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보다 THAI - 카오산 예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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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가 약간 넘으니 얄짤없이 파장해주시고.. 금연이었던 실내에는 담배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한 DJ는 클러버들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분주한 모양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주위 사람들과 렌즈 쳐다보며 표정관리하고 있는..;;
여의 친구가 다가와 G-dragon의 big fan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빅 뱅 한국에서 진짜 유명한 아이돌 맞지?”
- 그럼~ 인기 최고야^^b
갑자기 ‘I'm so sorry but I luv u 다 거짓말~’을 부르기 시작하는데...
‘이야 몰랐어 이제야 알았어~ 니가 필요해애애~~♬’
빅뱅으로 하나 되는 한 ․ 태!ㅋㅋㅋ
친구에게 착 달라붙어 들이대던 한 덩치 큰 힙합보이는 자기도 람부뜨리에서 일하니 거기서 한 잔 하자고 가지도 않고 기다린다.
헐;; 이 분위기는 좀
여가 조용히 말한다.
“쟤 따라가면 절대 안 돼!”
- 응. 우리도 그럴 생각 없어. 잘 가, 여! 오늘 즐거웠어~
마지막까지 그 친구는 “G-dragon~”을 외치며 하이파이브까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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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CA에서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인파는 볼 만 했다.
미터택시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고, 길가에서 뭐라도 사먹으면서 사람들이 빠지기를 기다리기엔 너무 피곤했다.
암묵적인 약정요금이라도 되는 듯 150밧 이하로는 흥정하려 들지 않았고
눈 뜨고 바가지요금 주면서도 숙소로는 와야 했지만 빈 택시마저 잘 띄지 않는다.
한참을 택시 잡느라 동동거리고 섰는데, 뒤에서 여가 우릴 발견하고 부른다.
같이 택시 타고가면 안되겠느냐고.
스테판을 내버리고 내내 짝짜꿍하며 놀던 힙돌이와는 급 바이바이~
아, 대충 그림이 나오네.
“방콕에서 아무나 따라가면 절대 안 돼! 아무나 믿어도 안 되고. no good guy들이 너무 많다구.”
- 응응, 고마워~
“나쁜 사람들이 태국에 꽤 많이 들어와 있어. 근데 한국조폭이 그렇게 나빠?"
여는 한국에서 도피해 온 어깨 중 하나와 사귀었던 적이 있었다고 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쯤에서ㅋ)
갑자기 ‘개와 늑대의 시간’이 떠오르는..
아이러니한 건, 스테판이 그렇게 챙겨줄 때는 막 뜯은 샴페인처럼 톡톡 쏘며 다른 남자에게 가버리더니
내가 연락처를 주던 걸 봤는지 그의 연락처를 알고 있느냔다. 그는 good guy라면서.
미안하지만 내가 받은 건 없지 뭐야
아아, 여자도 모를 여자의 마음이여~
택시기사를 졸라 책 한 장을 찢어 자기 것은 요 며칠 못 쓰고 있다며 엄마의 번호를 적어주었다.
“안녕~ 내일 꼭 연락해야 돼! 친구들하고 같이 밥 먹자.”
- ㅇㅋㅇㅋ 조심해서 들어가!
람부뜨리에서 우릴 내려주고 가는 여.
다음 날 숙소를 나서자마자 공중전화에서, 몇 바트나 썼는지 모르게 쓰면서 전화를 했지만
여의 전화에서는 그녀 말대로 안내방송만 흘러나왔고,
여의 엄마 전화로 걸었을 땐
- 안녕하세요. 여 친구인데요.. 통화 가능할까요?
"........................."
뚝.
으응? 잘못 걸었나?
- 친구예요. 헤헤- 여 좀 바꿔주실래요?
“askldf;oieybwfksd.liurwo(태국말)”
- 여, 여 말이에요. 집에 없나요?
“giuyrekrba.kdyfliw;otifhslf(또 태국말)”
오빠인지 동생인지 아무튼 남자를 바꿔준다. 흑흑 이제 말이 통하는 거야?
- 나 여 친구예요. 자기 전화기가 안 된다고 이리로 전화하라고 해서..
“as;dofiy;oahwkejhf;asoidyf;ao(계속 태국말)
- 아니, 나 태국말 못 하는데ㅠㅠ 그럼 어제 만났던 oo한테 전화왔었다고나 좀.. oo예요 oo!
“laiwehlk.jf.kjetyriwuhfk.”
뚝! 뚜뚜뚜뚜~
오마이가뜨, 여어어어어어어어~~~
언어의 장벽은 여와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다.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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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놀았더니 힘드네.
침대에 앉아 스킨을 두드리던 친구가 뜬금없이 소리친다.
“아! 십숑키!!”
- 뭐라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게 뭐야 아놔ㅋㅋㅋㅋㅋ 욕인데 너무 귀여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미가 등허리 깨물었어. 벌레 없더니 웬일이지? 그게 그렇게 웃기냐.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눈물 나.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난 친구의 한 마디에 빵 터진 웃음을 빙자해 눈물을 방류하고 있었다.
“뭐야? 눈물 날 정도로 웃겨?”
- 야, 너 꼭 그 날 돌아가야 되지?
“응. 나도 더 있고 싶어 죽겠어.”
- 너.....혼자 가도 돼?
말이 제멋대로 나온다.
켄 앞에서 말도 안 되게 돌아선 다음 두 번째로 느끼는 기분,
누군가 날 조종하고 있는 게 분명해.
“또 뭔 소리하려구~”
- 캄보디아 갈까 봐. 재작년 겨울에 가려고 짜둔 여행플랜 있는데, 전화해서 동생한테 파일만 메일로 보내라고 하면 돼. 온 김에 보고 가면 좋잖아
“얘 진짜 갈 건가 보네.”
- 돈은 이제까지 아껴 썼으니까 남은 걸로 어떻게든 될 거구. 비상용으로 가져온 카드하구 달러 탈탈 털면 며칠은 버틸 수 있을 텐데.
혹시 돈 남을 거 같으면 나한테 넘겨.
아, 비행기표가 문제구나? 내일 타이항공에 전화하면…
나 이런 생각 언제 해뒀니.
“너 지금 진짜 혼자라도 갈 것 같은 거 알아? 그래, 뭐 여기서 나 먼저 들어간다 쳐.
근데 나 혼자 가면 너희 부모님한테는 뭐라고 하냐?
너 앙코르와트만 보고 싶은 게 아닌 거 알어.”
- ..............나란 인간은 도대체 왜 이렇게 생겨먹었냐? 응??
엄마 아빠 생각을 하면 갈 수가 없다.
여기 있는 단 며칠 동안만이라도 한국 생각 안 하겠다고, 작정하고 전화도 안 하겠다고 해놓고 진짜로 안 했는데
예정대로 돌아오지도 않고, 친구랑 같이도 아니고 혼자?
그럼 나 하나 믿고 따라온 친구는 어떡하라고?
앙코르와트를 빙자한 불순(?)한 목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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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은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진행된다.
기억으로 남아있는 내용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점차 쇠잔해 지거나
기억된 내용이 다른 내용에 의해 방해받거나
전체적인 윤곽만 남고 세부적인 것은 희미해지거나,
의도적으로 기억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잊혀진다.
네 번째 설에 의지해 보자.
꼬 창에 두고 온 마음 하나 수습 못하고, 참 가지가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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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그 유명한 나이쏘이 국수를 먹으러 간다.
한 번에 찾아주면 재미없지~ 쓸데없이 길을 건너 공원 근처까지 가서 마구 헤매준 다음
나이쏘이를 한 번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온다.
고생 끝에 먹는 국수가 원래 더 맛있는 법이다. 쿨럭
(숙소는 에라완하우스, 나이쏘이까지 30분?! 하나님, 제발 저에게도 방향감각을 주세효)
되게 싸다~했더니 끼니로 하기엔 한 그릇 더 먹으면 딱 맞을 양이다.
조금 짠 듯도 하지만 역시 소문대로 국물 맛이 예술!
투어하는 동안 림자매에게 소개해 줬는데 이 맛은 보고 갔을까?
“니 거에는 왜 종이 안 붙어있어?”
- 무슨 종이?
“딤섬 밑에 붙어 있는 거 있잖아.”
사람은 다 먹을 것만 먹고 살게 돼 있는 법인가.
하나 둘씩 입 안에서 꺼내는 모양새.. 썩 좋지 아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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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못다 한 쇼핑을 열렬히 원츄했다. 그래?
짜뚜짝 주말시장 vs 백화점, 골라잡아!
시원한 곳! 화장품 살 수 있는 곳!
은 당연히 백화점.
택시를 잡아타고 센트럴월드 고고씽~
언뜻 보니 기사아저씨 이름이 TARA였다. 천직이신가보네요ㅋㅋ
화교인 타라아저씨와 되지도 않는 태국어로 떠들면서 갔다.
단어 몇 개와 손짓발짓으로 의사소통이 되는 게 늘 신기할 뿐이다.
Siam 근처에서 걸어가라며 내려주는 아찌.
뭐, 덕분에 대충 씨얌 구경도 하고..
2am의 커다란 사진 앞에서 컬러교정기를 똑같이 낀 앙증맞은 여고생들에게 괜히 말도 한 번 붙여본다.
(파란색 교정기 처음 구경+_+)
일요일에 교복 입고 다니던 이유는? 이제와 생각하니 궁금하다.
2년 만에 다시 찾은 센트럴월드.
백화점도 EGV도 빅C도 그대로다.
난 두 살을 더 먹었고, 동행이 바뀌었고, 여행 온 계기도 바뀌었다.
목적 없는 쇼핑에는 취미도 소질도 없어 친구의 뒤꽁무니만 열심히 쫓아다녔건만
“어우, 백화점에선 못 사겠어.”
컥- 그래 그럼 킹파워 가야지. 택시비는 빠지겠니?
목록까지 적어 온 친구는 화장품코너를 바쁘게 돌아다니며 샤핑을 했고,
나는 별렀던 말린 과일을 비롯한 각종 먹을거리를 마구 담았다.
에잇, 살 건 오늘 다 사버리자.
나오는 길에 세븐일레븐까지 들러 봉다리 하나 추가요~
‘지난번처럼 깨작거리며 사 갔다간 더 못 산 게 후회될 테니!’ 하면서 가방을 아예 식량창고로 만들어버렸다.
먹을 거 사면서 이렇게 뿌듯한 적이 또 있었을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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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방콕의 택시들은 미터를 잘 켜고 다니는 것 같다.
처음 태국에 왔을 땐 아무 때나 러시아워라며 미터기를 켜지 않고 흥정부터 시작하는 기사들에게 번번이 낚였었는데
이번엔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켜주니 좋아 좋아
한바탕 오수를 즐긴 후, 매니큐어로 대실망을 안겨 준 그 곳에서 마사지를 받았다. (1시간 180밧)
오늘은 그런대로 만족스럽다.
남자 마사지사에게 받은 친구는 더더욱 시원했던 모양이다.
책 사가서 공부하겠다고 난리~
매일 오늘만 같으면 좋겠다. 지겨울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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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카오산으로 직행하지 않고 사원 코너에서 길을 한 번 건너 람부뜨리를 따라 쭉 올라가다가 swenson아이스크림 앞 노천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한국 가서 매연 없이 밥 먹으면 허전한 느낌이겠지?
닭고기가 든 카레는 정말정말 맛있었고 적당한 포만감으로 출근하는 카오산은 더 반가웠다.
이제 남은 시간도 별로 없는데 맛보지 않은 카오산 군것질의 세계는 너무 넓다.
스피드 업!
생긴 걸로만 봐선 이게 소인지 돼지인지 닭인지 구분이 안 간다.
꼬치 여러 개를 한꺼번에 굽느라 바쁜 주인아저씨 대신
포장을 기다리던 콘타이언냐 두 명이 뭐라고 설명해 주고 주문까지 해준다.
슈퍼주니어를 너무너무 좋아한다는 한 언냐는 우리가 한국인인 걸 퍽이나 반가워했다.
동남아에서 한국인이라고 과분한 인사치레를 받는 것에는 한류 연예인들의 공이 크군.
빅뱅, 동방, 슈주 등등 태국에서도 인기 많은 횽들께 자그마한 감사를ㅋㅋ
꼬치를 물고 털레털레 걸어가는데 친구의 레이더망에 공항버스 일훈이가 포착됐다.
- 엥? 아직도 방콕에 있는 거야? 반갑네~
“응, 게스트하우스에서 빈둥빈둥 계속 지냈어.ㅎㅎ 넌?”
그에게는 일주일 사이 한국인 처자 친구들이 잔뜩 생긴 모양이다.
일훈이 하나에 언니들 셋.
앗, 나보다 훨씬 언니들 같아. 조용히 물러서야지. 재밌는 여행해! 안뇽~
왠지 뒤통수가 따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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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배낭여행자들의 메카, 카오산로드.
값싼 게스트하우스, 식당, 각종 기념품, 옷, 액세서리, 해적판CD, 중고책, 위조신분증과 맛난 길거리 음식…
밤이 되면 사람들을 요리조리 잘 피해 다녀야 하는 덥고 복잡한 길,
끊임없이 “Hello, 곤니찌와, 안녕하세요”로 시작해 몇 바트 더 깎겠다고 정감 있는 실랑이가 벌어지는 곳.
어떤 말로도 카오산로드를 다 표현하기엔 부족할 것 같다.
이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의 수만큼, 딱 그만큼의 얼굴을 가진 거리가 아닐까?
왠지 붕 떠있고, 시끌벅적하고, 적당히 지저분한 이 거리를 걷고 있자니
이방인으로서의 묘한 쾌감과 자유가 나를 덮친다.
그리 길지도 않은 길을 목적도 없이 몇 번씩이나 왕복하며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사람 구경을 하다 보면,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어떤 이는 카오산로드를 가리켜 ‘세계에서 가장 긴 꿈을 가진 짧은 도로’라고 묘사했다고 한다.
카오산에 잘 어울리는 멋들어진 표현이다.
멍하니 사람 구경을 하며 수없이 가지치기를 하는 생각들 속에서 다시 나를 발견한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왔던 내가 짧은 시간 동안 수차례 넘어지고 멍들었다는 핑계로
코 묻은 돈 털어 도피 비슷하게 떠나왔지만,
친구들과 있으면 벌써 대학생도 빠이빠이냐고 좋은 시절 다 갔다는 푸념을 늘어놓지만,
나는 아직 젊다.
어디든 누빌 수 있는 튼튼한 두 다리가 있고,
방 한 켠에 붙은 세계지도를 보며 ‘언젠가’를 벼를 수 있는 꿈도 있다.
일곱 번 넘어졌으니, 여덟 번 째는 일어날 차례다.
노점상에서 득템!
수공예로 만든 팔찌(130밧)
다른 아줌니는 똑같은 거 200밧부터 부르다가 150에서 쌩 해버리셨지만
제가 산 데는 180에서 시작해 140에서 쫑내려고 고집부리시더니 그 오퐈 결국 못이기는 척 주시데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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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뷰 맞은 편 노점식당에서 느지막히 먹는 아침.
오늘도 난 매연과 함께 먹을 볶음밥 시켰을 뿐이고,
옆에 앉은 금발오퐈의 무슬리 요거트가 더 맛있어 보일 뿐이고..
조상님들은 원래 남의 떡이 커보이는 거라셨고
스위트박스 언냐도 the grass is greener on the other side♬라 노래하셨거늘
과일이 듬뿍 들어간 요거트 보니 오지랖 발동.
- 그거.. 맛있어요? (당연한 거 아니야? 보면 몰라?)
“ㅎㅎ 응. 되게 맛있어. 죠기서 샀어.(자랑자랑)”
- 쩝.. 밥 먹으면 저거 못 먹는데ㅠㅠ 이따 들어오면서 우리 저거 꼭 사먹자!
다음번 방타이 때는 못 먹어본 게 있어서 한 풀러 간다고 해야겠다.
마지막 날인 오늘은 친구에게 태국 사원 한 곳쯤은 구경시켜 주어야 한다는 국가적 사명(?)을 띠고 왓 아룬을 일정에 넣었다.
가는 길에 탐마쌋대학교 구경이나 한 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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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아팃 쪽으로 난 출입문은 지하주차장 들어가는 것마냥 규모가 작았다.
오른쪽에 바로 붙은 건물은 정부 부처인 듯한데, 무슨 건물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튼 차종들이 갑자기 러그져리해진다.
캠퍼스에서 이런 풍경이 보인다니.. 축복받은 학생들이여~
교복 입은 예쁜 낙슥사들이 슥슥 지나간다. 방학인가 아닌가?
월요일인데 학생들은 별로 없는 듯..
정치학부 건물.
예의상 한 여자분에게 좀 둘러봐도 되겠냐고 했더니 이제껏 만난 태국인 사상 가장 유창한 영어발음을 들려주셨다.
친구의 신변보호를 위한 스티커필살기 크흣
캠퍼스는 아담하지만 오밀조밀 예쁘다.
학교 안에 정말 가라오케가?
싸남루앙에 도착해서야 길을 가르쳐 주던 속눈썹 기다란 탐마쌋 여대생이
“거긴 왜 가려구?”했던 이유를 알았다.
더워서 지쳐 사진도 없지만, 이거 공원 맞아? 공터 아니고?
지도를 보면서 왓 아룬을 어케 가야 하나 눈살을 찌푸리고 대략난감 표정을 하고 있자니
어여쁜 낙슥사 두 명이 말을 걸어 온다.
“Japanese?”
- 콘 까올리.
“아~ 까올리! 원더걸스 팬이야! 어디 가려고?”
- 왓 아룬. 걸어서 선착장까지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해?
“좀 많이 걸어야 할 텐데..”
내 흰 피부가 부럽다던 그녀들은 영문학과 학생으로 리포트 때문에 왓 프라깨우에 가는 중이었다. (나는 댁들 이쁜 얼굴이 더 부러운데염-)
태국에선 미의 기준이 하얀 피부라더니, 빈 말은 아닌듯?
잠시 이야기를 하며 걷다가 앞으로 막 뛰어가 뚝뚝을 잡아주며 흥정까지 대신 해 준 그녀들. 컵쿤 카~
엉엉 아저씨 기다리시는 덕에 사진도 못 찍고
처음으로 타 본 뚝뚝. 시끄럽고 덥긴 하지만 한 번 정도 타볼 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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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띠안에서 3밧 내고 배 탄 지 2분이나 될까 말까 방콕의 랜드마크...
라고하면 너무 과장인가? 암튼 왓 아룬 도착.
지난번 왕궁가이드 뚠 이모가 태국어같은 한국말로 어찌나 입이 닳게 칭찬을 하던지, 덕분에 내심 기대가 된다.
가장 태국적인 모습이라....?
‘너무너무 멋져 눈이 눈이 부셔♪’가 절로 떠오른다.
“계단이 너무 가팔라, 더워~”
- 왕궁은 여기 열 배쯤 덥다는 거. 날계란 떨어뜨리면 저절로 후라이 되는 줄 알았다규. 그래도 한 번은 가볼만한데, 나 땜에 패스해서 우째~
“안 가도 돼. 지친다 지쳐.”
사원에서 만난 아가.
서로의 사진을 찍어 준 독일인 모녀는 서양인 최초로 우리가 한국인인 걸 알아보았다.
아시아인들 중에 영어가 제일 나은 건 한국인이더라면서.
그래도 영어 때문에 온 나라가 그 난리를 치고 돈을 쏟아 붓는 게 마냥 헛수고는 아니었던 건가?
20년이나 된 캐논 필름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방학을 맞은 대학생 딸과 여행하는 멋진 어머니.
나도 그런 딸이, 그런 엄마가 돼야지.
더위 앞에 장사 없다.
후다다닥 보고 나와 이젠 지도고 책이고 다 집어넣은 채로 봉다리 음료수 달랑달랑 들고 걷기 시작했다.
세븐일레븐은 우리들의 안식처
말린 건어물을 팔던 상점, 중고책을 팔던 서점 등등을 지나 웬 학교 앞에 다다랐다.
마침 하교 시간인지 학생들이 쏟아져 나온다.
조잘조잘 이야기를 하고, 길거리에서 간식도 사먹고, 심각한 표정으로 통화도 한다.
일진일 것 같은 파마머리 아가들도 있다.
아웅, 이쁜 것들. 넥타이 교복 차림의 남학생들도 이 누님의 가슴을 훈훈하게 만들어 주는고나.
college? 대학은 아닌 것 같은데...
고등학교란다.
외국인이 흔치않은 이 거리에서 말 걸어오는 우리가 신기했던지 시선집중.
길을 따라 쭉 올라가보니 과일시장이 나온다.
파인애플, 망고는 쏠쏠히 사먹었지만 과일노점 어디서도 내사랑 망고스틴을 발견하지 못해 좌절했던 중
유일하게 망고스틴을 팔던 가게 발견!
만다린, 오렌지, 망고까지 사고 나니 팔이 떨어져 나간다.
이어 꽃시장 구경.
사원보다 이런 시장이 더 좋다는 친구ㅎㅎ
사람 사는 냄새도 나고, 나도 시장이 좋아.
숙소로 돌아와 바로 과일 시식.
망고스틴 1kg을 앉은 자리에서 해치우고 만다린을 까고 있는 나를 보며
“니네 엄마가 보면 진짜 좋아하시겠다. 이렇게 잘 먹는 거 처음 보는데?”
- 과일 앞에선 식탐이 발동한단 말이지..
태국이 좋은 이유 하나 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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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밤이니만큼 멋들어진 식사 한 번 하자꾸나.
쏨분시푸드나 MK를 마음에 두고 내려가면서 방열쇠를 맡기는데
프론트 청년이 엄청난 퇴근시간 러시아워 때문에 가는 데 2시간은 걸릴 거라고 하도 겁을 줘서
소심한 우리 또 깨갱하고 곱게 맘 접는다.
- 흑흑. 마지막 밤이야. 어땠어?
“그냥 꿈같아. 내가 진짜 태국여행 한 건가 싶어.
아 진짜 세븐일레븐 하나만 옮겨놨으면 좋겠다.ㅋㅋ”
- ㅋㅋㅋ...이제 와서 얘기지만, 내가 좀 꿀꿀했지?
“너 혹 떼러 왔다 혹 붙여가는 거 아닌가 걱정했어. 지금은 괜찮아 진 것 같네...
이래서 여행들 하나 봐.”
- 같이 와줘서 고마워.
“데리고 와줘서 고마워.”
아휴 간지러워라.
“니혼진데스까? ㅇ랴ㅇㄴㄹㅑ;ㅓㅣㅇ래ㅕㄴ모;ㅈ대ㅑ”
다짜고짜 일본말이다. 엄청 잘 하네?
아까부터 저기 구석에서 립톤 하나 시켜놓고 멍 때리던 금발 남자다.
드물게 코로 고기도 썰게 생겼다.
일본인 친구 기다리다 엇갈리셨군요.
- 우리가 놀아줄래?
“아서라-_- 우리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되거든여!”
깨갱~
밥 먹고 카오산 또 출근.
축구신동의 새까만 무릎이 안타까워 남은 동전을 탈탈 털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