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 말레샤, 인도네샤 여행기-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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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말레샤, 인도네샤 여행기-8

필리핀 1 836
12월 26일 맑음
눈을 뜨니 새벽 4시다. 좀 더 눈을 붙이려고 했으나 금세 멀뚱멀뚱해진다. 주섬주섬 배낭을 싸고 샤워를 하고 거리로 나선다.
새벽 어스름 속에서 출리아 거리가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간밤의 잔해들이 거리에 뒹굴고 있다. 몇몇 바에서는 아직까지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중 한 사람이 나를 향해 뭐라고 소리 지르며 손을 흔든다. 자세히 보니 레이디보이다. 아, 어느새 출리아 거리에도 레이디 보이들이 진출해 있구나. 아마 태국에서 넘어온 사람들인 것 같다. 새벽 어스름 속에서 트라이쇼(자전거 옆에 2인용 좌석을 붙인 탈 것)를 탄 레이디보이 하나가 스치고 지나간다.
리틀 인디아 거리에는 이름 아침부터 문을 연 노점 식당이 있다. 로띠와 짜이를 파는 식당이다. 로띠는 인도식 팬 케잌으로 주로 아침 식사로 많이 먹는다. 짜이는 연유를 탄 인도식 홍차로 로띠와 함께 먹으면 좋다.
로띠 한 장과 짜이 한 잔을 시킨다. 모두 해서 1.3링깃이다. 정말 싸다. 말레이시아에서의 아침은 2링깃 이내로 해결할 수 있다. 점심이나 저녁도 3~5링깃이면 충분하다.
아침 식사를 하고 메단 행 페리 터미널로 가는 길에 나시 레막 노점이 눈에 띈다. 나시 레막은 바나나 잎에 밥과 반찬을 싸주는 말레이식 음식인데 주로 아침 식사나 도시락으로 많이 애용한다. 배에서 먹을 점심으로 나시 레막을 사기로 한다. 이 노점은 미리 완성된 나시 레막을 파는 게 아니라 손님이 반찬을 고를 수 있다. 반찬을 조금 많이 골랐더니 2링깃이다.(일반적으로 나시 레막은 1링깃 이하이다.) 물까지 한 병 사고 나니 이제 준비 끝.
출리아 거리에서 페리 터미널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이다. 8시부터 수속이 시작되었다. 줄 서서 보딩 패스 받고 세관 검사하고 출국 수속까지 하니 어느새 10시다.
출국 수속을 하는데 옆에 유난히 눈에 띄는 복장을 한 서양인이 있다. 베이지 색 모자에 베이지색 남방, 베이지색 바지, 배낭과 복대도 베이지식이다. 단 한 가지 운동화만 하얀색이다. 지금까지 여행 다니면서 이렇게 깔끔하고 통일된 패션으로 다니는 사람은 처음 본다. 내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쳐다보자 그는 조용한 미소를 건넸다.
페낭과 메단을 왕래하는 배는 300명 가량이 탑승하는 쾌속선이다. 승객의 대부분은 말레이시아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 인이다. 명절을 가족과 보내기 위해 귀향하는 것이다. 저마다 들뜬 표정을 한 그들의 손에는 선물꾸러미들이 잔뜩 들려 있다. 외국인 여행자는 10명도 채 안되는 것 같다.
공교롭게도 베이지 색의 사내와 나란히 앉게 되었다. 이름은 말리, 스위스 인이다. 음악을 프로듀싱 하는 일을 하고 있단다. 왠지 예술가 냄새가 나더라니까. 3개월 정도 인도네시아에 머물면서 음악 작업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전에도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는, 수마트라 섬 북부의 아체 라는 해안 마을로 갈 거란다. 그곳이 조용하고 물가도 싸서 장기간 머물면서 일을 하기에 좋단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옆에 앉아 있는 두 인도네시아 여성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꾸 쳐다본다. 말리가 그들을 향해 싱긋 웃더니 말을 건넨다. 아직 앳된 모습이 가시지 않은 두 여성의 이름은 쏭당과 줄리다. 말레이시아 조호 바루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신년을 가족과 보내기 위해서 고향을 찾는 길이라고 한다.
조호 바루는 말레이시아 최남단의 싱가폴과 국경을 맞댄 도시로 페낭까지 오려면 차로 꼬박 한나절이 걸리는 거리다. 어제 아침에 조호 바루를 출발하여 페낭에서 1박을 하고 배를 탔다고 한다.
얼마만의 고향 방문이냐고 물으니까 4년 만이란다. 그러면서 대뜸 엄마하고 아빠가 너무너무 보고 싶다면서 금세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타국에서 보낸 외로움이 뒤섞여 설움으로 밀려오는 것이리라. 어려운 시절의 우리 누이들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하다. 한창 가족들과 행복을 나누고 친구들과 어울려서 청춘을 구가할 나이에 이역만리 남의 나라에서 고생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무리 돈이 중요하다지만 가족과 4년씩이나 떨어져서 지내야 한다는 것은 큰 고통이 아닐 수 없다. 가족의 행복과 맞바꾼 돈이 과연 얼마나 큰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그렇게 해서라도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되는 자본주의 사회야말로 심각한 가정파괴범이다. 
둘은 이내 쾌활한 표정으로 돌아간다. 이제 몇 시간만 있으면 가족들을 볼 수 있다는 기쁨이 지난날의 고생을 잠시 잊게 한 모양이다.
5시간여의 항해 끝에 배가 메단에 도착했다. 그러나 여기는 메단이 아니고 벌라완이라는 자그마한 항구이다. 여기서 버스를 타고 메단으로 가야 한다. 버스 요금은 배삯에 포함되어 있다.
버스를 타고 30여분 달린 끝에 메단에 도착했다. 그런데 버스에 타자마자 인도네시아 사내 하나가 말을 걸어왔다. 어디에 묵을 거냐?
그간의 여행 경험으로 이런 사람들에게는 머뭇거리지 말고 자신의 행선지를 정확히 얘기해 주는 게 좋다. 그래야 더 이상 집적거리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묵을 예정인 숙소의 이름을 댔다. 그랬더니 그 사내는 자기가 그 숙소에서 일하는 직원이니 자신과 함께 가면 된다는 것이었다. 사내는 주변의 다른 여행자들에게도 일일이 똑같은 질문을 던지더니 같이 갈 사람을 1명 더 확보했다.
사전 정보에 의하면 메단은 최악의 도시이므로 가능하면 숙박하지 말고 다음 행선지로 이동할 것을 강력히 권하고 있었다. 원래 나의 일정은 메단에 도착하면 곧바로 버스로 2시간 거리인 부낏 라왕으로 가는 것이었다. 거기서 오랑우탄을 보고 브라스따기로 이동하여 화산을 등산한 다음, 또바 호수로 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메단으로 오는 배 안에서 주위의 인도네시아 인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지난 9월에 부낏 라왕에 커다란 홍수가 나서 모든 게스트 하우스들이 떠내려가고 오랑우탄들은 숲 속으로 도망가 버려서 모든 게 폐쇄되었다는 것이다.
이럴 수가,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인 오랑우탄과의 만남이 무산된 것이다! 나의 실망감과 절망감은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었다. 숲 속으로 대피한 오랑우탄들도 걱정이었다. 홍수가 나서 모든 게 떠내려갔는데 먹이는 제대로 찾아 먹고 있는지…… 가여운 오랑우탄들!
그러나 돌다리로 두들겨 보는 심정으로 부낏 라왕에 대한 정보를 좀 더 확실하게 알 필요가 있었다. 부낏 라왕이 정말 폐쇄되었는지, 메단에서 1박을 하면서 확인해 본 뒤 다음 행선지를 결정하기로 했다.
내가 메단에서 묵으려고 하는 숙소는 싸구려 게스트 하우스였다. 말리는 중급 호텔에 묵을 생각이란다. 버스 안에서 말리와 쏭당, 줄리다 등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부디 그들의 앞날에 행운과 행복이 가득하길 마음속으로 빌었다.
나와 캐나다 국적의 여성 하나가 버스에서 만난 사내를 따라갔다. 내가 1순위로 염두에 두고 있던 숙소는 빈방이 없었다. 2순위로 염두에 두고 있던 숙소를 찾아가려 하자, 사내는 자신이 그 숙소에서도 일한다면서 말릴 사이도 없이 앞장서서 간다. 왠지 사내가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 여행 사이트에는 인도네시아에 가면 외국인을 노리는 사기꾼들을 조심하라는 정보가 많이 있었다.
2순위 숙소는 1순위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다. 분위기는 1순위 숙소보다 좋았다. 그러나 방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공동욕실과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는 싱글 룸(15,000루피아, 한화 약 2,150원, 1,000원=7,000루피아)은 끔찍했다. 욕실과 화장실이 딸려 있는 트윈 룸(30,000루피아)은 싱글 룸보다 약간 낫긴 했지만, 그래도 선뜻 내키지 않았다. 침대 매트리스는 방을 거쳐 간 수많은 사람들의 때와 땀에 절어서 시커멓고 눅눅했다. 새 침대보가 덮여 있긴 했지만 손으로 누르자 끈적끈적한 촉감이 전해졌다. 청소를 한다고 했지만 도저히 지워지지 않는 묵은 때들이 방 전체에 저승꽃처럼 덮여 있었다.
게스트 하우스 중에는 그나마 이게 괜찮은 수준이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두 눈 딱 감고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하지만 출국 시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메단에서 숙박하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결국 갖은 고생 끝에 성공했다.)
숙박비를 지불하려고 보니 인도네시아 돈이 없었다. 그때까지 나와 캐나다 여성 주위에서 얼쩡거리고 있던 사내가 환전소를 안내하겠다고 한다. 시계를 보니 은행은 문을 닫았을 시간이고, 내일은 토요일이라 은행 휴일이니 사설환전소에서라도 오늘 환전을 해야 했다.
나는 사내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 잽싸게 숙소 정원에서 책을 읽고 있는 서양인에게로 다가갔다.
“잠깐 실례 좀 하겠다.”   
“해라.”
“너 혹시 미국 달러 환율이 얼마 하는지 아니?”
“어제 은행에서 현찰을 바꿨는데 1달러에 8,400루피아더라.”
“여행자수표는 얼마인지 아니?”
“모르겠는데 아마 현찰보다는 조금 덜 줄 거야.”
“고맙다.”
나는 다시 사내에게로 갔다. 그는 캐나다 여성과 나를 숙소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사설환전소로 안내했다. 약간 어리숙하게 생긴 캐나다 여성은 대뜸 여행자수표를 꺼내 사인부터 하려고 했다. 잠시 그녀를 제지하고 환전소 직원(주인처럼 보였다.)에게 물었다.
“1달러에 얼마냐?”
“7,100루피아다.”
나는 귀를 의심했다.
“얼마라구?”
“7,100루피아.”
이런, 초행길 여행자의 수업료라고 해도 그렇지, 너무 심하다. 100불당 13만 루피아나 사기 치려고 하다니. 15%가 넘는 금액이다.
“다른 데 가자.”
그렇게 말하며 캐나다 여성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녀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멀뚱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내가 진짜 환율이 얼마인지 이야기해주자 그녀도 깜짝 놀라서 꺼내던 여행자수표를 도로 넣었다. 그러자 우리를 안내한 사내와 환전소 직원이 뭐라고 쑥덕거리더니 말했다.
“얼마를 원하냐?”
“1달러에 8,400루피아.”
“7,800까지 주겠다.”
“싫다. 잘 있어라.”
내가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자 직원이 다시 말했다.
“좋다. 8,200까지 주겠다.”
“8,400!”
“안된다. 그런 현찰 환율이고 너흰 여행자수표잖아.”
잠시 생각해 보니 여행자수표가 현찰보다 환율이 낮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고, 다른 사설환전소를 가본들 더 나은 대접을 받는다는 확신도 없었다. 결국 나는 100불을 바꾸고 캐나다 여성은 무려 300불을 바꿨다.(나는 예상 체류 기간이 1주일이었고 그 여성은 5일이었다.)
내가 100불만 바꾸자 우리를 데려 왔던 사내가 참견을 한다.
“이봐 친구, 자네 그 돈 가지고는 어림도 없어. 다른 도시는 환율도 안 좋아. 한 300불은 바꿔야 해.”
미친@#$%^&*! 욕이 튀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나는 사내를 무시하고 숙소로 돌아왔다.(그날 820,000루피아를 환전했는데, 인도네시아 여행을 마쳤을 무렵 361,000루피아가 남았다.)
숙소로 돌아와 방을 보니 다시 우울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잠을 잘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할 수 없다. 맥주나 한 잔 마시고 알딸딸해진 상태에서 잠을 청할 수밖에. 마침 캐나다 여성도 한 잔 하러간다기에 함께 숙소를 나섰다.
메단은 인구가 3백만 명에 육박하는 수마트라 최대의 도시이다. 그런데도 별다른 고층 빌딩이나 변화가가 없고 도시 전체가 푹 퍼져 있는 분위기다. 우리는 멀리 갈 것도 없이 숙소 근처의 식당에서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처음 마셔보는 인도네시아 빈탕 맥주. 맛이 괜찮았다.(1병 12,500루피아.)
캐나다 여성의 이름은 크리스티. 한국 대전의 모 대학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고 있단다.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친 지는 3년, 그동안 대구와 부산에서도 일했다고 한다. 방학을 맞아 태국에서 다이빙을 즐기다가 바자가 만료되어 비자 연장도 할 겸, 인도네시아에서 일하는 미국인 친구도 만날 겸 인도네시아에 온 거란다. 내일 미국인 친구가 또바 호수로 가서 5일 정도 지내다가 다시 태국으로 가서 다이빙을 즐길 거라고 한다.
빈탕을 두 병 정도 마시자 약간 알딸딸해지는 것 같았다. 더운 나라에서 너무 마시면 오히려 숙면을 취하기에 불편하다. 9시쯤 숙소로 돌아와서 잠을 청했다. 정말 우여곡절이 많은 하루였다.

1 Comments
할리 2012.05.23 12:34  
인도네시아가 좋다는 말이 정답이 아닌가 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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