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 말레샤, 인도네샤 여행기-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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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말레샤, 인도네샤 여행기-14

필리핀 1 841
1월 1일 맑음
이국땅에서 2004년의 첫 날을 맞았다. 내 생애에 새해를 이국 땅에서 맞은 것은 두 번째이다. 첫 번째는 싱가폴에서 2001년 새해를 맞은 것이다. 그때는 클라크 키의 한 바에서 2000년 12월 31일 밤부터 2001년 1월 1일 새벽까지 성대한 신년 축하행사가 벌어졌었다. 나는 그곳에서 현지인들과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과 어울려서 신나게 놀았었다. 
그러나 이국에서 두 번째 맞는 새해는 아무런 특별 행사가 없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짐을 챙기고 리틀 인디아에서 짜이와 로띠로 아침을 때우고 8시에 출발하는 핫야이 행 미니버스를 탔다.
출리아 거리에서 탄 승객은 나 혼자다. 미니버스는 버터워스 근처의 마을을 몇 군데 들려서 친구 사이로 보이는 20대 청년 3명과 50대쯤으로 보이는 사내 2명을 더 태웠다. 중국계와 인도계가 반반이다. 휴일을 맞아 핫야이로 놀러가는 것 같다.
국경이 가까워질수록 태국에서 내려오는 차량이 많이 눈에 띈다. 국경을 통과하기 직전에 한 휴게소에 정차하더니 운전사가 2링깃과 여권을 달라고 한다. 한참 만에 돌아온 운전사는 타이프로 정리된 태국 입국신고서를 건네준다. 그동안 사람들은 요기를 하거나 환전을 했다.
국경에 도착하자 다시 여권을 가져가더니 출국수속과 입국수속을 대신 해준다. 거참 편리하군. 그런데 이렇게 해서는 보안이 너무 허술한 거 아냐? 짐 검사나 신원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으니 밀수나 밀입국이 쉬울 것도 같다.
국경은 태국에서 말레이시아로 넘어오는 차들로 인해 아수라장이다. 상대적으로 말레이시아에서 태국으로 넘어가는 차는 아주 적다.
차 안에서 바깥의 왁자지껄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내가 왜 지금 여기에 있는지 묘연하다. 여행은 이곳에서 저쪽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존재한다. 때문에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박쥐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다. 여행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한가 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앞으로 나는 또 얼마나 오랜 세월을 이렇게 길 위에서의 삶으로 보내야 하는 것일까. 머리를 식히려고 떠나온 여행인데 머리가 더욱 복잡해진다.
몽고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게라옹곤’과 ‘예라옹곤’이 있다고 한다. 게라옹곤은 ‘집의 옹곤’으로 지금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가리킨다. 예라옹곤은 ‘들판의 옹곤’으로 세상의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자신의 생령(生靈)을 가리키는 것이다. 게라옹곤이 예라옹곤을 만나는 날, 그 사람은 죽는다고 한다.
나의 이 외롭고 쓸쓸한 여행은 무엇이던가. 예라옹곤을 만나기 위한 방황인가. 세상의 어느 한 구석 누추한 골목길 담장 아래에서 나의 예라옹곤을 만나는 날, 나의 이 지루한 여행도 끝이 날 수 있는 것인가.
예라옹곤처럼 이 세상 어느 한 구석을 헤매고 있을 내 젊은 날 어느 한때의 정지된 시간 때문에 나는 평생 이렇게 떠돌아야만 하는 운명인가. 그 어느 한때에 문신처럼 깊이 남아 있는 영혼의 상처가 치유되기 전에는 정녕 나의 방황은 끝이 날 수 없단 말인가.
핫야이 거리는 말레이사에서 건너온 많은 관광객으로 인해 흥청망청 거리고 있다. 그속에서 나는 기름에 섞이지 못하는 물처럼 홀로 이방인이 된 기분이다. 그러나 하나도 외롭지 않은 것은 왜일까?
 
1 Comments
할리 2012.05.24 02:03  
인생도 끈임없는 여행과 같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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