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보다 THAI - 미남과의 수다 ◈
여기서 미남은 미쿡남자를 가리킴을 알려드립니다!
여행 중의 안경쓴 캐쥬얼한 차림의 그는 쏘쏘했지만,
슈트를 차려입은 사진을 보니 원래 미남의 뜻으로 칭해도 되겠군요.ㅋㅋ
-----------------------------------------------------------------------
#.
버스는 휴게소를 두 번이나 들르고서야 선착장에 도착한다.
두 번째 휴게소에서 버스를 내릴 때, 한 남자가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왔다.
"한국분이세요? 저 한국에 살아요."
- 어머, 반가워라. 네 맞아요.
"한국 어디서 왔어요? 서울?"
- 아니, 00알아요?
"아~ 안 가봤는데, 알아요."
각자 자연의 부르심에 순응하느라 여기까지 하고, 나와 친구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본다.
"왜 TV보면 여행왔다가 거기가 좋아서 눌러 살고 그런 경우 있잖아~ 그런 거 아닐까? 거긴 역사 유적도 많고 하니까 그럴 수도 있지."
- 그런가? 아니면 뭐 한국에서 일을 하든가.. 영어를 가르친다든가..
"근데 외국인이 한국말 되게 잘한다. 발음이 외국인 같지 않아~"
- 물어보고 싶다. 그치?
#.
선착장에서 얼마 간 기다리니 꼬 창으로 우릴 데려갈 페리가 도착했다.
버스 몇 대에서 내린 사람들이 한꺼번에 줄을 만들어 낸다.
1층엔 차, 2층엔 사람들이 탄다.
자리는 충분했고, 우린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살짝 비릿한 바다내음이 맡아진다. 바람도 시원하고..
밴드가 떨어질 날 없었던 불쌍한 내 발..
(허락없이 자기 발 사진 올렸다고 저를 죽이려들진 않겠죠?=_=)
사진을 찍으면서 출발을 기다리는데 뒷자리에서 누군가 "Girls!"하고 부른다.
돌아보니 아까 그 외쿡인. 아, 안 그래도 어떻게 한국
-그것도 외국인이 많이 살지 않을 법한 그 도시-에 사나 궁금했는데 잘 됐다ㅋㅋ
"hi, again! 한국어 발음 좋던데요. 배웠어요(한국말)?"
알아듣지 못한다;;;
- 조금, 할 줄 아는데, 잘 못해요. 한국 tv에 외국인 여자들 나오는 show있죠? 거기 나오는 여자들은 한국어 정말 잘하던데요.
"아~ 미녀들의 수다? 아니, 당신 발음도 훌륭한데! 한국에 얼마나 살았어요?"
- 2년. 한국에서 일하거든요.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으려다가 그만둔다. 이게 private한 질문인지 아닌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구나~"
해서 시작된 대화는 꼬 창에 도착해 썽태우를 타고 헤어지기 전까지 계속됐다.
덕분에 문장 만드느라 뇌에 기름칠 좀 해줬고, 입 안의 침은 바싹바싹 말랐고.
나는 한국에 사는 한국인이고, 영어는 외국어로써일 뿐인데 뭐그리 쫄았었는지..
#.
그는 미국 A주 출신으로 한국 모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했다.
무한도전을 좋아하지만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다. 그래도 행동만 봐도 웃기단다. 멤버들 이름까지 줄줄 꿴다.
한국여행을 나보다 많이 했고, 제주도와 부산이 특히 좋았단다.
지금 사는 곳은 너무 조용하고 지루하며, 자기는 맥주가 좋은데 학생들은 만날 소주만 먹는다고 했다.
김치는 너무 맵고, 홍대 클럽도 가봤단다. 홍대 주변은 외국인이 너무 많아서 싫다는데,
외국인이 홍대에 외국인이 많아 싫다니ㅋㅋ 그럴 수도 있나 보다.
가끔 모르는 사람 앞에서 실수할 땐 캐나다인이라고 말한다나?
빅뱅, 이효리, 원더걸스를 알며 세계 거의 모든 나라를 여행했다.
그리고 지금은 라오스에서 넘어오는 길이다.
우리보다 10만 원 정도 비싸게 주고 베이징을 경유해 방콕으로 왔고, 지금 친구들이 꼬 창 lonely beach에 가 있어 자기도 그리로 간단다.
아무 것도 안 하고 먹고, 자고, 책 읽고 놀 예정.
방콕에선 한국인이 많은 게스트하우스에 있었다 하니 숙소를 옮기란다. 영어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라면서..
(안 그래도 옮기고 오는 길입니다 선상님~ 쿨럭;;;)
명함을 하나 내민다.
대화 중 그가 먼저 나이를 물어왔다.
에라이, 아까 올 해 졸업한다고 얘기해버렸으니 에누리할 여지가 없다. -_- 정직히 대답해 줬다.
"나는 몇 살 같아 보여?"
둘이 잠깐동안 고민했다.
강사인지 정교수인지 몰라도 일단 professor이니 어느 정도는 먹었을 거고,
그렇다고 그렇게 많이 들어보이지는 않지만 한두 살 정도는 예의상 내려줘야겠지?
해서
-32? 그것보단 좀 더 어려보이지만.
했더니
이런.. 센스없는 여자가 되고 말았네.
자기 나이를 맞춘 사람은 처음이란다. 다들 20대로 본다던데..미안해라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한국 젊은이들의 구직난에 대해 이야기하던 대목에서 그는
"because of the 경제위기…"라고 해 조금 놀랐다.
얼마나 그 단어를 많이 들었으면 그것보다 쉬운 한국어는 못 알아들으면서, 저 말을 알고 영어 문장에 섞어 써먹기까지?
어찌됐건 그와의 대화는 즐거웠고 미국인 앞에서 짧은 영어를 어버버거리는 경험도 유익했다.
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 한국인에 대해 조금은 알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고.
하지만 그 대화에선 '그가 느낀 진짜 한국'의 냄새를 맡을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그가 가르치는 학생들 또래였던 우리들에게 나름대로 화제를 거르고 걸러 내뱉었을 것이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고..
뭐 이런 생각들이 '외국인이 살기에 한국이란 나라는 그리 편하지는 않다'는, 전적으로 내 시선이 만들어 낸 자격지심이라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애니웨이, 좋은 여행이 되라는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
페리가 선착장에 도착하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썽태우들이 순식간에 만석이 돼 버린다.
그 중 하나에 어렵게 올라탔는데 맨 끝자리다. (섬 나올 때도ㅠㅠ)
차 지붕에 짐 놓을 자리조차 부족해 맞은 편 여자의 커다란 캐리어를 가운데 놓고 탔는데,
차가 방향을 꺾을 때마다 캐리어가 밀리지 않도록 한 쪽 발로 힘껏 버텨줘야 했다.
한쪽 팔로는 내 몸이 썽태우 밖으로 튕겨나가지 않도록 조낸 버티는 거다.
속력을 높이는 썽태우 덕에 바람은 더 세져 눈도 잘 못 뜨겠는데
반바지만 입은 백인 하나가 오토바이로 꽁무니를 바짝 쫓아온다.
#.
핫 싸이 카우로 들어서면 맨 처음 보이는 KC 그랜드 리조트 앞에서 내려 숙소 찾기에 돌입.
이렇게 좋은 리조트를, 그냥 가로질러 지나갈 수만 있다니ㅠㅠ
풀빌라에 무척이나 호화로워 보이는 시설들을 열심히 지나쳐 간다.
해변 끝쪽으로 제법 걸어가서야 소박해보이는 방갈로들이 나타났다. 가장 먼저 들어가본 곳은 star city방갈로.
리셉션의 백인 남자가 앞장서 방을 보여 주는데,
이거 뭐 방갈로 가는 길이 등산 수준이다.
침대 하나에 욕실이 딸린 방. 샤워기를 틀어보니 물살도GG / 패스!
끝쪽에 있는 Rocksand 방갈로로 향했다. 함께 운영하는 레스토랑 입구를 보니 그나마 번듯해 보인다.
공동화장실/샤워실을 쓰는 조금 더 싼 방 vs 욕실이 딸린 1박에 600밧짜리 방
핫샤워도 된다고 했다.
눅눅해 보이긴 했지만 아쉬운대로 2박을 하기로 하고, 짐을 대충 부린 후 저녁을 먹기 위해 해변을 걸어나왔다.
#.
노을 지는 해변을 걷는 시간은 환상적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저녁을 먹을 만 한 곳을 물색하던 중이었는데
독일인 남자 둘.
정확히 말하면 할아버지 한 분과 아저씨 한 분에게서 어색하게 빠져나오면서 독일인에 대한 환상은 금이 갔다.
친구의 사진을 찍어주던 내 렌즈 안으로 얼굴이 시뻘겋게 탄 한 남자가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들어온다.
또 '일본인이냐'로 시작하는 대화.
나는 얼굴도, 눈도, 코도 동글한 게 아무리 봐도 한국인처럼 생겼는데 외국인들은 열에 일고여덟은 일본인이냐 묻는다.
돌아와서 엄마에게 이야기하니 간단명료한 답이 나왔다. "애가 쪼그마하니까 그렇겠지."
할아버지는 누런이를 씨익 드러내면서 웃으신다.
"내 결혼은 쫑났어."
헐;; 안 물어봤는데.. 보자마자 웬..
나이 차이가 많아 보이는 둘이 함께 다니길래 부자지간이냐 물으니 그냥 친구란다.
갑자기 다른 한 명이 가방에서 뭘 잔뜩 꺼내 손에 올려놓고 보여준다. 해변에서 주운 조개껍데기들이다.
여행하는 해변마다 모아서 병 속에 넣어 친구들에게 선물한다고 자랑을..
노털옵하께서는 계속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을 걸어오신다.
"내가 꼬 창의 끝내주는 뷰포인트를 알고 있거든? 우린 오토바이를 빌려서 다니고 있는데, 태워줄테니 같이 가보지 않을래?"
-하하 뭐.. 고마워요. 근데 우린 지금 너무 배가 고파서..
"거기 가면 꼬 창이 한 눈에 내려다 보여."
- 지금은 좀..
"그럼 내일은 시간 어때? 숙소가 어디야?"
- 어.. 우린 내일 방콕으로 돌아갈 예정이예요.(거짓부렁쟁이)
아우 배고파. 안녕~
뭐냐 이건. 찝찝한 기분 금할 길 없다.
#.
여행을 하면 단순해진다.
배고프면 예민해지고 배부르면 기분이 좋다.
소화도 시킬 겸 길을 따라 쭉 걸어보았다.
여행사, 약국, 식당, 호텔, 마사지샵 등등이 죽 늘어서 있다.
뭣도 모르고 산 그린망고를 약간의 실망 속에 우적거리며 꼬 창 라군 앞을 지나는데
또 누군가 "곤니찌와" 한다.
태사랑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태국어 한 토막을 써먹어줬다.
-훗, 콘 까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