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KK 4일 - 24일 카오산 스타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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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KK 4일 - 24일 카오산 스타벅스

siasiadl 11 3337

- 어쩌구저쩌구 그래서... 전 방콕... 하면 스타벅스가 먼저 떠올라요.
- 내가 유럽여행 할 때 뭐가 어찌어찌했는데... 어디어디가 어쩌구 하거든.
- 아! 맞아요, 거기 정~ 말 어쩌구한데 말예요!!

마주보고 앉아 허세를 부리던 그들. 이제 나도 그들의 허세에 크게 공감하며...

"있지... 저기 한국사람들, 아마 여기서 처음 만난사이다."
"오, 그래? 근데 왜..."
"여기 카오산이잖아."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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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에서 밥을 먹고 나와서 다시 카오산까지 걸어왔는데 아 정말 헤어지기 싫다. 얘가 이 동네를 잘 아는 것도 아니고 나도 모르겠고 노천카페는 널렸는데 사람이 우글우글하고 너무 시끄럽고, 한국 가기 전에 어차피 한 번은 더 볼거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본 거니까 이렇게 빨리 헤어지기는 싫고... 어떡할래? 물으니 이 우유부단 대마왕은 또 니 마음대로 하란다. (그럼 넌 내가 사귀자고 하면 사귈래? 내 참, 이건 또 무슨소리...) 암튼 그래서 내가 선택한 곳은 스타벅스. 한국에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 곳인데 길에서 우물쭈물 시간 버리기는 싫고 그냥 어쩌다보니 아는 이름, 낯선 이 곳 방콕에서 그래도 익숙한... 그래, 스타벅스 낙찰.

"우리 스타벅스 가자!"
"아...하하, 근데 스타벅스가 어딨지..."
"우리언니가 알아, 따라와!"

난 아메리카노 따뜻한 거. 태성이는 그린티 프라푸치노. 나도 좋아하는데 한국에선 비싸서 잘 안 먹는 그린티 프라푸치노를 태성이도 좋아하는구나, 내가 좋아하는 걸 이 아이도 좋아하니 왠지 기쁘다. 역시나 여기서도 난 언니를 내팽개치고 태성이와 얘기를 하기 시작한다.

"넌 대학원 갈 생각 없어?"
"응, 별로... 하하, 공부하기 싫어. 난 글 쓰고 싶어."
"오... 소설가 같은거?"
"아니, 뭐 그런건 아니고. 그냥..."
"나 방학마다 태국 돌아와서 엄마 일을 하잖아. 누나랑 형이 일을 같이 하는데 나는 사실 일하기 싫어. 하하~ 학교 졸업하면 대학원 가고싶어."
"아... 한국으로 와!"
"하하... 거기? 좋은데..."
"어디? 서울대? 연대?"
"아니.... 과학..."
"아, 카이스트?"
"응!"
참... 이 아이 서인영의 카이스트를 본 모양이다. 모르는게 없군.

"사실 미국 가고싶어."
"아..."
"그런데 요즘 경제가 안 좋잖아? 그래서 어떻게 될지는 몰라. 하하..."
"아... 미국..."

이 아이가 학교를 졸업하고 태국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거라고 어렴풋이 생각은 했었다. 그런데 미국에 가고싶다는 얘기를 이 아이의 입을 통해 들으니 순간 난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 동안은 계속 이런 생각만 했다. 태성이가 있는 중국에 가고싶다. 태성이의 나라 태국에 가고싶다... 그런데 이 아이 미국엘 가고싶다고 한다. 그럼 난 어떡해? 나도 미국 따라가? 대체 미국가서 뭐해?

휴... 괜히 마음이 푹... 꺼진다.
그래, 난 너의 눈부신 미래에 그저 격려를 해주면 되는거겠지.
.
.
.
.
.

카오산 스타벅스는 거리 안쪽 깊숙히 있어 조용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바로 옆 라이브카페의 노랫소리가 꽤 크게 들려온다. knocking on heaven's door, 연주가 뛰어난지 노래실력이 탁월한지 뭐 그런 건 중요치 않다. 다만 그 순간 우리는 이 노래를 이야기했고 그 이유만으로 난 이 노래를, 이 순간을 평생 기억할거다.

"이 노래 좋아?"
라고 물으니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knock knock knocking on heaven's door... 몇 소절 따라부르더니 말한다.
"어, 고전이잖아..."

아... 역시 난 이래서 이 아이가 좋다. 말이 통한다. 나이가 어린데도 나와 말이 통한다. 많은 얘기를 나누진 못했지만 내가 아는 것, 좋아하는 것 다 알고있다.

너무 좋다.

나야말로,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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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 돌아와서 언니 디카를 켜고 사진을 보다가 꺄아~하고 소리를 질렀다. 찍어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이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건가. 언니 미안, 그리고 정말로 고마워. 언닌 언니 인생에서 주인공이잖아.

11 Comments
파키스탄공주 2009.03.24 22:40  
ㅋㅋ 마지막 사진에 주인공 등장하셨네요..ㅠ.ㅠ
읽고 있는 제가 다 동화돼서 왜 이런담.ㅋㅋ
주80 2009.03.25 00:18  
저도 막 사진 올려달라고 하고 싶었어요~~^^
빙빙이 2009.03.25 00:42  
siasiadl님 글을 읽으면 제가 더 두근 두근해요 아 정말 ㅠ 빨리 올려주세용^^
카와이깡 2009.03.25 01:13  
휴~ 이제야 모습을..
근데 뒷모습~~

여하튼 주인공을 만나 방갑네여~
몽도러멈 2009.03.25 12:40  
'언닌 언니 인생애서 주인공 이잖아' 정말 와닿는데요~ ㅎ
다음글도 기대되요~~~~
고고! 2009.03.25 13:53  
다음편 너무 기대됩니다....
콩닥콩닥...♡
제가 더 기분이 이상해요...
봄에 어울리는 너무 이쁜글이네요...
spiral 2009.03.25 17:39  
손잡고 계신건가요?? >ㅁ<
siasiadl 2009.03.25 20:16  
아하하하~ 설마요...ㅎㅎㅎ
siasiadl 2009.03.25 20:34  
크흑, 감사해요. 기대에 부흥하려면 소설이라도 써야 할까요... 하하하~ ^^;
시절인연 2009.03.25 23:31  
마지막 사진을 보니 환한 미소가 지어지네요.. siasiadl님의 마음이 느껴지네요.. 아자!! 아자!! 홧팅~
bearpaw 2009.03.29 00:17  
방콕 있으면서 카오산은 수도 없이 왔다 갔다 해봤지만, 또 아는 한국사람들이랑 걸을때랑 거기서 만난 특별한 인연과 걸을때랑 또 느낌이 달르다는걸 알아서 일까요. 님이 더 행복해 보이는게 저에게도 전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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