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만난 사람3 – 스웨덴 아가씨, 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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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만난 사람3 – 스웨덴 아가씨, 리나

스따꽁 10 1313
리나를 만난건 KL에서 말라카로 가는 버스안에서였다.
옆자리에 앉았는데, 우리는 눈인사 한번 하지 않고, 말라카까지 갔다.
리나는 가방에서 빵을 꺼내 먹었다. 물론 내게 권하지도 않았다.
‘흥. 나도 주나봐라.’
 버스타기전에 산 망고를 먹었다.
너무 시어서 다 줘버리고 싶었으나.. 줄거였으면 첨부터 줬어야지.. ㅠ.ㅜ

그러다..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니, 버스는 멈춰있고, 사람들이 우루루 내린다.
“어~ 여기가 어디지? 여기가 말라카? 어디야?”
당황해서 물었다.
“몰라. 나도 말라카가는데, 말라카가 종점이라고 생각하는데.. 모르겠어”
그런 얘기를 하는 중에 버스는 출발해버렸다.

어리버리한 여행자 둘이…
버스에서 내리면 어디로, 어떻게 갈것인지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리나는 KL에서 만난 다른 여행자가 추천해준 곳으로 가겠다고 했다.
나야 뭐 정해놓은 곳도 없으니..

버스는 말라카 터미널에 도착했고, 삐끼와 택시기사들이 몰려왔다.
나는 일단 17번 시내버스를 타는곳을 물어 다음여정을 확보했다.
리나는 짐칸에서 큰 배낭을 꺼내고, 어영부영하는 와중에 삐끼인듯한 사람과 얘기하고 있다.

“너 버스타고 갈꺼지? 버스 타는데는 저쪽이래.”
“응. 저 사람이 이 숙소 모른대… 둘이 같이 택시타고 갈까? 둘이 가면 4링깃씩만 내면 되는데..”

서있던 택시를 탔다. 숙소들이 몰려있는 거리라고 내리란다.
리나는 챙겨온 추천숙소 팜플렛을 보여주면서, 여기가 아니라고, 그 숙소까지 가자고 따진다.
택시기사는 두리번거리더니, 길건너에서 그 숙소를 찾아줬다.

우리는 자연스레 같이 들어가서 방을 보았다.
마땅한 방이 없다. 리나는 밖으로 창이 난 방을 고집했다.
KL에서 고생했다면서 반드시 바람들어오는 방에서 잘거란다... 

길건너, 트래블러스 롯지로 갔다.
배란다까지 딸려있는 더블룸이 25링깃이다. 침대는 분리해서 트윈으로 만들어준단다..
페인트칠을 새로 해서 그런지 아주 깔끔했다.
같이 쓰면, 돈도 아끼고, 훌륭한 숙소에서 지낼수 있는데…
서로 눈치를 보다가 같이 쓰기로 했다.

우리는 3일동안 그곳에서 같이 지냈다.
우리 방에 무척 만족했고, KL의 숙소 욕을 하면서, 이곳은 천국이라고 하루에도 몇번씩 얘기했다.
우리는 밖에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집착했다.
리나는 KL에서 더위를 먹었고, 나는 빈대에 물렸다.

리나는 30살의 스웨덴 아가씨다.
발렌타인데이때 사람들이 쌍쌍이 몰려다니는게 꼴보기 싫다던 솔로 여행자다.
순수화학을 공부하다가, 실험실이 지겨워서 여행을 떠났단다.
리나는…
서양사람은 아무래도 우리와 조금은 틀릴거라는 나의 선입관을… 완전히 깨버렸다.

“너는 뭐 전공했어?”
“ - -;; 독일문학. 독일어 물어보지마”
“그럼 독일어 할줄 알어? 학교에서 배웠겠네”
“못해. 학교에서 공부 안했어. 수업시간에 잔디밭에서 낮잠잤어”
“ㅋㅋ 날마다 술먹고?”
“날마다 술먹은거 어떻게 알았어?”
“우리나라 대학생들도 공부 안해. 맨날 술먹고.. 나는 안그랬지만..”

“그럼, 지금은 일해?”
“아니 놀구있어. 일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나이 많은 여자는 취직하기 힘들어”
“스웨덴도 그래.. 어려워.. 그래도 너는 남편 있으니까.. 돈 못벌어도 돌봐줄거 아냐.”
“머.. 그렇기는 하지만…”
“나두 여행 끝나고 집에 가면 돈벌어야 하는데…. 직장 못구하면 아빠가 돌봐주겠지..”

“너는 도미토리에서 자봤어?”
“응. 방콕에서는 한국인 도미토리에서 자. 에어컨이 있어서 좋아”
“그래? 깨끗하고, 안전하겠다… 그러면, 도미토리에 여자는 없고, 남자한명만 있으면 잘수 있어?”
“글쎄. 별로 안자고 싶은데… 한방에 남자랑 둘이 잠자는 거자나”
“나는 여자가 한명이라도 있으면 자지만, 남자만 있으면 절대로 안자. 불안해서… 너도 여자니까 방 같이 쓰는거야. 여자끼리는 편하자나”

우리는 첫날, 사랑스러운(정말이다. 더럽고, 어둡고, 냄새나고, 바람한점 없는 숙소에서 빈대들과 뒹굴다 도망쳐온 이곳은.. 사랑스러웠다!)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마냥 걸었다.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면서….
KL와 말라카를 비교할때는 언성을 높여가면서 의견일치를 보았다... - -;;
여행자정보센터에서 얻은 지도 한장 들고는… 엄청 걸었다…
불행하게도.. 리나도 길눈이 어두웠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려고, 정 반대방향으로 쭉 걸어갔다…. ㅠ.ㅜ

리나는… 나보다는 영어를 잘했지만, 그래도 다른 서양인들처럼 유창하거나, 내가 막히는 단어들을 알려줄 정도로 잘하지는 못했다.
내가 “몸에 있는 물이 영어로 뭐야?” 라고 물어보니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딴얘기 하다가 내게 물어본다.. “근데, 몸속에서 나오는 물이 영어로 뭔지 알어? 이거말야” 라면서 땀을 가리킨다.… 내가 먼저 물어봤는데….
그래도….. 의사소통하는데는 문제없다. 했던 얘기를 또 하기도 하고, 한 단어를 설명하느라 한참이 걸리기도 했지만, 우린 대충 말하고, 대충 알아들으면서도 잘 지냈다.

한가지… 리나가 웃긴 얘기를 내게 해주었는데, 못알아들어서… 리나는 그 얘기를 4번이나 반복해야했다…
웃어야 하는 클라이막스 부분에서는 꼭 낄낄거리면서, 내가 알아들었기를 바라는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 -;; 
리나의 어휘력도 짧아서, 다른 문장이나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고, 똑같은 문장을 4번 반복하면서 웃는데….
우리는 그 상황에 웃어야만 했다..

리나는 KL에서 더위도 먹고, 물갈이를 했다.
내가 아침 일찍 밖으로 나가 아침밥을 먹고, 돌아다니다가, 이른 점심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면… 여전히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러면, 같이 1~2시간쯤 낮잠을 자고,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같이 어슬렁거리면서 밖으로 나갔다.

내가 밖에서 물고온 참신한 정보에 의해, 우리는 야시장에 갔다.
각 요일마다 다른 곳에서 서는 야시장이다. 해질 무렵부터 몇시간동안만 서는 현지인들만의 야시장이다.
지도를 보고는 충분히 걸어갈수 있는 거리라고 큰소리를 쳤는데…
너무 멀었다.
큰길따라 가는 거라, 찻길로 위험스레 한참을 걸었다.
리나는 지쳤고, 야시장이 정말 있을지 없을지 의심스러웠다.
다행히 야시장은 있었지만, 리나는 힘든 것 같았다.
나는 논야꾸이 두개만 사들고, 야시장은 대충 둘러본 후, 지나가는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리나는 돌아오자 마자, 화장실로 뛰어갔다.
더위먹은 물갈이환자를 너무 멀리까지 끌고갔다.
 
리나는… 뭐랄까.. 모범생같은 여행자였다. 조심스럽고, 깐깐하고, 가이드북에 충실해보였다.
예를 들면, 밥을 먹으러 가는데, 내가 현지인식당 좋아하냐고 물으니까, 좋아한다고 먹으러 가자고 하면서, 가이드북에서 현지인식당을 찾는거다. 숙소를 구할때도, 가이드북에 있거나, 다른 여행자가 추천해준 곳만 둘러보았다. 바가지를 씌우는 식당에서는 여지없이 화를 내면서, 음식값을 지불하지 않고, 일어섰다.

하지만… 약에 있어서는 달랐다.

리나는 내가 말라카를 떠나는 날까지 물갈이를 했는데, 그렇게 심한건 아니었다. 그저, 뭐든 조금이라도 먹으면, 바로 화장실에 가기만 하면 되는, 나도 겪어본적이 있는 낮은 수위의 물갈이다. 생활하는데는 지장이 없지만, 언제 화장실이 필요할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하다.
리나는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리다가, 왠 좁쌀만한 환약 5알을 얻어왔다.
“이거 배탈난데 먹는거래”
“이게 약이야?”
“응. 일하는 젊은 청년이 이거 먹으면 낫는대. 허브의 일종이 아닐까? 근데, 젊은 청년이 준 약이라, 의심스러워. 이거 먹고 미쳐버릴지도 몰라. 낄낄~ “
리나는 마약성분이 아닐까 의심하는 것 같았다.
“허브는 아닌거 같아. 아무 냄새도 안나. 이거 다섯개 다 먹으래?”
“응. 하나 먹어볼래? “
“아니. 난 안 아퍼”
리나는 약이 의심스럽다고, 내팽겨쳤지만, 그 다음날, 알약 3개를 먹었는데도, 낫지 않는다고 투덜댔다.

그리고는, 내게 배탈날 때 먹는 약이 있냐고 묻는다.
“한국에서 가져온거 있는데, 너한테도 약이 들을지는 모르겠어. 동양인과 서양인은 체질이 틀리다고 하자나.(이걸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system이 틀리다고 말을 했지만, 리나는 알아들은듯 했다)”
“절대로 아니야. 너랑 나랑 똑같아. 너한테 좋은 약이면 나도 나을꺼야. 내가 의사는 아니지만, 우리는 똑같아”
“그래. 근데 이거 냄새가 지독해. 원래 4개 먹어야 하는데, 나는 3개만 먹어”
“그럼 나도 3개만 먹을래. 윽. 정말 지독하다. 뭘로 만든거지? 지금은 괜찮으니까, 좀 심해지면 먹을래..”

리나의 상태는 진전이 없었고, 그날 저녁…
배에다 뭔가를 계속 바르고 있다.
“그건 뭐야?”
“이거, 태국에서 산 약인데, 배탈난데 바르면 낫는대”
야멍이다. 태국의 만병통치약. - -;;
“그거 배에 발라도 절대로 안 나아. 모기물린데나 발라. ”
“아냐. 여기 써있어. 이거 판 사람이 좋은 약이랬어”
차라리 병원에 가라고 말했지만, 병원에 가면 오래기다려야 한다면서 리나는 잠자기 전까지 야멍을 배에다 열심히 발랐다. 

나는 말라카를 떠나기 전날, 리나에게 3일치 방값의 반을 주고,
아침 일찍, 잠이 덜깬 리나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리나의 물갈이는 당연히 진전이 없었다. 정로환 3알을 놓아두고 올까, 생각했지만..
그렇게 아무약이나 덥썩덥썩 먹어대는데…. 그 아무약에 정로환도 끼워놓고싶지는 않았다.

그냥…
“혼자 여행하는 사람은.. 돌봐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아프면 안돼..
오늘은 병원이나 약국에 가. 그리고, 아침밥은 중국식당가서 죽 사먹어”
내가 할수 있는 충고를 해주고는 헤어졌다.

여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숙소를 같이 쓴 서양인이다. 멀어만 보이는 서양인이 리나를 통해 가깝게 느껴졌다.
정로환을 줄걸 그랬나..
10 Comments
한마디 2004.03.11 14:08  
  왠지 리나가 불쌍해여...흑흑  리....나...[[그렁그렁]]
레아공주 2004.03.11 14:23  
  쿠할할할 언니 말로 들었을때도 리얼햇지만..진짜루... 글로 보니까 더 리얼하넹...근데 리나 사진은 없어요?
스따꽁 2004.03.11 14:28  
  이번 여행은...건전지 뺏기는 바람에, 신경질 나서 사진 안찍었어..[[으이그]]
레아공주 2004.03.11 15:02  
  건전지 걍 하나 사지.......왜 그랬어!!!!
필리핀 2004.03.11 15:07  
  여행기 잘 읽고 있습니다. 딴지는 아니고요, '모범적인 여행자' 라는 게 좀 걸리네요. 아마 '모범생 같은 여행자'라는 뜻이겠죠? 여행에 '모범'이란 있을 수 없으니까요...
스따꽁 2004.03.11 15:11  
  맞아여.. 그 표현이 정확한거에요.. 어휘력이 딸려서리... 고쳤습니다. 감사함다!
고구마 2004.03.11 16:31  
  음....사람 사는 건 다 비슷하면서도,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드네요... 북유럽 여성들도 우리네와 비슷한 고민을 껴안고 살아가는듯...
파자마아줌마 2004.03.12 02:47  
  일단은외국인과의 언어소통에 놀랍고...스따꽁님의 여행마인드에 놀랐슴다..^^ 멋진여행하신듯..후기 잘읽고잇씀다..^^ 많은이야기들려주세요^^
영e 2004.03.12 20:31  
  스따꽁님 혹시 카메론에서 만났던 분 맞으시죠??..0.0  저그때 남학생이요..~ -.-; 기억하고 계실지..  여기서 다시 뵈니 방가와영~~ ^^ 
스따꽁 2004.03.12 22:16  
  영e님..앗! 당연히 기억하져.. 이번 여행에서 만난 유일한 한국남자인데여.. 그날 놀아주셔서 정말 고마웠슴다.. 근데 전줄 어떻게 아셨져??
파자마아줌마님.. 사람이 언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손짓발짓도 언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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