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KK 4일 - prologu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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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KK 4일 - prologue 2

siasiadl 7 2710
2008년 9월 27일 MSN

- 태국 남자도 꽤 괜찮아.
- 하하~ 나도 알아.
- 그래도 난 니가 정말 좋은 남자를 만날거라고 생각해. 진짜야. 왜냐면 너 참 좋은사람이야. 귀엽고 착하고... ^^
- 고마워, 하하~ 우리 서로 위로해주는거야?
- 위로 아냐, 진짜야.

한시간 가량의 MSN대화 이후로 그 아이는 밖에 나가 노느라 바쁜지 접속도 잘 안 했고 몇번의 쪽지만 오갔을 뿐이었다. (아, 물론 그것도 다~ 내가 먼저 보낸 것)

그렇게 매일 그리워만하던 11월 어느 날 금요일 저녁.

난 왠지 기분이 좋다. 태성이한테 전화를 해도 될 것 같다. 모르겠다 그냥 질러버리자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
.
.
.
.

바보다,
난 바보 병신이다.

안 그래도 전화 울렁증이 있으면서, 한국 돌아와서 중국어 한마디 안 쓰고 살았으면서 어떻게 준비멘트 하나없이 전화를 했던거야. 말도 제대로 못하고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고 어버버버버... 그러면서 나 나중에 중국가면 니 시간 전부를 줄 수 있냐는 헛소리는 또 왜 짓거린거야... 젠장 젠장.

생각할수록 '참담'이란 두 글자가 자꾸 멤돌았고 심지어는 눈물까지 나버려서 이젠 안 되겠다, 정말 이젠 어쩔 수가 없구나 싶었다. 생각하지 말고 다른 생각을 하고 한국에서의 하루 하루를 구상해야지, 재밌는 것도 좀 찾고...

남들 다 노는 토요일에 출근한다는 것 자체는 참 싫지만 실은 난 토요일 여유로운 사무실의 분위기를 꽤 좋아하게 됐다. 우리부서 토요일 근무자는 나, 내 사수주임님, 과장님, 이사님 이렇게 네 명인데 토요일이라 다들 편한 옷차림이고 영업팀 특성상 참~ 한가하다. 아직까지 바쁜 일은 없지만 평일에 못하고 미뤄뒀던 일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는 시간이라 마음도 착착 정리되는 기분이다.
점심을 먹든 안먹든 한시 퇴근이라 우리는 매번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데 아침엔 쌀쌀하던 것이 낮이라고 나름 따뜻해졌다. 김치찌게는 맛있었고 일단 홍일점이니 다들 잘해주신다. 기분이 좀 나아졌다.

퇴근길에 태워주겠다던 이사님의 호의를 거절하고 신촌에가서 한겨레 문화센터의 위치를 확인하고 홍대앞까지 걸어가서 한양문고에서 '잔혹한신이 지배한다'7-8권을 구입해서 집에 돌아왔다. 엄만 얜 주말인데 이리 빨리 집에왔나 쯧쯧... 하는 표정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어두운 내 방으로 들어와 책을 폈다.

- 왜 또 그러는거야? 날 좋아한다며! 방금 네 입으로 그랬잖아! 나도 사랑해!
- 사랑은 필요없어!
- ...뭐?
- 필요없어.
- 나를 좋아하잖아?
- 좋아해. 하지만 내 마음이 그렇다고 해서 이안에게 사랑받고 싶은 건 아냐. 그런거 원하지 않아.

또 눈물이 났다. 사랑하면 또 사랑받고 싶은게 사람 맘이잖아...

아, 아무 생각을 하지 말자. 잊고 싶은 것도 아니고 잊을 수도 없지만 여기선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뭔가를 해봤자 더 구린 결과만 나오니 그냥 생각을 하지 말자, 티비를 보다가 잠들었다. 중간에 언니가 돌아와 시끄러워져서 깨곤 핸드폰을 봤다. 문자가 와있다.

세상에 그 아이다!!

- 나 태성이야. 이거 잘 가나 안가나 확인해보는거야. 문자 받았어?
- 태성!! 잘 받았어!
- 그래? 잘 됐다. 내 핸드폰에 돈 있을때 종종 보낼게.

내 핸드폰에 돈 있을때, 돈 있을때, 돈 있을때...
아 물론 돈이 없으면 문자도 전화도 안 되는거지. 하하, 그래 뭐 그게 어디냐. 별 내용은 없었지만... 나 참 병신같이 굴었는데 그래도 싫어하는건 아니야? 그래? 그렇담 나 다시 좀 웃어도 될까?

그래,
나 태국가자.

태국도 중국도 내가 가고싶은 곳이라면 어디라도, 준비는 천천히 떠날때는 불현듯이.
7 Comments
원로 2009.03.22 16:27  
주말근무일지언정 좋아하게 되셨다는데.. 책임감있는 젊은이로 느껴집니다
사회생활도, 만나고 싶은 사람을 찾아가는 여행도
모두 성공적이시길 바랍니다..
카와이깡 2009.03.22 22:12  
여전히 아픔은...
연인이 사랑만 할수 없잖아. 그 안에 희노애락이 모두~ 그려지는 그런 ...
부디 좋은 결과 낳기를 바랄뿐~
주80 2009.03.22 22:54  
다음글 막 기다려져요~~^^제가 다 두근두근~~^^
타쿠웅 2009.03.23 21:42  
앗... 당...당신...당신은... 장국영 좋아하시던...^^
오랜만에 댓글로 봐요...ㅋ
주80 2009.03.24 18:50  
어머, 저 기억해주시는거에요~~~아웅~~~감사해서 막 눈물날라고~~~ㅎㅎ태사랑의 인기절정남께서~~저를!! 와우~~~~~
siasiadl 2009.03.27 23:36  
저도 주80님 알아요.ㅎㅎ
전에 태국에서 산 물건 올리신거 보고 링크따라 들어가서 블로그까지 구경했었는데. 왠지 인상이 남아서 닉네임까지 기억하고 있었거든요~^^
주80 2009.03.29 23:04  
저 기뻐서 울어야하는거죠~~~꺅~~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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