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 말레샤, 인도네샤 여행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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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말레샤, 인도네샤 여행기-5

필리핀 1 756
12월 23일 맑음
아침부터 무척 화창한 날씨다. 바다 위에 떨어져 반짝이는 햇빛이 눈부시다. 커다란 물고기가 뒤척이며 비늘을 뽐내는 것 같다.
물안경을 쓰고 해변에서 가까운 바다로 헤엄쳐 들어간다. 10여 분 헤엄쳐 들어가자 산호와 물고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스노클링 하기에 괜찮다.
맨 처음 필리핀 보라카이 섬을 방문했을 때가 생각난다. 1998년 가을이었다. 당시의 보라카이는 깨끗한 바다와 순박한 섬사람들의 인심이 아름다운 섬이었다. 해변에서 조금만 수영해 들어가면 괜찮은 스노클링 포인트가 많았다. 3개월 정도 있으면서 매일 스노클링을 했는데도 질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바다는 항시 다른 모습으로 맞아주었다. 아침에는 찬란한 미소로 맞아주었고, 낮에는 불꽃처럼 뜨거운 눈길로, 그리고 저녁에는 부드럽고 아늑한 손길로 맞아준다. 바다의 변화에 따라 바다 속도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3개월 동안 한번도 똑같은 모습의 바다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보라카이는 예전의 아름다운 모습을 상실하고 평범한 섬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 때문이다. 보라카이는 한국인들이 점령해 버린 보기 드문 섬이다.
보라카이의 제철은 11월~이듬해 4월이다. 그러나 사시사철 드나드는 수많은 한국인 단체 관광객으로 인해 바다는 오염되고 대부분의 산호가 파손되었다. 이제 더 이상 보라카이는 파라다이스가 아니다.
이 아름다운 섬 리페도 언젠가는 그 전철을 밟게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하자 마음이 씁쓸해졌다. 하지만 변화는 아무도 막을 수 없다. 좋은 곳이 나쁘게 변하기 전에 서둘러 다녀가는 수밖에 없다.
이제 리페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만족했을 때 떠나야 한다. 나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여정의 초반부터 너무 퍼질러 있는 것은 좋지 않다.
리페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위해 오늘 저녁은 다야 레스토랑에서 먹기로 한다. 다야 레스토랑은 리페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식당이다. 이곳의 주 메뉴는 해산물 바비큐.
저녁 6시 경이면 사람들이 하나 둘 다야 레스토랑으로 몰려든다. 그리고 해변에 마련된 식탁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노을을 감상한다. 6시 반 경, 바다 저 멀리 배 한 척이 모습을 드러내면 사람들은 엉덩이를 들썩이기 시작한다. 이윽고 배가 해변에 도착하고 어부가 양손에 고기를 잔뜩 들고 내리면 사람들은 우르르 몰려간다. 그리고 어부가 낚아온 생선들을 앞 다투어 고르기 시작한다. 어떤 날은 새끼 상어가 있기도 하고 어떤 날은 랍스터가 있기도 하다. 어떤 생선을 잡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좋은 것을 선점하기 위해서 경쟁이 치열하다. 이렇게 날마다 갓 잡아온 생선을 재료로 하기 때문에 다야 레스토랑은 최고 인기 식당이 된 것이다.
오랜만에 푸짐하게 저녁을 먹고 바텐더 지가 있는 바로 향한다.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있다. 리페에는 유난히 가족 단위 여행자가 많다. 바에서는 어른들이 술을 마시고 있고 근처에서는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끼리 서로 어울려 놀고 있다.
지는 아이들과도 친하다. 몇몇 아이들은 낮에 지에게서 그림을 배우기도 한단다. 부모들을 위해서 훌륭한 보모 노릇도 하는 것이다. 지도 아이들을 유난히 좋아하는 것 같다.
이 바에 오면 모두가 가족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처음 본 사람이라도 금세 친해져서 술잔을 부딪치고 스스럼없이 어깨동무를 하게 된다. 그것은 모두 지가 만들어내는 분위기다. 암튼 참 독특한 사람이다. 만약 내가 리페를 다시 찾게 된다면 그것은 아마 지 때문이리라.
크리스마스가 이틀 밖에 남지 않아서 모두들 들뜬 분위기다. 이미 몇몇은 술에 취해 의자에 앉은 채 꾸벅꾸벅 졸고 있다. 사람들과 어울려 웃고 떠들다 보니 어느새 자정을 훨씬 넘겨버렸다. 아쉽지만 이제 작별이다. 안녕, 리페의 푸른 바다여, 정겨운 사람들이여, 축복처럼 쏟아지는 별빛이여…… 훗날 다시 찾게 될 때까지 모두들 평안하시길! 


1 Comments
할리 2012.05.23 11:46  
리페에서의 마지막 밤이시라니 저도 아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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