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팔이의 2001년 태국원정 일기(19일차)-칸차나부리
2001년 9월 22일(토) - 여행 마지막 날.
이제 그 지긋지긋한 대한민국으로 귀국해야 하는 날이다.
오늘 밤 11시 비행기 NH 154편으로 출국하게 된다.
어제도 5시에 모닝콜을 부탁했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서 투어를 갈 수 있었다.
체크아웃하고 근처 여행자 식당에가서 카우팟 꿍으로 식사를 하고, 홍익인간에 갔다. 짐을 맡긴 다음 현지인 인솔자를 따라 가서 투어가는 다른 일행과 합류 한다.
봉고차 안에는 피부가 까무잡잡한 현지인 가이드 아줌마가 동승한다. 이날 칸차나부리 일일투어 코스는 연합군 묘지, 2차 세계대전 박물관, 콰이강의 다리, 죽음의 철도여행 코스, 싸이욕 너이 폭포를 가보는 것이었다.
8시경에 카오산을 출발한 봉고차는 1시간 반정도를 가더니, 칸차나부리에 도착. 연합군 묘지를 먼저 갔다.
그곳은 말그대로 전사한 군인들이 안장된 묘지기 때문에, 우리나라 국립묘지, 아니다. 좀더 정확히 표현하면, 부산에 있는 UN군 묘지와 비슷한 분위기 였다. 그다지 볼건 없지만, 편안히 산책하면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기엔 그만이다.
묘비들을 보니까 다들 젊은 나이에 끌려와서 뺑이치다가 , 비참하게 죽은 것이다. 국적은 영국, 프랑스, 미국, 호주, 네덜란드,캐나다 등 다양했다.2차대전 당시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한 것이다. 나이대를 보니까 평균 25세 전후의 창창한 나이들이었다. 최연소가 17세로 였던걸로 기억된다. 그 친구 참 안됐다.
다음 코스로 콰이강의 다리와 붙어 있는 2차세계대전 박물관에 갔다. 박물관 입구에, 일제가 군용 열차로 사용했던 기차가 전시돼 있다. 박물관에는 2차대전 당시 일본군, 연합군, 또 주변국가(캄보디아, 베트남, 중국등)들이 사용했던 군용품과 무기들이 전시돼 있었다.
또 일본애들이 연합군을 두들겨 패고, 고문하고, 강제 노동시키는, 비인간적인 장면들이 삽화로도 그려져 있고, 그걸 찍은 사진도 있다.일본애들이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멀리 동남아에 와서도 못된짓을 많이 했구만...
물론 잘 알려진 야그지만, 실제로 그런 역사의 현장을 우리나라 독립기념관 말고는 접한 적이 없었다. 그것도 머나먼 이국 땅에서...
그 당시 태국은 일본왕실과의 전통적인 우호관계 때문에, 아니면, 자국의 독립내지는 안전을 위해서 였는지는 몰라도 일본에게 간접적인 협조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쪽발이들이, 그 당시 태국과 미얀마 와의 접경지대를 거점으로 인도까지 진출하려고, 철도를 건설하는데, 그 과정에 생긴 다리가 콰이강의 다리다. 연합군 포로들을 강제동원, 절라게 뺑이치게 해서 만든 다리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한 것은 포로들한테 직접적으로 두들겨팬건, 조센징들이었다. 거기 안내문에 영어로 쓰여진걸 대충 학교다닐때 공부했던 독해실력을 총동원해서 읽어봤는데(시간이 상대적으로 널널해서) 그 당시 우리나라가 일본 식민지 였기 때문에, 많은 조선사람들이 이곳에 군사로 징집당해와서, 일본군 장교의 지시에 따라, 포로들을 두들겨 패버렸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식민지였다는 사실보다 어쩔수 없이 악역을 맡았다는 것이 더 안타까운 일이다.
그곳은 많은 유물들이 전시된 박물관, 일본군 진지, 감시망루, 막사등이 모형으로 만들어져, 그해 여름 휴가때 갔었던 거제도의 포로수용소와 흡사한 분위기였다.
멀리 기차가 기적을 울려대며, 콰이강의 다리를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같은 투어 일행중 일본 뇨자애들 둘이 있었는데, 자기네 조상들이 했던 짓이 부끄러웠는지, 박물관 몇번 둘러보고는 민망하다는 듯이 투어버스로 들어가 버린다.
다음은 태국의 3등석 열차를 타고 떠나는 '죽음의 철도 여행'이다.
콰이강의 다리역에서 출발한 기차가 다리를 건너, 청까이 절벽을 지나, 협곡을 달린다.
기차안은 우리나라 통일호 하고 비교하면 될듯 하다. 그런데 좌석이 나무로만 돼서 딱딱하기 때문에 더 불편하다. 기차안에도 냉방은 안된다.
거기 열차안에도 우리나라 홍익회 아저씨들처럼 간식거리 팔러 돌아다니는 유니폼 입은 아저씨들이 있다. 조금 출출해서 도우넛하고, 환타를 사먹었다. 그들은 계속 돌아다니다가, 내가 다먹은 깡통하고 도우넛 봉지를 다시 와서 가져간다.
우리나라 기차와는 달리 좌석을 돌려서 움직일 수도 없고, 앞에 그물망도 없어서 그랬을까?
기차타고 가면서 보이는 강물과, 강변에 떠 있는 수상가옥, 수상식당 들의 풍경이 장관이었다. 물색깔이 흙탕물이었지만, 그래도 봐줄만했다.
여행이 아니라, 방콕에서 타고온 현지인 아줌마들도 많았다. 이들은 우리에게 바깥 풍경을 사진찍으라고 자리까지 비켜줄 정도로 친절했다.
몇번씩 내가 컵쿤캅을 했는지 모른다. 그럴때 마다 괜찮다고 미소로 답례한다.
점심때쯤 되서 종착역인 남쪽에 도착. 우리 투어 일행은 근처 야외식당에 가서 식사를 했다. 닭고기 샐러드에 밥이 나왔는데, 양이 적어서 식사가 부실했다. 하지만, 아까 그 일본 뇨자애들 둘은 속이 안좋은건지, 입에 안맞는 건지, 아니면 원래 양이 적은지, 조금 먹는둥 마는둥 하고, 남긴다.그래서 내가 먹을라구 햇는데, 옆에 있던 영국눔 하나가 잽싸게 그것들 다 가져가서 지가 다 먹어 버린다.
투어 일행은 나, 일본소녀 둘, 영국애들 넷 이렇게 가이드 아줌마 하고 기사 빼고 7명 이었다.
담배 태우면서 휴식을 취하다가, 일본애들 둘은 300밧인가 내고, 코끼리를 타고 가기로 하고, 우리는 봉고차로 각각 싸이욕 너이 폭포로 향했다.
난 전까지만 해도 서양여자애들, 일본기지배들은 무조건 담배를 80
이제 그 지긋지긋한 대한민국으로 귀국해야 하는 날이다.
오늘 밤 11시 비행기 NH 154편으로 출국하게 된다.
어제도 5시에 모닝콜을 부탁했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서 투어를 갈 수 있었다.
체크아웃하고 근처 여행자 식당에가서 카우팟 꿍으로 식사를 하고, 홍익인간에 갔다. 짐을 맡긴 다음 현지인 인솔자를 따라 가서 투어가는 다른 일행과 합류 한다.
봉고차 안에는 피부가 까무잡잡한 현지인 가이드 아줌마가 동승한다. 이날 칸차나부리 일일투어 코스는 연합군 묘지, 2차 세계대전 박물관, 콰이강의 다리, 죽음의 철도여행 코스, 싸이욕 너이 폭포를 가보는 것이었다.
8시경에 카오산을 출발한 봉고차는 1시간 반정도를 가더니, 칸차나부리에 도착. 연합군 묘지를 먼저 갔다.
그곳은 말그대로 전사한 군인들이 안장된 묘지기 때문에, 우리나라 국립묘지, 아니다. 좀더 정확히 표현하면, 부산에 있는 UN군 묘지와 비슷한 분위기 였다. 그다지 볼건 없지만, 편안히 산책하면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기엔 그만이다.
묘비들을 보니까 다들 젊은 나이에 끌려와서 뺑이치다가 , 비참하게 죽은 것이다. 국적은 영국, 프랑스, 미국, 호주, 네덜란드,캐나다 등 다양했다.2차대전 당시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한 것이다. 나이대를 보니까 평균 25세 전후의 창창한 나이들이었다. 최연소가 17세로 였던걸로 기억된다. 그 친구 참 안됐다.
다음 코스로 콰이강의 다리와 붙어 있는 2차세계대전 박물관에 갔다. 박물관 입구에, 일제가 군용 열차로 사용했던 기차가 전시돼 있다. 박물관에는 2차대전 당시 일본군, 연합군, 또 주변국가(캄보디아, 베트남, 중국등)들이 사용했던 군용품과 무기들이 전시돼 있었다.
또 일본애들이 연합군을 두들겨 패고, 고문하고, 강제 노동시키는, 비인간적인 장면들이 삽화로도 그려져 있고, 그걸 찍은 사진도 있다.일본애들이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멀리 동남아에 와서도 못된짓을 많이 했구만...
물론 잘 알려진 야그지만, 실제로 그런 역사의 현장을 우리나라 독립기념관 말고는 접한 적이 없었다. 그것도 머나먼 이국 땅에서...
그 당시 태국은 일본왕실과의 전통적인 우호관계 때문에, 아니면, 자국의 독립내지는 안전을 위해서 였는지는 몰라도 일본에게 간접적인 협조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쪽발이들이, 그 당시 태국과 미얀마 와의 접경지대를 거점으로 인도까지 진출하려고, 철도를 건설하는데, 그 과정에 생긴 다리가 콰이강의 다리다. 연합군 포로들을 강제동원, 절라게 뺑이치게 해서 만든 다리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한 것은 포로들한테 직접적으로 두들겨팬건, 조센징들이었다. 거기 안내문에 영어로 쓰여진걸 대충 학교다닐때 공부했던 독해실력을 총동원해서 읽어봤는데(시간이 상대적으로 널널해서) 그 당시 우리나라가 일본 식민지 였기 때문에, 많은 조선사람들이 이곳에 군사로 징집당해와서, 일본군 장교의 지시에 따라, 포로들을 두들겨 패버렸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식민지였다는 사실보다 어쩔수 없이 악역을 맡았다는 것이 더 안타까운 일이다.
그곳은 많은 유물들이 전시된 박물관, 일본군 진지, 감시망루, 막사등이 모형으로 만들어져, 그해 여름 휴가때 갔었던 거제도의 포로수용소와 흡사한 분위기였다.
멀리 기차가 기적을 울려대며, 콰이강의 다리를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같은 투어 일행중 일본 뇨자애들 둘이 있었는데, 자기네 조상들이 했던 짓이 부끄러웠는지, 박물관 몇번 둘러보고는 민망하다는 듯이 투어버스로 들어가 버린다.
다음은 태국의 3등석 열차를 타고 떠나는 '죽음의 철도 여행'이다.
콰이강의 다리역에서 출발한 기차가 다리를 건너, 청까이 절벽을 지나, 협곡을 달린다.
기차안은 우리나라 통일호 하고 비교하면 될듯 하다. 그런데 좌석이 나무로만 돼서 딱딱하기 때문에 더 불편하다. 기차안에도 냉방은 안된다.
거기 열차안에도 우리나라 홍익회 아저씨들처럼 간식거리 팔러 돌아다니는 유니폼 입은 아저씨들이 있다. 조금 출출해서 도우넛하고, 환타를 사먹었다. 그들은 계속 돌아다니다가, 내가 다먹은 깡통하고 도우넛 봉지를 다시 와서 가져간다.
우리나라 기차와는 달리 좌석을 돌려서 움직일 수도 없고, 앞에 그물망도 없어서 그랬을까?
기차타고 가면서 보이는 강물과, 강변에 떠 있는 수상가옥, 수상식당 들의 풍경이 장관이었다. 물색깔이 흙탕물이었지만, 그래도 봐줄만했다.
여행이 아니라, 방콕에서 타고온 현지인 아줌마들도 많았다. 이들은 우리에게 바깥 풍경을 사진찍으라고 자리까지 비켜줄 정도로 친절했다.
몇번씩 내가 컵쿤캅을 했는지 모른다. 그럴때 마다 괜찮다고 미소로 답례한다.
점심때쯤 되서 종착역인 남쪽에 도착. 우리 투어 일행은 근처 야외식당에 가서 식사를 했다. 닭고기 샐러드에 밥이 나왔는데, 양이 적어서 식사가 부실했다. 하지만, 아까 그 일본 뇨자애들 둘은 속이 안좋은건지, 입에 안맞는 건지, 아니면 원래 양이 적은지, 조금 먹는둥 마는둥 하고, 남긴다.그래서 내가 먹을라구 햇는데, 옆에 있던 영국눔 하나가 잽싸게 그것들 다 가져가서 지가 다 먹어 버린다.
투어 일행은 나, 일본소녀 둘, 영국애들 넷 이렇게 가이드 아줌마 하고 기사 빼고 7명 이었다.
담배 태우면서 휴식을 취하다가, 일본애들 둘은 300밧인가 내고, 코끼리를 타고 가기로 하고, 우리는 봉고차로 각각 싸이욕 너이 폭포로 향했다.
난 전까지만 해도 서양여자애들, 일본기지배들은 무조건 담배를 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