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 말레샤, 인도네샤 여행기-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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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말레샤, 인도네샤 여행기-7

필리핀 3 877
12월 25일 맑음
새로운 곳을 가보고 싶어 하는 것은 여행자의 본능이다. 이제 새로운 나라 인도네시아로 향하는 긴 여정의 입구에 섰다. 오늘 태국 핫야이를 출발하여 말레이시아 페낭에서 1박한 후, 배를 타고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으로 들어갈 예정이다. 페낭은 3년 전에 1개월 정도 머물렀던 곳인데, 교통편 연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1박을 해야 한다.
180밧짜리 미니버스는 4시간여를 달린 끝에 페낭에 도착했다. 페낭의 여행자 거리인 출리아 거리에 도착하는 순간, 아 이럴 수가, 낮은 탄성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3년 전과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오히려 세월의 때를 뒤집어쓴 채 좀 더 낡고 초췌한 분위기였다. 마치 누군가 이 거리 전체를 오래된 창고 속에 처박아 놓았다가 조금 전에 꺼내어 먼지도 털지 않은 채 내 눈앞에 쑥 내어놓은 것 같다. 시간이 정지해버린 것 같은 도시.
3년 전, 1달 가량 머물면서 페낭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추억에 어린 장소와 입맛을 다시게 하는 식당도 많이 알고 있다.
페낭은 동남아 최고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레이계가 다수를 점하고 있는 말레이시아에서 유일하게 중국계가 많은 페낭은 세계 3대 요리로 꼽히는 중국 요리를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
인도보다 더 인도답다는 인도 요리, 해산물을 주재료로 한 말레이 요리도 빼놓을 수 없다. 무엇보다 이 모든 음식들을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게 페낭의 가장 큰 매력이다.
지난 3년 동안 나는 수시로 페낭을 그리며 페낭의 음식들을 떠올렸다. 마음 한 구석으로 페낭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까 하고 기대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3년 전과 전혀 변한 것이 없는 거리를 마주 하고나자 기분이 야릇했다. 한편으론 예전의 추억이 되살아나서 안심이 되는 측면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발육부진의 아이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 상업적으로 변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웬만큼 묵은 때는 이제 그만 벗어버렸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예전의 단골 숙소 75트래블러스 롯지로 갔다. 75트래블러스 롯지는 출리아 거리의 저렴한 숙소 중에서 상태가 가장 양호한 곳이다.
페낭의 숙소는 말레이시아 전체를 통 틀어서 가장 상태가 안 좋은 곳에 속한다. 일단 모든 숙소 건물 자체가 상당히 낡았고 청결 상태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그나마 75트래블러스 롯지가 관리를 깔끔하게 하는 편이다.     
15링깃(1링깃=약 320원)짜리 싱글룸은 만원이고 18링깃짜리 더블룸 밖에 없다. 욕실과 화장실은 별도이다. 방에는 작은 세면대 하나와 커다란 침대, 그리고 책상과 의자가 있다.
배낭을 내려놓고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오매불망 그리던 탄두리 치킨을 먹기 위해서 리틀 인디아로 향했다. 탄두리 치킨은 닭고기에 빨간 양념을 발라 커다란 화덕(탄두리)에 구워내는 음식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인도 요리이다. 보기에는 매울 것 같지만 전혀 맵지 않고 기름기가 쪽 빠져서 아주 맛있다. 갓 구어 낸 난(인도식 빵)과 함께 먹는 탄두리 치킨의 맛은 정말 일품이다.
말레이시아에서 먹은 탄두리 치킨의 맛을 못 잊어서 한국에 돌아와서 유명한 인도 레스토랑을 몇 군데 찾아다니며 먹어보았지만 그 맛이 아니었다. 역시 맛있는 음식은 제 고장에서 먹어야 한다.
리틀 인디아의 인도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탄두리 치킨과 마늘 난을 시킨다. 잠시 후,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런데 예전의 그 맛이 아니다. 왠지 심심하다. 왜 그럴까? 잠시 후 나는 그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지난 며칠 동안 태국의 음식에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태국 음식은 조미료와 설탕 등의 양념을 엄청나게 넣는다. 반면에 말레이시아 음식은 조미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양념도 천연 양념 위주로 조금만 넣는다. 때문에 양념에 범벅이 된 태국 음식에 길들여져 있다가 말레이시아 음식을 먹으니 맛이 심심한 것이다.(반대로 말레이시아 음식에 길들여져 있다가 태국 음식을 먹으면 너무 달짝지근해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
점심을 먹고 인도네시아 행 배표를 사기 위해 여행사로 갔다. 페낭에서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의 메단으로 가는 배는 하루에 1차례뿐이다. 예전에는 3개 회사가 운행했었는데, 한 회사가 나머지 두 회사를 사버려서 지금은 한 회사로 통일되었다고 한다.
편도 운임은 90링깃, 왕복은 160링깃이다. 어차피 다시 메단을 통해 페낭으로 나올 예정이었으므로 왕복으로 구입했다.(메단에서 페낭 행 배표를 살 때도 말레이시아 화폐인 링깃으로 지불해야 한다.)
내일도 아침부터 이동을 할 생각을 하니 벌써 멀미가 나는 것 같다. 해변에서 뒹굴 거리고 있을 때는 어딘가로 떠나고 싶더니, 막상 이렇게 떠나와서 하루에 6시간 이상씩 이동이 계속되자 이제는 또 좀 쉬고 싶다. 일찌감치 숙소로 돌아가서 인도네시아 정보를 훑어보며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열대 남국에서 맞는 크리스마스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3 Comments
고구마 2004.02.11 19:19  
  오옷~ 글이 한꺼번에 올라 오니 넘 좋네요. 하핫
파자마 2004.02.11 21:48  
  네넹~~정말 한꺼번에 올라오니 정말 좋으네요..근데 궁금한점이 생겼슴다~~이곳저곳 사람들의 발자욱이 없는곳도 잘 다니시는것 같은데...그런곳으로 가는방법은 어케 아시는건지요? 놀라워서요^^
총총 2004.02.11 23:28  
  아주 재밌게 글읽고 있어요! 제가 이번에 태국을 통해서 말레샤에 갈 계획이라 더 눈여겨 보게 되네요~ 좋은글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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