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5] 남자 둘이 여행한 방콕/코사멧 이야기
해변에 아침이 시작 되었다.
운봉이형도 지난 밤 피를 본 덕분인지 몸이 많이 나아진 듯 했고, 나도 어서 아침을 먹고픈 마음에 몇 번이나 잤다깼다를 반복했다.
리조트 우리 집 안에 있는 천장이 뚫린 샤워부스에서 따뜻한 물로 시원뜨뜻한 샤워를 끝내고, 운봉이형이 씻을 동안 반바지와 티셔츠로 옷을 입고 주변 한바퀴 돌아보고
돌아와 운봉이형과 같이 다시 바깥으로 나왔다.
아, 그러고보니 어제랑은 또 다른 느낌이네.
특히, 어젯 밤 만찬이 있었던 의자는 저런 느낌이었구나. 괜히 뜬금없이 원효대사의 해골바가지 얘기도 떠오르고.
쓰잘데기없는 생각을 닫고, 길다랗게 열린 길을 따라 la luna 레스토 랑으로 향했다.
와, 굉장히 view가 좋네! 난간 아래로 내려가면 바로 해변이고! 티켓을 주고 자리에 앉아 베이컨을 우적우적 씹었다.
운봉이형도 이것저것 맛있다며 많이 먹었다. 어젯밤과 다르게 여 행이 궤도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이것저것 먹고 해변가를 걸었다.
모래가 비 정상적으로 하얗다.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조금 지저분해진 소금위를 걷는 기분이다.
바닷가에 몸을 담그고싶어 운봉이형에게 얘기하고 리조트로 돌아와 수영팬츠로 갈아입고 돌아왔다. 방까지 오가는 시간이 짧지는 않아 15분정도를 투자해야 했지만, 이렇게 파란 바다 앞까지 왔는데 발만 슬쩍 담그다 가기엔 너무 아쉬웠기 때문.
운봉이형은 별로 들어가기 싫었나보다(애초부터 옷가지들도 안챙겨온 듯 했고). 음.. 그냥 혼자 물속에 들어갔다가, 밀썰물이 오가는 해변가에 엎드렸다 누웠다가 하며 밀려오고 쓸려 가는 물을 몸으로 읽어보기도 하고.
이런것도 고즈넉히 좋구나 하는데 왠 현지인으로 보이는 남자 꼬마애가 나한테 웃으면서 달려온다.
"뭐"
"히히흐히"
두세살쯤 되보이는 애가 자꾸 모래를 쥐어 던진다. 어쭈. 싸우자고.
난 일부러 흩뿌려 맞추지 않고 옆으로 던져 견재를 한다. 좋아하네. 얼씨구.
갑자기 모래 싸움 붙었다. 애랑 놀고있다. 그러다 이게 뭥미 싶어,
"됐어. 너랑 안놀아(한국말로)"
그러자 아이가,
"헉 뭥미"
는 아니고 -_-; 암튼 뻘쭘히 서 있길래. 그 틈을 타 운봉이형에게 돌아온다.
운봉이형은 막 이런저런 사진찍고 놀고있다.
자리에 앉아 고즈넉히 책을 집어 폈다.
매일 11시40분 서현역 막차 버스를 타는 야근생활을 할 때, 플리커에서 코사멧을 태그로 검색 해 이런 사진을 찾곤 위안을 가지곤 했다.
'나도 이렇게 이런데 누워 이 느낌을 몸소 체험해야지'
그 자유를 내가 지금 느끼니 무언가 현실 이상의 감정이 생기고 책의 글씨도 물 위의 기름처럼 잘 스며들지 않고 그냥 기분만 좋고 그랬다.
아, 이래서 여행을 오는거구나. 싶었다.
옆을 보니 운봉이형은 자고있다.
오전이 무르익다보니 사람들도 하나둘 모여든다.
형이 일어나더니 꾸무적대다, 가야된다고 한다. 벌써 열시가 넘었다.
열한시가 체크아웃이라 슬슬 일어나긴 해야하는게 현실인데, 자꾸자꾸 가자는 운봉이형이 너무 야속해 짜증 까지 날 정도였다-_-;
뭐, 가야지.
자리를 일어나 리조트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짐을 챙겨 문을 열고 나왔다.
역시 지못미. 우리가 나온 곳은 이렇게 흔적이 남는구나.
셀프 한장 찍고.
프론트에 갔다.
"체크아웃 할려고"
"아."
"여기 바늘, 어제 빌린거. 고마워"
"고마워"
"고맙긴"
"응 다 됐어 가도 돼"
"응 안녕"
어제 생각을 하니 걸어가기엔 멀지싶어 썽태우를 살펴보는데, 우리 둘이 타면 100밧을 내라고 하고, 아니면 열명이 탈때까지 기다렸다 10밧씩 내란다.
기다리겠다고 하고 기다리는데, 아 너무안와.
귀찮고, 혹시 배를 놓치면 더 손해지 싶어 썽태우 기사에게 가자고 했다.
썽태우를 타고 쭉~~~ 선착장까지 도착.
선착장에 내리는데 애들이 왜이렇게 처다보지. -_-@ 나는 한국에서 일본이나 유럽애들 지나갈 때 안처다보는데..
등에 가방을 맨 채로 서서 기다리고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멍히 바닥을 보는데 천장 천을 통에 투영된 햇빛과 그림자가 바닥에서 댄스 협연 하고 있길래 영상으로 담아 봤다.
슬슬 짜증이 날 무렵, 배가 와서 타고 겨우 빈 자리를 잡아 탔다. 자리도 없는데 사람들이 막 들어찬다.
팔과 다리를 배 바깥으로 내어놓고 턱을 배 옆 벽에 걸치고 바다를 응시한 채 삼사십분이 지났을까 반페에 도착해 내렸다.
버스표를 끊어야지 싶어 터미널로 가서
"이거 버스티켓으로 교환하려고."
"응"
심심해서 유리창너머 직원 모니터를 쳐다보니,
"자리 원하는데로 찍어줄까?"
" ㅋㅋ응. 여기랑 저기"
"^^"
"^^"
표도 받았겠다, 시간이 좀 남아 점심을 먹고 떠나기로 하여 터미널 밥집으로 갔다.
마지막 점심이겠거니 싶어 영상으로도 담아보고,
여행 중에 생전 찍지 않았던 음식사진도 찍어본다((난 이상하게 음식사진은 찍기 싫더라)).
밥을 다 먹고 버스 시간을 기다리며 죽치고 있다가, 버스에 다시 올라타,
방콕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도착하면, 내리고, 출발하고, 공항에 내리고, 비행기 타면, 인천에 내리고. 끝.
아 답답해.
해보지 못한 것도, 채워지지 못한 것도, 느끼지 못한 것도 많은데. 벌써 끝이라니. 맙소사.
우리나라에 골든골 먹고 16강 탈락한 이탈리아 선수들처럼 억울하고 먹먹한 마음에 잠 도 안오고 바깥 풍경 하나라도 머릿속에 가슴속에 더 캡쳐하려고 눈을 껌뻑껌뻑인다.
껌뻑껌뻑
껌뻑
-_-
zzzzz
잤다.
입에서 흘러 팔뚝에 도착한 축축한 침에 잠을 깨고보니 방콕에 거의 다다랐다.
"아, 썅 잤네."
가기 전에 할 수 있는 의미있는 행동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 이런마음으로 여행을 시작하고 떠났다면 5일이 지난 이 시간동안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반성도 되 었다. 그러다가도, 뭐 그렇게 빡쎄게 여행 할 필욘 없잖아, 이런 생각도 들다가.
암튼, 태국에오면 태국마사지를 꼭 받아보라던데 우린 쇼핑이나 하고 클럽이나 가다가 그런데도 안가봤다.
마침 나랑 비슷한 텐션으로 꾸벅이던 운봉이형에게 도착하면 잠깐 마사지나 받고 가자고 하니, 흔쾌히 그러자고 한다.
이래저래 운봉이형이랑 얘기하다보니 벌써 에카마이에 도착했다.
"동전 좀 줘봐"
엥 왠 동전.
"전화 좀 하게"
흠, 그제 클럽에서부터 사이가 심상치 않더니, 그때 만났던 친구에게 전화를 하려나보다.
운봉이형은 전화부스에서 수 화기를 돌리고 있고, 난 근처에 괜찮은 마사지샵이 있나 두리번두리번 거리는데, 이건 뭐 도심 분위기는 나지만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
"뭐래요?"
어느덧 전화 끊고 나오는 운봉이 형에게 물으니,
"몰라 아 영어 진짜 못해"
만나서 얘기 할 땐 그래도 대화 좀 되는 것 같더니. 로맨스도 끝인가 ㅎ
어디 마사지샵있을만한 길가로 걸어가고 있었다.
한 10분쯤 걸었을까,
'BODY MASSAGE SHOP'
"오! 저깄네"
"저기 좀 작다. 가다보면 더 좋은데 있을거야 거기로 가자"
"넹 저기 그럼 일단 찍어보고"
솔직히 무슨 편의점같이 생기긴 했 다.
조금 더 걸어가니, 큰 광고판이 보인다.
"저거 마사지샵이지"
"그렇네요 오"
광고판의 표시대로 꺾어들어가니 엄청 크고 고급스런 마사지샵이 나타났다.
문이 열리니 나긋나긋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차를 내어온다. 외국인들을 주로 받는 마사지샵인듯 카운터에서 영어 좀 된다.
어디 아픈덴 없는지, 특별히 관리받고 싶은덴 있는지, 이런저런 질문으로 구성된 건네받은 폼을 작성하고 되건네주니 방으로 안내했다.
샤워를 하고 민망한 태국 속옷을 입고 가운을 걸치고 놀다가
엎드려 자고있으니 마사지사가 들어왔다.
쫌 아프다;;;;;;;;;;;;;
"천천히 하세염"
"????????"
영어를 하나도 못한다.
한시간 가량 묵묵히 마사지를 받고 다시 나왔다.
그래. 태국 와서 마사지 했다.
운봉이형이 먼저 나와서 카운터에 콜택시를 부탁했다.
다음에 또 만나요. 카운터 누나의 한마디에 우리는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하이웨이로 갑시다"
"넹"
운봉이형은 택시기사에게 하이웨이로 가줄 것을 부탁했고, 막히는 수쿰빗을 뚫고 택시는 달렸다.
하이웨이에서 무슨 사고같은것도 나있고 전체적으로 조금 밀리는 듯 했으나, 공항에 적당히 도착했다.
아~~~~~~~~~ 공항이네 다시.
익숙하게 수속을 밟고,
티켓을 얻고.
면세점으로 들어가 남은 시간동안 무얼 할까 하다가 밥이나 먹기로 하여 일식집에 앉았다.
뭐야, 비싸잖아. 고작 우동 하나에 4~500밧이나 하다니.
뭥미 싶다가도 운봉이형이 국물있는거 먹고싶다고 하고 뭐 이걸로 적당하지 싶어 캘리포니아롤 하나와함께 우동을 두개 시켰다.
어떻게먹었는지도 모르고.
그리고, 어떻게 걸어서,
어떻게 들어가니.
정신을 차리니 게이트 앞 의자에 앉아있다.
현재를 먹지않고 현재를 걷지않고 현재를 들어가지 않고 치환한 과거를 떠올리며 시간을 굴렸다.
밤10시 비행기를 타고, 새벽 6시에 인천에 도착할테니, 그리고 곧바로 회사로 출근해야하니 숙면하지않으면 큰일이다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타고 벨트 풀르면 곧바로 맥주 한캔 달라고하고 먹고 골아떨어져야겠다"
그리곤, 시간이 지나 비행기를 타고 벨트를 묶고 곧바로 골아떨어졌다-_-.
또 시간이 조금 지나 눈을 뜨니 벌써 방콕을 넘어섰네,
이 사진을 한번 찍고 다시 한번 눈을 감았다
뜨니.
여기는 한국인듯, 태국에서도 한번 못 본 일출을 비행기 안에서 자외선샤워와 함께 맞게 된다.
뭐했지...?
근 일주일동안 뭐했지?
아, 지금 생각하고 정리할 필욘 없잖아.
땅에 닿은 비행기는 활주로를 빙빙 돌고, 머릿속은 정리안되서 빙빙 돌고. 운봉이형 손목시계도 출근시간을 향해 빙글빙글 돈다.
운봉이형은 빨리 집으로 가고싶은지 엄청 빨리 걷는다 무슨 경보하듯이.
한국인 라인에 줄을 서고.
나도 줄을 서고.
모든 수속을 다 밟고 바깥으로 나왔다.
"나는 강남가는 버스 타고,"
"네, 저는 서현 가는거 타야죠"
"어 잘 들어가고 조만간 또 만나서 여행 뒷얘기 하자"
"네 형 잘 들어가세요. 집에 들어가시면 노트북에 사진 주세요"
"어"
출구를 나서니 이거 뭐야, 한국이 춥다!
빈팔 삼선 추리닝복을 꺼내입고 서현행 버스를 탔다.
또 잠이 들고, 눈을 뜨니 서현이다.
아, 회사에서 나와서 여행 시작이었는데 회사로 여행이 끝나네.
혼자 내려 걸어가며 별 밀려온 생각들이 다 떠오른다.
항상 둘이 걷다가, 이젠 혼자네, 라는 생각도 들고.
고작 20시간도 안되는 시간에 그 시원하고 따뜻한 바다에 누워있었 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적응 안될 줄 알았던 서현동에 놀랍게도 무척이나 침착하게 적응하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여행 중 만났던,나에게 말을 걸었던 아이들도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뭔가 여행을 내 머릿속에서 정리 해야 하겠는데, 정리가 도저히 안된다.
가기전엔 조마조마 했고, 가선 즐겁기만 했고, 와선 아쉽기만 하고.
"에이 몰라. 나중에 또 한번 갔다와서 생각해보지 뭐."
여행은 이렇게 어처구니없고 단순한 이유로 다음 여행을 계획하게 만든다.
미련하게 생각을 미루고,
떠나는 날과 같이 엘리베이터에서 또 한번 사진을 담을 때
여행은 비로소 끝이 났다.
끝.
여행기가 끝났습니다.
여행기는 http://blog.naver.com/songsl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여행기에 올리지 않은 사진이 플리커에 많이 있습니다.
몇 분 안계셨지만 여행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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