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카오산을 찾아라
저번 여행 처럼 수쿰빗의 깔끔한 호텔에 미리 예약을 해 놓은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편안하게 '타논 카오산'을 외칠 상황도 아니었다.
가난한 나는 저렴한 게스트하우스가 즐비한 카오산 로드에 가기 위해 택시도 리무진도 아닌 34밧 짜리 시내 버스를 타야 했다.
바쁜 수완나품 공항에서 사람들은 제 갈길을 향해 걷고 있었고 나는 어쩔 줄을 몰라 서 있었다.

리무진 말고 버스를 타고 카오산에 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인포메이션 데스크에 물으니,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버스 터미널 까지 가야 한다는 대답을 얻었다.
곧바로 셔틀 정류장으로 가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오랜 더위에 셔틀 운전기사들이 코사멧따위로 모두 피서를 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무렵,
커다란 버스가 그게 아니라며 내 앞에 섰다. 알았다고 하고 올라섰다.
그리고 곧 셔틀에서 내리고 카오산으로 가는 556번 버스를 탔다.
외국인들은 잘 몰라 태국사람들만 이용한다는 버스 안에는 왠 서양 여인내가 한 명 타 있었다.
그러고 보니 태국인이 아닌 사람은 그녀와 나 뿐이었다.
뒷자리에 앉아 배낭에 붙은 시큐리티 태그를 보니 쿠웨이트에서 넘어온 장기 여행자로 보인다.
같이 카오산에 내릴 것 같아 말을 걸고 싶었지만,
여행의 시동이 걸리지 않았는지 입이 좀 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소심했다.
(우측에 머리를 묶고 앉은 여인)
버스티켓을 끊는 것을 보니 역시 나와 같이 카오산에 내리는 친구였다. 여행자는 딱 보면 여행자를 안다.
길이 막혀 한 시간이 넘었을까 버스 안내원이 카오산 로드라고 하여 얼른 내렸는데, 이상한 곳에서 내렸다. 물론 그 친구도 내렸고.
나는 무언가 민망하여 더 앞서 무작정 걷다가 그만 길을 잃었다.
아니, 길을 잃었다기보다 내릴 때 부터 난 여기가 어딘지 잘 몰랐다.
지도를 꺼내봐도 전형적인 길치에 방향치인 내가 카오산이 어디쯤인지 알 길이 없었다.
한 시간을 헤멘 것 같다. 사람들을 따라 걷다 강물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기도 했고, 재래시장을 만나기도 했다. 멍 하니 서 있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설명을 제대로 못한다.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처음부터 다시 해 보자는 마음으로 버스를 내렸던 그 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도를 펼친 후 최대한 정신을 집중 해 보았다.
그 때, 누군가 나와 함께 지도를 같이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 옆을 보니, 아까 버스에 함께 탔던 그 서양 여인내였다.
- 안녕
- 안녕
그녀는 나 처럼 두 번째 방콕행인데, 역시 나처럼 버스는 처음이었는지 내려서 어리버리하게 길을 찾는 중이었다.
그래도 한 명 보다는 두 명이면 나았는지, 조직적으로 길을 물어보고 다니니 카오산으로 가는 실마리를 찾았다.
독일에서 이 곳을 여행하기위해 그녀는 20시간이 넘게 잠을 못자며 비행기를 탔기 때문에 매우 피곤한 상태라고 했다.
그런데 얼굴은 웃고 있었다. 오고싶던 여행을 와서 그런가?
아까 태그로 봤던 쿠웨이트는 단순히 루프트한자에서 경유하는 지역이였고, 방콕에 2주 정도 머무를 예정이라고 했다.
아, 처음부터 아는 척 하고 같이 다녔으면 빨리 찾았는데.
소심했던 나를 한탄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 너 아니었으면 나 오늘 방도 못 잡았을거야
- 아, 너도 카오산에서 묵을거야?
- 그럼, 넌 어디에 묵어?
- 저번에 지냈던 곳이 싸고 좋았는데, 정확하게 기억은 잘 안나. 카오산 로드에서 약간 떨어져 있어.
길을 걷다가 그녀는 이 쪽으로 가면 자기가 갔던 게스트하우스가 나온다고 했다.
나도 따라갈까 하다가 소심함이 또 발동하여, 그만 인사를 해버렸다.
- 나는 카오산 로드쪽으로 가 볼게.
그녀는 조금 당황하더니, 인사했다.
- 그래, 좋은 여행 되길.
- 좋은 여행 돼.
그리고 길을 걷다 보니 버거킹이 보였다.
카오산로드 앞 정거장이라며 버스를 내린 뒤 두 시간이 다 되어,
드디어 카오산 로드를 찾은 것이다.
그런데, 카오산을 찾은 건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고쳐진 줄 알았던 이 소심함은 이제부터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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