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여행기 3 아누라다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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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여행기 3 아누라다푸라

랑카맨 0 864
*아누라다푸라*

스리랑카 최초의 수도였으며 가장 큰 규모의 스리랑카 고대도시이다.
이 도시를 더욱 신성하게 만든 것은 역시 보리수 나무 때문이다.
기원전 3세기에 인도 아쇼카 왕의 딸이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인도 부다가야의 보리수 가지를 가져와서 심은 것이니 수령이 무려 2천2백년이 넘으며 기록에 남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라고 한다.

또한 지금 인도의 부다가야에 있는 보리수 나무도 원래 나무는 죽고 이 곳 아누라다푸라에 있는 보리수 나무에서 가지를 가져다 다시 심은 것이라고 하니 이 나무에 대한 자부심과 신성하게 여김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 곳은 고대도시답게 조용하고 한가했다.
심지어 여행자 숙소도 마치 숲속에 따로 따로 떨어져 있는 듯 길 모통이만 돌아도 숲에 가려 다른 숙소는 보이지 않았다.

먼저 티켓오피스로 가서 문화삼각지대에서 쓸 수 있는 '라운드 티켓'을 샀다.
문화삼각지대인 '아누라다푸라''플론나루와''캔디''시리기아''담불라' 지역의 티켓을 따로 사려면 보통 한 지역당 15불은 주어야 한다. 유네스코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입장료가 비싸단다.
그래서 60일 이내에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통합티켓인 라운드 티켓을 샀다. (32불)

티켓오피스까지는 뚝뚝으로 가고 나머지 지역은 튼튼한 두 다리로 걸으면서 보기로 했다. 지역이 넓어서 자전거나 뚝뚝을 이용하라고 했는데 남는게 시간이요 힘인데 서두를게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루완웰리세야 대탑이 눈에 들어왔다. 높이 55m로 티켓을 산 곳에서 그나마 가까운 곳이었다. 이 곳은 수많은 코끼리 조각에 둘러싸여 있어서 인상적인데 탑이 세워진게 기원전 2세기이니까 무려 2천년도 더 된 탑이다.
탑의 모양은 남방불교 국가의 탑이 다 그렇듯 우리나라처럼 옥개석이 있는게 아니고 한마디로 말하면 찐빵을 놓고 그 위에 고깔콘을 얹어 놓은 형상이다.

높이 55m규모의 찐빵위에 얹어진 고깔콘을 상상해 보시라....
찐빵모양의 부분은 흰색으로 칠해졌는데 금빛 찬란한 태국이나 미얀마 탑과 비교하니 참으로 소박하게 느껴졌다.

맨 발로 경내로 들어가 보니 많은 현지인들이 예불을 드리기도 하고 꿇어 앉아서 기도를 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큰 절에 가면 볼 수 있는 모습과 다를바가 없었다.

이 곳을 나와서 쭈욱 걸어 내려가는데 구걸을 하는 거지도 보이고 원숭이들도 많이 놀고 있었다. 물론 개들은 언제 어디서든 항상 보이고....
개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미얀마 마하시수행센터에서 어슬렁 거리는 수많은 개들을 보고 이렇게 생각했었다.
'이 곳에서 수행을 게을리하면서 신도들에게 시주와 존경을 받다 죽어서 결국은 이 곳에 개로 태어났구나. 지금 저 개들의 몸에 붙어서 피를 빨아 먹는 개벼룩은 그 때의 신도들이 빚을 받는 거고....내가 이 곳 까지 와서 개벼룩에 물리는 것도 그 때 신도들에게 받은 공양을 갚는 거구나'  라고....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남방불교국가에서는 정말 수행자가 수행을 게을리하면 개로 태어난다고 믿고 있단다.

발걸음을 스리마하 보리수로 향했다.
불교의 성지임을 더욱 각인시켜주는 나무인 이곳은 들어갈 때부터 남자 여자 들어가는 문이 따로였고 반바지,민소매티는 입장불가 신발,모자는 물론 벗어야했다.

복장검사를 받고 들어가 보니 거대한 보리수나무 둘레에 철책이 쳐 있고 많은 사람들이 공양을 올리면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나무를 향해서 절을 하고 기도를 하는 사람들 모습을 보니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불교의 본질이 무엇인가?
부처님께서 이 모습을 보았으면 무어라고 하셨을까?
정말 도끼로 나무를 잘라버리고 싶었다.

착잡한 마음에 한 바퀴 돌아보는데 어라? 티켓을 따로 끊는 곳이 있는게 아닌가?
무려 12불...그런데 나는 그냥 들어왔다. 생각해보니 내가 들어올 때 외국인 단체가 같이 들어왔는데 그 일행으로 보고 표검사를 하지 않은 것이다.
라운드티켓을 다시 확인해보니 아누라다푸라에서 라운드티켓이 통하지 않는 곳이 두 군데 인데 그 중 한 곳이 이곳이었던 것이다.(또 한 곳은 이수루무니야 정사인데 이 곳은 입장료가 1불정도였다.)

흠.....전생에 복을 닦긴 닦은 모양이군...생각하고 밖으로 나왔다.

다음은 부처님 쇄골뼈가 안치되었다고 하는 투파라마 다고바로 갔다.
세상에 부처님쇄골뼈라니...정말 혹세무민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 뼈를 빼서 주었을까? 아니면 다비식때 그 뼈만 남았다는 말인가?
열반경에 보면 머리카락 한 올 한 올까지 모두 사리로 변했다는데......

문득 중세유럽에서 유행했다던 예수님 십자가의 나무조각이라든지 성배라든지 천조각이라든지 등으로 순례객들을 끌어모아 한 밑천 잡았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정말 종교권력으로 존경과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호위호식하는 것은 아닌지......
이러한 생각은 캔디의 불치사를 보면서 더욱 강해졌다.

어째거나 그렇게 전해진다는 말이라서 그런지 이 곳은 그렇게 신성시여기지는 않는 듯 했다.

제타바나 다고바 : 지금도 무려 75M의 높이를 자랑하는 이 탑은 한 때는 3000여명의 승려가 거주했을 정도로 가장 넓은 건축물이란다.

더운 날씨에 배낭옆구리에 찔러 놓은 물병만 넣다 뺐다 하면서 목을 축이고 가는데 검은우산으로 햇볕을 가리면서 비구니 스님이 길을 가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위치를 확인하려고 제타바나 다고바를 물으니 몇 번 다시 물어보고는 자기를 따라오란다. 우리 나이로 50줄로 보이는 비구니스님인데 영어는 한마디도 못했다.
나를 보며 현지어로 계속 뭐라고 하면서 가는데 알아 들을 수가 없으니 그냥 웃기만 했다.

지도상으로 보면 분명 가까운 거리인데 한 참을 걸어갔다.
그러더니 스님이 한 집을 가리키더니 자기 집이란다. 나는 고개만 끄덕이고 있는데 스님이 탑은 집을 지나쳐 더 가야한다는 듯 손으로 길을 쭈욱 가리켰다. 그러면서 계속 갈거냐고 하길래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니 스님이 집을 지나쳐서 다시 걸어갔다.

한 20여m 갔을까. 스님이 걸음을 멈추더니 손으로 입에 먹는 시늉을 하면서 집에서 좀 먹고 가잔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더니 다시 발걸음을 돌려서 집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니 할머니같은 정말 나이드신 비구니 스님이 작은 방안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침대에 걸터 앉아 계시다가 우리를 맞아 주었다.

방 한칸에 부엌이 딸린 참으로 허접하고 소박한 집이었다.
스님은 나보고 앉으라고 작은 의자를 내 놓고는 급히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한 참 있다가 차와 과자 그리고 바나나 2개를 내오셨다.

스님이 정성껏 대접할 수 있는 모든 것처럼 느껴졌다. 너무 고마워서 그렇게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정말 맛있게 먹었다.
소박함과 따스한 인정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이 또한 무슨 인연이길래 이런 대접을 받나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가방안에 넣어 가지고 다니던 호신불을 노스님께 드렸다. 스님은 문양을 자세히 살펴보더니 부처님인 것을 아시고는 너무 기뻐하셨다.

나를 데리고 간 스님께는 현금으로 약간의 시주를 했다. 스님이 사양을 했지만 드릴만한 다른게 없어서 그냥 드렸다.

이렇게 편한 시간을 가진 다음 스님과 함께 다시 집을 나와서 탑을 향했다.
그런데 스님도 탑을 잘 모르는 듯 현지인이 지나가자 뭐라고 뭐라고 묻는 거였다.
그런데 그 현지인은 다행이 영어를 할 줄 알아서 나보고 이 길을 따라서 500m만 가면 된다는 거였다.

그래서 스님은 다시 집쪽으로 돌아가고 나는 탑쪽으로 걸어갔다. 한 참을 걸어가니 작은 동산위에 벽돌로 탑을 쌓은 듯한 거대한 구조물이 보였다.

멀리서 풀이 무성하게 난 것만 보고는 그냥 지나쳤던 탑이었다.
벽돌을 쌓아서 만든 탑인데 정말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였다. 오고가는 사람도 없고 그 흔한 개 한 마리 없었다. 그늘에 앉아서 턱밑을 스치는 바람의 시원함속에 부처님의 말씀이 실려오는 듯 했다.
'모든 것은 변한다. 쉬임없이 정진하라.'

땀도 식고 해서 시원한 바람을 뒤로 하고 아누라다푸라 유적군중에서 제일 먼 곳에 있는 문스톤으로 향했다.
사원의 문 입구 바닥에 불교의 윤회를 상징해서 반원모양으로 조각해 놓은 문스톤은 세계적인 문화재로 알려져 있다.

 땡볕에 한참을 걸어서 갔다. 가는 도중에도 기둥만 남은 유적들이 이 곳 저곳에 많이 흩어져 있었다.
어느 한 곳도 그렇게 스쳐 지나가려고 하니 제복을 입은 사람이 나를 보고 티켓 어쩌고 저쩌고 하였다. 또 삐끼나 뭐 되나보다 하고 못들은체 하고 그냥 지나쳐가는데 길 옆에 앉은 노점에서 그림을 그리던 사람이 '문스톤' 어쩌고 하는게 아닌가?

그래서 그 곳을 가보니 방금 지나친 곳이 바로 문스톤이 있는 곳이고 자기는 직접 손으로 문스톤 문양을 그리고 있으니 한 장 사란다.

이런....다시 발걸음을 돌려서 문스톤 쪽으로 향하니 아까 제복입은 애가 다시 오더니
"너 티켓 있어?"
하는 거였다.
"그래 있다."
하면서 티켓을 보여주니 자기 동료쪽으로 가면서
"라운드 티켓이야"
라고 말하는 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왔다.

문스톤은 보호각 하나 없이 땅바닥에 그대로 방치되다 싶이 있었다. 단지 둘레에 철책만 쳐 있을 뿐...

그런데도 천년이상의 세월이 무색하게 마치 방금 조각을 한 것처럼 문양하나하나가 그렇게 선명할 수가 없었다.
돌의 재질이 얼마나 단단하면 이렇게 선명하게 지금까지 남아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주 인상적이었다.
한 쪽 그늘에 걸터 앉아서 문스톤의 아름다움과 윤회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다. 왜 곤충과 동물을 형상화 시켜서 조각했을까? 중생의 관점에서 보면 생명있는 것은 모두 다 같이 소중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고.....

그러는 사이 현지인들이 단체로 버스를 대절해서 왔는지 우르르 몰려와서 인솔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또 서너명의 서양애들도 와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들이 뗘나고 난 자리에 또 다시 정적만 감돌았다.
참으로 한가하고 여유로운 유적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수루무니야 정사 : 바위를 이용해서 지어진 불당과 그 바위위에 세운 탑 특히 불상은 화려하게 색칠을 했고, 마치 노천 박물관처럼 느껴지는 작은 유물 전시관이 있는 곳이다.
이 곳은 뚝뚝을 타고 갔다. 왕복요금을 흥정을 해서.....

입장권을 끊고 입구에서부터 역시 맨발로 들어가니 발바닥이 후끈했다.
계단을 통해서 바위를 올라가는데 달구어진 돌위에 올려진 한 줌의 고기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 높지 않은 약 5m 내외의 바위를 올라가니 멀리 대탑이 보이고 아누라다푸라 유적지의 푸른 숲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바위를 이용해서 만든 소박한 사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누라다푸라 유적지는 숲속에 군데군데 있어서 한가하게 산책한다는 기분으로 걸으면서 보는 것도 괜찮았다. 물론 나처럼 시간과 체력이 허락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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