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 말레샤, 인도네샤 여행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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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타이, 말레샤, 인도네샤 여행기-1

필리핀 3 1184
12월 19일 흐림
잠을 설쳤다. 여행 전날이면 항상 있는 버릇이다. 떠남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이  긴장감이 되어 잠을 설치게 만든다.
일기예보는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라고 예고해 주었다. 바지를 2개 입고 티셔츠에 남방에 잠바 2개를 껴입고 나서니 견딜 만 하다. 배낭을 추스르고 힘차게 한 발 내딛는다. 자, 다시 출발이다. 한 달 후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이 길을 걸어 돌아올 것인가.
길은 미끄럽다. 아기처럼 아장아장 걸어 버스정류장으로 간다. 10여분 기다리자 공항버스가 온다. 한 달 전보다 500원 정도 요금이 올았다. 올해 들어 4번째 여행인데 그때마다 버스 요금이 500원씩 오른 것 같다. 
여행을 다녀온 지 한 달쯤 지나면 여행의 냄새가 그리워지기 시작한다. 낙엽 태우는 냄새 같기도 하고 오래된 담요에서 풍겨져 나오는 것처럼 세월이 녹아 있는 그 냄새. 여행의 냄새는 퇴근길에 집으로 향하는 골목에서 풍겨오는 된장찌개 냄새와 비슷하다. 어른이 된다는 게 막막하기만 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게 만드는 아련한 향수가 그 냄새에 배어 있다.
공항에 도착하니 8시 20분. 출국장은 한산한 편이다. 여행사 카운터로 가서 항공권을 찾고 출국납부권을 사고 1회용 면도기와 기내식을 먹은 뒤에 씹을 껌 1통을 샀다. 남은 한국 돈을 긁어모으니 태국 돈 3,300밧을 환전할 수 있었다. 탑승 직전 주영에게 전화했으나 받지 않는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경쟁적으로 지어진 홍콩의 첵 랍 콕 공항과 일본 오사카의 간사이 공항,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KLIA 공항, 그리고 인천공항은 느낌이 서로 비슷하다. 짓다만 철골 구조물 같다고 할까? 이것이 요즘 건축의 유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식의 세계화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독창성을 상실한 유행 좇기는 인간의 상상력을 획일화시키기 때문이다.
항공기 좌석에 앉자마자 승무원에게 캔 맥주를 하나 주문했다. 캔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자, 내가 떠나왔다는 사실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맥주를 2캔이나 마시고 와인에 브랜디까지 청해 마셨다.
이번 여행은 충동적으로 떠나온 여행이었다. 여행의 냄새가 사무치게 그리워 여행사에 전화를 해보니 12월 20일부터 항공요금이 20만원 가까이 오른다기에 부랴부랴 19일 출발 항공편을 예약했다. 10시 50분 발, 홍콩 경유 방콕 행 타이항공.
이번 여행의 목적 중 하나는 인도네시아 방문이다. 인도네시아는 내게 처음이다.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을 계획할 때면 야릇한 긴장감과 일말의 흥분감 마저 느낀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내가 인도네시아를 가기로 한 이유는 야생 오랑우탄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세계에 2군데밖에 없는 야생 오랑우탄 관찰소 중 1군데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에 있다. 다른 한 군데는 말레이시아의 보루네오 섬이다. 보루네오 섬은 가기가 복잡해서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으로 계획을 세웠다.
‘오랑’은 ‘이 사람’, ‘우탄’은 ‘이 숲’을 뜻한다. 따라서 오랑우탄은 숲속의 사람, 숲속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세계에서 5번째로 크고 인도네시아는 4번째로 큰 섬인 수마트라 섬 북부에 위치한 부낏 라왕(Bukit Lawang)에 가면 보호록 오랑우탄 재활센터(Bohorok Orang-Utan Rehabilitation Center)가 있다. 이 센터는 인간에게 포획된 오랑우탄을 자연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1973년 세계자연보호기금(WWF)이 설립했다. 가이드를 따라서 30분 정도 정글로 들어가면 오랑우탄들에게 먹이를 주는 장소가 있는데, 거기서 오랑우탄을 목격할 수 있다고 한다.
몇 년 전 호주를 여행할 때 호주 북부의 카카두 국립공원이라는, 우리나라 경상도만한 크기의 공원에서 야생 동물들을 본 적이 있다. 그전까지 애완용이 아닌 동물은 동물원에서밖에 본 적이 없는 나는 그 야생 동물들을 보고 숨이 막힐 듯한 감동을 느꼈다. 태고의 야성을 간직한 채 거침없이 초원을 거침없이 질주하는 무리들. 아무에게도 길들여지지 않고 그 무엇에도 때 묻지 않은 원시의 힘, 순수의 아름다움!
호주가 이 정도인데 아프리카는 얼마나 장관일 것인가. 그날 이후 내 머릿속은 아프리카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워낙 경비가 많이 들고 장기간을 요하는 여행이라 아직까지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호주에서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는 내게 야생 오랑우탄을 본다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등반하기 쉬운 화산인 구눙 시바약(Gunung Sibayak)과 수마트라 섬 최고의 절경이라는 찬사를 듣는 또바 호수(Lake Toba)도 함께 여행할 수 있다니!
일단 동남아 여행의 베이스캠프라고 할 수 있는 태국 방콕으로 들어가서 남부의 어느 한적한 해변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낸 뒤, 말레이시아 페낭을 거쳐 배를 타고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의 메단으로 들어갈 계획이었다. 
4시간여의 비행 끝에 홍콩에 도착했다. 홍콩 첵 랍 콕 공항에서 약 2시간 정도 대기한 후에 다시 2시간 30분 정도 비행하여 방콕 돈 무앙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공항버스를 타기 위해 밖으로 나오자 오랜 만에 만난 친구처럼 뜨거운 바람이 반갑게 달려들었다. 열대 지방의 특유의 그 끈끈하고 뭔가에 쩐 듯한 시큼한 냄새와 함께. 드디어 열대의 나라에 도착한 것이다.
3 Comments
tj79 2004.02.06 12:11  
  저도 관심이 있던곳이라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어요 자세히 써주시면 좋겠네요...앞으로 기대하겠습니다.
반토막 2004.02.06 23:47  
  96년 1월에 저도 그곳에 오랑우탄을 보러 갔는데 30여분을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아 기냥 돌아왔다는 슬픈 얘기가 ... 시바약은 감기로 등산하지 못했고 맑고 깨끗한 토바호수, 그리고 샹글리라 gH...스마트라 섬 여행기 기돼됩니다.
할리 2012.05.23 09:21  
인도네시아 여행기도 정말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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