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5일
택시를 탔다.
미터를 외쳤다.
슈어슈어 하길래 택시를 탔다.
마분콩으로 가자고 했다.
가다가 미터기를 끄더니.
200밧이란다.
또 속았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태국에서 택시를 잘 탔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심지어 우리나라 택시기사들도 그러는 거 아닌가 싶어서,
걱정이 됐다.
물론 태국의 여행자 수만큼
대한민국을 여행하러 오는 여행자의 수가 많지는 않겠지만,
그 여행자들이 만약 택시에서 그런 대접을 받는다면,
도대체 어떻게 생각을 할지,
혹은 그들의 주머니 사정.
택시를 타고 오면서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관광지들이 얼마나 가까운지 새삼 깨달았다.
1분도 되지 않아서,
이런저런곳들이 쭈욱 나왔다.
친절하게도(?) 택시기사는 까샘산 로드에 세워주었다.
이 안에 겟하우들 많다면서.
그런데 그 말을 또 믿지 못해서 난 또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돌고 나서 지쳐서는 지도를 살펴보니 아까 그 곳이 맞긴 맞았다.
점점 사람을 못 믿겠는데, 나도 못 믿으니,
도대체 무엇을 믿어야할 지 모르겠다.
그리고 난 까샘산로드를 뒤졌다.
정보와는 달리 700밧에서 900밧에 이르는 숙소들이 전부였다.
그렇게 구리구리하다던 스타호텔도 눈에 보였고.
웨디 하우스나 여기저기.
그러다가 지쳐서 맨 앞의 숙소로 들어가서 700밧에 하자...
하고 인터넷을 하는데, 400밧짜리가 있다길래,
바로 달려갔다.
화이트 로지.
싱글룸이라면서 준 방은 침대가 큰 방이었다. 그래서 500밧.
그래도 다른 곳보다 훨씬 쌌지만,
1층 카운터 바로 옆 방이었다.
창문이 있긴 한데,
창문을 열면 바로 카운터가 보인다.
이래서는 커튼을 열 수가 없다.
옷 입고 커튼을 열고 있어도 민망하다.
카운터에서 이것저것 묻고 방을 구하는데,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카오산에서는 먹히던 영어가 이곳으로 오니
점차 안 먹히기 시작했다.
내 발음이 완전 몹쓸 발음인 건지, 이 사람들이 못 알아듣는 건지.
삼촌께 전화를 했다.
이 삼촌은 내가 울 엄마가 비디오 대여점을 운영하실 때에,
근처에 또 다른 비디오 대여점을 운영하시던 삼촌이신데,
요즘 태국에서 사업을 하신다고 했다.
고등학교 3학년 이후로
내가 서울에 올라온 이후로 못 뵈었었는데,
이렇게 다시 뵐 걸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스쿰윗에서 만나기로 했다.
처음 타는 BTS.
택시보다 훨씬 싸고(?) 좋았다.
다만, 문제는 노선이 두 개에,
지하철과 연결이 안 되어 있는 점이랄까.
처음 보는
BTS와 BTS철도.
그 주위엔 디스커버리와 MBK, 씨암센터등이 둘러싸고 있어서,
더욱 웅장해보였다.
자츰 이곳이 카오산 로드가 아닌 태국으로 비춰진다.
태국 여자애들 이쁘게 생겼다. (.....)
3정거장 지나서 스쿰윗.
그러니까 BTS역으로 치자면 아쏙이었나..
아무튼 도착했지만 너무 이른 시간.
그런데 문제는 슬슬 잠이 왔다.
곧 졸려 쓰러질 듯.
그리고 한인상가. 스쿰윗 프라자.
국제전화카드.
엄마에게 전화
세환, 다솔, 멀더형에게 전화.
정말 눈물날 뻔 했다.
계속해서 비록 이틀동안이었지만,
혼잣말조차 영어로 했었다.
그러다가 한국말이 들리고 한국말을 하려니,
뭔가 뭉클했다.
한국이 그립진 않은데 이 사람들이 그리웠다.
이들만 그리운 게 아니다.
그냥 모두가 그리웠다.
그래도 시간은 잘 가지 않았다.
여기저기 서성이며 시간을 죽였다.
햇빛 아래서 2시간 30분 가까이 기다렸다.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을 봤고.
특히 한국사람.
이제는 어느 정도 구별 할 수 있다.
한 시간 반 정도를 밖에서 그냥 기다렸다.
정말 방콕의 트래픽잼은 심했고,
그 영향 탓인지,
도시의 매연이 너무 심했다.
그냥 시커먼 연기가 눈에 들어왔다.
삼촌이 도착 했다.
너무 반가워서, 그냥 방콕의 매연도 더위도,
느껴지지 않고,
마냥 웃음만 나왔다.
삼촌이 한국음식을 먹자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분명 삼일 째에도 불과하고,
한국음식이 그리웠다.
김치찌개와 불고기백반을 먹었다.
주 음식보다 반찬에 손이 많이 갔다.
너무 맛있어서 어쩔 줄을 모르고,
두 공기나 해치웠다.
삼촌과 이야기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한국사람과 한국말로 이야기 하는 게
이렇게 즐거운 일이었나 싶었다.
어디로 여행갈 지부터, 이것저것.
그리고 식사가 끝나고
순명 삼촌과 같이 오신 회장님 이란 분이 2000밧을,
삼촌께서 3000밧을 주셨다.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너무나 감사했다.
여행비용이 어느 정도 내게는 빠듯했었기 때문에.
정말 눈물 날 뻔했는데.
삼촌은 마사지 샵에서 두 시간짜리 타이 마사지도 예약해주셨다.
그렇게 나는 인사를 드리고,
마사지 샵에서 바로 마사지를 받게 되었다.
나름대로 큰 마사지 샵이었다.
4개 층으로 구성되어있어서
층마다 다른 종류의 마사지실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마사지 사를 따라다니기만 했는데,
뭐라고 말을 좀 하고 싶은데.
답답했다.
마사지사는 엄마와 동년배 같았다.
괜히 죄송스러웠다.
마사지가 시작되었고,
마사지는 조금 아팠다.
신체의 한계를 시험하는 기분이랄까.
게다가 잠을 못자고 가서 그런지.
졸면서 마사지를 받았는데, 피곤했다.
아파서 잠을 자진 못하고.
그리고 또 마사지사가 마사지를 하는 걸 보니,
정말 힘든 작업 같아서, 미안해서 잠을 청할 수 없었다.
그런데 보통 이 마사지의 가격은 300밧.
타이 마사지의 가격은 보통 200밧에서 700밧까지 하는 걸 봤는데,
이곳은 꽤나 큰 곳임에도 불구하고 300밧에 불과했다.
300밧 중에 마사지사가 받는 돈은 얼마나 될까.
두 시간동안 정말 쉬지 않고 온몸을 마사지하는데,
이 두 시간동안 그녀가 벌 수 있는 돈이 300밧에 못 미친다는건데,
조금 더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마사지를 많이 해왔으면.
악력이나 팔힘이 이렇게 쎌까.
너무너무 아팠다.
아팠지만, 그냥 받았다.
또 아프다고, 좀 약하게 하라고 하고 싶었지만,
마사지는 아픈 게 몸에 좋다고 했다.
그래서 끝까지 다 받았다.
마지막엔 얼굴 마사지를 해주는데, 마사지 사의 얼굴을 보면서 하게 되는데,
너무 부담스럽고 미안해서 눈을 감고 받았다.
그런데 꼭 마사지를 받는 자세가 부모가 자식을 끌어안고서 다독이는 듯한 자세였다.
조금 편했다.
모두 끝나고 나는 그녀에게 팁으로 100밧을 주었다.
그녀도 좋아해서 참 다행이었다.
그렇게 밖으로 나왔는데,
몸이 너무 가벼워졌다.
욱씬거리는 곳 없이,
몸이 모두 시원해지고 가벼워졌다.
이게 타이 마사지의 위대한 힘이던가.
나는 매우 졸려있는 상태였다.
쓰러질 것만 같아서,
계획을 변경했다.
원래는 RCA거리에 가서
클럽들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보려고 했으나.
잠이 너무 쏟아져서,
내일 파타야가서 쓸 준비물이나 챙기자 싶어서.
다시 씨암으로 돌아갔다.
BTS를 타고 씨암으로 돌아왔는데,
아침과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정말 젊음과 패기가 넘치는 느낌이랄까.
방콕의 젊은이들은 모두 모여 있는 듯.
사진을 마구마구 찍었다.
그리고 BTS 바로 옆에 씨암파라곤센터를 보곤,
그 유명한 볼링장에 가봐야지 싶었으나,
너무 피곤해서.. 나중에 꼭 다시 오기로 했다.
파라곤 센터는 정말 큰 쇼핑몰이자 문화센터였다.
우리나라에도 아마 그 정도 규모의
쇼핑문화센터는 없을 것 같았다.
건물도 완전히 새 건물에 그 주위엔 기분 좋은 바람이 불었다.
외국 사람은 간혹 가다 한 명씩 보였다.
정말 방콕인가...이게 방콕이구나 싶었다.
그 옆인 씨암센터로 옮겨가서, 이것저것 샀다.
든 비용은 총 540밧.
씨암센터에서는 연예인들도 오긴 했나본데,
별로 유명하지 않은지, 그다지 많은 사람은 없었다.
그나저나, 정말 예쁜 여자 많구나.
침을 흘리며 돌아다녔다.
간혹 정말 돈 많아 보이는 추남유로피안과
태국 미녀 커플도 보였다.
그들이 진심으로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게 가다가 씨암스퀘어 쪽으로 갔다.
정말 이 곳은 동대문 같은 곳이었다.
많은 작은 옷가게가 밀집해있었지만,
또 그 복잡함은 동대문과 비교가 되질 않았다.
수많은 태국인들 사이의 나는 이들에게 이방인이었다.
자꾸 쳐다본다.
내가 분명 호시노 아키티를 입고 있어서 그럴 여지가 더 많지만,
아무래도 나는 한국사람처럼 생겼으니까.
사람들이 다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길래,
얼떨결에 따라 들어갔는데,
가로너비가 1미터 겨우 될 것 같은 곳에
양아치들이 담배를 피우며, 사람들을 조롱하고 있었다.
지나간 사람 뒤통수에 담배연기를 뿜어대질 않나.
뭐라고 씨부려대질 않나.
어딜가나 전세계에 이런 놈들이 꼭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힘도 없고, 자신도 없어서
이런 놈을 피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처럼.
도시의 매연은 생각보다 심했다.
그냥 눈 앞이 뿌옇다.
저녁시간쯤 되니, 걸인들이 5m마다 한 명씩 보였다.
동정심을 갖게 되면 안 된다.
나는 이상하게 그런 것에 어렸을 때부터 약해서,
그들을 볼 수가 없었다.
숙소에 도착했고,
갑자기 나는 외로워졌다.
이 곳은 카오산보다 정말 조용한데다가,
한국인은 생각할 수도 없고,
영어는 더더욱 쓰기도 힘들었다.
나는 그냥 잠에 들어버렸다.
자취방에서 혼자 살던 그 때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