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의 태국 여행기 - 깐짜나부리
오늘은 동대문 직원들이 파타야에 가느라 문을 닫는 날...ㅠㅠ 그래서 소문으로만 듣던 그 유명한 나이쏘이의 소갈비 국수를 먹으러 갔다. 약~간 연예인 '팀'과 비스무리한 분위기의 총각이 주문을 받았다. 일단 무작정 오긴 했는데 '소갈비 국수'가 태국말로 뭔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은 우리들. 머뭇머뭇거리고 있자 "소갈비 국수?"하며 총각이 알아서 주문을 넣더라. ㅋㅋ 돈 낼 때에도 "삼십밧~"하며 한국말로 설명을 해주던 그. 역시 한국 사람들이 많이 오긴 하나보다. 가게 안에 '나이쏘이'라고 크게 한국어 글씨도 써있고...
소갈비국수는 듣던대로 양은 적어 배는 차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 정도가 딱 좋았다. 왜냐하면 주문하고나서 뒤늦게 생각난건데 나... 고기, 특히 이렇게 국물에 우려낸 고기는 잘 못먹어서 한국에 있을때에도 국종류는 거의 안 먹었기때문;;
느릿느릿~ 아침을 먹고 남부터미널로 왔다. 버스를 기다리며 또 뭐 먹을거 없나 기웃기웃거리다 들어온 이 곳.
이것저것 되는대로 배에 집어넣고 깐짜나부리 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두 시간 좀 안 되게 달려 깐짜나부리에 도착을 했고, 빈 방을 알아보러 묵고 싶었던 플로이와 타마린드에 전화를 걸어보았는데, 트리플룸은 없단다...ㅠㅠ 그렇다고 빠이에서처럼 더블 룸 두 개를 잡기에 플로이와 타마린드의 숙박료는 너무 비싸고... 결국 닥치는대로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숙소에 몽땅 다 전화를 걸어 트리플 룸이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찾아낼 수 있었다. 바로 '카멜리아 리조트'!
"트리플 룸 있나요?"
"물론이죠~ 800밧이예요."
애초에 플로이에 무척 머물고 싶었던 터라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끌고 온 카멜리아 리조트. 헌데 오오... 여기 정말 게스트하우스 맞아? 수영장도 있고 너른 잔디밭도 있고, 연못도 있고, 조경이 장난 아닌거다. 잔디밭 옆에는 큰 호수인지 강인지도 있었고.(덕분에 모기 또한 많았지만;;)
허나 방을 달라고 하니 전화통화로 얘기했던것보다 200밧이나 더 달라는거다. 아까 전화로 물었을 때는 800밧 아니었냐고 물었더니 무슨 소리냐고 반문을 ㅠ_ㅠ... 우리.. 800밧도 비싸서 올까 말까 망설였었는데 1000밧이라니!?!? 깐짜나부리, 태국에서 물가 제일 싼 곳 중 하나라고 들었는데, 이건 방콕보다 더 비싸잖아!
게다가 TV 이용료를 200밧이나 내란다... -_- 우린 TV 필요 없다고 했더니 카운터 직원, 한숨을 푹 쉬고 10분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안 좋은 표정을 지으며 어디다 전화를 건다. 우리끼리 "뭐야, 혹시 있는 TV 빼는 거 아냐?"하고 낄낄 웃으며 농담을 했는데,
정말 그러더라. -_-..............
TV빼는게 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지 계속 "죄송. 10분만 더~" "죄송. 5분만 더~"를 연발하던 그녀.
그래도 정원이 워낙에 멋진 덕에 그런것쯤은 훌훌 털어버리기로 했다.
이 사진들만 보고 '이런 숙소에 세 명이 1000밧이면 싸잖아!'라고 생각하실 분들을 위해 방 사진도 첨부해본다. 그야말로 평범 그 자체;;
화장실은 좀 특이하게도 돌로 되어있다.
참, 그리고 그리고 이 카멜리아 게스트하우스, 처음엔 몰랐는데 유대인 공동체같은 곳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다. 어쩐지 우리랑 태국 커플 한 쌍 제외하고는 온통 이스라엘사람 뿐이더라. 게다가 어찌나 무례하고 시끄럽던지... 정말 걔네땜에 수영도 맘껏 못 하고 시끄러워 죽는 줄 알았다!
첫 날에는 이스라엘 남자, 여자애들 한 열 댓명이 수영장을 온통 장악하고 껴안고 뒹굴고 떠들고 소리지르고 술 마시고 담배 피우면서 하도 소란스럽게 놀아 정말 그 물에 들어갈 엄두가 안 나더라.
게다가 나한테 어디서 왔냐고 묻길래 코리아라고 했더니, "노스?"이러는거다. 내가 실수로 그렇다고 했다가 "노노! 사우스!!"이랬더니 "왜 정색해? 북한 사람들은 미친 사람들이니? 넌 미친 사람 아니니?"뭐 대충 이런 얘길 하더라. -_- 황~당~
수영장 매니아인 나는(수영 매니아가 아니라;;) 수영을 하고, 물을 무서워하는데다가 발까지 다친 박양은 나무 그네에서 일기를 쓰고.
게스트하우스에 딸린 식당의 음식도 맛있었는데, 뭐 특별히 요리를 잘 했다기보다는 재료들이 워낙 신선하고 좋았다. 허나 이스라엘 스타일의 드레싱, 소스따위를 거의 쓰지 않은 요리법을 고수했던지라 막판에는 좀 질리기도. 이 곳이 여행자 거리와는 떨어진 곳에 위치해 다른 곳에 가서는 먹어보질 못해 더 그런듯하다.
깐짜나부리 오면 졸리프록 레스토랑꼭 가보고 싶었는데...ㅠ_ㅠ
아무튼 밉상 여행객들만 피한다면 나쁘지 않은 곳이다. 단, '휴식'이라는 단서가 붙을 때에만. 관광이 목적인 분들에게는 절대 추천하고싶지 않다. 나 여기서 썽태우 기다리다가 정말... 세미 지옥불 체험을 했다... ;; 교통수단이란 게 전무한 외진 곳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였던지라 전화로 택시(를 부르면 리어카를 붙인 오토바이가 온다-_-)를 불러 다녀야만 했다.
깐짜나부리에서의 이틀째 날은 아침에 '죽음의 기차'기차를 타고 남똑 역까지 가보기로 계획을 했던 우리들.
헌데,
와~ 늦잠 잤다!
-_-
기차 시간을 놓쳐도 한참 놓친 우리는 결국 오후에 그냥 헬파이어 패스나 가보기로 하고 느긋하게 아침을 먹기로 했다. 어찌 이리 게으르누.
다들 아시겠지만 헬 파이어 패스가 무엇인고 짧은 설명을 덧붙여보자면, 2차 대전 중 일본이 군사보급을 위해 설치한 철길인데, 동남아 지역에서 데려온 20만명의 노동자들과 호주, 영국인들의 6만여명의 연합군 포로들이 동원되어 작업을 했다고 한다.
아주 기본적인 장비만을 가지고(장비들은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정말로 원시적인 곡괭이같은것들 뿐이다) 작업을 했는데 그 중에서도 공사구간중 가장 어려웠던 구간이었던 꼰유지역에서는 2교대 체제로 24시간 내내 불을 밝히고 작업을 했는데, 그 광경이 꼭 지옥처럼 보였다는 이유로 이 철길이 헬 파이어 패스라고 불리우게 되었다 한다. 헬 파이어 패스 공사에 투입된 연합군 포로의 70%은 사망했고, 이 박물관은 그들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것이다.
짧은 박물관 관람을 마친 후, 이제 헬 파이어 패스를 직접 보러 가기로 했다. 산 속에 위치한거라 거의 트래킹 하는 수준의 운동량을 각오해야한다고 들었다.
그나저나 사진 속의 호주 국기가 보이시는지? 대부분의 연합군 포로가 호주인이었기 때문에, 메모리얼 박물관도 호주인들이 세운 거라고 한다.
앙코르 유적지 관람 이후로 그다지 움직일 일이 없어 운동 부족 상태였던 우리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감당하며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하느라 (산 속에 위치한 계단) 그야말로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 당시에는 "야, 지금 내 상태가 헬이다 헬! 헬파이어 패스가 괜히 헬이 아니여~"하며 너스레를 떨고 가며운 마음으로 그 자리를 떠났지만 지금 다시 사진을 꺼내 보고 있자니, 히로시마 원폭 피해관같은거나 만들면서 자기네들이 전쟁의 희생양이라도 된 것처럼 포장하고 아직까지 2차대전에 대한 사과조차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일본 생각에 화가 치밀고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 곳을 찍어간 독일 방송사는 어떤 시각으로 이 곳을 조명했을까?
봉지 음료수는 다 좋은데 먹다가 보관할 때 좀 불편하군! 궁여지책으로 손잡이에 요렇게 묶어두었다.
흠.............
..................................
첫 날 저녁에 내가 큰 일을 본 후 그만... 변기가 막혀버린 것이다;;;;
처음엔 뾰족한 나뭇가지를 주워와서 쑤셔(...)봤는데, 어림도 없었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 박양이 구해다 준 뚫어뻥으로 뚫어봤는데도 역시나 꿈쩍도 안 하던 변기...ㅠ_ㅠ 최후의 수단으로 그 날 저녁, 로투스에 가서 변기를 뚫어주는 가루까지 사온 것이다!!
헌데 그걸 뿌려놓고 한참 지난 뒤 뚫어뻥을 또 사용해보았으나... 역시나 실패..........................
나 정말 몸 아팠을 때보다 이 때 더 여행을 접고싶어지더라. 엉엉엉.
결국 상심한 내가 정원 해먹에 누워 자기 혐오에 빠져 끙끙대고 있을 때,.
이양이 뚫기에 성공했다는 낭보를 전해주었다!! 고맙다 친구야.................ㅠㅠ 평생의 은인으로 알게!!
이 날은 전날의 그 시끄러웠던 무리들이 떠나고 또 다른 무리의 이스라엘 숙박객들이 카멜리아를 점령했는데, 수영장에서는 좀 덜 밉상으로 놀았으나, 식당을 거의 점거하고 난장판을 만들어 놓고 밤이 새도록 시끄럽게 떠들어대더라.
그리고 그 무리 중 뭔 변호사인가 뭔가하는 사람이 자꾸 뭘 물어보는데, 내가 전날의 사이코때문에 좀 경계하는 기색을 보일때마다 뜬금없이 너무 자꾸 자기 변호사라고 강조를 하더라 -_- 그러면서 대뜸 "너 오사카에서 왔니?" 라고;; 오사카에서 나 닮은 사람 봤나... 싶어서 나 코리안이야. 했더니 코리아 베리 굿이라면서 두 손으로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더라. 하하. 그리고 그 후로 대화 중 '코리아'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계속 엄지 손가락을 들던 그;;
알고보니까 곧 오사카로 일하러 갈 거란다. 그러면서 나한테 오사카에 대해서 설명 좀 해달라는데... 거기 일하러 가는 니가 더 잘 알겠지...;;
게다가 한국과 이스라엘의 우호 증진에 대해서 한국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냐고 묻는데, 변호사님인 니가 더 잘 아시겠죠... -_- 미안한데 모른다고 대답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음. 사실 이 사람은 잘못한 게 없었건만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이 너무 짜증나서 그만 쌀쌀맞게 굴어버렸네. 미안.
아무튼 2박 3일간 깐짜나부리에 머물면서 관광지라고는 오직 헬 파이어 패스 딱 한 군데만 갔고, 나머지 시간은 게스트하우스에 콕 박혀서 지냈던 터라 이 카멜리아 게스트하우스가 내 깐짜나부리에서의 기억의 전부이다. 많이 아쉽지만 그래도 이런 아쉬움이 빌미가 되어 다음에 또 오게 만들 여지를 주는 거겠지...ㅋㅋ 그리고 이 곳의 정원은 정말이지 좋았고. 그야말로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어주었던 호숫가 풍경과 잔디밭, 해먹들. 비록 변기 사건은 나에게 괴로움을 선사해 주었지만 그래도 그 괴로움을 상쇄시키고도 남을만한 장점이 있는 게스트하우스였다~ 그래도 다음에 오면 꼭 플로이에 묵어볼테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