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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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3.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songsl 19 1547
돈나 게스트 하우스에 빈 방이 없어 좌절 후, 카오산로드와 람부트리로드를 서너 번 왕복하고 나서 나는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다섯시가 다 되어 결국은 D&D로 갔다.

워낙 큰 inn이라 빈 방이 있었다. 키 디파짓 500밧과 방값 550밧을 냈다.
한국인이라니까 프론트에서 좋아한다.
 - 안뇽하세혀, 감사함니다.
시키지도 않은 한국어 자랑을 했다. 사와디캅, 컵쿤캅으로 응대 해 주었다.
엄청나게 피곤한 몸을 이끌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어서 내려오라는 뜻으로 버튼을 두어 번 세게 눌렀다.

그 때, 어설픈 한국말로 또 누군가 나를 불렀다.
고개를 돌려보니 태국인인가 외국인인가 하는 아시아 애들이 나를 부르는 거였다.
몇 마디를 나누고 있는데 몸이 몹시 피곤했다. 말 하기가 싫을 정도로.
그도 그럴 것이 오늘 오전 5시에 일어나서 비행기 타고, 또 내려서 버스타고,
또 내려서 세 시간이 넘게 카오산로드를 찾아, 또 빈 방을 찾아 배낭을 메고 걸어다녔으니 말이다.
엘리베이터가 도착 하고, 난 그들에게 엘리베이터가 왔으니 다음에 얘기하자며 인사를 했다.

방에 들어갔다.
아, 이 달콤한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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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를 했다.
머리를 말리려니 헤어 드라이어가 없었다.
이럴 것을 예상하고 분당 롯데마트에서 드라이어를 사온 것이 다행이었다. 9,800원짜리 값어치 있는 행동.

머리를 말리고 거울을 보니 초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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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속으로 몸을 파고 들었다.
그리고 오늘 밤엔 RCA에 가야지. 하는 생각에 매듭을 지을 무렵, 나는 잠이 들었다.
그 때였다. 전화가 왔다.
리셉션에서 전화가 온 것이다.
- 헬로오오오우~
아까 한국말로 귀여움 떨었던 리셉션의 그 여자인데, 이번엔 왜 여우같은 목소리로 이러지, 싶었다.
-  너 지금 혼자지. 지금 아래에 어떤 애들이 너보고 오늘 저녁에 할 거 없으면 같이 놀자는데, 어떻게 할래? 내려 올거야?

뭔가 싶었다. 아까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걔네들인가? 아니면 다른 애들인가?
그것도 아니면 그냥 카오산 로드에 있는 이상한(부정적) 사람들인가?
잠이 섞여있어 발전적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따라서 반사적으로 소심함이 또 발동 되었다.
나는 고맙고 괜찮다며, 그리고 약속이 있다는 무시무시한 뻥까지 동원해가며 핑계를 대고는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건물 밖에서 들려오는 토요일 밤의 열기에 젖은 음악 소리를 들으며
외로운 혼자 여행객에게 내민 따뜻한 손을
오늘만 몇 번째 거절 해 버렸는지
생각해 본다.

아유 또라이야 이런 기회를 엮어가면서 여행을 하는거지
라며 괴성과 함께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러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엘리베이터로 올라온 아까와 달리 계단으로 미끄러지듯 뛰어 내려갔다
리셉션으로 후다닥 다가섰다.
혹시나, 해서 였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http://blog.naver.com/songsl/40058733929
19 Comments
taio 2008.12.14 20:21  
앗..여행자는 쉬어도 밖에서 쉬어야 하는데.. 그래도..조만간  흥미로워 질꺼 같아요..기대 만~~땅.
songsl 2008.12.14 22:15  
^^; 여행 초반은 뭐랄까 좀 우울했어요. 흥미롭다기보단, 잔잔한 깨우침을 얻던 시기랄까요-.-
Leona 2008.12.14 21:23  
D&D에서 묵으셨군요...ㅎㅎㅎ
첫인상은 참 좋았죠...필요 이상으로 친근하게 대해주는 직원들...
그래서 남부 돌고 다시 방콕에 돌아왔을 때 두번 생각할 것도 없이 또 D&D에 숙소를 잡았죠.
그리고 두번째로 갔을 때 전 그곳의 두 얼굴을 봐버렸죠...아주 끔찍한.
물론 그곳엔 여전히 좋은 사람들도 있지만 전 이제 D&D 앞에만 지나가도 욕이 나오네요.
송슬(ㅋㅋ네..)님은 그 또 다른 얼굴과 마주치는 일을 피하셨길 바랍니다.
songsl 2008.12.14 22:17  
아하, D&D에 그런 추억이 있으셨군요!
저는 아직 좋은 추억만 있어서 다행입니다 ㅋ_ㅋ;
남부를 가면 어디어디를 가는 건가요?
푸켓 이런덴가요? 치앙마이랑 방콕 밖에 안가봐서.... 부럽습니다!
Leona 2008.12.15 01:41  
전 '태국은 바다다'라고 생각하기땜에 표 끊을 때 항상 방콕-푸켓 왕복 국내선을 포함해서 끊어요...
지난번엔 풀문파티 땜에 꼬팡안, 사무이도 갔었지만 기본 코스는 방콕-푸켓-피피에요...
시간되면 끄라비나 쑤린도 들러보고 싶긴한데...
글구 치앙마이랑 빠이도 그렇게 좋대서 담엔 치앙마이가는 국내선을 끊어보려구요...
정말 못가본데가 넘 많아요...가고싶은 곳도 아직 한참 많고...
열심히 돈벌어서 계속 나가야죠...^^
속빠진만두피 2008.12.15 12:54  
쑤린이랑 치앙마이~~♡
아놔 난 방콕말고는 가본데도 없는데,
왜 쑤린이랑 치앙마이가 이렇게도 그리운걸까;;;;
타쿠웅 2008.12.15 20:43  
여기서 우린 조사를 해봐야해...
레오나는 항상 송슬님글 리플 1등할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from. 셜록 탁쿵
songsl 2008.12.15 21:17  
타쿠웅 // 실제로 1등 하신 건 별로 없더군요 ㅋ_ㅋ((수사에 포함시켜주십사))
Leona 2008.12.16 20:32  
제가 여행기 올리려는 시간에 보통 송슬님 글이 올라옵니다.
그리고 저는 송슬님 글이 마음에 들어요. 공감가는 부분이 많아서.
그리고...

from. 애거서 레오나
songsl 2008.12.15 21:16  
leona //아하, 지금은 태국 갈 생각이 별로 없는데, 언젠가 가게 된다면 푸켓과 피피에 꼭 가볼게요 :-)
Leona 2008.12.16 20:34  
3-4개월 지나보세요...태국병 슬슬 고개들기 시작할테니까요...ㅎㅎ
그땐 꼭 남부도 가보시길...^^
smdfur2 2008.12.14 22:49  
엇.. 자고 일어나신 모습 완전 귀여우세여 ㅋ
songsl 2008.12.14 23:13  
ㅋ_ㅋ 기분 좋네요.
리진 2008.12.15 10:18  
일상의 작은 고민들, 그리고 섬세한 감정이 묻어나는 글이 무척 좋네요. 잘 보고 있습니다~ ^^
songsl 2008.12.15 21:19  
와 칭찬을! 감사합니다. 힘이 되네요 :-) 힘입어 오늘 하나 더 쓰고 잡니다.
2008.12.15 14:40  
헐, 같은 날 같은 곳에서 묵었네요 ~ 근데 한 번도 못 본 거 같은데 !! 그리고 제 방은 창문이 없어서 감옥 같았는데
songsl 2008.12.15 21:19  
배낭여행자에게 게스트하우스란 단지 잠을 자는 곳 아니었나요 ㅋ_ㅋ
그리고 창문이 없는 게 외려 나았을 지도 몰라요. 카오산 소음은 깔때기 끼고 저 창문으로 다 들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ㅡㅡ
Leona 2008.12.16 20:40  
D&D 있는동안 딱 하루 창문있는 방에서 묵었는데 너무 시끄러워서 밤 꼴딱 샜습니다.
어느 클럽에서 무슨 음악이 나오고 누가 누구에게 작업거는지 다 알 정도로...;
창문없는 방은 습하고 냄새나고 창문있는 방은 시끄럽죠.
조식포함에 나름 수영장 있고 카오산이랑 가깝다는거 외엔 가격대비 메리트 없어요.
songsl 2008.12.16 20:51  
어느정도 동감합니다.
저는 저 또한 피곤하고 맛이 간 상태라 그런 곳에서도 꿀잠을 잤답니다 :-)
그러고보니까 소음이 너무 세서 동영상으로 촬영한 것이 있는데, 나중에 올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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