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보다 THAI - like a movie 2◈
#.
에어매트를 타고 논다 해도 발끝이 땅에 닿지 않으면,
내겐 깊은 물이다.-_-
켄은 점점 내 발이 닿지 않는 곳까지 깊이 들어가고 있다.
- 나 수영 못해. 너무 깊이 들어가지 말자.
“can? can't?”
- 못 한다구. 쫌만 돌아가자.
턱을 하늘 높이 쳐들고 버둥거리며 뭍 쪽을 향해 가다
매트 아래로 쪼로록 미끄러져 버리고 말았다.
- 넌 수영 잘 하나 봐?
“응, 한 5년 정도 했어.”
- 5년이나? 우와, 대빵 잘 하겠네! 내 전 남친도 수영.....
아니다!
한국에 대해 뭐 아는 거 있어?
“배욘준, 잔돈건, 리뵹혼, 김요나… 넌 일본 연예인들 알아? 쿠사나기 츠요시는?”
- 아~ 한국에선 초난강이라고 더 많이 불러. 스마프지?
갑자기 갠짜나요 갠~짜나요 ♬가 생각나 웃음이 터졌다.
- 아라시의 사쿠라이 쇼, 오구리 슌, 하마사키 아유미...
그리고 나 아오이 유우 완전 좋아해!
켄은 하마사키 아유미가 졸업한 고등학교를 나왔다고 했다.
꼬 창을 떠나면 앙코르 와트를 보러 캄보디아로 간다고.
큰 파도가 한 번씩 지나갈 때면
눈에 소금물이 들어가 정신 못 차리는 나를 보며
내내 괜찮냐고 묻는다.
비비적비비적 따가운 눈을 진정시키며
다시 매트 위로 올라갈 때마다
켄은 아기스포츠단의 꼬마를 가르치는 자상한 선생님처럼 나를 잡아준다.
어느새 우리는 에어매트를 가운데 둔 채
서로를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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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이집트, 인도, 네팔을 여행했다는 켄.
그럼 고등학생 때 다녀왔단 얘긴데..
한국의 고딩들은 일명 공부하는 기계라서 그럴 시간이 없다 하니,
일본 고딩들은 공부를 별로 하지 않는다며 멋쩍게 웃는다.
거짓말!ㅎㅎ
혼자 여행하는 게 외로웠다던 그에게
그러면 왜 누군가와 함께 여행하지 않느냐 했더니,
그냥 혼자가 좋다는 간단명료한 답변이 돌아온다.
나도 언젠가는 홀로 여행하면서
지독한 외로움과 맞설 시간이 있을 테지.
그 땐 너처럼 나도 타인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어야 할 텐데...
우리는 그렇게 소개팅에 나온 남녀처럼 호구조사를 하고-_-
좋아하는 것들, 여행지, 앞으로의 꿈 등등을 이야기하며
친구가 되었다.
밖으로 나가면 email주소를 알려달라는 그에게
오케이 했더니 진짜지? 확인까지 한다.
챙 넓은 내 모자가 자꾸 거슬리는 모양이다.
이거 벗으면 바닷물에 쩔은 머리 나오는데..싶었지만
얼굴이 조금 가려졌다 싶으면 계속 챙을 들어올리는 통에 쿨하게-_- 벗어줬다.
머리에 걸린 걸 억지로 당기느라 줄이 끊어져 버렸네. 허허-
살짝 눈이 부시다.
모자 쓰고 있을 땐 내 시선을 들키지 않은 채로 얼굴을 훔쳐볼 수 있었는데, 이젠 무방비 상태니..
뭐 대놓고 봐야지.ㅋ
더헛, 이 아이.. 냅다 내 팔을 둘러 자기 목에 척 감는다.
어느덧 뭇 연인들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켄과 아리따+_+
동생뻘인 애하고 지금 뭐하는 시츄에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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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친구들의 사진을 함께 보며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다.
그 중 한 명은 네 살 연상의 여인과 교제 중이었고,
그게 딱 나와 내 동생의 터울과 같았다.
“그래도 남자로 보이긴 하나보다? 내가 니 친구들이랑 사귀는 거랑 같잖아!”
- 윽-_-;; 그래서 다들 신기해 하긴 해.
몰라몰라.
내가 얘랑 사귀는 것도 아니고,
그냥 놀다 만나서 얘기 조금 나누는 중인데 뭐..
so what?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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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꺼풀 없는 약간 큰 눈에 오똑한 코,
턱수염이 살짝 길어있네.
일본 남자들은 턱수염, 콧수염 많이 기르는 것 같아~ 했더니
자기는 어떠냐 묻는다.
멋있어. 잘 어울려. (아효>_<;;)
주렁주렁 목걸이에 팔찌에 피어싱까지 한두 개가 아니고...
꾸미는 데 관심 많은가 보구나?
1학년 후배들을 볼 땐, 마냥 동생같기만 하던데 희한하게 이 기분은 좀 다르네.
켄은 가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고, 자긴 영어를 잘 못 한다며 애석해했다.
내 영어도 내 맘대로 하는 콩글리시인데..
간간이 침묵이 우리 사이를 지나갈 때가 있었지만, 다행히(?) 어색하거나 불편하진 않았다.
몇 시간 동안을 물 속에 있었는지 모르겠다.
파도에 쓸리고 쓸려 무릎이 모래에 닿을 때까지 와서도
다시 들어가고, 또 들어가고..
- 내 손 쪼글쪼글한 것 좀 봐.
켄도 마찬가지다.
물에서 놀던 사람들이 슬슬 나가는가 싶더니 저 멀리 한두 사람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 사람들이 다 없어졌어ㅋ
“저녁 시간이 다 돼 가나봐.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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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여행지라지만, 처음 본 이성과 이렇게 급속도로 가까워진 건 처음이다.
나라는 사람이 초면에 이 정도의 스킨십을 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않았다.
'연애는 해봤지만 사랑은 못 해봤고,
기억은 많지만 추억은 없고...'
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고,
언젠가부터 누군가와의 만남에 있어
자기방어본능에 충실해 있는 나였다.
그리고 1년 전쯤부터였을까,
내가 원하는 직업을 갖기 전엔 연애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고 생각해왔다.
한 친구가 제대 후 더듬더듬 고백을 해 왔을 때,
난 마음의 여유가 없다며 완곡하게 거절을 하고선
1주일도 지나지 않아 소개팅을 연결해 주는 잔인성을 발휘했다.
붐비는 명동거리에서 예전에 오랫동안 좋아했던 남자와 맞닥뜨리고도
투명인간인 양 그냥 지나쳐 버리기도 했다.
친구들이 지적해준 것처럼,
난 남녀사이에 있어서만큼은 참 이기적이고 나쁜 여자인지도 모른다.
왜 그런지는 아직 나도 연구중이다.
이성과 감정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저울질해 본다.
순간 켄이 움찔한다.
나도 반사적으로 움찔.
뭘 하려 했는지 알 것 같다.
머리 위로 서서히 하늘이 붉게 물들어가고,
우린 앙드레김 패션쇼의 피날레 포즈로 노을을 바라보았다.
“Beautiful..”
프렌치 키스는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