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KK 4일 - 번외, 22일 한국
- 나 15일에 한국 가, 한국가면 맛있는 음식점에서 맛있는거 사줘.
라고 1월 초 게이코에게 메일이 왔다. 아, 정말 이 아이는 자기가 한다고 한 일은 다 하는구나. 그리고는 한국 온다는 15일이 며칠 지나서야 연락이 왔다. 이 아이에게 나는 다른 한국 친구들보다 좀 많이 밀리는 순위인가보다. 뭐, 그게 당연하고 아쉬울 건 없지만. 그래도 좋아한다 난 너희들 정말 좋아.
22일 저녁, 송정역 1번출구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게이코를 맞았다. 눈이 나쁘지만 안경도 안 끼고 렌즈도 안 껴서 난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한다. 그래도 저기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키작은 아이... 게이코다.
"안녕!! 오랜만이야!"
"진짜 오랜만이야! 오... 회사에는 그렇게 멋있게 입고 다니는거야?"
"하하~ 그러엄!"
우리회사는 매우 자유스러운 복장이 가능해 핫팬츠부터 청바지 운동화까지 여직원들이 다양한 차림을 하고 다닌다. 물론 난 후자쪽 스타일을 고집하는데 특기는 어제입은 코듀로이 바지에 목폴라 오늘도 입고 내일도 입기. 그러나 이 날은 매일 이렇게 입고 다니는 듯 신경써서 치마도 입고 구도도 신고 코트도 입었다. 한국에서 잘 살고 있다는거 보여주고 싶었다.
"사진찍자 사진! 이거 찍어서 태성이 보여줘야겠어."
"안돼!!"
처음엔 여의도에서 만나자고 하기에 전날 미친듯이 여의도 맛집을 검색했으나 알바가 판을치는 네이버 지식인과 블로그를 믿을 수 없어서 그냥 세븐스프링스를 데리고가야지 마음 먹었는데 이미 여의도 갔다가 볼 것도 없고 회사들만 있고 휑~하다는 걸 몸소 체험한 이 아이가 회사근처로 온다고 했던 것. 송정역 근처는 참~ 별거 없지만 그래도 내가 자주 가던 맛있는 음식점은 알기에 난 기꺼이 그 아이를 리드해줄 수 있었다.
우리팀 회식때 자주가는 무허가라는 술집에 게이코를 데려갔다. 이 술집 분위기는 대충 이렇다. 적당히 허름하고 주인 아주머니는 친근하고 음식은 싸고 맛있고 오래 앉아있어도 신경도 안쓰는. 게이코는 이런 곳 너무 좋다며 굉장히 만족해했다. 당연하지. 난 메뉴판을 들고 멋있게 내 맘대로 주문했다. 닭볶음탕, 해물전, 두부김치 그리고 소주 한 병.
"카메라 보자. 너 한국에서 찍은 사진..."
"자, 여기."
사실 난 미안하지만 한국에서 찍은 사진 하나도 안 궁금하다. 카메라의 오른쪽 버튼이 아닌 왼쪽 버튼을 누르니, 역시 아니나다를까 태성이와 함께찍은 사진이 있다. 세상에... 이 아이 여전히 멋지다. 잘생겼다. 귀엽군... 내가 중국에서 찍어온 달랑 몇 장의 사진으로 연명해오고 있었는데 새로운 사진을 보니 감개가 무량하다. 벅찬 마음으로 태성이 사진을 흐뭇하게 보고 있자니 게이코는 내가 어딜 보는지 궁금해하며 묻는다.
"지금 어디 보고있어?"
"응? 아, 아냐... 하하~"
하며 카메라를 돌려줬다.
"태성인... 잘 있지?"
"그럼~ 아주 잘 있지."
"그래... 그렇구나. 이제 나도 곧 태성이 보겠네. 하하."
"좋아?"
"어, 좋아~ ^^"
조금의 긴장감과 기대감. 우리의 대화는 이렇게 이어졌다. 홍대 게스트하우스에 숙소를 잡은 게이코를 데려다 주겠다며 함께 지하철에 탔다. 홍대 아웃백 앞에서 921번 버스를 기다리며 말했다.
"태국 갔다와서 또 보자. 가고싶은 데 있음 생각해놔. 데리고가줄게."
"그래. 오늘 고마웠어."
중국에서 만나 태국에서, 한국에서 또 언젠가 일본에서 서로가 서로를 찾아서 또 만난다. 새삼 감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