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팔이의 2001년 태국원정 일기(15일차)-치앙마이
2001년 9월 18일(화)
드디어 버스가 치앙마이 시내 파라다이스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했다. 거기서 팀을 짜주고, 제각기 썽태우에 픽업해서 다른 게스트하우스로 이동했다.
나는 가이드 할아버지 쏨삭과, 나락 아저씨, 어떤 아줌마 하고 총 넷이 한팀이 됐다.
인터넷상에서 그 유명한 나락아저씨하고, 같은 한팀이 되다니...
나락아저씨가 운영하는 홈페이지(나는 밤에만 돌아다녔다)
많은 분들이 들어갔을 것이고, 알만한 사람들은 다들 알것이다.
나락아저씨는 거기서 현지 가이드를 하고 있고, 태국에 거주한지 거의 10년인가 됐다고 했다.
또 어떤 아줌마 한분은 광주에 사시고, 잡지회사에서 기자로 일하시는데, 잠시 휴가를 내서 나왔다고 했다.
썽태우를 타고 어떤 게스트 하우스에내려서 잠시 접수확인, 인원점검하고 한시간 휴식 후 트레킹 장소로 다시 떠났다.
트레킹 하는곳 입구에 보니까 수학여행온 교복입은 현지 학생들이 많았다. 고산족 의상을 입은 귀여운 꼬마애들이 기념품을 팔려고, 관광객들을 졸졸 쫓아다닌다. 하두 앙증맞고 깜찍한 것들이라, 무조건 뿌리치기도 그렇다. 애교에 못이겨서 결국엔 한 두개 정도 사주게 된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귀여운 카렌족 소녀가 와서 기념품 사달라고 갖은 애교를 떤다. 나도 애교에 못이겨서 결국 예쁜 분홍색 부채 하나 샀다. 그리구 팔짱끼구, 기념사진 하나 찍었다.
너무 귀엽구 앙증맞아서 이마에다 뽀뽀 해주니까 엄청 수줍어 한다.
가이드가 만들어준 바미를 먹고, 본격적인 트레킹 투어가 시작됐다.
트레킹코스 의 첫번째는 코끼리 타고 계곡을 건너는 것이었다.
머리털나고 처음으로 코끼리를 타보게 된 것이다.
우리팀원이 가이드 할아버지 빼고 총 3명이라 코끼리 한 마리에 인원 모두가 타야 했다. 원래 코끼리 안장에는 두명이 탈수 있었는데
나만 자리가 없어서 코끼리 머리위에 타야 했다.
코끼리가 걸어 갈때마다 흔들려서 떨어질까봐 무서웠다.
온몸이 힘이 들어가다 보니, 허리도 아팠다.
코끼리가 귀를 흔들면서 내 다리를 찰싹 찰싹 때렸다. 따끔하고 아팠다.
그런데 우리팀이 탄 이놈으 코끼리가 코끼리 조련사의 말을 겁나게 안들어 먹는 것이었다.
코끼리 조련사가 빨리좀 가라고, 올라타서 흔들어대고, 쓰리빠 벗어서 때리고, 발로 걷어차는데도 이놈은 도대체가 움직일 생각을 안한다.
우리팀이 탄 코끼리가 제일 먼저 출발한 코끼린데, 나가는 진도는 제일 늦다. 조련사가 말 안들으면 좀 때리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머리위에 올라타서 코끼리를 마구 흔들어댔다. 말뚝박기 놀이 할때 상대방 목빠져서 찌부되라구 흔들어 대는것 처럼.
그리고 빨리좀 가라고 머리통을 한대 때렸다. 이놈은 마치 반항이라도 하긋 더욱 세게 귀로 내 다리를 때렸다.
그놈참 성질한번 더러운 놈이다. 움직일때 마다 이놈이 거의 요동치듯 움직여서 떨어질까봐 무서웠다.
결국은 일이 터졌다. 이놈이 결국 객기를 부린 것이다. 원래 이런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내가 잘못 걸린 날이다.
이놈이 걸어가다가 코로 물을 삼키더니 위로 올려서 나한테 마구 뿌려댄다.
난 깜짝 놀라서 몸에 중심을 잃고 자빠질뻔 했다. 그 과정에서 꽉 조이지 않아서 너덜너덜 하던 안경이 머리를 움직이니까 탁 떨어져서 안경 다리가 분리 됐다.
이런 돌발사태가 발생하다니, 더 웃긴건, 그 안경을 코끼리가 밟은 것이다.
오! 이럴 수가. 난 어이가 없었고, 망연자실했다.
어찌 이런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절라 황당했다. 난 시력이 마이너스라 안경을 벗으면, 한 1,2미터 떨어지면 글자가 잘 안보이는데..
하여간 골때리는 시끼다. 결국 난 그놈과의 신경전에서 밀렸고 두손 두발 다 들었다. 무서운 놈이다.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 할 수 있지만, 그때는 엄청 당황했다.
내가 귀국후 식구들한테, 친구들한테 그 야그를 해주니까 다들 배꼽을 잡고 웃는다. 지금 생각해봐도 거의 배꼽 잡고 웃음만 나온다.
나락 아저씨가 그런 것들도 다 지나면 재미있던 추억이 되니까 너무 기분상하지 말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다른 코끼리에 탄 서양놈 하나는 안장위에 탔다가 조련사하고 자리 바꿔서 머리위에 올라타서 벼라별 쌩쇼를 다한다. 엄청 재미있나보다.
하여간 이 코끼리 끝까지 농땡이 피우면서 어슬렁 어슬렁 움직이다가 맨 꽁지로 목적지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출발한 코끼리가 맨꽁지로 도착하다니, 이놈 나중에 조련사한테 엄청 맞겠다.
아니면 가죽공장으로 팔려가던가...
원래 코끼리가 태국에서는 굉장히 신성시 하는 동물인데, 조련사한테 맞고, 관광객들한테 수난당하고, 참 아이러니칼 한 일이다.
이제 산을 타고, 카렌족들 마을 까지 가는 일이 남았다.
등산로 입구에는 넝포도라는 현지 카렌족 가이드가 따라붙었다.
그 친구가 사는 마을은 그 입구에서 걸어서 20시간을 산타고 물건너 가야 하는 곳에 있단다. 산밑에 마을로 내려와서 집에 돌아갈때는 이 마을에서 쉬고, 밥좀얻어먹고 하고 다시 가던 길을 간단다.
예상보다 등산코스가 가파른 편이었다. 난 한국에 있을때 거의 등산을 안했기 때문에 엄청 헉헉대고 힘들어 했다.
넷중에 내가 제일 꽁지로 따라왔다. 맨날 이렇게 산타고 다니면 살 엄청 빠질거 같다.
올라가는 도중에 폭포가 있어서 거기서 오기전에 밑에 게스트하우스에서 수영복으로 갈아 입고 갔기 때문에 수영도 하고 놀았다.
서양애들은 예외없이 다들 뛰어들어서 수영하고 논다. 그런데, 가이드 할아버지하고, 나락아저씨, 잡지사 기자 아줌마는 물을 싫어하는지, 세수하고, 발만담그고 있다.
나락 아저씨는 물가에서 노는것을 별로 안좋아 한다구 햇다.
산타고, 올라가다보면, 힘들고 지치니까 지나가다가 보이는 계곡이나 폭포에서 휴식을 취하는데, 들어가서 놀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잠시나마 더위를 잊을 수 있다.
트레킹 하러 가는 분들은 꼭 바지 속에 수영복 입고 가시기를...
2시간 정도 더 올라가니까 카렌족들이 사는 마을이 나왔다. 그곳이 우리가 머무르게 될 곳이다. 거기서 카렌족들하고 같이 밥먹고 하룻밤을 같이 자는 것이다.
흘린 땀을 씻기 위해 마을 바로 밑에 있는 폭포에서 목욕하고, 수영을 했다. 해가 넘어가고 저녁이 되니까 선선했다. 아니 그곳은 산속이라 춥기까지 했다.
거기도 꼬맹이들이 기념품좀 사달라고, 계속 쫓아다니면서 졸라댔다. 하지만, 별로 살것도 없어서 노땡규, 마이아오만 연발하고 모른척했다. 그러니 알아서 돌아간다.
움막 안은 해가 넘어가니까 암흑 그 자체였다. 안경이 없으니까 난 더 어둡게 느껴졌다. 그곳은 전기가 안들어와서 호롱불과 횃불을 썼다.
트레킹을 했던 사람들의 여행기를 읽어보니까 혹자는 그곳이 드라마 왕초에 나왔던 염천교 움막 같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갔던 곳은 깨끗하고, 지낼만 했다. 해가 넘어가니까 시원하고 좋았다 거긴 많이 서구화 되서 시설도 괜찮은 편이다.
진짜 원시적이고, 정통 고산족들을 접하고 싶으면,절대 치앙마이에 오지 말란다. 아니면, 여행사에서 파는 투어 상품 이용하지 말고, 개별적으로 가던가...
이곳 치앙마이의 고산족 마을은 그동안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다녀가서 다소 개화되고, 떼도 묻은 곳이다.원래 그들은 고산족들 고유만의 언어가 있어서, 영어는 물론 태국어도 안통하는 애들이다.
하지만, 다들 태국어가 되고, 추장은 영어를 할줄 알았다.
걔네 부족 중에는 밑에 치앙마이 시내에서 유학하는 애들도 있다.
추장이 오토바이를 타고 시장에 가서 두마리하고, 맥주를 사왔다. 가이드하고, 고산족 아줌마들이 우리들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줬다.
이미 전날 설사가 나았기 때문에, 나는 마음껏 먹고 영양보충 했다.
밥먹고 맥주 한잔 하면서 노가리 까고 있는데, 넝포도가 카렌족 전통악기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한바탕 흥겨운 분위기가 돼서 다들 덩실덩실 춤을 추고, 밤을 즐겼다.
이들은 우리보다 소득수준 낮고, 가난하지만, 마음만큼은 여유있고, 부자로 보였다. 꼭 물질적인 부만이, 행복의 전부가 될수는 없나보다.
이들은 정말 순박하고, 세속적인 욕심없이 하루하루를 마음 편하게 살고 있는것 처럼 보였다.
카렌족들 마을에서 그들과 어울려 놀면서, 치앙마이의 밤은 그렇게 흘러간다.
올라오기가 나한테는 힘이 들었고, 아까 코끼리가 내 안경 뽀게버리는 어이없는 불상사도 있었지만, 인상깊은 하루였다.
드디어 버스가 치앙마이 시내 파라다이스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했다. 거기서 팀을 짜주고, 제각기 썽태우에 픽업해서 다른 게스트하우스로 이동했다.
나는 가이드 할아버지 쏨삭과, 나락 아저씨, 어떤 아줌마 하고 총 넷이 한팀이 됐다.
인터넷상에서 그 유명한 나락아저씨하고, 같은 한팀이 되다니...
나락아저씨가 운영하는 홈페이지(나는 밤에만 돌아다녔다)
많은 분들이 들어갔을 것이고, 알만한 사람들은 다들 알것이다.
나락아저씨는 거기서 현지 가이드를 하고 있고, 태국에 거주한지 거의 10년인가 됐다고 했다.
또 어떤 아줌마 한분은 광주에 사시고, 잡지회사에서 기자로 일하시는데, 잠시 휴가를 내서 나왔다고 했다.
썽태우를 타고 어떤 게스트 하우스에내려서 잠시 접수확인, 인원점검하고 한시간 휴식 후 트레킹 장소로 다시 떠났다.
트레킹 하는곳 입구에 보니까 수학여행온 교복입은 현지 학생들이 많았다. 고산족 의상을 입은 귀여운 꼬마애들이 기념품을 팔려고, 관광객들을 졸졸 쫓아다닌다. 하두 앙증맞고 깜찍한 것들이라, 무조건 뿌리치기도 그렇다. 애교에 못이겨서 결국엔 한 두개 정도 사주게 된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귀여운 카렌족 소녀가 와서 기념품 사달라고 갖은 애교를 떤다. 나도 애교에 못이겨서 결국 예쁜 분홍색 부채 하나 샀다. 그리구 팔짱끼구, 기념사진 하나 찍었다.
너무 귀엽구 앙증맞아서 이마에다 뽀뽀 해주니까 엄청 수줍어 한다.
가이드가 만들어준 바미를 먹고, 본격적인 트레킹 투어가 시작됐다.
트레킹코스 의 첫번째는 코끼리 타고 계곡을 건너는 것이었다.
머리털나고 처음으로 코끼리를 타보게 된 것이다.
우리팀원이 가이드 할아버지 빼고 총 3명이라 코끼리 한 마리에 인원 모두가 타야 했다. 원래 코끼리 안장에는 두명이 탈수 있었는데
나만 자리가 없어서 코끼리 머리위에 타야 했다.
코끼리가 걸어 갈때마다 흔들려서 떨어질까봐 무서웠다.
온몸이 힘이 들어가다 보니, 허리도 아팠다.
코끼리가 귀를 흔들면서 내 다리를 찰싹 찰싹 때렸다. 따끔하고 아팠다.
그런데 우리팀이 탄 이놈으 코끼리가 코끼리 조련사의 말을 겁나게 안들어 먹는 것이었다.
코끼리 조련사가 빨리좀 가라고, 올라타서 흔들어대고, 쓰리빠 벗어서 때리고, 발로 걷어차는데도 이놈은 도대체가 움직일 생각을 안한다.
우리팀이 탄 코끼리가 제일 먼저 출발한 코끼린데, 나가는 진도는 제일 늦다. 조련사가 말 안들으면 좀 때리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머리위에 올라타서 코끼리를 마구 흔들어댔다. 말뚝박기 놀이 할때 상대방 목빠져서 찌부되라구 흔들어 대는것 처럼.
그리고 빨리좀 가라고 머리통을 한대 때렸다. 이놈은 마치 반항이라도 하긋 더욱 세게 귀로 내 다리를 때렸다.
그놈참 성질한번 더러운 놈이다. 움직일때 마다 이놈이 거의 요동치듯 움직여서 떨어질까봐 무서웠다.
결국은 일이 터졌다. 이놈이 결국 객기를 부린 것이다. 원래 이런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내가 잘못 걸린 날이다.
이놈이 걸어가다가 코로 물을 삼키더니 위로 올려서 나한테 마구 뿌려댄다.
난 깜짝 놀라서 몸에 중심을 잃고 자빠질뻔 했다. 그 과정에서 꽉 조이지 않아서 너덜너덜 하던 안경이 머리를 움직이니까 탁 떨어져서 안경 다리가 분리 됐다.
이런 돌발사태가 발생하다니, 더 웃긴건, 그 안경을 코끼리가 밟은 것이다.
오! 이럴 수가. 난 어이가 없었고, 망연자실했다.
어찌 이런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절라 황당했다. 난 시력이 마이너스라 안경을 벗으면, 한 1,2미터 떨어지면 글자가 잘 안보이는데..
하여간 골때리는 시끼다. 결국 난 그놈과의 신경전에서 밀렸고 두손 두발 다 들었다. 무서운 놈이다.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 할 수 있지만, 그때는 엄청 당황했다.
내가 귀국후 식구들한테, 친구들한테 그 야그를 해주니까 다들 배꼽을 잡고 웃는다. 지금 생각해봐도 거의 배꼽 잡고 웃음만 나온다.
나락 아저씨가 그런 것들도 다 지나면 재미있던 추억이 되니까 너무 기분상하지 말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다른 코끼리에 탄 서양놈 하나는 안장위에 탔다가 조련사하고 자리 바꿔서 머리위에 올라타서 벼라별 쌩쇼를 다한다. 엄청 재미있나보다.
하여간 이 코끼리 끝까지 농땡이 피우면서 어슬렁 어슬렁 움직이다가 맨 꽁지로 목적지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출발한 코끼리가 맨꽁지로 도착하다니, 이놈 나중에 조련사한테 엄청 맞겠다.
아니면 가죽공장으로 팔려가던가...
원래 코끼리가 태국에서는 굉장히 신성시 하는 동물인데, 조련사한테 맞고, 관광객들한테 수난당하고, 참 아이러니칼 한 일이다.
이제 산을 타고, 카렌족들 마을 까지 가는 일이 남았다.
등산로 입구에는 넝포도라는 현지 카렌족 가이드가 따라붙었다.
그 친구가 사는 마을은 그 입구에서 걸어서 20시간을 산타고 물건너 가야 하는 곳에 있단다. 산밑에 마을로 내려와서 집에 돌아갈때는 이 마을에서 쉬고, 밥좀얻어먹고 하고 다시 가던 길을 간단다.
예상보다 등산코스가 가파른 편이었다. 난 한국에 있을때 거의 등산을 안했기 때문에 엄청 헉헉대고 힘들어 했다.
넷중에 내가 제일 꽁지로 따라왔다. 맨날 이렇게 산타고 다니면 살 엄청 빠질거 같다.
올라가는 도중에 폭포가 있어서 거기서 오기전에 밑에 게스트하우스에서 수영복으로 갈아 입고 갔기 때문에 수영도 하고 놀았다.
서양애들은 예외없이 다들 뛰어들어서 수영하고 논다. 그런데, 가이드 할아버지하고, 나락아저씨, 잡지사 기자 아줌마는 물을 싫어하는지, 세수하고, 발만담그고 있다.
나락 아저씨는 물가에서 노는것을 별로 안좋아 한다구 햇다.
산타고, 올라가다보면, 힘들고 지치니까 지나가다가 보이는 계곡이나 폭포에서 휴식을 취하는데, 들어가서 놀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잠시나마 더위를 잊을 수 있다.
트레킹 하러 가는 분들은 꼭 바지 속에 수영복 입고 가시기를...
2시간 정도 더 올라가니까 카렌족들이 사는 마을이 나왔다. 그곳이 우리가 머무르게 될 곳이다. 거기서 카렌족들하고 같이 밥먹고 하룻밤을 같이 자는 것이다.
흘린 땀을 씻기 위해 마을 바로 밑에 있는 폭포에서 목욕하고, 수영을 했다. 해가 넘어가고 저녁이 되니까 선선했다. 아니 그곳은 산속이라 춥기까지 했다.
거기도 꼬맹이들이 기념품좀 사달라고, 계속 쫓아다니면서 졸라댔다. 하지만, 별로 살것도 없어서 노땡규, 마이아오만 연발하고 모른척했다. 그러니 알아서 돌아간다.
움막 안은 해가 넘어가니까 암흑 그 자체였다. 안경이 없으니까 난 더 어둡게 느껴졌다. 그곳은 전기가 안들어와서 호롱불과 횃불을 썼다.
트레킹을 했던 사람들의 여행기를 읽어보니까 혹자는 그곳이 드라마 왕초에 나왔던 염천교 움막 같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갔던 곳은 깨끗하고, 지낼만 했다. 해가 넘어가니까 시원하고 좋았다 거긴 많이 서구화 되서 시설도 괜찮은 편이다.
진짜 원시적이고, 정통 고산족들을 접하고 싶으면,절대 치앙마이에 오지 말란다. 아니면, 여행사에서 파는 투어 상품 이용하지 말고, 개별적으로 가던가...
이곳 치앙마이의 고산족 마을은 그동안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다녀가서 다소 개화되고, 떼도 묻은 곳이다.원래 그들은 고산족들 고유만의 언어가 있어서, 영어는 물론 태국어도 안통하는 애들이다.
하지만, 다들 태국어가 되고, 추장은 영어를 할줄 알았다.
걔네 부족 중에는 밑에 치앙마이 시내에서 유학하는 애들도 있다.
추장이 오토바이를 타고 시장에 가서 두마리하고, 맥주를 사왔다. 가이드하고, 고산족 아줌마들이 우리들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줬다.
이미 전날 설사가 나았기 때문에, 나는 마음껏 먹고 영양보충 했다.
밥먹고 맥주 한잔 하면서 노가리 까고 있는데, 넝포도가 카렌족 전통악기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한바탕 흥겨운 분위기가 돼서 다들 덩실덩실 춤을 추고, 밤을 즐겼다.
이들은 우리보다 소득수준 낮고, 가난하지만, 마음만큼은 여유있고, 부자로 보였다. 꼭 물질적인 부만이, 행복의 전부가 될수는 없나보다.
이들은 정말 순박하고, 세속적인 욕심없이 하루하루를 마음 편하게 살고 있는것 처럼 보였다.
카렌족들 마을에서 그들과 어울려 놀면서, 치앙마이의 밤은 그렇게 흘러간다.
올라오기가 나한테는 힘이 들었고, 아까 코끼리가 내 안경 뽀게버리는 어이없는 불상사도 있었지만, 인상깊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