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자유여행기 (방콕 뒷골목 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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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자유여행기 (방콕 뒷골목 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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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기는 15 세 미만 청소년이 읽기에 부적절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보호자의 읽기지도가 필요합니다.

...... 전 편에서 계속.

눈을 감으면 눈부시게 화려하던 영상은 사라지고 맑은 풍경소리가 은은히 들려올 것이라고’. 그 말을 믿고 눈을 감아 보았다. 풍경소리가 들리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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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에 지쳐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데 풍경소리가 들릴 리 만무했다. 옆에 단청이 칠해진 건물이 보이자 그리로 서둘러 걸어 들어갔다. 힌두교 신화 라마야나가 태국인의 상상력에 의해 각색되어 벽화로 그려진 화랑에서는 좀 오래 머물러 있었는데 실내라 좀 시원했기 때문이었다.   

 

왕궁에서 카오싼은 가까웠다. 다만 방람푸(카오싼) 선착장에서 왓차나쏭크람의 절 구내를 통과해서 카오싼으로 들어가는 지름길이 좀 복잡해 다소 시간을 지체했다. 카오싼과 람부뜨리거리는 아직 오전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왕궁에서 카오산으로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배낭여행자들이 먹고 자고 마시고 즐기는 소란스럽고 신나는 곳이지만 그건 해가지고 난 다음의 이야기다. 거리거리 마다 여행자들을 상대로 한 선물가게, 옷 가게, 잡화점, 환전소, 선술집, 식당, 그리고 노천카페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람부뜨리 거리에 있는 위앙따이 호텔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이 호텔을 찾은 이유는 바로 그 옆에 자리잡고 있는 짜이디 마사지를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고급스러운 곳은 아니지만 태사랑 등 태국 관련 사이트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업소였다. 마지막 날 고급 스파를 예약해 놓은 상태라 오늘과 내일은 가볍게 몸을 푸는 정도의 발 마사지와 전통 타이 마사지를 일정에 잡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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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마사지 30 분 전통 타이 마사지 한 시간 해서 모두 한 시간 반을 받았는데 고작 250 바트를 받는다. 캐나다화 8 불도 안 되는 가격이다. 그런데다가 차와 과일까지 공손하게 갖다 바치니 손님인 내가 송구스러울 지경이다. 기분이 그래서만이 아니라 마시지를 받고 나니 정말 몸이 날아갈 듯이 가벼워 졌다. 아침에 많이 걸어서 다리도 피곤했는데, 발의 피로감도 사라졌다. 팁까지 100 바트 짜리 석장을 주고 담당 테라피스트의 전송을 받으며 다시 람부뜨리 거리로 나왔다.

 

낮의 카오산거리는 별로 볼 것이 없었다. 곧바로 환전소로 가서 캐나다화 300 불을 바트화로 환전했다. 어젯밤 공항 환전소보다는 유리한 환율이었다. 그래 봤자 몇 십 바트 차이지만 약간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노천카페에 들러 수박주스를 하나 사 들고 파라솔 아래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이것 저것 통밥을 굴려보기 위해서였다.

 

영화 ‘American Gangster’에 나온 장면 하나가 생각났다. Frank Lucas(덴젤 워싱턴 분)가 헤로인 밀매조직의 중개인을 만나기 위해 방콕에 왔을 때 인력거를 타고 나타났던 곳. 한자간판이 많았던 것으로 봐서 차이나타운일 것이다. 실제 영화촬영장소가 방콕이 아닌 치앙마이였다는 기사를 어디서 읽은 것 같은데 어쨌거나 당장 가 보자고 마음먹었다.  

 

1968 년이 아니니 인력거를 구할 길은 없었다. 비슷한 기분을 내기 위해 뚝뚝을 찾았다. 모터사이클을 삼륜으로 개조해 만든 뚝뚝은 전혀 내 취향도 아닐 뿐 아니라 쾌적하고 시원한 택시에 비해 싸지도 않았다. 호객을 하지 않고 얌전히 앉아있는 기사를 불러내 50 바트를 내기로 하고 야왈릿 거리(차이나타운 중심가)까지 가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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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왈릿 거리는 영화에서처럼 사장바닥 같은 거리가 아니라 교통체증으로 혼잡하기 짝이 없는 전형적인 대도시 타운이었다. 금은방, 한약방이 많이 눈에 띄었다. 차이나타운이라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바비큐 오리와 소이치킨 등을 갈고리에 걸어 매달아 놓은 식당들도 있었다. 윈도 안에 걸어놓은 바비큐 덕(duck)이 반가와 사진을 찍고 돌아서는데 옆 가게가 가죽제품을 파는 도매상이다.

 

나는 여행 다닐 때는 물론이고 평소에도 지갑을 두 개 가지고 다닌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습관이 들어서다. 언젠가 멀쩡한 새 지갑이 있는데 누군가에게 아주 고급스런 악어가죽 지갑을 선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냥 지갑 두 개를 같이 가지고 다니게 된 것이다. 이제 지갑을 두 개 가지고 다니는 것이 당연한 습관처럼 돼 버렸다.

 

위험을 분산할 수 있는 이점이 있어 그 번거로운 습관이 유지되는지도 모른다. 하나를 잃어버려도 다른 신용카드와 현금이 있는 지갑이 있으면 패닉에 빠지지 않고 계속 작동이 가능하다. 그 두 개의 지갑 중 하나가 너무 낡아 바꿀 때가 됐다.

 

가죽제품 도매상에서 잠금 버튼이 달린 가오리지갑하나를 집어 들었다. 과묵하게 생긴 50 대 남자가 잠자코 계산기를 내게 내민다. 계산기는 왜 주나 하고 받아서 들여다 보니 1500이 찍혀있다. 가격이1500 바트란 말일 것이다. 나도 잠자코 계산기에 숫자를 찍어 돌려 주었다.

 

장난기가 발동했기 도 했지만 깎고 싶은 마음도 있어 750을 찍었다. 고개를 젓는다. 두 말없이 돌아섰다. 중국말로 뭐라고 하는데 내 귀에는 “Excuse me”로 들린다. 이번에는 영어로 다우전한다. 손님이 이런 거래에 도가 튼 빠꼼임을 인정하는 파격적인 오퍼 가격이다. 아마 내가 부르는 가격이 마지막 오퍼가 될 것이다.

 

“OK, <?xml:namespace prefix = st1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smarttags" />eight fifty, this is final”

(850 바트, 안되면 그냥 가고.)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졌다는 듯 쓴웃음을 지으면서 가져 가란다. 마치 손해보고 팔기라도 하는 듯한 표정이다. 850 바트라도 아마 원가에서 두 배는 더 받아 먹었을 것이다.

 

대로 양 옆으로 퍼져 있는 차이나타운 시장통처럼 타임머신 여행을 하기에 알맞은 곳도 없었다.

 

산 닭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참 오랜 만에 보는 광경이다. 철망우리 안에는 사납게 생긴 갈색 닭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혹시 옛날 한국 시장통의 산 닭 집들처럼 목을 칼로 푹 찌른 다음 뜨거운 물통에 집어 던지는 건 아닌가 살펴봤지만, 밖에서는 도살기구 같은 것이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새벽마다 호텔방까지 둘려 오던 닭 우는 소리가 꿈 속에서 들은 환청이 아니었다는 게 증명된 셈이다.

 

지하철을 타고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샤워를 할까 하다가 옥상에 있는 수영장에 올라갔다. 마침 구름이 해를 가려줘서 땡볕이 아닌 게 다행이었다. 30 분 정도 풀을 독차지하고 수영을 하고 나니 좀 살 것 같았다. 나 말고도 일본어를 사용하는 비키니 차림의 동양 여자 둘이 더 있긴 했는데 내가 수영하는 동안 내내 플라스틱 침대에 자빠져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풀을 혼자 사용할 수가 있었다.   

 

호텔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꽝시푸드라는 해산물 식당이 있었는데 여행카페 등에서 제법 정평이 나 있는 곳 이었다. (crab)를 카레와 고추기름에 볶은 요리와 쌀밥을 사 들고 방으로 올라와 TV를 보며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아고고바의 언니들

 

쑤언룸 나이트 바자는 지하철 룸피니 역 3 번 출구와 바로 연결돼 있었다. 매장의 규모가 상당히 넓어서 대충 돌아보는데 만도 두 시간 가까이 걸렸다. 아쉽게도 방콕의 명물인 짜뚜짝 시장은 주말에만 연다. 이곳은 꿩 대신 닭으로 찾은 곳이다. 역시 관광객을 주 대상으로 장사하는 쇼핑장소라 그런지 예상보다 가격이 저렴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태국비단 제품 같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캐나다 보다는 싸다고 할 수 있었지만, 한국에 비한다면, 글쎄.

 

나나 엔터테인먼트는 BTS나나 역 근처에 있었다. 별로 넓지 않은 공간에 2 층 건물들이 ㄷ자 형태로 늘어서 있고 그 안에 아고고바(태국식 스트립바)를 비롯한 성인업소들이 들어차 있었다. 이 건물들의 2 층은 온갖 형태의 성인 쇼로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는 곳이다. 여기 저기서 삐끼들이 눈짓을 보내고 있었지만 적극적인 호객은 안 하는 것 같았다.

 

아고고바 형태의 성 매매산업의 중심은 원래 나나 엔터테인먼트가 자리잡고 있는 수쿰윗 지역이 아니라 살라댕 일대가 그 원조다. 팟퐁이라고 불리는 이 지역에서는 전통적인 의미의 스트립 바 말고도 남, , 트랜스젠더 등 모든 성 정체성이 총출연한 온갖 엽기적인 성인 쇼가 벌어지고 있었다.

 

1960 년대 월남전에 참전한 미군들을 위해 마련된 후방 정신대역할을 했던 곳으로 당시 미국정부의 공작과 지원으로 조성된 지역이다. 지금은 미군 대신 유럽과 북미, 일본과 한국 등지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밤만 되면 불야성을 이루며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북적이고 있다.

 

나나 엔터테인먼트는 시끄럽고 사고가 잦은 팟퐁의 거친 문화를 천박하게 여기는 고상한 가치관을 가진 성매매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마련된 곳이다. 나름대로 철학과 차별성을 가지고 출발한 사창가인 셈이다.

 

레인보우라는 붉은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가게의 커튼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이키 조명아래 무대 위에서 검은 색 비키니 차림으로 봉을 잡고 서 있는 수 십 명의 댄서들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객석을 훑어보았는데 의외로 손님이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월요일 저녁이라 그런가. 객석테이블에는 교복차림을 한 여자들만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들은 아마 들어서는 손님을 발견하는 즉시 벌떼처럼 달려들어 콜라를 사달라고 아우성을 칠 것이 틀림없었다. 곧바로 돌아서서 밖으로 나왔다.

 

아고고바를 성매매 업소라고 단정한 데는 이유가 있다. 아고고바는 눈으로만 즐기는 스트립 바가 아니다. 무대 위에서 봉에 매달려 나체로 춤추는 댄서들도 단순한 exotic dancer들이 아니다. 거의 모든 댄서들의 주수입원은 아고고바에서 받는 기본급이 아니라 고객의 낙점을 받아 업소 밖으로 나가서 그 고객과 함께 벌이는 ‘2차 쇼의 대가였다.  

 

ㄷ자 공간 안에는 노천 술집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오히려 그곳은 온갖 인종들로 빈자리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이리 저리 둘러 보다가 빈자리를 하나 발견했다.

 

“May I?”

(빈자린가요?)

 

태국 현지인으로 보이는 20대 여자를 옆에 앉혀 놓고 되지도 않는 영어로 구라를 풀고 있는 늙수그레한 백인 영감탱이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을 놀란 눈으로 쳐다 보다가 “Sure, sure” 하며 자리를 권한다. 엑센트로 보아 아마 유럽 어딘가에서 굴러 들어왔을 것이다.

 

바텐더가 다가와 눈웃음을 보냈다. 왔으면 빨리 주문부터 하라는 신호다. 싱하 맥주 한 병을 시켰다. 병을 따지 말고 오프너와 함께 가져 오도록 바텐더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옆자리의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How are you doing tonight?”

(안녕하세요?)

 

“Not too bad, not too bad”.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아까도 “Sure, sure” 하더니 이 작자는 같은 말을 두 번씩 하는 버릇이 있는 것 같았다.

 

“So, is everything going smooth?”

 

건성으로 야, ,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원조교제작업은 착착 잘 진행돼 가냐고 물은 것인데 못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씨리랏 병원에서 시체들과 함께

 

씨리랏 병원 (Siriraj Medical Center) 은 짜오프라야 강 건너편 톤부리 지역에 있었다. 그 병원의 법의학 박물관(forensic Medicine Museum)과 해부학 박물관(Anatomical Museum)을 우연히 자료에서 발견해 물어 물어 찾아 갔다. 이 병원에서는 모두 여섯 개의 의학 박물관을 일반인들에게 개방하고 있었다.

 

병원은 롯파이 선착장에서 걸어서 약 5 분 거리에 있었는데 여기 저기서 건물 보수공사를 하느라고 몹시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두 박물관은 각각 다른 건물에 있었지만 영어로 된 안내표지판이 곳곳에 붙어 있어 찾는데 애를 먹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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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중 숨진 여아의 유해

 

 

해부학 박물관은 오래된 2 층 목조건물이었는데 내가 들어갔을 때는 아무도 건물 안에 없는 듯 했다. 삐걱거리는 낡은 나무계단을 통해 2 층으로 올라가서 박물관 안내표지판이 붙어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실제 사고나 질병 등으로 죽은 사람들의 뼈와 두개골, 신체부위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몸이 붙은 채 태어나 분리수술을 받다가 죽은 유해 그대로를 유리관 안에 보관해 놓은 모습은 꽤 충격적이었다.

 

병원 자체가 1930 년대 경성기담에 나오는 사체 부검실 분위기였다. 법의학 박물관에는 어린이들을 살해한 뒤 간을 도려내 요리해 먹은 사건으로 태국 전역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사나이를 비롯하여 각종 엽기적인 범죄사건 주인공들의 시신이 미이라 형태로 보존돼 있었다.

 

왠지 이 두 박물관을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고요한 한밤중에 혼자 다시 와서 천천히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생충 박물관 (Parasitology Museum)은 어디에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법의학 박물관 근처가 아니었나 싶다. 기억에 남는 것은 수백 마리의 요충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어린아이의 사진과 사상충 (filarial) 감염으로 림프액의 흐름이 막혀 고환이 바위(과장이 아니다)만큼 커진 환자의 모형, 그리고 유리관 안에 있는 실제 샘플의 모습이었다.  

 

병원을 나오자 그새 기온이 더 올랐는지 날이 몹시 더웠다. 어제는 가끔 흐리기라도 했었는데 오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다. 롯파이 선착장까지 걸어가면서 양산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병원에서 선착장까지는 주택가인지 시장통인지 잘 구분이 안가는 판자가옥들이 이어져 있었다. 왕궁이 있는 짜오프라야 강 건너편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가난에 찌들린듯한 모습의 아낙네들이 길거리에 좌판을 벌여 놓고 잡다한 것들을 팔고 있었다. 여기 저기서 시궁창 냄새가 진동했다.

 

싸얌 패라곤과 월텟

 

태국 최대 쇼핑몰 싸얌 패라곤은 BTS 싸얌 역에서 가까웠다. 싸톤 선착장과 붙어있는 사판탁신 역에서 BTS를 타고 10 분 만에 도착했다. 정확히 여섯 정거장이었다.

 

사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쇼핑몰이 있는 에드먼턴에 사는 나에게 싸얌 패라곤은 별로 인상적이지 못했다. 그냥 서구국가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쇼핑몰에 불과했다. 각종 브랜드 제품을 파는 상점들이 즐비했지만 태국까지 와서 브랜드 제품을 더 비싸게 주고 살 이유는 없었다. 다만 새로 지어서 그런지 깨끗했고 더위에 시달리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은 마음에 들었다.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지하에 있는 food court로 내려갔다. 배가 고프면 수끼를 먹으려고 했는데 별로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사실 수끼는 혼자 먹기는 좀 부담스러운 음식이었다. 결국 각종 면 종류를 파는 코너에서 팟타이를 시켰다.

 

싸얌과 칫롬일대는 방콕 최대의 번화가였다. ?얌 패라곤과 월드 트레이드 센터 (월텟)를 중심으로 쇼핑 중심지가 형성돼 있었다. 전자제품을 주로 취급하는 마분크롱, 대형 할인매장인 빅씨 등이 모두 이 일대에 자리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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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텟 근처에는 광장 같은 것이 있었는데 한 쪽에 마련된 대형 패나소닉 모니터에서 각종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노점에서 밀크 쉐이크를 하나 사 들고 그늘을 찾았다. 마침 커다란 가로수 아래 대리석으로 만들어 진 의자를 발견하고 가서 앉았다.

 

베이스 볼 캡을 벗어 들고 연방 부채질을 해가며 밀크 쉐이크를 마시면서 쉬고 있는데 10 여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부동자세로 서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람들 앞에 마련된 불상과 향로를 발견하고서야 그 사람들이 왜 뙤약볕이 내리 쬐는 광장 한 복판에서 부동자세로 서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중 두 명은 데이트 중인 남 녀 커플인 것 같았고, 한 쪽에 따로 서 있는 짧은 커트머리는 20 대 중반의 여자였다. 몸에 착 달라붙는 소매 없는 연두색 상의에 검은색 몸빼치마 차림의 그 여자는 무척 오랫동안 서 있었는데, 무슨 간절한 서원거리가 있는지 모르지만 이 더위에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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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서원하는 태국 아가씨 

 

태국의 부유층이 주로 이용하는 명품백화점 게이손 플라자는 랏챠담리 거리를 사이에 두고 월텟의 남쪽에 위치한 이세탄 백화점과 마주보고 있었다.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다른 지역에 비해 세련된 느낌이었다. 어느 나라나 빈부의 차이가 있게 마련이지만 이 도시의 경우는 그 정도가 아주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랏챠담리 거리를 가로지르는 지상통로 위에 서서 자동차들의 행렬을 바라 보았다. 신호대기선 앞에 같이 모여 있다가 요란한 소음과 매연을 뿜으며 한꺼번에 출발하곤 하는 모터싸이클들의 모습이 이국적이었다.     

 

번화가의 모습을 내려다 보고 있자니 요즘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정부 시위를 아직 한 번도 목격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캐나다에서 출발할 때는 방콕 시내 전체가 시위대와 경찰 그리고 친()정부 폭력배들간에 벌어지는 폭력사태로 아수라장이라도 된 듯 외신보도가 요란했었다.

 

실제로 전 총리 탁신을 지지하는 폭력배들이 탁신과 같은 계보이자 그 후계자들이 모인 집단이랄 수 밖에 없는 현 정부의 방관아래 시위대를 습격하여 사망자까지 발생했고 이 때문에 비상사태가 선포된 마당이었다.

 

외국인 여행자인 내 입장에서야 이런 소식이 다소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이었는데, 막상 내가 돌아다녀 본 방콕은 아직까지는 평온했다. 한국의 이XX 씨를 빼다 박은 듯한 경력과 정치철학을 가진 이 나라의 전 총리 탁신은 역시 한국의 친미보수세력만큼이나 그 생명력이 끈질긴 태국의 현 정부를 비롯한 기득권층의 비호를 받고 있었다. 그런 그이기에 실각한 후까지 정치갈등의 주인공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탁신을 닮은 이XX 씨 생각을 하자 그의 명언 하나가 떠 올랐다.

 

못생긴 여자를 골라야 서비스가 화끈 하다

 

아마 작년 대선 직전에 어느 술자리에서 한 말일 것이다. 그가 태국에서 받은 어떤 마사지를 언급한 것이 분명한 이 발언이 문제가 되자 그는 그 마사지가 발 마사지였다고 해명했었다.

 

라차다피섹 거리의 밤 문화

 

푸타이 마사지는 내가 묵고 있는 방콕 차다 호텔에서 가까웠다. 주택가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키 작은 나무들과 꽃이 심어진 정원이 아름다웠다. 타이마사지와 발 마사지를 합쳐 3 시간 코스가 600 바트. 어제 짜이디 마사지보다는 비쌌다. 시설은 깨끗햇고 테라피스트의 실력도 수준급이었다. 손 힘이 어찌나 매운지 누를 때마다 통증을 느낄 정도였는데, 손을 떼고 나면 순식간에 통증이 사라지면서 뭉친 곳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이곳의 테라피스트들은 거의 남자들이었고 여자 마사지사가 한 명 있었다. 모두 정식 마사지학교를 수료했다고 했다.

 

매니저는 30 대 후반의 남자였는데 영어를 곧잘 했다. 그래서 마사지가 끝난 후 차를 마시면서 이것 저것 물어볼 수가 있었다.

 

“Can customer choose therapist?

(손님이 마사지사를 고를 수 있나요)

 

“Well, yes you can if you know somebody. Also if you don’t like, you can ask me to replace therapist.

(손님이 아는 마사지사가 있으면요. 그리고 마사지 도중에 마사지가 마음에 안 들어도 바꿔달라고 할 수 있지요)

 

“A friend of mine said, if you wanna get service better, actually hotter, that guy said, you better choose ugly looking girl. What the heck is that mean?

(친구 중 하나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화끈한 서비스를 받으려면 못생긴 여자를 골라라그게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그러자 그 남자의 입이 묘하게 비틀어지다가 허허 하고 홍소를 터뜨렸다.

 

“Body massage?”

(성인 마사지?)

 

“No, he said he was talking about a foot massage.”

(발 마사지 받았다고 하던데)

 

매니저와의 대화는 그것이 끝이었다. 그가 웃기만 할 뿐 더 이상 이야기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아마 내 말을 믿고 내 친구의 입장이 곤란해 질까봐 더 대답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사려 깊은 친구였다.

 

팟퐁과 나나 그리고 소이 카우보이가 세계적으로 알려진 스트립 댄서들의 메카라면 타논 라차다피섹은 성인 마사지 팔러의 예루살렘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거리의 북쪽 끝에는 한국 패키지 여행객들이 투숙객의 절반가까이 차지하는 그랜드 야유타야라는 대형 호텔이 있었는데 맞은 편에는 그 호텔 뺨치는 규모의 또 다른 건물이 자리잡고 있었다. 포세이돈이라는 이름의 성인 마사지 팔러가 그 건물 전체를 통째로 사용하고 있었다.

 

여기에서부터 남쪽으로 지하철 네 정거장(수티산-훼이쾅-순 왓타낫탐-팔람카오) 거리에 이르기까지 대형 호텔들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크고 작은 규모의 성인 마사지 팔러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시저스는 스위소텔 콩코드 바로 옆에 엠마뉴엘, 나탈리 등은 에메랄드 호텔, 방콕 차다 호텔, 그리고 팔라죠 호텔 옆이나 맞은 편에 자리잡고 있었다. 특히 에메랄드 호텔 주변에는 꽃걸이 방이나 코요티 클럽 같은 색다른 형태의 술집들이 밀집해 있었다.

 

타논 라차다피섹에는 대형 해산물 전문점들이 많았는데 이 노천 식당들이 가장 붐비는 시간은 놀랍게도 새벽 두 세 시경이었다. 매일 이 시간이면 영업을 마친 업소 언니들과 역시 볼 일을 끝냈거나 귀가길 언니들에게 수작을 걸어보려는 세계각국에서 모인 성지(性地)순례자들로 식당마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꼭두새벽의 4차선 거리는 성지순례자들과 인도자(가이드)들을 태운 택시와 밴 등 각종 차량들로 마치 러시아워를 방불케 했다. 낮에는 물론 저녁에도 별로 붐비지 않았던 이 거리가 새벽이 되자 마치 장터처럼 소란스러워 진 것이다. 코 앞에 있는 호텔에서 어제 그제 이틀 밤을 지내고도 새벽 마다 이 난리 굿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내 방이 도로 쪽이 아닌 반대편을 향한 이유도 있겠지만, 호텔의 방음시설이 참 잘되어 있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다.

 

손님이 여자를 고른다는 개념은 성인 마사지 팔러에서 나온 것이 분명한 것 같았다

1 Comments
타쿠웅 2008.12.04 12:10  
엄청난 사진크기이 유아사진보고 깜딱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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