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KK 4일 - 24일 싸얌 (si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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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KK 4일 - 24일 싸얌 (si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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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어느날

정말 죽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일이 안 풀리고 순전히 내 실수로 사건이 터져서 눈물콧물 질질 흘리면서 일하다가 9시 넘어 집에 들어왔다. 스위스에서 받을 메일이 있어서 컴을 켜놓고 너무 피곤하고 머리아프고 해서 침대에 누웠다. 그래도 메일을 기다려야 해서 잠을 안 자려고 잘 읽히지도 않는 만화책을 펴고 엎드려 보다가 다시 머리를 대고 누웠다.

지이이이잉~ 전화가온다. 10시 20분, 번호가 이상하다. 뭐지? 태성이면 참~ 좋겠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하고 받았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
"웨이(여보세요)~? 나 태성..."
"!!!"

난 다시 살아났다.

회사 화장실에서 마음을 가다듬자 속으로 달래고 또 달래고 그래도 진정이 안되서 태성이를 생각하자 그래, 좋은걸 생각하자 했는데 오히려 더 눈물이 났다. 난 여기 한국 돌아와서 단 한번도 환하게 웃지 않았고 피부는 푸석해지고 옷차림도 신경 안 쓰고 점점 늙어가고 구려지는데 그 아인 늘 여전히 그렇게 환하고 예쁘겠지, 다시 볼 수는 있을까. 나 이렇게 피폐해져 가는데 혹시 기회가 있어도 도망가야 하는걸까. 몇개월 동안 나 몰라보게 구려진건 아닐까...

그러던 내가 살아났다.

그래도 역시 안풀린 일에대한 걱정, 거지같은 스위스놈은 전화하면 오케이오케이~ 노 프라블럼 헛소리 해대고 답장은 안 해주고, 내가 실수해서 터뜨린 사건은 또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걸까.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바닥까지 떨어졌던 나를 그래도 버텨야지... 반쯤은 추스려줄 힘을 만들어주었다.

그러던 중에 일이 꼬이고 꼬여 이거 뭐 다 팽개치고 도망가야겠다 할만큼 심각했던 일들이 하나 둘 풀리기 시작해 정말 놀랍게도 다 해결이 되었다. 내 실수로 큰 사건이 터질뻔 한 건 생각보다 금액이 적어 수습 가능한 일이 되었고, 그 거지같은 스위스놈한테 온 메일에는 내가 그토록 요청했던 수정자료가 첨부되어있었다. 본인도 감격했는지 메일 내용은 단 한 단어였다. surprise... 참, 서양인들의 오버란... 그래! 그래도 고맙다 나도 서프라이즈다!! 꺄악~ 소리를 질렀다. 정말로...

정말이지 surprise!!!

지금 날 살릴 수 있는건 단 하나...
그것이, 날 살렸다.

"지금 내 룸메랑 시베이라면 먹으러 왔어. 너 이거 좋아하지?"
"아~~~ 정말 먹고싶어!!"
"그럼 너도 뭐 먹어."
"안돼 다이어트 해야되."
"너 다이어트 할 필요 없어."
"하하 정말? 고마워... 나 태국 갈 가능성 아주 많아."
"오 정말?"
"응, 나 갔을때 너 시간되면... 만나자. 가능해?"
"너 오면 당연히 만나는거지!"
"그래, 고마워... 얼른 밥먹어."
"응, 안녕"
"안녕, 바이바이..."

2009년 1월 24일 아침, 티볼리호텔

두번째 묵었던 파크플라자호텔의 딱 반 가격이었는데 방은 더 넓다. 다만 택시를 타고 골목골목 찾아 들어와야 하고 역 접근성도 떨어진다. 내 돈 내고 묵는게 아니니 난 언니가 미리 잡아놓은 호텔 두 곳 다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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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조식을 먹으며 언니가 빌린 현지폰을 만지작 만지작 조작을 해본다. 언니는 띄어쓰기를 어떻게 할 지 모르겠다며 난감해 했다. 태성이한테 바보같이 띄어쓰기도 안하고 문자를 보낼 수 없는 나는 열심히 이것저것 눌러보곤 띄어쓰기 기능을 알아내 바로 문자를 보낸다.

- 나 OO, 도착했어! kkk

여기 조식 별로란 얘기 많다고 언니가 그랬는데, 볶음밥도 볶음면도 난 맛있기만하다. 뭔가 특유의 향이 있어 너무나 그립던 중국냄새가 나는 것 만 같다. 밥도 잔뜩, 파인애플도 잔뜩 먹고 언니와 방에 올라가 나갈 준비를 한다. 방콕에서 처음 맞은 아침의 느낌은.... 아주 약간 후텁지근한, 결코 상쾌하진 않고 뭔가 답답한 느낌의 공기, 아주 맘에 든다. 강추위가 시작되는 설 연휴에 난 한국을 떠나왔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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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갈래?"
"음... 일단 첫 날이니까 가볍게 시내?"

호텔을 나서서 큰 길이 나올때까지 조금 걷다가 택시를 잡아탔다. 언니는 택시기사에게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턴~ 뭐 이런 태국어를 특유의 억양으로 구사한다. 오... 이 주 동안 혼자 방콕생활을 하며 꽤 많이 능숙해진 모습이다.

택시를 타고 내린 곳은 방콕의 이대 혹은 명동쯤 되는 곳이라는 싸얌. 사실 난 어딜 가든 중요치 않았다. 다만 오늘은 첫 날이고 어제는 밤을 새다시피했기 때문에 왕궁 같은 곳엔 가고싶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난 언니가 열심히 사들인 열 권 가까이 되는 방콕 여행책도 제대로 보지 않고 와서 어디가 어딘지, 어디가 어떻게 좋은지, 방콕오면 어딜 가야 하는지... 이런거 하나도 몰랐다. 이렇게 본인은 준비 하나도 안 하고 남한테 의지하는 여행자 따윈 나도 질색인데 이번엔 어쩔 수가 없는게 글쎄 내 방콕행의 목적은 관광이 아닌 태성이였으니까. 언닌 그거 당연히 몰랐으니까 난 짐짓 담담하게 시내를 가보자 한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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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얌왔으면 이 앞에서 사진을 찍어줘야 한다기에 한 장 찍고 쇼핑몰 안에 들어갔다. 아무리 우리나라보다 경제적으로 조금 떨어지는 나라들 이라도 백화점에서 파는 물건들 가격은 매우 비싸다. 한국에서도 백화점이랑은 전혀 친하지 않은 나와 언니는 어차피 사지도 않을 법한 고급 상점들은 당연한 듯 외면하고 사람들이 북적북적대는 옷가게엘 들어가 구경을 했다. 그리곤 신발구경도 좀 하고 급 배가 고파져서 음료수 가게에 가서 자리잡고 앉았다.

이건 마치 명동에서 롯데백화점과 영플라자를 한 번 훑고는 커피숍에서 파르페를 먹는 꼴이었다. 다만 다른거라면 여긴 방콕이고 난 태성이를 여기서 우연히라도 마주칠 가능성이 1% 이상은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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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 구경을 조금 더 하다가 밥을 먹으러 씨파라는 태국음식점에 갔다. 태국에 왔으니 첫 음식은 당연히 똠양꿍! 중국에서도 딱 한 번 먹어본 적이 있다. 샤먼에 있을때 11월 학교에서 태국 행사를 했는데 그때 처음 맛 본 똠양꿍은... 뭐야. 이상하군. 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건 태국 정통의 맛이 아닐거라, 태국에서 먹는 똠양꿍은 어떤 맛일까. 이 곳에서 맛 본 똠양꿍은 뭐 비슷하구나... 하하. 국이 시큼새콤 한 게 조금 색달랐지만 워낙에 음식 안 가리는 나는 안에 들어있는 통통한 새우들을 먹으며 즐거워했다.

지이이잉- 전화가 온다. 번호를 보니 대충 태성이 번호같다.

"웨이?"
"웨이? OO!"
"태성~~ 니하오~~"
"안녕! 너 지금 어디야?"
"응 나 지금... 음, 모르겠다. 언니 여기가 어디야? 응? 어... 여기 싸얌이래."
"오~ 그렇게 젊은애들 많이가는데엘 갔어?"
"응, 내가 무~지 젊잖아~ 하하."
"그럼 이제 어디갈거야?"
"어 수상버스타고 카오산 갈거야."
"오..."
"너 어디야? 아직 파타야?"
"아니야 방콕왔어. 상황봐서 내가 이따 다시 전화할게."
"그래! ^^"

맛있는 음식을 그냥저냥한 기분으로 먹고 있었는데 태성이 전화를 받으니 곱절은 맛있어진 것 같다.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치고 BTS를 타고 수상버스 종착역에 내렸다. 관광객도 현지인도 다들 버스를 타러 기다리고 있었다. 언니와 날쌔게 타곤 자리에 앉았다. 햇볕이 내리쬐는 자리만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어쨌든 더운 날씨에 강바람은 시원하고 좋다. 비린냄새를 싫다고 하는 사람도 많지만, 뭐 이게 강바람의 매력아니겠어.

내가 재미없어보였는지 언니는 어것저것 설명을 해준다. 꼭 그럴 필요 없는데 먼저와서 나름 능숙해진 언니는 그래도 이 못된 동생이 왔다고 잘 데리고 다녀주고 싶은가보다. 난 오직 태성이를 만날 생각만 하고 있는데... 언니 미안.

카오산이 종착역이 아니어서 여기저기 촉각을 세우던 언니가 자, 내리자! 하기에 얼른 내렸다. 둘러보니 서양사람들도 많이 내리는 걸 보니 맞긴 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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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버스에서 내려 나오는 문(?)이다. 나와서 밖에서 보면 이런 모양.

4 Comments
카와이깡 2009.03.24 00:16  
와~~ 기다림의 끝은... 어디?
정말 만남 기대된다~
지타 2009.03.26 10:01  
수상버스를 아직 한번도 못타봤군...
담엔 꼬---옥~
bearpaw 2009.03.29 00:11  
정확하게 잘 내리셨네요. 저기 옆에는 새로 생긴 호텔이 있구요. 그 나오는 골목에 작은 바가 있죠. 아침에는 셔터를 내려 놓지만 ^^
★보보★ 2010.04.23 15:39  
누굴 좋아해 막상 사겼을 때보다 사귀기 전의 그 설레임, 기쁨이 훨~씬 좋은것 같아요^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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