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간의 태국 여행-카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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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간의 태국 여행-카오산

필리핀 2 1359
  카오산을 빼놓고는 태국 여행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태국 여행, 아니 동남아 여행에 있어서 카오산은 약방의 감초 같은 존재이다.
  거의 모든 배낭여행자들이 태국이나 동남아를 여행할 때는 카오산에 들르게 된다. 나도 태국을 갈 때마다 카오산에 꼭 들른다.
  내가 카오산을 찾는 이유는 카오산이 편해서이다. 카오산은 여행자를 위한 동네이다. 여행자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다. 여권과 지갑만 가지고 있는 여행자라 해도 전 세계 그 어디든지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다. 태국 전역의 교통편과 숙박업소 예약, 동남아 지역의 비자 발급 서비스와 교통편 예약, 전 세계 항공권 예약, 헌책방에서 구할 수 있는 세계 각국의 영문 여행 가이드북, 추운 나라를 여행할 때 필요한 두꺼운 옷, 동남아에서는 거의 필요 없지만 유럽을 여행할 때는 필수품인 가짜 국제학생증 등 카오산에서는 여행에 필요한 모든 것을 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상당히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된다.
  이번 여행에서 만난 어떤 여대생은 카오산에서 하루에 70밧(한화 약 2,000원)으로 며칠간 생활한 적이 있다고 했다. 도미토리 50밧+길거리 음식 10밧짜리 하루 두 끼=70밧. 정말 놀라운 가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여행자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춘 카오산의 이런 편리함이 여행의 묘미를 반감 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여행의 재미 중 하나가 비자를 발급 받기 위해서 대사관을 찾아 헤매보고, 버스터미널에 가서 줄 서서 표를 사보고, 현지인들 틈에 섞여 밤 버스 휴게소에서 죽도 한 사발 먹어보고, 가이드북 없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손짓 발짓으로 길도 물어보고, 뭐 이렇게 일부러 사서 하는 고생도 좀 해봐야 되는데, 카오산은 여행자를 너무 게으르게 만든다.
  훨람퐁 역에서 치앙마이 행 기차표를 예매하고 나는 카오산으로 갔다. 여행자들에게 마음의 고향 같은 거리인 카오산이 그동안 어떻게 변했는지 무척 궁금했다. 나의 단골 숙소, 단골 식당에는 아직도 그때 그 종업원이, 그때 그 음식 맛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2년 만에 들른 카오산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카오산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숙소 중 하나여서 방을 잡기가 거의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인 ‘디앤디 인’이 드디어 확장 공사를 마치고 카오산 중앙에 이정표처럼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버디 롯지’인가 하는 카오산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숙소가 밤마다 현관을 국적불명의 양아치들의 집합 장소로 제공하고 있었다.(참고로 이 ‘버디 롯지’ 1층 안쪽 오른편에는 24시간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있다. 숙소는 다른 데 잡고 카오산에 놀러 왔다가 용무가 급한 사람에게는 요긴한 장소이다.)
  밤마다 통행이 불편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카오산 거리를 가득 메우고 할일 없이 왔다 갔다 하는 풍경도 달라진 현상이었다. 예전에는 송크란 축제 기간, 크리스마스 이브, 12월 31일 밤에나 볼 수 있던 풍경이었다. 그리고 정체가 의심스러운 대학생 교복 차림의 여자 무리, 외국인들에게 끊임없이 추파를 던지는 레이디 보이들도 대거 등장해 있었다.
  이제 예전처럼 노천 카페에 앉아서 한가로이 맥주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옆자리 사람과 가볍게 눈인사를 나누다가 친해져서 서로의 여행 무용담을 자랑하는 낭만적인 광경은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기엔 카오산은 너무나 복잡해졌다. 여행자들의 활기가 느껴지던 거리가 왠지 단물 다 빠진 껌처럼 밋밋하게 느껴졌다.
  그나마 예전의 낭만적인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는 곳은 왓 차나 송크람 뒤편 골목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 거리도 언젠가는 여행자들을 보고 몰려드는 자본에 의해 훨씬 다르게 변모해 가리라. 
  어쨌거나 카오산이 내 마음에 안 드는 방향으로 변해 가고 있다고 해도, 나는 내가 다시 방콕을 들르게 되면 카오산을 찾게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카오산은 여행자들에게는 고향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고향이 아무리 나쁘게 변해 간다고 해도 고향은 고향인 것이다. 
  (아, 이번에 카오산에서 실망한 것이 또 하나 생각났다. 맛있는 음식점이 자꾸 없어진다는 사실이다. 특히 카오산에서 유일하게 태국의 별미인 수끼를 맛볼 수 있었던 ‘인터 수끼’ 레스토랑이 없어져 버렸다. 바나나 팬케잌과 요구르트를 끼얹은 과일 샐러드가 점령해버린 카오산의 식탁!)   
 
2 Comments
이태원 2003.09.01 23:39  
  공감하는 부분이 많군요 <br>
이제는 어느새 태국가도 카오산을 안가게되었습니다 <br>
자본에 잠식되어 특유의 개성을 잃어가고있는.... <br>
할리 2012.05.23 01:31  
카오산이 요즘에는 너무 비싸져서 매력이 덜 한것도 사실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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