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보다 THAI - 그리고 그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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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 꽃보다 THAI - 그리고 그 후 ◈

아리따 24 1601


#.
카오산로드에 대한 일종의 환상이 있었다.


1960년대를 거쳐 70년대로 넘어오면서 서양에서는 반문화 운동이 일어났다.
 
젊은이들은 효율성과 경쟁을 내세우는 숨막힐 듯한 산업사회에 반항하며, 배낭을 둘러메고 인도나 동남아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여행 행태는 예전과 달랐다. 사회로 복귀할 의무가 없었던 그들은 시간에 쫓기지 않은 채 장기간 자유롭게 여행하는 삶을 살았다.

이들의 근거지를 흔히 ‘3K’라 불렀는데, 인도네시아 발리의 쿠타 비치, 네팔의 카트만두, 아프가니스탄의 카불이었다.

이곳들에는 엄청나게 싼 숙소들이 들어섰고, 히피들은 마리화나를 피워대며 장기 체류를 했다.

그러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 정치적으로 격변기를 맞으며 새로운 ‘K’로 부상한 곳이 바로 태국 방콕의 카오산 로드다.


[세계일보, 이지상의 세계문화기행 中]


거기다 지금은 너무도 유명한 ‘on the road-카오산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이라는 책과,
책을 읽고 찾아본 다큐멘터리는 이 환상에 무게를 얹어줬다.

전 세계 여행자들이 모이는 곳이라니!



마사지도 그리웠지만 ‘카오산’이 있는 곳이기에 별 생각 없이 태국행 비행기표를 끊었고,
막상 와보니 이제껏 그려왔던 상상 속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날 것도 모자랄 것도 없이

그저 오길 잘 했다며 스스로를 토닥토닥 해 줄 수 있었다.

환상을 충족시켰건 아니건, 특별한 감흥을 느꼈건 실망을 했건
변하는 건 항상 나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떤 마음상태로 여행을 하는지에 따라서도 얼마든지 다르게 보인다.







#.
무엇을 보고 경험했다는 것 보다는, 떠나왔다는 사실에 더 행복했던 날들이었다.

돌아온 후
투어를 함께했던 자매 & 페리에서 만난 젊은 미국인 교수와 싸이월드로 안부를 묻고,

연락이 닿지 않아 애통했던 여에게는 국제전화를 한 통 했고,

켄의 기억은 다행히도 담담히 적어 내려갈 수 있게 되었고,
(하지만 아직 조금은 미련이 남고)

꼬 창에서 만난 친구들과 이메일을 몇 개 주고받았고,

꽃다발 들고 졸업식에 다녀왔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고, 여행을 하면 사람이 제일 많이 남고,

다음번을 또 기약하기 위해선 지금 내 할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

매번 똑같은 것을 느끼고 다짐하고 돌아오지만,

‘가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였던 이번 여행은
조금 다르게 남을 것도 같다.





#.
한 번의 여행은 3단계로 완성된다.

떠날 준비를 하면서, 여행을 하면서, 마지막으로 사진과 일기를 정리하면서.

앞의 두 과정은 어떻게 해치웠는지 모르겠지만

연재를 빌미로 꾸역꾸역 쏟아낸 덕분에 언제 잊힐지 모를 기억의 자락들을 조금은 잡아두게 된 것 같아 감사하다.






다음 여행은 언제, 어디로 가게 될지 알 수 없지만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것만으로 이미 설렌다.

뭔가 대단한 일이 생기기 때문이 아니라 낯선 곳에서 숨 쉬고 있는 자체만으로 좋은,

그게 여행이 나를 끌어당기는 마력이 아닐까.

얼마든지 유혹 당해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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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 숙제를 마치는 기분으로 여행기를 끝냅니다.
몇 편 되지도 않는데 벌써 3월이 넘어가니 부담스럽더라고요..

태사랑에서 너무 많은 도움을 받고 가서 졸필이나마 시작한 여행기..

[글]이라는 것의 특성상 표현이 생생하게 전달되지 못한 부분도, 제 마음대로 생략해버린 부분도 많지만

잘 보고 있다, 재미있다는 응원 댓글 달아주신 회원님들 덕분에 게을러터진 손가락을 그나마 부지런히(?) 놀릴 수 있었어요:)

본격적으로 두꺼운 전공서적들과 씨름을 시작했습니다. 한두 달 쉬었다고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요49.gif

이제 다른 분들 여행기 읽으면서 머리 식히고 가겠네요43.gif

Bon voy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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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Comments
늘보군 2009.03.03 22:08  
잘봤습니다..
떠나고 싶게 만드는 글입니다..
물론 1빠도 ㅋㅋ
아리따 2009.03.04 14:10  
감사합니다ㅎㅎ 댓글도..1빠도..ㅋㅋ
떠나고 싶게 만든다니.. 과찬이신데요..
[스아실 기분은 무지 좋아요ㅋㅋ]
Swany 2009.03.03 23:03  
글을 담백하게 잘쓰시는것 같아요,
저도 곧 도피를 핑계로 카오산으로 여행을 떠난답니다 ^^
여행기 감명깊게 읽었어요.
부디 앞으로도 좋은여행하시고 힘내시길바래요 =)
화이팅!
아리따 2009.03.04 14:13  
곧 떠나신다는 분들이 제일 부러운..ㅠㅜ
카오산에게 안부 전해 주세효^-^
swany님도 그 곳에서 '이리 도피(?) 해 오길 잘했다!'하고 신나게 놀다 오셨으면 좋겠네요ㅎㅎ
감사합니당:)
♡러블리야옹♡ 2009.03.04 06:27  
아 벌써 끝 ㅠㅠ...
기내식 트레이 설겆이 해서 내보냈다는 글에.. 엄청 웃었던게 어제 같은데
아쉽네용.. 다음여행때도 꼭 여행기 올려줘요..
아리따님 닉네임 만큼 아리따운 여행기였어요 . 그리고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리움을 사진으로라도 볼수있게 해주셔서.. ^^
아리따 2009.03.04 14:16  
늘 따뜻한 댓글에 제가 감사드리죠~
다음 여행 후에는 샤방샤방 달콤한 이야기 좀 쓸 수 있길..
제발..제발!!ㅋㅋㅋㅋ
책이 야옹님 여행기처럼만 재미있다면 밤새서 공부할 수 있을텐데 말예요ㅋㅋ
misosoup 2009.03.04 09:18  
여행기 쓰시느라 정말 수고많으셨어요

비록 힘드셨으나
아리따님의 글, 그림들..
또 여러 님들의 리플들..(유치찬란한 제 댓글은 제외 ㅡ.ㅡ)
미처 사진으로 담아오지 못한, 여행기에는 올리지 못한, 아리따님만의 가슴속 머릿속 영상들..
다른이에게는 차마 털어놓지 못했던 속내들..
이 모든것들이 버무려져 아리따님만의 예쁜 추억으로 간직되겠지요?
그 아리따운 마음.. 평생 간직하셨으면 합니다

올해는 원하시는 일 꼭 이루어지시길 빌어봅니다. 화이팅
아리따 2009.03.04 14:20  
이렇게 하나 둘씩 달려있는 댓글 보면 호랑이 기운을 얻어 다음편을 쓰고, 쓰고 했네요..ㅎ
여행기를 풀어놓으면서뿐만이 아니라 이렇게 댓글로도
다른 추억들을 소소히 꺼내볼 수 있는 거..즈응말 좋은 거 같아효>_<

응원 감사합니다~~ 여행기 읽어주신 것도ㅎㅎ
misosoup님도 화이팅팅팅!!
etranger 2009.03.04 11:17  
카오산은 모든 여행자를 포용하는 뿔랙홀 이지요. 저도 또 갈겁니다.
아리따 2009.03.04 14:22  
블랙홀.. 그렇네요ㅎㅎ
에뜨랑제..라는 닉네임도 카오산에 잘 어울리시는 듯^^
님의 눈에 비친 다음번의 카오산은 또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요..
스티뷰 2009.03.04 15:59  
그간 장문의 여행기 잘보고 갑니다.
어쩔수없는 향수에 이끌려 다시 갔다와야 겠다고 생각한 지금
기분이 너무너무 좋아 지네요
1년 쉬고 가는 카오산은 어떻게 변해있을지. ^^
아리따 2009.03.05 17:24  
아악,,, 스티뷰님도 다시 가시는구나ㅜㅜ
부럽습니다아~~!! 기분이 너무너무 좋아지실 만 하죠.. 암요..츄륵-_ㅜ
한 나라를, 한 도시를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자주 찾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요?
카오산의 늪......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핌프 2009.03.04 19:27  
좋은여행기 잘읽엇습니다..!!
후아.....정말 당장 짐싸서 배낭하나들고 태국으로 또 떠나구싶네요 ㅠㅠ
여름까지 참아야겟죠 ㅎㅎ
그동안 여행기쓰시느라 수고하셨어요 ^^
아리따 2009.03.05 17:31  
감사합니닥!!
아훙,,여름까지만 참으시면 되는 핌프님도 부러워요~
언제든 떠날 수 있는 마음이 있는 우리들은 아마도 정말정말 행복한 사람들이겠죠?^^
현실의 벽 앞에서 시일을 엿보고.... 이것저것 준비도 해야 하지만요.ㅋㅋ
시리어드 2009.03.04 19:41  
방콕에서 돌아온지 정확히 하루반되었는데 님글을 보니깐 저도 또 가고싶네요..이번에 가면 세번째인데..이놈의 방콕병..ㅠㅠㅠㅠ;;; 다른곳은 가도 후유증이 없는데 방콕은 이상하게 점점 더 가고싶단 말이죠..ㅋㅋ
아리따 2009.03.05 17:33  
갓 돌아온 따끈따끈한 방콕 기운을 갖고 계시군요!
그러게나 말이에요..
거기 공기엔 중독성분이라도 들었나ㅋㅋ
올드벗굿 2009.03.05 12:41  
밥먹고사니즘에 빠져 몇일 태사랑에 못오는 사이에 함께 여행하는 기분으로 읽었던 여행기가 끝났네요. "여행이란 돌이킬 수 없는 '사라짐'의 연속이다. 그래서 여행은 '가장 슬픈 쾌락'의 하나임을 아는 자의 설렘을..." 이 인용문은 불문학자 김화영 선생의 [알제리 기행](2006.마음산책 刊)의 책머리에 나오는 名文입니다. 그동안 좋은 글을 읽은 보답으로 一讀을 권해드립니다. 골치아픈(?) 전공 서적 스터디 하는 중간에 읽으시면 도움이 될 듯 싶어서...(^^)
아리따 2009.03.05 17:37  
여행은 가장 슬픈 쾌락..의 하나라니! 표현이 장난아닌데요?
꼭 읽어볼게요~ 이거 읽으면 다음번엔 알제리 가겠다고 하는 거 아닐지 모르겠네요ㅎㅎ
올드벗굿님의 늘 정성스럽고 기분좋은  댓글이 절 얼마나 신나게 했는지 아시려나..^^; 감사합니다!
bagpacker 2009.03.06 09:35  
여행기 잘읽었습니다. 어려운시기에 생업에 충실해야 하지만 또다시 엉덩이가 들썩이는건 뭘까요?...ㅜㅜ
아리따 2009.03.06 18:03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님의 닉네임처럼 백패커의 피를 타고 났을지도 몰라요...ㅎㅎ
항상 들썩이는 엉덩이를 주체하지 못해 이곳 태사랑에서 다른 분들의 여행기로 대리만족이라도 하고 있는 거 같아요..[자가진단ㅋㅋ]
Cranberry 2009.03.21 08:07  
잘 읽었어요..다음 여행은 항상 더 멋진 여행이 되시길 빌께요..
아리따 2009.03.23 00:19  
막 내린 지 한참이나 된 글에도 댓글까지 달아주시공..ㅎㅎ
감사합니다 크랜베리님~
님과 저의 늘 더 멋진 여행을 위해! 브라보~~
혼자가는여행 2009.03.21 23:43  
아~ 다시 가고 싶네요 태국!!!! 잘 읽었습니다^^!!!!!!
아리따 2009.03.23 00:20  
감사합니다:) 전 항상 혼자가는 여행에 대한 동경이 있는데..
님은 홀로여행을 즐기시는지..ㅋ
나중에 저도 혼자 갈 기회가 되면, 내공전수 부탁드리무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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