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ny-1년전 여행일기 #3(롭부리)
방콕에서 하루를 보내고 첫번째 여행지로 롭부리를 선택했다. 딱히 방콕에서는 할일이 없었다. 머리를 짜를때가 됐기도 해서 150밧이라고 유리창에 크게 써있는 미용실에 들어갔다. 태국 미용실 마다 있는 일본 잡지를 펼치더니 고르라고 한다. 어차피 이대로 모양이 나오지 않을것을 알기에 관리하기 편한 짧은 머리를 선택했다.
자르고 나니 선택한 머리모양과 너무 다르다. 하긴 내 머리 두상도 그 잡지 모델 두상과 너무도 다르니깐 할 말은 없다.
롭부리로 가는 기차표를 미리 끊어놓기 위해서 시내버스를 타고 훨람퐁역에 갔다. 롭부리에 도착하고 숙소를 잡는 시간을 좀 벌기위해서 약간 이른 표를 구입했다.
'이제 드디어 여행이 시작되는 구나.'
아침일찍 체크아웃을 하고 훨람퐁역에 도착한 뒤 롭부리 행 열차에 탑승했다. 책을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기차로 이동하는 것의 장점은 역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급적 기차역이 있는 장소는 기차를 타고 이동한다.
태국에 오기전 한국에서 1달 여행동안 볼만한 책을 고르기 시작했었다. 책을 꽤 빨리 읽는 편이라 일반 소설류의 책은 가져올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고른 책은 "공업 수학 (상)" 이었다. 번역본은 너무 크기도 하고 금방 읽을 것이라는 얼토당토 않는 생각으로 원서를 선택했다. 대학교 도서관 대출 기한은 연장을 시켜도 최대 20일 이다. 10일 정도는 연체되도 괜찮을 것 같아 그냥 대출했다.
물론 나중에 후회했다. 가져간게 아까워서 꾸준히 읽기는 했지만 여행하고는 너무 않맞는 궁합이었다.
2시간 가량을 달려 롭부리에 도착했다. 지도도 없고 사전 정보도 없이 무작정 온터라 살짝 막막했다.
기차역안을 돌아보면서 지도나 여행정보지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예상은 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미리 방콕에서 TAT에 들려 지도를 챙겨오지 못한것이 크게 후회되었다.
그러나 기차역을 빠져나와 시내 중심가 인듯 보이는 곳으로 걸어가다 보니 TAT 이정표가 보였다.
' 아.. 살았다.!'
TAT에 들러 지도도 받고 저렴한 숙소도 소개받았다. 직원은 무료했던지 내가 들어서자 마자 매우 반가운 얼굴을 했었다.
지도를 보면서 숙소를 찾기 시작했다. 첫번째 숙소에서 가격도 적당하고 방을 살펴보니 깔끔한 편이어서 그냥 묵기로 했다.
가방을 내려놓고 가볍게 샤워를 하고 나니 다시 돌아다닐 힘이 생겼다. 지도와 약간의 돈만 들고 나머지 돈과 귀중품을 숙소 여기저기 분리해서 숨겨놓았다. 이러다가 나중에 내가 못찾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가방 없이 숙소를 나서니 팔랑팔랑 날아갈것 같았다.
어느곳이든 나는 첫날부터 유적지를 돌아보지는 않는다. 주변을 완벽하게 돌아보고 시장이 어디있는지, 7eleven이 어디에 있는지, 다른 숙소들은 어디에 있는지 등을 조사해 둔다.
이날도 롭부리 시내를 샅샅이 훑었다.
중간에 목이 말라서 7eleven에 들러 아주큰 요쿠르트 한병을 사들고 마시면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길 코너를 돌자 크메르 유적중 하나인 프랑쌈욧이 보였다. 사진으로는 봤지만 실제로는 처음이었는데 꽤 근사해 보였다.
' 여행 테마를 꽤 잘 정한것 같군.'
유적을 보면서 몇 발자국을 가자 무언가가 내 다리를 붙잡더니 1모금 정도 남은 요쿠르트 병이 담긴 7eleven 비닐 봉투를 잡아채가는 것이다.
지금은 그냥 글을 쓰고 있지만 그 당시는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의 공포였다. 범인은 원숭이 였다. 난 원숭이들이 그쪽 사원에만 있는 줄 알고 있다가 당한 봉변이었다.
원숭이는 많이 해봤다는 듯이 능숙하게 비닐 봉투를 벗겨내고 요쿠르트 뚜껑을 입으로 따내더니 남은 것을 마시기 시작했다. 다시 뺐는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길가 상점 건물들 옥상에 원숭이들이 엄청나게 포진하고 있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 풍경이었다.
1년전 친구와 함께 말레이시아의 '뗄룩 챔파닥' 이라는 바닷가에 가서 해변가를 배회하는 원숭이들을 보았을 때가 생각이 났다. 거기서는 밤이 되면 옜날 우리나라 가정집 천장에서 쥐가 뛰어다니는 소리가 나듯이 원숭이들이 함석 지붕을 뛰어다니는 소리가 났었다.
롭부리는 도시 곳곳에 유적지가 있었다. 걷다보면 차로 옆에도 볼만한 유적들이 있었다.
걷다보니 다리도 아프고 해서 TAT에 다시 찾아갔다.
" 혹시 누엇(전통 안마) 받을 수 있는 곳이 있어요?" 직원에게 물었다.
" 없어요."
" 아..... 그래요.." 실망을 하고 일어서려는 찰라
" 아 맞다. 사원 안에 누엇 해주는 곳이 있어요."라고 한다.
가격을 물어보려고 하다가 직원이 알턱이 없을 듯 해서 그냥 위치만 지도에 표시하고 나왔다.
여기서도 아주 간단한 태국어를 하는 나에게
" 태국어 정말 잘하네요." 하는 말을 듣는다.
겨우 찾아갔더니 사원 안에 누엇을 할 만한 곳은 없는 듯 싶었다. 사원에 계시는 스님께 여쭈어봤다. 저쪽으로 가보라고 한다. 합장을 하면서 고맙다고 하고 그쪽으로 걸어갔는데도 영 모르겠다.
그때 아주머니 한분이 양산을 쓰시고 오신다.
" 누엇 하는 곳이 어디에요?" 하고 물었다.
" 아. 날 따라와."
신기하게도 사원 부지 구석에 5명정도의 안마사가 있는 한눈에 봐도 내공이 느껴지는 장소가 있었다. 날 인도하신 아주머니도 안마사 이셨다.
지방에서는 1시간 혹은 2시간 을 선택할 선택권이 없다. 누엇은 그냥 누엇인것이다. 날 인도하신 아주머니께서 자신이 해주겠다고 한다.
누엇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딱 하나 마지막에 15분 정도 배를 집중적으로 눌러주시는데 고통을 참기가 너무 너무 힘들었다. 왠만한 누엇에는 단련됬던 나에게도 매우 힘든 시간이었다.
항상 누엇을 받고 나면 몸이 오징어나 낙지와 같은 연체동물처럼 하늘하늘해진듯한 느낌을 받는다. 어차피 숙소까지 걸어가면 다시 굳어가겠지만 말이다.
숙소로 오는 도중에 미리 봐두었던 커피숍에 들렀다. 커피숍인데 국수를 판다. 커피보다 국수가 인기가 좋다. 현지인들은 국수를 먹고 설탕 프림이 가득든 냉커피를 시켜서 마신 뒤 투명한 냉커피 컵에 얼음을 한가득 남겨놓고 한두명씩 나갔다.
난 두번이나 "뜨거운 커피 맞죠?" 하는 웨이터의 질문에
두번이나 "예 뜨거운 커피요." 를 외쳤다. 물론 기분 상한 것은 아니다. 혹시나 냉커피가 나올까봐 확실하게 대답을 해준것 뿐이다.
커피를 마시면서 빌려온 '공업수학 (상)'을 읽기 시작했다. 커피는 에스프레소에 가깝게 매우 진했다. 향도 좋고 맛도 좋은 편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