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KK 4일 - 24일 카오산 스타벅스
- 어쩌구저쩌구 그래서... 전 방콕... 하면 스타벅스가 먼저 떠올라요.
- 내가 유럽여행 할 때 뭐가 어찌어찌했는데... 어디어디가 어쩌구 하거든.
- 아! 맞아요, 거기 정~ 말 어쩌구한데 말예요!!
마주보고 앉아 허세를 부리던 그들. 이제 나도 그들의 허세에 크게 공감하며...
"있지... 저기 한국사람들, 아마 여기서 처음 만난사이다."
"오, 그래? 근데 왜..."
"여기 카오산이잖아."
"하하..."
동대문에서 밥을 먹고 나와서 다시 카오산까지 걸어왔는데 아 정말 헤어지기 싫다. 얘가 이 동네를 잘 아는 것도 아니고 나도 모르겠고 노천카페는 널렸는데 사람이 우글우글하고 너무 시끄럽고, 한국 가기 전에 어차피 한 번은 더 볼거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본 거니까 이렇게 빨리 헤어지기는 싫고... 어떡할래? 물으니 이 우유부단 대마왕은 또 니 마음대로 하란다. (그럼 넌 내가 사귀자고 하면 사귈래? 내 참, 이건 또 무슨소리...) 암튼 그래서 내가 선택한 곳은 스타벅스. 한국에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 곳인데 길에서 우물쭈물 시간 버리기는 싫고 그냥 어쩌다보니 아는 이름, 낯선 이 곳 방콕에서 그래도 익숙한... 그래, 스타벅스 낙찰.
"우리 스타벅스 가자!"
"아...하하, 근데 스타벅스가 어딨지..."
"우리언니가 알아, 따라와!"
난 아메리카노 따뜻한 거. 태성이는 그린티 프라푸치노. 나도 좋아하는데 한국에선 비싸서 잘 안 먹는 그린티 프라푸치노를 태성이도 좋아하는구나, 내가 좋아하는 걸 이 아이도 좋아하니 왠지 기쁘다. 역시나 여기서도 난 언니를 내팽개치고 태성이와 얘기를 하기 시작한다.
"넌 대학원 갈 생각 없어?"
"응, 별로... 하하, 공부하기 싫어. 난 글 쓰고 싶어."
"오... 소설가 같은거?"
"아니, 뭐 그런건 아니고. 그냥..."
"나 방학마다 태국 돌아와서 엄마 일을 하잖아. 누나랑 형이 일을 같이 하는데 나는 사실 일하기 싫어. 하하~ 학교 졸업하면 대학원 가고싶어."
"아... 한국으로 와!"
"하하... 거기? 좋은데..."
"어디? 서울대? 연대?"
"아니.... 과학..."
"아, 카이스트?"
"응!"
참... 이 아이 서인영의 카이스트를 본 모양이다. 모르는게 없군.
"사실 미국 가고싶어."
"아..."
"그런데 요즘 경제가 안 좋잖아? 그래서 어떻게 될지는 몰라. 하하..."
"아... 미국..."
이 아이가 학교를 졸업하고 태국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거라고 어렴풋이 생각은 했었다. 그런데 미국에 가고싶다는 얘기를 이 아이의 입을 통해 들으니 순간 난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 동안은 계속 이런 생각만 했다. 태성이가 있는 중국에 가고싶다. 태성이의 나라 태국에 가고싶다... 그런데 이 아이 미국엘 가고싶다고 한다. 그럼 난 어떡해? 나도 미국 따라가? 대체 미국가서 뭐해?
휴... 괜히 마음이 푹... 꺼진다.
그래, 난 너의 눈부신 미래에 그저 격려를 해주면 되는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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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산 스타벅스는 거리 안쪽 깊숙히 있어 조용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바로 옆 라이브카페의 노랫소리가 꽤 크게 들려온다. knocking on heaven's door, 연주가 뛰어난지 노래실력이 탁월한지 뭐 그런 건 중요치 않다. 다만 그 순간 우리는 이 노래를 이야기했고 그 이유만으로 난 이 노래를, 이 순간을 평생 기억할거다.
"이 노래 좋아?"
라고 물으니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knock knock knocking on heaven's door... 몇 소절 따라부르더니 말한다.
"어, 고전이잖아..."
아... 역시 난 이래서 이 아이가 좋다. 말이 통한다. 나이가 어린데도 나와 말이 통한다. 많은 얘기를 나누진 못했지만 내가 아는 것, 좋아하는 것 다 알고있다.
너무 좋다.
나야말로, 어떡하지?
호텔에 돌아와서 언니 디카를 켜고 사진을 보다가 꺄아~하고 소리를 질렀다. 찍어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이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건가. 언니 미안, 그리고 정말로 고마워. 언닌 언니 인생에서 주인공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