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KK 4일 - from 공항 to 공항
D-1
송정역에서 공항버스를 기다리는데 이상한 번호로 전화가 온다. 이건 딱 봐도 태성이지만 또 난 모른척하고 여보세요- 하고 받는다. 내참, 이건 또 무슨 내숭이야. 모른 척 이 아이의 전화를 받는 건 이미 벌거벗겨진 내 마지막 자존심인가?
"...그런데 나 지금 파타야야."
"뭐라구?? 파타야?? 왜?"
"엄마 회사가 여기 있어서 여기서 일해."
"설마 너 내가 방콕 간다니까 파타야로 도망간거 아냐?"
"하하~ 아냐! 원래는 평일에 여기서 일하고 토요일 저녁 늦게 방콕에 가는데 내일은 일찍 돌아갈거야."
"그래... 알았어. ^^"
솔직히 난 방콕에서 태성이를 직접 만나기 전까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혹시, 혹시라도 태성이를 못보더라도... 너무 실망하지는 말자. 어쩌면 그럴 가능성도 있으니까. 일단 마음의 준비를 하자, 했다. 그래도 출발 전에 태성이 전화를 받으니 기분이 째진다.

2009년 1월 23일 밤, 난 회사에서 정시퇴근을 하고 후줄근한 차림으로 타이항공에 올랐다. 통로석밖에 없다기에 뭐 그러던지말던지 난 잘거니깐, 하고 자리에 앉았다. 아, 피곤하다. 얼른 밥먹고 자야지.
꽤 젊은 남자가 다가오더니 내 옆자리(창가석)에 앉는다. 얼굴은 그럭저럭 그냥저냥, 대신 내 타입이 아니라서 기대감은 제로. 한번 스윽 보니 여행회화책 이런 걸 갖고있는 것이 방콕 배낭여행하는 복학생쯤 되나... 싶다. 그런데 이 사람 자꾸 흘끔흘끔대더니 말을 시킨다. 화장도 다 지워지고 후줄근한 차림인데도 헌팅이 들어오네? 그러고보니 비행기 옆자리에 젊은 남자가 앉은 건 또 처음. 나름 처음엔 기대감도 없지 않았다.
"저기... 비행기 자주 타세요? 제가 해외가는 비행기는 처음 타서요. 모르는 것 좀 물어볼게요."
"뭐, 저도 몇 번 안 타서 잘은 모르지만 물어보세요."
난 피곤한데 주절주절 혼자 얘기한다.
자기가 영업만 몇년째 하다가 지금은 조그맣지만 자기 회사 하나 운영하고 있고 어쩌고... 지금 사업차 파키스탄에 가는데 직항이 없어서 방콕 들렀다 간다고 했다. 임플란트 관련 제조업체인데 자기를 통하면 임플란트 무지 싸게 해줄 수 있다며 명함을 건네준다. 얘기를 들어보니 임플란트 하나에 100만원 정도에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이런... 괜찮군, 겉으론 무덤덤한 척 명함을 받았다.
"저는 서른 한 살 인데, 몇 살이세요?"
"네? 왜요? 좀 많은데."
"스물 셋?"
어익쿠, 지랄한다.
"스물 OO이요."
"제가 영어를 진짜 못하거든요."
"보통 작은 회사 운영하면 사장들은 영어 엄청 잘하는데, 그게 가능해요?"
"제 친구놈 영어 잘하는 녀석을 직원으로 앉혀놨거든요. 영어는 걔가하면 되고 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거구요."
맞는 말이다. 영어를 못하면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을 고용하면 그만인거다. 여기까지 꽤 호감이었다.

주위를 보니 그 유명한 보라색 담요를 덮은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오, 나도 드디어 보라색 담요를 덮을 수 있는거야?
"Can you give me the blanket?"
"저기, 그 담요가 영어로 뭐예요?"
"네? blanket이요..."
그래, 담요 뭐 이런거 영어로 모를 수도 있다. 발음도 좀 어렵잖아?
"화장실이 영어로 뭐예요?"
"네? ...toilet이요, rest room이라고도 하고..."
"영어 잘하시네요~"
"아니 저 진짜 못하는데요..."
"(위치)가 영어로 뭐예요?"
"네? 쌩뚱맞게... 위치는 왜요? 위치라고 하면...location? 뭐 물어보시려구요?"
"파키스탄가서 호텔 위치가 어떻게 되냐고 물어보려구요."
......
"그냥 이렇게 물어보면 될 것 같은데요. where is the hotel around here?"
"좀 써주세요."
"네..."
"그런데 이거 어떻게 읽는다구요?"
"한글로 써드릴게요. 어라운드 히어."
파키스탄행 비행기를 타기까지 대여섯시간이 있다기에 공항에서 마사지를 받거나 근처 호텔에서 한 숨 자고 가는게 어떠냐고 의견을 주었지만 자긴 새벽에 바에가서 놀고 싶다고(언니가 방콕에서 기다리지 않았다면 나와 같이 가고싶었던 듯) 택시를 타고 가겠다고 했다. 대체 그 짧은 영어로 택시는 탄건지, 과연 파키스탄행 비행기는 무사히 탔을지 걱정이 조금 되긴 했지만 일단 내 몸이 너무 피곤하고 귀찮고 난 이제 방콕에서 태성이 볼거고... 해서 그냥 공항에 떨궈놓고 언니와 택시를 탔다.
이제와서 새삼 미안해요, 국제미아가 된 건 아닌지...
사실 뭐 그러던지말던지, 난 도착했다!! 방콕.
포근한 보라색 담요를 덮은 채 자고 일어나니 어느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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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역에서 공항버스를 기다리는데 이상한 번호로 전화가 온다. 이건 딱 봐도 태성이지만 또 난 모른척하고 여보세요- 하고 받는다. 내참, 이건 또 무슨 내숭이야. 모른 척 이 아이의 전화를 받는 건 이미 벌거벗겨진 내 마지막 자존심인가?
"...그런데 나 지금 파타야야."
"뭐라구?? 파타야?? 왜?"
"엄마 회사가 여기 있어서 여기서 일해."
"설마 너 내가 방콕 간다니까 파타야로 도망간거 아냐?"
"하하~ 아냐! 원래는 평일에 여기서 일하고 토요일 저녁 늦게 방콕에 가는데 내일은 일찍 돌아갈거야."
"그래... 알았어. ^^"
솔직히 난 방콕에서 태성이를 직접 만나기 전까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혹시, 혹시라도 태성이를 못보더라도... 너무 실망하지는 말자. 어쩌면 그럴 가능성도 있으니까. 일단 마음의 준비를 하자, 했다. 그래도 출발 전에 태성이 전화를 받으니 기분이 째진다.


2009년 1월 23일 밤, 난 회사에서 정시퇴근을 하고 후줄근한 차림으로 타이항공에 올랐다. 통로석밖에 없다기에 뭐 그러던지말던지 난 잘거니깐, 하고 자리에 앉았다. 아, 피곤하다. 얼른 밥먹고 자야지.
꽤 젊은 남자가 다가오더니 내 옆자리(창가석)에 앉는다. 얼굴은 그럭저럭 그냥저냥, 대신 내 타입이 아니라서 기대감은 제로. 한번 스윽 보니 여행회화책 이런 걸 갖고있는 것이 방콕 배낭여행하는 복학생쯤 되나... 싶다. 그런데 이 사람 자꾸 흘끔흘끔대더니 말을 시킨다. 화장도 다 지워지고 후줄근한 차림인데도 헌팅이 들어오네? 그러고보니 비행기 옆자리에 젊은 남자가 앉은 건 또 처음. 나름 처음엔 기대감도 없지 않았다.
"저기... 비행기 자주 타세요? 제가 해외가는 비행기는 처음 타서요. 모르는 것 좀 물어볼게요."
"뭐, 저도 몇 번 안 타서 잘은 모르지만 물어보세요."
난 피곤한데 주절주절 혼자 얘기한다.
자기가 영업만 몇년째 하다가 지금은 조그맣지만 자기 회사 하나 운영하고 있고 어쩌고... 지금 사업차 파키스탄에 가는데 직항이 없어서 방콕 들렀다 간다고 했다. 임플란트 관련 제조업체인데 자기를 통하면 임플란트 무지 싸게 해줄 수 있다며 명함을 건네준다. 얘기를 들어보니 임플란트 하나에 100만원 정도에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이런... 괜찮군, 겉으론 무덤덤한 척 명함을 받았다.
"저는 서른 한 살 인데, 몇 살이세요?"
"네? 왜요? 좀 많은데."
"스물 셋?"
어익쿠, 지랄한다.
"스물 OO이요."
"제가 영어를 진짜 못하거든요."
"보통 작은 회사 운영하면 사장들은 영어 엄청 잘하는데, 그게 가능해요?"
"제 친구놈 영어 잘하는 녀석을 직원으로 앉혀놨거든요. 영어는 걔가하면 되고 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거구요."
맞는 말이다. 영어를 못하면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을 고용하면 그만인거다. 여기까지 꽤 호감이었다.


주위를 보니 그 유명한 보라색 담요를 덮은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오, 나도 드디어 보라색 담요를 덮을 수 있는거야?
"Can you give me the blanket?"
"저기, 그 담요가 영어로 뭐예요?"
"네? blanket이요..."
그래, 담요 뭐 이런거 영어로 모를 수도 있다. 발음도 좀 어렵잖아?
"화장실이 영어로 뭐예요?"
"네? ...toilet이요, rest room이라고도 하고..."
"영어 잘하시네요~"
"아니 저 진짜 못하는데요..."
"(위치)가 영어로 뭐예요?"
"네? 쌩뚱맞게... 위치는 왜요? 위치라고 하면...location? 뭐 물어보시려구요?"
"파키스탄가서 호텔 위치가 어떻게 되냐고 물어보려구요."
......
"그냥 이렇게 물어보면 될 것 같은데요. where is the hotel around here?"
"좀 써주세요."
"네..."
"그런데 이거 어떻게 읽는다구요?"
"한글로 써드릴게요. 어라운드 히어."
파키스탄행 비행기를 타기까지 대여섯시간이 있다기에 공항에서 마사지를 받거나 근처 호텔에서 한 숨 자고 가는게 어떠냐고 의견을 주었지만 자긴 새벽에 바에가서 놀고 싶다고(언니가 방콕에서 기다리지 않았다면 나와 같이 가고싶었던 듯) 택시를 타고 가겠다고 했다. 대체 그 짧은 영어로 택시는 탄건지, 과연 파키스탄행 비행기는 무사히 탔을지 걱정이 조금 되긴 했지만 일단 내 몸이 너무 피곤하고 귀찮고 난 이제 방콕에서 태성이 볼거고... 해서 그냥 공항에 떨궈놓고 언니와 택시를 탔다.
이제와서 새삼 미안해요, 국제미아가 된 건 아닌지...
사실 뭐 그러던지말던지, 난 도착했다!! 방콕.
포근한 보라색 담요를 덮은 채 자고 일어나니 어느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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