐. 쥬스안에 속살이 얇은게 떠다니지?
나시레막에도 코코넛이 들어가. 밥을 지을 때, 다 큰 코코넛의 속살을 넣어서 만들어.
이거 먹어봐.”
로스리는 다 익은 코코넛의 굵은 속살을 떼어서 줬다. 내가 좋아하는거다.
“맛있어. ^^”

로스리에게 여기가 어딘지, 어디로 가야 내 숙소로 갈수 있는지 물었다.
로스리는 지도를 보며, 친절히 일러주고,
오늘은 우리 숙소에서 가까운 곳에 야시장이 선다고 가르쳐줬다.
말라카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를 해주면서,
다음에는 신랑이랑 같이 오라고, 그때 오면, 자기 차로 아기랑 5명이 말라카 관광을 하자고 했다.

로스리가 물었다.
“남한이랑 북한이랑 아직 전쟁중이야?”
“아니, 그냥 가지 못하고, 오지 못할 뿐이야”
“그럼 왜 같이 안살아? 말도 같고, 종교도 같을테고, 예전에는 같이 살았자나”
“미국이 싫어해”
“미국은 어느나라에서든 그래.. 돈을 벌기위해선 전쟁도 하지.”
“2년전에는 미군이 탱크로 학교 갔다오는 어린소녀 2명을 치어죽였어. 우린 전쟁도 안하는데… 부시는 사과도 안해”
 “저런… 부시는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많은 사람들을 죽였어.”
“그래.. 석유 때문에…”

종교, 정치이야기는 처음 만나는 사람과 피해야 할 화제라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종교와 정치이야기를 한다. 종교가 틀리건, 생각이 틀리건 상관않는다.
특히 무슬림은 의견이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서 재미있다.

로스리는 대화 끝에 이런 말을 했다.
“한국은.. 하나가 되면… 아주 강대해질꺼야.
중국이나, 일본보다도 훨씬 힘있는 나라가 될꺼야."
“그래.. 우린 큰나라가 될꺼야..”
로스리는 한국인의 저력을, 뭐든 마음먹으면 해낼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듯 했다.

얀띠는 처음에는 내게 말도 걸지 않고, 대화에 끼지도 않았다.
부끄러운듯 눈이 마주치면 살며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로스리와 내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한글”을 보여주게 되었는데..
가이드북을 꺼내서 내밀었다.

“중국어랑 비슷해?”
“아니, 완전히 틀려”
“그럼, 일본어랑 비슷해?”
“아니, 일본어랑도 틀려. 중국어랑 일본어 글씨는 비슷하지만, 한글은 어떤 글씨하고도 틀려.”
“오.. 그래?”
그들은 한글을 신기한듯 보았다.
나는 왠지모를 뿌듯한 기분이 들어서, 신이 났다.

“어려워보여? 중국어같이 보여?”
“응. 글자가 많은데?”
“아냐.. 간단해. 정말 쉬워”
나는 ㄱ,ㄴ,ㄷ,ㄹ,… ㅏ,ㅑ,ㅓ,ㅕ… 를 종이에 써서 보여주었다.
“이게 다야. 이걸 섞어서 글씨 만드는거야. 봐. 단순하지?”
“정말 이게 전부야?”

얀띠는 이때부터 대화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새로운 문자에 관심이 많은듯…
아기의 이름 ‘니샤’를 한글로 적어달라고 한다.
그리고는 내가 적어준 글자들을 A,B,C,D.. 이렇게 소리내어서 읽고 있다.
난 한글 아래에 영어알파벳으로 같은 발음이 나는대로 대충 적어주었다.
 아기이름 ‘니샤’를 예로 들어 이거랑 이거랑 섞어서 이렇게 소리가 나는거라고 말해줬다.
얀띠는 눈을 반짝이면서, 내이름도 적어달란다.

그리고는… 아주 비슷하게… 한글로 적혀있는 내 이름을 읽는다.
나는.. 감동받았다.
한글이라고는 처음 본, 한국말이라고는 들어본 적도 없을.. 인도네시아인, 수줍음 많은 아기엄마가 한글을 읽고 있었다…
새삼 우리의 한글이 어째서 그렇게 쉽고, 과학적이라고 하는지 느끼게 되었다.
얀띠도 스스로 외국어를 읽었다는게 대견한지,
로스리에게 “나는 너무 똑똑해” 하면서 깔깔거렸다.

자신들의 언어는 있지만, 자신들의 글이 없어 영어알파벳을 빌어쓰고 있기 때문일까..
그들의 웃는 모습속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쉽고 재미난 고유의 문자를 부러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로스리와 얀띠는 집밖까지 나와 내가 갈 길을 일러주고,
꼭 다시 오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6 Comments
탁유미 2004.03.17 23:46  
  글들이 인간적이라는 생각이듭니다. 좋아요..
사람들을 많이 느끼고 오셨네요...
즐겁네요~
사랑 2004.03.18 09:32  
  사람들과의 만남이라는 주제가 참 가슴에 와 닿네요.
재미있고 신기하기도하고...자주 올려주세요....
매일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네요...
싸바이 2004.03.18 10:39  
  음...
기둘렸는데 드디어 올리셨군요...
잼있게 잘 보고 있습니다.
조은 하루 되세요..
소다 2004.03.18 19:25  
  저도 언젠가 자유롭게 떠날 수 있을때가 되면 님처럼 편안하고 자유로운 여행을 하고 싶어요.. ^^ 부러워욧!!
파자마아줌마 2004.03.19 02:20  
  정말 인간적인 여행기예여...한글을 널리 퍼트리고오셨네요..^^
캄보디아아저씨 2004.03.21 19:31  
  아가씨 닉네임이 스타꾱이였나 처음 알았네.
안녕.
나 같이 태국에서 스님들하고 법당에서 하루밤 인연을 맺은 캄보디아 아저씨.
언제 귀국했어요.
나는 2월22일날 귀국했는데 베트남 항공편으로.
너무 반가워서 자판기 두드리고 있어요.
여행기 첫머리에 내소개 해줘서 고마워요.
내 이야기가 나오니까 그날의 일들이 새삼 떠오르네요.
오리엔트 타이는 그맛에 타지요. 나는 3월25일 이후에 또다시 캄보디아에 들어갈 예정이예요. 여행기 재미있게 읽고있구요. 좋은 이야기 많이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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