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보다 THAI - 토요일 밤의 열기 ◈
그래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주겠지......
#.
커다란 개님이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던 쿠키의 식당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아침식사를 한다.
대부분은 가족 혹은 부부단위의 서양인 여행객들,
눈에 띄지 않길 바랐던 할아버지와 젊은 태국女 커플들,,
동양인은 우리뿐이었다.
모래사장에서 쫄쫄이바지를 입은 채 조깅을 하는 아저씨도 보인다.
방값에 포함된 식사이니 점심때까지 배 안 꺼지도록 두둑이 먹어둬야지.
들고 온 거나 다 먹으면 다행이겠다.
간혹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넌 꼭 손 따뜻하고 돈 많은 남자 만나야겠다.”
겨울이면 꽁꽁 얼어 핏기 없이 하얀 마네킹 손이 돼버리는 까닭이고,
한 번에 먹는 양이 적어 조금씩 먹는 대신 금세 배고파하는 까닭이란다.
어렸을 때 한의사 아찌가 그랬다.
몸통이 작아서 위나 폐 뭐 이런 것들이 대략 작다고.
이제껏 별 생각 없이 그런가보다 하고 살아왔지만, 어쩌다 남들 먹는 만큼 먹을라치면
목 끝까지 숨이 차올라 식식거린다.
모임자리에서 똑같이 돈 내고 먹으면 완전 손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밥먹으러 가면 다들 내가 앉은 테이블로 오려고 경쟁들을..
특히 뷔페같은 곳은 돈 아깝기 딱 좋다.
그래도 먹을 것들이 태산인데(사실 종류가 그닥 많지는 않다) 뽕 뽑고 가야지!
미련하게 꾸역꾸역 밀어넣어 주고;;
(이상하게 여행만 가면 먹을 것에 민감해진다는ㅋ)
망고, 파파야, 용과, 바나나로 디저트까지 해결.
시간 맞춰 선착장에 도착해야 하니 빨리 체크아웃하고 썽태우 잡아타야 할 타이밍.
#.
내사랑 세븐일레븐을 잊지 못해(?) 썽태우도 바로 그 앞에서.
영국男 이탈리아女 커플이 그늘도 없는 땡볕아래 여덟팔자 주름을 그려가며 말했다.
50분이나 기다렸다고.
헉;; 진짜야?
실은 15분째 기다렸다는데, 텅텅 빈 채로 선착장 쪽으로 가는 건 많았지만
죄다 승차거부.
뒤에 오는 거 타라는데, 이거 뭥미?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어느새 인산인해..
까지는 아니고 한 대에 다 못 탈 것 같다.
이탈리아女는 피부가 벌겋게 달아올라 허물까지 군데군데 벗겨져 있다.
전형적인 영국인처럼 생긴 그 남자도..
서양인들 햇빛 참 좋아라 하는 것 같다.
“일본인이니?”
- 아니. 한국인. 나 다른 아이스크림은 별로 안 좋아하는데 젤라또는 진짜 좋아해..
“로마 가봤어? 좋듸?”
- 응. 완전 내 스타일이야.
외국에서 한국에 와 봤다는 서양인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삐질삐질;; 그늘도 없는데 30분도 더 기다린 것 같다.
10시가 되니 거짓말처럼 사람들을 초만원으로 태우고 나타나는 썽태우들.
후다다닥 달려가 자리를 잡으니 또 맨 끝이다.
그래도 뒤에 매달려 서서 그 꼬부랑길을 버텨야 하는 악몽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니 천만다행이지.
좌석이 부족해 누군가 그 이태리女에게 자리를 양보했지만
끝내 거절하고 서서 가는 그녀.
워우, 당신은 진정 모험을 즐기는 스트롱우먼!?
달리는 썽태우에 선 채로 웨이브까지 선보인다.
핫 싸이 카오(화이트샌드비치) 기준으로 선착장까지 편도요금 50밧.
선착장 앞에 도착하니 표를 확인하고 바로 탑승.
뭔가 한참 잘못을 저지르고 떠나는 것 같지만,
어쨌든 안녕 코끼리섬!
좋은 사람들과 못된 나를 만나게 해 준 꼬 창에게 고맙다 해야 할까
왜 날 이리로 불러 들였냐 따져 물어야 할까.
선택은 내 몫이었고, 결과도 당연히 내 몫일테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내 못된 태도는 꼬 창 앞바다에 던져두고 가련다.
#.
바다를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되기라도 하는 양 카메라 셔터를 꾹꾹 눌러댔다.
이래봤자 얼마 건지지 못할 건 알고 있지만
돌아가면 또 얼마만에 이 바다를 보게 될까.
그래도 기분 좋은 건 친구가 여길 너무 좋아했다는 거다.
재충전은 이렇게 하는 거라면서.
다음에 남부 바다라도 보면, 태국에서 살겠달 것 같은데?
꼬 창으로 올 때와는 다르게 딱딱한 一자 나무의자다.
대신 매점이 훨씬 크게 들어서 있는 페리 TV에는 ‘어느 멋진 날’ 방영 중
뜨랏에 내리니 아까 그 커플이 다가와 버스를 타고 방콕에 도착하면
같이 택시를 타고 가자 한다. 동행도 되고 택시비도 나눠 내자고….
- 우리는 버스+페리 조인트티켓을 미리 끊어 와서 따로 터미널까지 갈 필요 없고,
이 버스는 카오산으로 바로 가. 어때?
“정말?”
바로 티켓 구입해주시는 영&이 커플.
노란 스티커를 옷자락에 하나씩 붙이고 버스를 탄다.
한 가지 마음에 드는 건 그 버스는 커튼이 사선이 아니었다는 것.
(갈 때 어찌나 귀찮았던지)
#.
정신없이 자다가 휴게소 한 번은 패스,
그 다음번에 내려 화장실 긴 줄에
그냥 돌아 나오다가 가슴이 쿠궁- 내려앉았다.
맞은편에서 걸어 나온, 분명히 일본인일 한 남자를 보고
나도 모르게 “켄?”하고 얕게 내뱉으며 그 자리에 얼음.
뒷모습을 눈으로 쫓아보니 키와 체구는 비슷하다.
머리는 세우지 않았고, 평범한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이다.
켄일까? 아닐까?
켄일까? 아닐까?
헐;;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이 사태는 내 손으로 만들어 놓고 무슨 기적을 바라고 있는 거야?
너 진짜 웃긴다.
인연이 아니었을 거란 무책임한 말로 내 자신에게 변명해 본다.
내 안의 지킬과 하이드가 싸움을 시작한다.
없던 두통이 몰려오려 한다.
#.
국수씩이나 먹을 시간은 없고, 대충 샌드위치로 때우자. (나는 먹는 속도까지 느리다.)
손바닥만 한 식빵을 2층으로 쌓아 만들어 준다.
청결, 위생 따위 내다 버린 지 오래 돼 보였지만, 먹고 죽기야 하겠어?
하지만 그 안에 든 양파 덕에 매워 죽을 뻔 했다.
원래 생양파 쌈장에 찍어먹는 거 좋아하는데,
김치 담글 때나 쓰면 딱 좋을 법한 매운 생양파를 이렇게나 많이... ㅜㅜ
자고, 먹고, 음악 듣고, 창 밖 구경하고, 이야기하고….
다시 방콕이다.
이제 겨우 두 번째인데 이틀 다른 데서 자고 왔다고 집에 온 것 같을 줄이야.
게다가 이제부턴 조용하고 깨끗한 트윈룸에서 잘 수 있다니!
시간 맞춰 어디로 가야 하는 일도 끝이고,
맛있는 국수랑 과일주스나 실컷 사먹다 가면 되겠다.
#.
금요일 밤 오늘 밤~
오 오늘은 월급 탄 밤♪
은 아니지만 금요일 밤에 비견할 만할 토요일 밤이 다가오지 아니한가 말이다.
클럽구경을 아직 한 번도 안 해 본 친구를 위해 (사실은 내가 가고 싶었던;;)
RCA는 꼭 가야 했고, 쿨럭
클럽이 아니면 필요 없을 원피스와 각종 화장도구들을 바리바리 챙겨왔던 터.
저녁을 먹고 시간이 좀 남아 에라완 근처 미용실 겸 마사지샵에서
매니큐어를 받아보기로 했다.
아세톤도 챙겨오지 않아 마구 벗겨진 진보라 손톱이 안 그래도 며칠째 거슬렸는데..
100밧에 낚여주마 하며 들어가 요모양을 하고 나왔다.
옆자리 파란눈 뇨자는 페티큐어를 받고 있었는데, 색깔만 두 번 칠해준 채 마르자마자 보내버렸다.
살짝 엄습해 오는 불안감.
벽에 걸린 화려한 네일아트 사진을 가리키며,
- 나 저거 해주는 거 맞아?
당연히 그렇다며 끄덕끄덕~
아름다운 손톱을 하고 의기양양하게 나갈 것을 상상했건만 탑코트도 발라주지 않는다.
다음날부터 바로 벗겨지기 시작하는 1회용 매니큐어의 세계!
이럴 거면 내가 사서 발라도 되는데..
#.
여행 중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색조화장을 하고 나섰다.
택시를 타고 당당히 외쳐주는 “빠이 RCA카!”
제대로 말한 건지 확인한 바 없지만
태사랑 눈팅 3년이면 생존 태국어는 한다고…
- 여기서 얼마나 걸려요?
“한.. 40분 넘게? 오늘은 파티가 아주아주 많은 날이잖아.”
아, 오늘 토요일에 발렌타인데이지.
기사아찌 말마따나 다들 파티에 가는지
11시가 다 되어가는 방콕 도로에는 같은 방향으로 향하는 차들이 무척이나 많았고
아저씨는 길 건너가면 된다며 어느 다리 밑 도로에 우릴 떨궈 놓고 갔지만
음악 들으러들 가시는 태국의 쑤어이 막막인 아가씨들 뒤를 졸졸 따라가니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날이 날인만큼 여자 손에 장미다발을 든 커플들이 제일 많이 보이는 것 같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태국 언냐들 너무 이쁘다.
여자인 내가 봐도 이렇게 예쁜데 남자들은 오죽 흥겨울까ㅋㅋ
slim, route66, flix 등등을 물색하다가 역시 힙합이 제일 익숙해~
슬림 낙찰.
우어우어 한국이랑 달라. 테이블이 뭐 이리 많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DJ가 잘 보이는 왼쪽 코너 쪽에 자리를 잡았다.
사실 우리가 자리를 잡았다기보다 지나가다 사람들 무리에 정체되어 잠깐 서 있었던 테이블의
섹시한 ‘여’(이름이다)가 같이 놀자고 끼워준 덕분이다.
#.
여, 태국, 26(여)
스테판, 싱가포르, 35(남)
여 친구(이름은 기억 속 저 멀리), 태국, ?(여)
이름 모를 여 친구의 외쿡인 남친,
그 외 파란눈 힙돌이 다수.
우리가 합류한 테이블의 멤버 구성은 대략 이쯤 되었다.
인사를 나누자마자 여와 나는 절친모드 플레이를 펼쳤고,
스테판은 처음부터 끝까지 대박매너를 보여줬다.
내가 봐도 반할 미모의 여.
난 지극히 정상적인 남자 취향인데, 여는 보고 또 보게 된다.
(카메라를 안 들고 가 안습)
음료 두 개를 시켜놓고 본격적인 리듬타기!
홍대클럽과 다른 점이 있다면
- 입장료가 없고
- 홀에 나지막한 테이블이 주욱 깔려 있으며
- 사람들은 대부분 그 테이블을 중심으로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놀고
- 비교적 덜 붐비고
- 부비부비가 없음. 빙고★
음악 듣고 놀기엔 최적이었다.
발렌타인데이의 Slim은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나를 테이블에서 떼어놓을 정도였다.
여는 오늘 너무 붐빈다며 살짝 불평이다.
밀리지 말고 버티라며 계속 나를 챙기는 그녀.
조니콕을 만드는 솜씨도 능숙하다.
안 그래도 시끄러운 그 곳에서 태국식 영어 발음까지 알아듣기엔 좀 불편했지만,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친근했다.
누군가와 부딪쳐 손에 음료수가 줄줄 흘러내릴 때도,
계단 위에서 춤추다 발을 헛디뎌 뒤로 기우뚱 하면서 테이블로 골인하기 직전에도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해결하는 스테판 덕에 한국망신 시키지 않을 수 있었다.
한국 오면 연락하겠다며 번호를 저장해가는 스테판.
나도 그의 번호를 적어뒀다가 여에게 전해줄 수 있었다면
마음의 빚을 조금은 갚았단 생각이 들 텐데…
짧은 여행이라 전화기도 없었고, 클럽行에 필기구는 더더욱 없었고
그 날의 만남들이 조금은 아쉽다.
#.
갑자기 내 빈 잔에 새로 만든 여의 조니콕이 주루룩 쏟아져 들어온다.
“이제 이거 마셔.”
- 어, 나 술 잘 못하는데ㅠㅠ 그리고 며칠 전까지 배앓이를 해서 자제하던 중이야.
“아하하하 배가 아팠는데 술은 안 되고 얼음 든 음료수는 마신단 말야?”
말 해놓고도 좀 웃기네. 오랜만에 일탈이다.
집에서는 와인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고 열이 나는데
카오산 길거리 칵테일은 한 잔도 다 못 마시고 버렸는데
조니워커와 콜라를 적절히 섞은 요놈은 술맛도 안 나고, 상태도 안 변하는 게 나름 괜찮네 이거?
테이블을 두고 자리를 조금씩 바꿔가며 모르는 이들과 무상무념에 빠져 본다.
“야.. 너 4년 동안 학교 제대로 다닌 거 맞지?”
- 뭔 소리야~
“아니, 너 노는 거 보니까 학교보다 클럽을 더 자주 다닌 거 아닌가 하고.”
- 풉- 나 지금 1년만이거든여!
생전 처음으로 클럽문화를 접한 친구는 중간에 한 차례 너무 정신이 없다며 잠시 바깥바람을 쐬고 오기도 했다.
한참 놀다 보니 나는 우리 무리도 아닌 백인 두 커플 사이에서
이름도 성도 모르는 한 언냐와 브이를 그리며 사진까지 찍고 있다.
이 언뉘, 완전 feel 충만 하신게다ㅋㅋ
갈 때도 잊지 않고 인사까지ㅎㅎ
미수다의 캐순이를 닮은 요 언니는 새빨간 입술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교정기를 낀 귀여운 여대생과도, 뉴에라를 비뚤게 쓴 힙돌이와도
앞에 선 누구와도 음악과 춤으로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시간,
낯선이 앞이라고 해서 쑥스러워하거나 경계할 건 없다.
그저 귓가에 울리는 신나는 리듬에 "나 지금 완전 즐기고 있어~"하는 표정으로 몸을 맡기면 된다.
게다가 한국에서처럼 끈적한 부비적거림이 없는 만큼 더욱 긴장을 풀고 yeah~~!
그 때의 난 모든 골칫거리들을 힙합비트 속에 묻어 버리고 싶었던 것 같다.
끝물쯤 돼 가니 갑자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노래가 나온다.
노바디 노바디 벗츄! 쿵쿵 쿵쿵~
깐짜나부리에서도 웬 광고차량이 동네가 떠나가라 노바디를 틀고 다니던데..
원더걸스 태국에서 인기 많구나?
이 때였던 거다. 총알춤 선보이다가 뒤로 나자빠질 뻔....
온 몸을 던져 한류를 전파!
하기는 개뿔, 스테판이 날렵히 잡아주지 않았으면 그대로 얼굴 못 들고 집에 갈 뻔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