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THAI - 초막과 궁궐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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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THAI - 초막과 궁궐 사이◈

아리따 9 1572

아무것도 아니지..
근데 그 남자가
내 머릿속에서 집을 짓나봐
쿵쾅대. 쿵쾅거려.
내 머릿속 집에서 살 건가봐


[드라마 아일랜드 中]




#.

곧바로 돌아오는 “안뇽하쎄요~”

딱 봐도 태국인 얼굴은 아니고.. 유니폼 차림에 영어도 유창하다.
 

발걸음을 멈추어 길 한 쪽에서 이야기를 나누자니 그의 친구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내게 말을 걸었던 사람은 네팔인 테일러 쏨차이.


나와 친구, 쏨차이, 덕, 엑, 그리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한 명.

우리는 쏨차이의 통역으로, 느리지만 화기애애한 길거리 수다를 떨었다. (어째 써놓고 보니 수다만 떨다 온 것 같네요-_+)


그들의 태국 자랑은 대단했다. 태국의 모든 섬과 해변은 세계 최고의 허니문 여행지란다. 푸껫, 끄라비, 꼬 피피……
그 중 푸껫은 쓰나미를 겪었음에도 단연 베스트라며 손가락을 치켜든다.


“응, 나도 아주 아름다운 곳이라 들었어. 언젠가 치앙라이에서부터 꼬 피피까지 전부 다녀보고 싶어.”


당장 내년에 또 오라는 그들ㅋㅋ

그래, 다시 오려면 돌아가서 열공해야겠지!


스타킹과 연애편지, eak이 닮았다는 (난 잘 모르겠지만;;) 신화 김동완, 노바디,

쏭크란, 카오산,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 태국 음식 등등... 처음 보는 우리에게도 이야깃거리는 충분했다.


별 것 아닌 것에도 깔깔거릴 수 있었던 푸근한 길거리 담소.


그들도 나에게 나도 그들에게 다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
나이와 상관없이 그저 서로의 나라와 문화와 언어가 궁금한 사람들끼리의 무겁지 않은 대화는

여행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특히 호동형님, 이곳에서 한 남자로부터 무한히 사랑받고 계셨다ㅋㅋ




#.

간식거리를 조금 사 숙소로 돌아왔다.


아토리 과자 두 봉지와 내일 먹을 물, 바닐라맛 웨하스, 쪼꼬렛 우유가 든 봉지를 달랑달랑 들고


물이 쑤욱 빠져나가 제법 단단해진 모래사장을 밟으며 어둠 속에서 파도소리를 듣고 있자니


나 혼자만 이 모든 것들을 보고, 즐기고 있는 것이 살짝 미안해진다.



모래사장 가운데쯤에서 눈에 띄게 키가 큰 한 금발언냐는 바다를 바라보며
택견이나 기체조 비슷해 보이는 동작을 사뭇 진지하게 뽐냈다.


누가 그 앞을 지나가건 말건 지금 이 순간
세상엔 하늘과 바다와 바람과 자신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온 신경을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타인의 시선과 상관없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시곗바늘과 상관없이 내 몸이 신호를 보내는 대로,

일상에서와는 또 다른 내면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시간.
 

그래서 여행이 어느 것보다 매력적인 것이 아닐까.




#.

밤이 되니 확연하게 선선해지는 날씨. 이대로 방으로 들어가기엔 뭔가 아쉽다.

rocksand 방갈로는 레스토랑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바 탑이 방갈로의 리셉션이며 리셉션이 바 탑이다.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도 작게나마 마련돼 있고,
나지막한 절벽 위에 마련된 여러 개의 나무 테이블에는 밤이 깊어갈수록 사람이 점점 더 많이 찾아들었다.


저기 앉으면 꼭 뭘 시켜야 하나? 이미 배는 불렀고, 술도 즐기지 않는 우리니 앉았다 가고는 싶은데 잠깐 소심해진다.


에라, 모르겠다. 설마 쫓아내기야 하겠어?


빈 테이블 중 아무데나 무작정 앉아본다. 스태프 중 하나가 메뉴판을 들고 오려하자 어색한 미소로 도리질을 해 보였더니
이후로는 눈치도 주지 않아 편하게 있었다.


딱 눈높이에 있는 조명 때문에 눈이 부시다.

아쉬운대로 세븐일레븐 봉지를 덮어씌워 조금이나마 안구보호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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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도 슬슬 태국에 빠져 들기 시작한 것 같다. 이렇게 좋아하니 만족이 배가된다.

나를 위한 여행, 친구와 함께하는 여행 모두 브라보!





#.

이제 슬슬 씻고 파도소리 들으면서 자볼까?

사실 방은 그닥 맘에 들지 않았었다.

문을 열면 오래된 에어컨 실외기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화장실 겸 욕실벽만 보인다. 덕분에 냄새도 솔솔~ -_-
(구도는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렸습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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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싼 데서 자려니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했는데..

비교적 빨리 씻는 편인 친구가 왠지 오래 걸린다.
한참이나 걸린 것 같은데 빨래는 그대로 들고 나온다.


“아래 화장실 가서 해야겠어. 수압이 너무 세.”


샤워는 잘 해놓고 굳이 왜 거기까지 빨랫감을 들고 가겠다는 건지...?

샤워기를 틀어봤다. 물이 대여섯 줄기 졸졸졸 나온다.

이래서 오래 걸렸구나.
오늘 바닷물에 들어가 놀았으면 큰일 날 뻔 했네.


머리 감는 건 고사하고 거품샤워를 했다간 밤새 헹구지도 못 할 판이다. 샤워하다 성격 버리는 거 아닌지..

수압이 심각하게 가난하다. 이건 옳지 않아~! ㅠㅠ


한참만에 어설픈 샤워를 끝냈을 때쯤, 친구도 어설프게 한 빨래를 갖고 들어온다.

그냥 참을까 하다가 ‘아님 말고’ 하는 심정으로 운을 뗐다.



“숙소 옮길까?”


- 응, 찬성.


“맥시멈 얼마까지 생각해?”

- 한..2000?



와우, 세다.

가이드북을 보고 그나마 1500밧 정도까지 생각했었는데, 친구가 그보다 높이 부르니 선택의 여지가 그만큼 넓어졌다.


어차피 오래 있을 것도 아니고, 이번만큼은 스트레스 받느니 지르자는 심산이 작용했다.


오케이! 그럼 미리 지불한 내일 방값 받아들고 오자!

영업이 거의 끝나가던 리셉션엔 스태프 넷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내일 체크아웃 할 테니 우리 돈 돌리도~ 하는데 이거 영 이상하다.


자기들끼리 태국어로 사바사바하는 것이 이야기가 오래 갈 분위기다.


돌아와서 알고 보니 많은 호텔에선 예정된 날짜보다 일찍 체크아웃하는 경우 환불불가 혹은 일정 퍼센트만 환불해주는 규정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 경우들은 사전에 그런 내용이 공지되어 있는 것이고, 난 이런 규정이 있는지도 몰랐지만


록샌드 역시 체크인할 때 그런 사항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었고, 그런 규정이 써붙어있는 것도 아니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환불해 줄 수 없다는 그들에게 여차저차 이러쿵저러쿵 하여 결국 방값 전부를 받아들었다.


“환불 안 해준단 그런 규정 우리에게 알려준 적 없잖아요?”
했을 때

그 쪽에선

- 아, 그건 우리가 깜빡했어. 
라고 말한 덕분이라고 생각된다.




#.

다음 날 아침, 체크아웃 시간이 되기 전에 새로운 숙소를 구해야 했던 우리는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방갈로 몇 군데를 둘러보았다.


가격대비 위치와 시설이 그나마 괜찮았던 15palms라는 곳에 안착할까 했지만 수압이 록샌드와 별반 차이 없어 패스 (더블룸 1300밧)


10시가 넘어서까지 아침도 못 먹고, 정오를 향해가는 더위에 돌아다니자니 까라진다.


cookies hotel? 좀 번지르르해 보여 비쌀 것 같긴 하지만 에어컨이라도 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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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 있냐 물으니 해변쪽은 풀부킹, 도로변 쪽 방을 보여준다.


쌀수록 좋으니 깨끗하기나 하고 물이나 콸콸 나와주렴. (이럴 때 한국이 살기 좋단 걸 새삼 느낀다.)


록샌드보다 3배 이상 비싸진 요금. 하지만 낙찰!

이미 복대 속 봉투에 넣어두었던 돈마저 땀에 절어 눅눅해진 터였다.

방이 뭐 이렇게 좋담~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입니다. 뭐 전에 쓰던 숙소에 비하면 궁궐이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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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였다면 불가능했겠지만 둘이 나눠 부담하니 1박에 1000밧.

700밧 더 투자해서 얻는 효용이 이 정도라면 하루 정도 질러줄 수 있어!
환호를 지르며 짐을 옮겼다.






#.

이제 화난 위부터 달래주어야겠다. 방을 보러갔던 15palms로 갔다.
아침식사 시간도 점심식사 시간도 아닌 어중간한 시간이라 손님이 없었다.


나무그늘 아래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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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털 야옹이 한 마리가 발 밑으로 자꾸만 기어온다.

사람 좋아하는 건 알겠지만, 제발 나만은 피해주지 않으련? 50.gif


반면 친구는 고양이를 참으로 좋아라 한다.
왜 자기한텐 안 오고 싫다는 나에게만 가냐며 때아닌 질투를 한다. 아놔;;7.gif

 

냥이야~ 너 때문에 내가 발을 땅에 내릴 수가 없어요!

 

친구가 먹을 것으로 아무리 유혹해봐도 꼼짝을 않는다.
불쌍한 표정으로 주문을 받아간 종업원에게 sos를 청하니
질질 끌려가는 이녀석..

이후로도 두 번이나 나를 찾아왔다 추방당하고는 결국 건너편 빈 의자 밑에 자리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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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내가 앉아있는 여기가 원래 니 자리였니?-_-;;



#.

생각지도 않았던 숙소도 잡아두었겠다, 배도 부르고, 방은 이보다 더 시원할 수 없고, 행복하다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소화 좀 시키고 본격적으로 수영!














은 못하니까 튜브 타러 나가줘야지!


방에 있던 돗자리와 비치타월을 가지고 룰루랄라~


해변가 출장 마사지사들에게서 튜브를 빌렸다.
하루 종일(오후 6시까지)에 40 혹은 50밧.

난 둥그렇고 큰 고무튜브를 상상했지만 그런 튜브를 빌려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온통 에어매트뿐... 사람들을 보니 에어매트도 편할 것 같다.

눕거나 엎드려서 둥둥 떠다닐 수도 있고, 아이들을 보니 둘이 같이 놀기도 더 좋아 보인다.


내 키보다 훨씬 긴-_- 에어매트를 질질 끌고 바다로 들어갔다.
나도 저 아저씨처럼 엎드려서 파도 타야지~


올라타자마자 쭈욱 미끄러져 버린다. 균형이 잘 안 잡히나? 친구씨 도와줘~


친구가 매트를 잡아주고 올라가도 결과는 마찬가지. 이걸 왜 못 타냐? 나와 봐.
하지만 그녀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은 잘만 올라앉아 있는데 우린 왜 이런댜?24.gif


그래도 한 번 누워보겠다고 온갖 부산을 떨고는 겨우 올라가서 엎드려 있는데, 큰 파도 한 번이면 게임 끝이다.


꼬 창 바닷물 역시 짜다는 걸 눈과 입으로 확인해 주고서야 미련을 버리고,
매트를 가로로 해 둘이 사이좋게 타고 다녔다.



"언제 또 이래볼까?"
 

- 그러게. 우리 얼른 돈 벌어서 또 오자.


"오키, 그 땐 진짜 에메랄드빛 바다가 있는 곳으로 가는 거야. 이번엔 일정이 짧아서 아쉽지만 담번엔 그런데서 실컷 놀고 오자."


- 응응, 나 해변에서 해먹에 누워 낮잠 자보는 게 로망이잖아.ㅋㅋㅋ


"물이 차지도 뜨뜻하지도 않고 딱 좋다~ 꼬 창 오길 참 잘 했다 우리."


- 나, 혼자 왔으면 이런데서 심심해 죽었겠다. 고마워 친구

9 Comments
큐트켓 2009.02.23 06:07  
조명등 언듯 봤으면.. 비닐봉지 씌운건지 모를뻔 했네요  ㅎ
나도 맨처음 자유로갔던 여행지가..꼬창이라서 추억이 너무 많은데...
선착장앞에 웰컴투 꼬창 볼때마다 처음 배에서 내릴때 생각이나요~
언제든 또 다시 가고싶은곳 ~~~ㅎㅎ
아리따 2009.02.23 23:51  
맞아요~ 다음에 또 가게 된다면.. 가보지 않은 다른 해변도 구경해 보고 싶네요:)
비닐봉지..ㅋ 사실 한국이었다면 쪽팔려서 못 그랬을 텐데 말이죠ㅎㅎㅎ
올드벗굿 2009.02.23 12:14  
음~~ 클리프 엔딩... 궁금증을 유발하게 하는 드라마식 구성법! ("자꾸만 누군가와 눈이 마주친다"에서 끝내는 센스!) 게다가 글 모두에 의미심장한 인용문을 복선으로 배치하는 트루기!!! 정말 갈수록 글쓰기의 전형을 보여주십니다 (^^). 재미있어요! 계속 부탁요~~
아리따 2009.02.23 23:52  
트루기씩이나..ㅎㅎ;;;
힘나는 댓글 감사드립니당~ 얼른 담편 올리도록 부지런히 끄적여 볼게요:)
김우영 2009.02.23 13:37  
팟타이가 너무 맛있어 보이네요...

음.. 재미나게 보고 있답니다..~~!!

끌쓰는 솜씨가 담백하시면서.. 은근 중독감이 있네요..

화이팅~~!!!
아리따 2009.02.23 23:54  
맛있었어요~ㅎㅎ

컵쿤 막막!
전 부장님 여행기 기다리고 있는데,, 맛있는 것들 사진 정리하시느라 바쁘신거죠?>_<ㅋ
김우영 2009.02.24 13:19  
ㅡ,.ㅡ;;; 부담백배입니다.. ㅡ,ㅡ.;;
하늘을품어본 2009.02.24 15:27  
여행지에서는 작은거에도 반갑고(저도...엘쥐 에어콘에 반가워하고 그랬죠) 처음에는 주변을 신경쓰다 점차 주변과 동화내지는 주변을 잊게 되는거 같아요. 아우~  웬지 혼자가게 될거 같은데 다 좋은데 숙소랑 맛난거 먹을 때 드는 돈이 좀...ㅠㅠ 합니다.
아리따 2009.02.24 16:04  
맞아요.. 나눠내면 반이 되는 부담이, 혼자 다 내려면ㅎㄷㄷ
자기가 있는 공간이 더 이상 새롭지 않고 일상처럼 익숙하게 느껴질 때,,
그 때가 또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하는 때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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