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 말레샤, 인도네샤 여행기-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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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말레샤, 인도네샤 여행기-11

필리핀 1 789
12월 29일 맑음
또 새벽에 잠을 깼다. 여전히 추웠다. 이불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어제 읽다 만 소설책을 마저 끝내니 날이 뿌옇게 밝아온다.
마리아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9시 배를 타고 파라팟으로 나온다. 베모를 타고 시외버스 터미널에 세워 달라고 했더니 웬 식당 앞에 세워준다. 식당 종업원이 나보고 메단 가냐고 묻길래 브라스따기 간다고 했더니 약간 실망하는 눈치이다.
길가에 나가 한참을 서 있던 종업원은 지나가는 미니버스 하나를 세운다. 그리고 나보고 타라는 손짓을 한다. 내가 버스에 타자 운전사가 종업원에게 1,000루피아를 건넨다. 이제야 알겠다. 처음 탔던 베모 운전사는 식당 종업원이 ‘삐끼’ 노릇을 할 수 있게 일부러 나를 식당 앞에 세워준 것이다. 아마 내가 메단 가는 승객이었으면 커미션을 더 챙길 수 있었던 모양이다. 훌륭한 커넥션이다.
미니버스를 타고 1시간 만에 시안타에 도착한다. 파라팟에서 여기까지의 요금은 5,000루피아. 시안타에서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브라스따기(실은 카반자)로 가야 한다. 30분 후에 버스가 출발한단다. 요금은 6,000루피아. 화장실에 들르고 빵과 음료수를 사서 차에 오른다.
30여 명의 승객은 대부분 현지인이고 나와 60대쯤 되어 보이는 서양인 커플만이 외국인이다. 버스 안에 빈 자리가 없자 지붕에까지 사람이 올라탄다. 앞문에 한 사람, 뒷문에 한 사람씩 있는 버스 차장은 아직 앳된 청년이다. 옛날 우리나라 버스 차장처럼 문에 매달려 가는데 버스를 세울 때는 동전으로 유리창을 두드리고 출발할 때는 ‘요~' 라고 외친다. 자세히 보니 유리창을 두드리는 동전을 귀에 꽂아두었다.
버스가 출발하자 흡연 대회가 시작되었다. 승객들은 한 대 피울 때마다 버스 차장에게 꼭 한 대씩 권한다. 그러다보니 차장의 입에서는 담배가 떠날 틈이 없다.
버스는 정류장이 따로 없었다. 가다가 손님이 있으면 아무데서나 태워주고 내리고 싶으면 아무데나 내려주었다. 그렇게 서다 가다를 반복해서 3시간 만에 카반자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브라스따기로 가야 한다. 그러나 대체 어떤 버스를 타야할지 모르겠다. 주위 사람에게 물어봐도 도대체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함께 버스를 타고 온 서양 커플은 여유만만이다. 눈치를 보아하니 그들도 브라스따기로 가는 모양인데 우선 카반자부터 한 바퀴 돌아볼 생각인 것 같다. 그들의 여유가 부럽다.
길 건너에 경찰서가 있다. 순경에게 말을 거니 다행히 영어를 할 줄 안다. 마침 눈앞으로 지나가는 노란색 베모를 세우더니 타라고 한다. ‘테리마카시(‘감사합니다’라는 뜻의 인도네시아 어)’를 연발하고 베모에 탄다. 20여분쯤 가니 평화스러운 산골마을이 나타난다. 왠지 분위기가 말레이시아의 카메론 하이랜드와 흡사하다. 카메론 하이랜드는 내가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베모 요금으로 1,200루피아를 치르고 내린다. 1순위로 생각하고 있던 숙소 위스마 시바약은 쉽게 눈에 띄었다. 브라스따기 중심가는 그리 크지 않은데다가 주요 건물들은 일직선상에 모여 있어서 찾기가 쉬었다.
위스마 시바약은 그동안 내가 묵었던 인도네시아의 숙소 중에서 가장 분위기가 좋았다. 배낭여행자를 위한 숙소는 바로 이래야 한다는 전형을 보여주는 것 같다. 욕실과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싱글 룸이 10,000루피아. 방은 좀 좁지만 가격도 적당하고 깔끔한 게 마음에 든다. 넓은 정원과 친절한 종업원들이 인상적이다.
간단하게 샤워와 밀린 빨래를 하고 숙소 식당에서 이른 저녁을 주문한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아까 버스에서 봤던 서양 커플이 들어선다. 서로 손을 꼭 잡고 있는 모습이 은퇴 여행이라도 떠나온 부부 같다. 그들의 얼굴에는 이제 앞으로 남은 생을 가능하면 오래도록 천천히 즐기는 일만 남은 자의 여유로운 행복이 스며 있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석양을 보기 위해서 군달링 힐로 향했다. 군달링 힐은 시내에서 걸어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조그마한 산으로 브라스따기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노을 속에서 붉은 빛으로 뒤덮인 채 김을 모락모락 피어 올리며 서 있는 화산의 모습은 장엄했다. 내일은 저 화산을 등산하는 것이다. 난생 처음 화산을 오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숙소로 돌아오니 추위가 장난이 아니다. 긴바지를 2개 껴입고 잠바도 2개나 입었다. 그래도 어깨가 시리다. 담요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쓰자 냄새가 난다. 싸롱을 꺼내 담요를 감싸자 냄새가 좀 덜하다. 한동안 추위 때문에 뒤척이다 잠에 빠져들었다. 

1 Comments
할리 2012.05.24 00:37  
화산등산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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