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타고 뗏목 타고 싸이욕너이 폭포로
죽음의 철도를 내려서 이동한 곳은 코끼리 트랙킹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가 생겼으니... 여기까지는 죽음의 철도 타고 자알 이동해 왔는데, 원래 봉고 3대로 움직여야 하는 일행이 1대는 중간에 퍼지고 2대로만 움직이다 보니 기동력이 썩 만족스럽지가 않습니다.
먼저 도착한 백인애들 팀이 봉고를 타고 휭 가버리고, 도대체 이 투어에 왜 따라왔는지 알 수가 없는 시종일관 시무룩한 표정의 두 백인 여자애, 그리고 뒤에 남겨졌다고 투덜거리는 백인 커플, 나머지 우리 부부를 비롯한 한국분들이 어딘지 모를 태국의 시골역에 한동안 방치.
근데 아무도, 정말 아무도 그 맘씨 좋아보이는 태국인 여행사 사장에게 불평을 하지 않습니다. 차가 대관절 언제 올 것이냐, 이 더운데 뭐하는 거냐, 이거 계약 위반 아니냐... 따지던 백동이, 암도 호응 안해줘서 제 풀에 머쓱. 걍 그늘에 쭈그러져 있었음.
30여분 기다렸을까, 썽타우(군대에서 타던 80트럭 축소한 것 같은, 작은 트럭 짐칸에 좌우로 길게 의자를 만들어 타고 다니는 일종의 승합차) 한대를 사장님이 섭외해 와서 우루루 탑니다.
아내는 임산부 우대, 그리고 백동이는 임산부 보호자 자격으로 우리 부부만 조수석, 에어컨 바람 쐬면서 갑니다.
코끼리 트랙킹을 하는 장소는 가슴마저 뻥 뚫리는 듯한 울창한 녹음으로 둘러싸인 풍경 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먼저 점심식사를 하러 선상식당으로 이동하는데 식당 옆에 있는 웅덩이에서 한 관광객과 코끼리가, 말 그대로 함께 놀고 있습니다.
코끼리도 썩 즐기고 있는 듯한 눈치. 같이 물장난 치고 물 끼얹고. 말 못하는 동물과 교감하며 즐기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점심식사는 간단한 뷔페식이었는데 혹시 이거 또 팍치(고수)가 잔뜩 들어간, 백동과 아내에겐 못 먹을 음식이 아닐까 해서, 뱃가죽과 등가죽이 달라붙을 지경인데도 많이 퍼 담질 못했습니다.
메뉴는 그냥 밥(물론 안남미), 볶음밥, 청경채 닭 살코기 볶음, 호박 볶음류 뭐 이 정도입니다.
김치도 없으니 콜라를 김치 삼아 꾸역꾸역 넘겨보자, 하고 20바트를 주고, 콜라는 없어서 사이다를 사 가지고 와 한 숟가락 떠 먹어 보는데... 아니! 이게 왠걸-! 시장이 반찬인 탓도 있겠지만 여튼 넘 맛있습니닷!
게 눈 감추듯 후딱 박박 긁어 먹고 조심스레 빈 접시를 들고 가서 배식대 앞을 지키고 계신 아줌마께 더 먹어도 되냐고 물어봅니다. 흔쾌히 돌아오는 대답, YES!
넘 맛있어서 더 먹어야 겠다는 말에 정확한 영어로 태국 아줌마 대답해 줍니다, 너그덜이 맛있게 먹어 주는 것이 내겐 큰 기쁨이라고.
아마 전세계 관광객들이 와서 먹는 곳이다보니 모든 사람들이 무난히 먹을 수 있는 맛을 낸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배가 찼으니 이제는 아랫배에 들어 있던 애들을 쩜 내보내볼까. 태국 전통 복식을 한 남녀가 다소곳이 합장을 하는 조각으로 남녀 화장실을 재밌게 표현한 뒷간에 가서 버릴 것을 버리고, 이제 드뎌 코끼리 타러 갑니다.
아내와 백동이를 태워 준 코끼리의 뒷모습. 백동이 엄마께서 아내와 백동이가 사이좋게 걸어가고 있으면 뒤에서 보면서 왕궁뎅이라고 놀리면서 사람이 안 걸어가고 궁뎅이 두개가 걸어간다고 하시는데... 정말 코끼리 궁뎅이만 보이는군요.
이 넘들이, 당연히 사람들이랑 하루종이 붙어 살다 보니 그런 거겠지만, 하여간 사람들을 안 무서워 합니다. 오른쪽 사진은 관광객들이 싸 온 비닐봉지 안의 간식을 삥 뜯으려고 하는 일진 코끼리들.
트랙킹 코스. 이렇게 수려한 풍경을 감상하며 가다가 갑자기 급경사의 진흙탕 길로 들어섭니다. 코끼리, 걸어서 내려가는 게 아니고 진흙 때매 질질 미끄러져 내려갑니다. 스리랑카에서 아무 잡을 줄이나 장치도 없이 코끼리 맨등에 탔을 때보다야 나았지만 그래도 코끼리랑 같이 진흙탕 언덕에서 데굴데굴 구를까봐 조마조마하던 순간.
코끼리 등에 설치된 철제 의자에 팔을 칭칭 감아 달라 붙어서 떨어질까 벌벌 떨었던 (안전벨트 같은 것 전혀 없음) 코끼리 트랙킹이었지만 코끼리를 부리는 이 태국 청년은 그저 맨발로 코끼리 머리에 암케나 앉아 있었다는.
스릴만점 코끼리 트랙킹이 끝나고 나면 뗏목투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나무로 만든 이 지역 전통방식의 뗏목을 타고 콰이강을 따라 내려가는 것이죠.
이 대나무 뗏목이 또 아슬아슬합니다. 떠 간다기보다는 반쯤 잠겨서 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게다가 물에 떠 있는데도 왕개미들이 엄청 기어댕깁니다. 물론 더운 날씨로 반티, 반바지를 입은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기 일쑤죠.
우리 부부 앞에 앉은 부산에서 온 여학생들, 소리 지르고 난립니다.
"이, 이거 뗏목체험 맞나?! 뗏목체험이 아이고 불개미체험 아이가!?"
왕불개미로 인한 소란스러움도 잠시, 우리 일행을 인도하는 태국 청년이 노를 저으면서 뗏목이 강 한가운데로 두둥실 들어오자 개미들의 기세도 한풀 꺾이고 유유히 흘러가는 콰이강의 고요함에 자그만한 뗏목 위 우리들은 그저 몸을 맡겨 버립니다.
우리 사람들만 입다물고 있으면 온 사방이 너무나 조용합니다. 자그맣고 부드럽게 부지간 귓등을 스치는 물길 가르는 소리, 가끔짝 들리는 이름모를 새들의 지저귐, 그 외에는 마음을 착 가라앉혀 주는 고요함만이 우리 온 몸을 휘감아 옵니다.
한편으론 이 고요하고 아름다운 곳이 수십년 전에는 서로가 죽고 죽이는 격전의 현장이었다니, 오싹한 기분, 세월의 무상함, 여러 감정들이 느껴집니다.
간만에 느껴보는 평온함. 지금도 그 때 생각을 하면 마음이 착 가라앉는 것만 같답니다.
뗏목에서 내린 후 다음 코스는 싸이욕너이라는 폭포를 구경하러 가는 것이었는데 문제가 또 생겼습니다. 우리 일행을 데리고 온 여행사 직원들이 보이지가 않는 것. 완죤 콰이강 밀림에 버려진 분위기.
다행히 로밍이 되는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개미 때매 마구 소리 지르던 부산 여학생들 덕에 홍익여행사로 전화 연결 시도해 봤지만 통화도 안되고. (사실 홍익여행사는 모객 역할만 하고 실제 투어 진행은 현지인 여행사에서 하는 것이므로 홍익여행사에 전화한다고 바로 문제가 풀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침 다른 여행사 봉고가 있어서 거기 달려가 태국인 직원한테 사정 설명을 하고 뭐 좀 아는 게 있냐고 물어보는데... 도통 이 직원이 하는 영어 발음을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Anybody can translate it for me? (누가 통역 좀 해 줘요-!)"
결국, 이 태국인 직원이 영어로 얘기하면 그걸 봉고에 타고 있던 미국애들이 다시 영어로 백동에게, 영어를 영어로 "통역"해 주는 웃기는 상황 연출. 영어완전정복의 길은 멀고도 험합니다.
우리 여행사의 봉고 1대가 퍼진 관계로 차가 모자르는 바람에 그냥 우리에게 얘길 안하고 제 딴에들 빨리 움직인다고 왔다갔다 하면서 장시간 버려지게 되었던 것. 결국 차량이 와서 우리를 싸이욕너이 폭포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현지인들이 피서하러 온다는 싸이욕너이 폭포. 7월 이 때가 최고의 수량을 자랑하는 기간이라니 때 맞춰 잘 왔습니다.
아주 웅장한 폭포는 아니지만 울퉁불퉁한 바위 산 위를 갖은 모양으로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모양이 참 멋진 그런 곳이었습니다. 한쪽 옆으로는 작은 동굴도 있죠.
동굴 안은, 그리 볼 건 없지만 그래도 울퉁불퉁 기기묘묘한 바위들을 보는 재미가 있으니 한번쯤 둘러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물을 거슬러 올라가 들어가는 것... 생각 외로 매우 쉽습니다. 바닥이 미끄럽지 않은 신발만 있으면 누구든 쉽게 폭포를 올라갈 수 있습니다. 물론 맨발로도 OK입니다.
물 속을 뛰어 댕기다가 결국 수년간 너무나 아끼며 잘 신어 왔던 할인매장표 스포츠샌달이 다 찢어지긴 했지만, 오늘 투어의 마지막을 시원하게 장식할 수 있는 좋은 코스였다고 생각됩니다.
폭포 주변에는 우리나라 관광지에 닭백숙집, 도토리묵 가게들 있는 것에 꽉 들어차 있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맛나 보이는 음식을 파는 주점들이 약간 있으니 개인적으로 왔다면 시원한 폭포를 바라보며 그런 음식을 사 먹는 것도 좋을 듯.
투어 일정이 다 끝나고 방콕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 사장님이 수완 좋게 차량을 확보해서 아침에 타고 왔던 차보다 훨씬 좋은, 빵빵한 에어컨에 텔레비젼까지 있는 승합차를 타게 되었습니다. 브리트니스피어스 뮤비를 보며 돌아오게 되었죠.
오는 길에 낮에 퍼졌던 우리차, 아직 그 자리에 있더군요. 맨 왼쪽에 있는 사람이 운전기사였는데... 저 양반 밥은 먹었나 몰러, 쯧쯧.
일인당 450바트, 별도 입장료 등 포함하면 500바트 남짓, 우리나라 돈으로 한 만5천원 정도 하는 가격으로, 유엔묘지, 전쟁박물관, 콰이강의 다리, 죽음의 철도, 점심, 코끼리 트랙킹, 뗏목타기, 폭포 관광까지, 이런 다채로운 코스를 즐길 수 있다니. 추천입니다-!
원래 더운데 물에서 놀고 나면 노곤한 법. 싸이욕너이에서 대미를 장식하고 나니 차 안에서는 졸음이 물밑 듯 밀려 옵니다. 머리를 맞대고 쿨쿨 자면서 방콕으로 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