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KK 4일 - prologu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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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KK 4일 - prologue 1

siasiadl 4 4019
2008년 7월 16일,
난 중국에서 어학연수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중국에 처음 갔을 때보다 나이는 한 살 더 먹었으며 중국어 실력은 크게 늘지 않았다. 뭐, 사실 그건 별로 중요치 않다. 더워 죽을 것 같았던 중국에서 그래도 한국은 이것보단 시원할거야, 라고 기대를 하며 돌아왔지만 에어컨이 없는 우리집은 매우 더웠고 10개월동안 방치된 내 방은 창고가 되어 발디딜 틈 조차 없었다. 중국이 그리웠지만 그만큼 간절하지 않았던 건 그 당시 이미 태성이는 중국에 없기에. 그래서 내 마음은 방향을 잡지 못한 채 방황한다.

그 아이에게 내 한국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지만 난 그 아이의 태국 연락처를 모른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난 계속 태성이한테서 걸려오는 국제전화를 받는 상상을 했었다. 그러나 상상은 그저 상상일 뿐인지 전화는 커녕, 두 번이나 보낸 메일에 한 줄 답장조차 없다.

이를테면 난 버려진거다. 우리 사이는 친구, 그것도 매일 만나서 밥먹고 술먹는 그런 친한 친구가 아닌 오다가다 만나면 인사하는 그런 매우 일반적인 외국인친구, 였지만 그래도 조금은... 날 생각해 줄 거라 믿었었는데 그 아이는 잔인할 정도로 날 놓아버린거다. 딱 그만큼의 관심이었으면 그렇게 웃어주지나 말지. 그지 깽깽이같은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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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귀국 후 취직을 한 9월까지 덥고 좁은 내 방구석에서 쳐박혀 폐인처럼 아점저를 한방에 먹으며 난 그 아이와의 추억담을 쓰기 시작했다. 누구는 너무나 초라하고 내용도 없다며 비웃을 지 모르지만 내게는 너무나 소중했던 순간 순간을 하나 하나 정리했다. 난 글을 잘 쓰지 못하지만 쓰는 건 좋아한다. 기록을 하지 않으면 그 순간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갔는지 도통 기억해낼 수 가 없기에, 샤먼에서의 일기장을 뒤적이며 이야기를 썼다.

태성아 너와의 소중한 이 이야기가 끝나기 전에 부디 내게 연락좀 줘.

마음은 전혀 추스려지지 않았지만 살아야했기에 일단 정신을 조금 차리고 면접을 보았고, 내 어떤면이 맘에 들었는지 출근을 하라기에 아무 생각없이 난 회사생활을 시작한다. 이때가 9월 중순.
한국에 돌아온 후 난 매일같이 MSN에 접속했는데 태성인 단 한 번도 접속을 하지 않았다. 이메일과 MSN이 그 아이의 존재를 확인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데, 그 아이의 가장 좋은 친구 게이코에게서도 답장을 받았는데... 난 정말 버림받았다.

매일같이 의미없이 MSN에 접속하던 9월 말,
세상에... 태성이가 접속을 했다. 드디어 중국으로 돌아간 모양이다. 난 너무나 기뻐 화면캡쳐를 해서 저장한다. 이건 무슨 연예인 팬카페에 동접기념 캡쳐도 아니고 내 자신 꼴이 참~ 우습지만 그래도 기쁘다. 안 들어와도 너무 안 들어오길래 난 혹시 내가 이 아이에게 MSN 차단 당한건가 싶어 네이버 지식인까지 검색해보던 참이었다. 이 아이 태국에선 그렇게 재미가 좋았는지 단 한번도 볼 수 없더니 샤먼에선 이렇게 접속을 하네. 그 아이의 외로움이 난 조금 반갑고 고맙다. 미안하지만 난 니가 조금 더 많이 외로우면 좋겠다.

쨌든 난 버림받은 상태였으니 괜한 자존심에 온라인으로 접속해 먼저 말을 걸고 싶지 않았다. 아니, 사실 좀 많이 부끄럽다. 메일도 두번이나 씹혔는데 또 먼저 말걸고... 그러기가 참 많이 부끄럽다. 그냥 일단은 아직은 그 아이의 존재를 이렇게 온라인으로라도 확인을 한다는 자체가 좋았다.

9월 22일 난 여느때와 같이 MSN에 접속을 했다. 보니 쪽지가 와있어서 클릭했는데, 태성이다!
- 누나, 요즘 잘 지내? 나도 잘 지내.

가슴이 두근두근 얼굴엔 웃음이 한가득. 너무 반가워 눈물도 날 것 같다. 잠시 후에 보니 메일도 와있다. 내용은 뭐 이랬다. 나 중국에 돌아왔고 태국에서 일하느라 너무 바빠서 인터넷을 한번도 못했다. 넌 한국에서 어떠냐? 재밌겠지? 그리곤 덧붙여진 마지막 한마디에 또 백 번 설렌다.

想你。(보고싶어)
태성

분명 누구에게나 메일보낼때 쓰는 맺음구일텐데. 꼭 날 보고 웃으며 얘기하는 것 같다.

고작 서너줄되는 그 메일을 보곤 입이 찢어져 난 장문의 답장을 쓰기 시작한다. 정말 오랜만이고 난 니가 날 잊은 줄 알았고 요즘 회사를 다니느라 바쁘고(뻥) 역시 한국에 돌아오니 이것저것 할 수 있어서 너무 좋고(뻥) 일하는 건 재미없고(진심) 어쩌고... 그런데 우리 계속 연락하는거야? 넌 중국에 가서야 인터넷을 하네. 보통 사람들이 행복하면 인터넷을 잘 안하지... 그래도 난 니가 중국에서 행복하길 바래(이건 절대 진심).

보내기,를 누르려다 잠시 망설인다. 아니 나 아무리 자존심이 없지만 이렇게 목 빠지게 기다린 거 티내기는 좀 창피하잖아? 일단 저장함에 넣고 삼사일 지나서 보내자. 그래 참아보자. 참자... 그동안 태성이는 나 두달이나 기다리게 했는데 너도 어디 기다려 봐라. 흥 나도 조금은 복수해야지, 참자... 참자... 몇 번이나 바늘로 허벅지를 찔러댔지만 에잇 못참겠다. 난 다음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미리 작성해 놓은 메일을 보내버린다. 맨날 하는 말을 되뇌이며, 내가 언제 그애 앞에서 자존심 챙겼나... 응?

그 아이의 답장은 너무나 일반적이어서 김이 팍 새긴 했으나, 난 그래도 기뻤다. 인터넷을 한 번도 안 했다는 거 정말 믿기 어렵지만...

그래,
난 너를 믿는다.

중국에서 알게 된 태국 남자아이 태성이와 7월 12일 바이바이, 그리고 9월 말 비록 온라인에서지만 그 아이와 다시 연락이 닿았다. 난 정말 무자비하게 버림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거야?

어떡하지 난 너를 놓을 수 가 없다.
4 Comments
카와이깡 2009.03.22 22:05  
에고고.. 무엇을 기대하는지..
읽으며 님의 그 친구에 대한 사랑? 슬픔이 크게 자리함이 보이는지라..
님이 더 잘 알 것 같네여
빨간 너구리 2009.03.23 10:21  
그냥 읽었는데....
읽을수록 내 가슴이 왜 이렇게 설레는데....ㅜ
아직 읽을게 두 편이나 남았다는게 행복할뿐이네요...^^
지타 2009.03.26 09:47  
진심이 느껴지고... 흥미로운 글...
기대가 됩니다.
태백이 2009.04.01 18:38  
오~~~ 이제서야 열어봤는데..... 다음 글 얼른 읽으러 갑니다~~~
제가 막 설레는데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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