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쭈앤짱의 즐거운 타일랜드 고고-♥푸켓 】
긴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감기 손님이 오신 바람에 일기쓰기가 늦춰졌어요.
기다리고 계셨다는 여니님, 감사해요~*^^*
【 새벽. 잠깐 일기 】
' 추...추워...- -'
언제 잠이 들었던 걸까요?
단잠에 깊이 빠졌던 저는 뼈 속을 파고드는 추위에 결국 눈을 뜨고 말았습니다.
코트 속으로 기어들어 가던 저는 가까스로 실눈을 뜨고 쭈를 찾았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쭈가 여전히 도도한 자세로 앉아 책을 읽는 것이 보이더군요.
" 쭈..."
" 응."
" 뭐야... 너 안 잔거야? 괜찮아? "
" 응, 안 괜찮을 게 뭐가 있겠어? "
" (강한 것...;;) 난 너무 추워서 입 돌아가겠다."
" 하긴....책 제목도 지금의 우리 상황과도 딱 맞는 것 같고."
" 제목이 뭔데?"
" 배고픔의 자서전."
" 아...- -;;"
전 진지하게 책표지를 바라보다가, 슬슬 나갈 준비를 하자는 쭈의 말에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코트로 온 몸을 둘둘 말고 화장실로 향하는 두 처자. 잠이 덜 깬 눈에는 배고픔에 살기
가 돌고, 씻지 못한 얼굴에는 추접이 좔좔 흘렀지만, 그래도 행복했습니다.
노숙을 해도, 냄새나는 화장실에서 친구를 기다려도, 배를 곯아도,
여행은 여행이라 그저 좋은 것....
저는 잊지 않기 위해 몇 번이고 되 뇌였습니다.
' 나는 여행을 하고 있다' 라고.
냄새나는 화장실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
바수어진 분홍이 】푸켓행 국내선을 이용하기 위해 저희는 국내선 탑승지역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오늘은 태국에서의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되는 날이니까, 둘의 아드레날린
지수는 이미 정상 수치가 아니었겠지요.
저희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앉아 웃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기쁨에 겨워 춤도 췄습니다.
글로리아 게이너의 'I will survive'에 맞춰 코트로 둘둘 만 몸에 배낭을 메고,
감지 않은 머리를 휘날리며.
그리고 저희는 드디어!! 아침 7시를 조금 넘어 푸켓 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어요.
광고전면의 빨간 색이 자극적인 그 이름도 유명한 에어아시아!
두근두근....오, 작다!
한 눈에도 낡은 것이 눈에 보였지만, 무슨 상관이랴?
뱅기만 잘 날면 됐지....뱅기만 안 부숴지믄 됐지...뱅기만 바다에 안 빠지면.....
에어아시아 창문의 얼룩과 함께하는 푸켓의 하늘.
참, 저 방콕에서 푸켓으로 가는 그 짧은 시간동안 또 사고를 쳤는데요.
자그마치 40밧짜리 캔 콜라를 사먹은 것입니다.
전 공짜로 주는 줄 알고 넙죽 받아서 '컵쿤카~^^' 하려는데, 되려 언니들이 활짝
웃으며 '컵쿤 카~'하고 손을 쭉 내미는 겁니다.
" 포티밧~^^"
젠장...
주섬주섬...
마지막 한 방울까지 후루루룩...쪽쪽 다 마시고 배 두들기며 내렸어요. 꺼억.
짧은 비행, 그리고 드디어 푸켓 도착!
기다려라, 꼬 피피, 우리가 간다아~!
저희는 날듯이 가방을 찾으러 달려 나갔습니다.
작고, 귀여운 레일을 따라 사람들의 가방이 쏟아져 나왔습니다...기보다,
칸막이 너머로 사람들이 레일위에 힘껏 가방을 내던지고 있더군요. - -;
" 언제언제 나오나~^^ "
" 빨리빨리 나와라~^^ "
이윽고 저의 피에르(피에르 가*뎅 캐리어라서)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쭈의 분홍이(분홍색 캐리어라서)를 찾는 순간....!!!
(◉__◉) (◉__◉)
......
.....
....
어째서!!!!!!!!!ㅜ ㅜ
어째서....!!
둘은 아무 말도 못한 채 바수어진 분홍이를 보고 있었습니다.
에어아시아, 명성은 들어 익히 알고 있었다만,
너 에어아시아여.
우리의 분홍이를 이렇게 부셔 버리다니.
우리의 분홍이가 뭘 그리 잘못 했길래??!!
너, 나의 40밧을 뱉어라.
에어아시아여.
저희는 한 동안 공항 안을 배회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뱅기를 어떻게 몰고 온 겨!!` 하고 따져야 했지만, 머리와 입이
따로 노는 영어를 생각하니.....하아아아.
게다가 깨진 분홍이를 생각하면 가슴에 들끓는 분노를 가져야 옳겠지만...
어째 점점 웃음만 나는 겁니다. 급기야 기분이 좋아지고...
왜? 우린 지금 태국이니까!!
아드레날린은 여전히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대로는 갈 수 없다는 결론을 내고, 물어물어 에어아시아 사무실을
찾아 갔지요. 2층 한 구석에 자리한 작은 사무실, 아주 찾기 쉽더군요.
저희는 문을 열고 비장한 표정으로...보여줬습니다.
" 에어아시아~! 내 가방 제대로 부서졌어!"
" 응, 알겠어~^^ "
엥? 이건 우리가 예상한 시추에이션이 아닌데? 저희는 ‘물어줘’하면 ‘안 물어줘’ 할 줄
알고 별별 상상을 다 하며 비장한 마음으로 찾아갔거든요.
한쪽 손에는 핸드폰 영어사전까지 대기 중...
그런데, 이 직원들이 하나같이 너무 친절한 겁니다. 게다가 폼으로라도 결코 놀라지
않는 이 얼굴. 저희는 알아 버렸습니다.
느그들, 한두 번 겪는 일이 아닌 게로구나...- -;
잠시 후, 사무실에서 부스럭부스럭 뭔가를 찾던 직원 분이 비슷한 사이즈의 스페어
캐리어를 찾아 주었습니다.
대신 원래 가방은 잘 수리해서 방콕으로 가는 날, 다시 돌려 주겠다구요.
저희는 직원들의 친절함에 감화되어 흔쾌히 수락, 이름하야 보라돌이(보라색 캐리어
니까)와 함께 피피에서의 이틀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첨보는 외국인이 옆에서 보따리를 싸도 눈길 한 번 안 주던 총각
태국 온 지 하루 만에 가방 깨지고 좋다고 웃던 쭈양.
결국 직원들과 아껴뒀던 쪼꼬렛까지 나눠먹고, 웃으며 바이바이~^^
이미 반쯤은 부서진 보라돌이를 이끌고 나와서, 저희는 ‘우린 영어를 너무 잘하는 것
같아’ ‘우린 너무 침착했어’ 하고 다시 한 번 덕담을 나누며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택시를 타러 가던 중, 저희는 한 직원에게 ‘피피로 가는 택시비가 얼마나 나오냐’고
물었다가, 우연히 공항 내에 위치한 보트 매표소에서 배표도 사고, 택시 예약까지
하게 되었어요.
바가지를 쓰나 싶어 고민했지만, 결국 타기로 마음을 먹고(일인당 500밧) 별다른 흥정
없이 구입했지요.
* 배표 사는 부스는 공항 맨 아래층 비상계단 앞에 있고, 맞은편에 공항 택시 부스가 있습니다. 흥정하기 싫으시거나 한 번에 택시, 배편을 해결하고 싶으시면 이용하세요~^^
【 힘내요, 24번 아저씨 】
저희는 택시 예약표를 들고 밖으로 나섰습니다.
한 직원이 저희의 영수증을 빼앗듯 가져가보더니, 한 택시로 인도해 주더군요.
택시에는 번호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24번 ’
금방이라도 핑크빛 물감이 뚝뚝 떨어져 내릴 듯 한 택시, 그 앞에 사람 좋게 웃고
있는 한 아저씨가 저희를 보고 손을 흔들었습니다.
‘24번 아저씨’
24번 아저씨는 마른 몸에, 눈이 마주치면 그 큰 뻐드렁니가 다 보이도록 웃는 분이었어요.
저희가 그 분께 다가가자 어찌나 반갑게 웃으시던지요.
그 날은 아마 손님이 별로 없으셨던가 봐요.
우리는 24번 택시를 타고 푸켓 공항을 빠져나왔습니다.
우거진 나무들, 환타지아 쇼를 광고하던 커다란 간판, 모든 것이 새로웠어요!
금새 공기가 맑아지고, 예쁜 집들이 나타나고, 저희의 기분만은 화려해져서...
오직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건 여전히 겨울 코트로 몸을 감싼 기름진 우리들 뿐.
이미 피곤해서 목소리는 쩍쩍 갈라지고, 머리는 찰싹 달라붙어 바람에도 날리지 않을
정도가 됐어도, 뭐. 여행 중이니까. - -
그렇게 룰루랄라 한참을 가다보니 어느 새 아저씨께서도 마음이 여유로워 지셨던
걸까요?
아저씨는 먼 산을 바라보시고, 저희는 바로 사건의 현장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24번 아저씨가 앞 차를 들이 받는 현장을...;;
어?
어?
어?
쾅!!!!!
" 끼악~~!! @_@"
사고가 났어요.
안전벨트가 없던 저희는 반동으로 앞 좌석에 머리를 세게 박고 말았습니다.
푸켓에 온 그 짧은 시간동안 캐리어가 깨지더니, 택시가 깨지고. 이젠
콧잔등까지 깨지는 것인가.
푸켓, 너 자꾸 이려면 우리 이 동네서 말뚝 박는다!! - -+
"아야야...- ㅜ"
저희는 높지도 않는 코 더 낮아질 까봐 열심히 빨개진 코를 문지르며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 아 유 오케에이이..?"
다행히 서행을 하던 중이라(게다가 치사하게 혼자만 안전벨트 메고!)
아저씬 괜찮았습니다.
다만...아저씨의 도요타 택시 본네트가 물결치듯 우그러져 있더군요.
아저씨는 떨리는 얼굴로 가볍게 손을 들어 보이고는, 한 숨을 크게 쉰 뒤 앞 차 운전자
에게 갔습니다.
꿀꺽, 이제 한 바탕 유혈사태가 벌어지겠구나....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주먹을 꼭 쥐었습니다.
앞 차 아저씨가 24번 아저씨 때리면 가서 막아줘야지...별별 생각을 다하고 있는데,
엥? 이게 웬 일?
이분들 너무 평화로우신 겁니다. 갑자기 사고가 났으니 기분이 좋을 리는 없겠지만
다행히 두분 다 차분하게 정황을 둘러보고, 결국엔 담배도 같이 나눠 피우고...
좋은 성품이란 배움의 적고 많음이 필요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구요.
피해자와 가해자의 조용한 대담
뒤 늦게 등장하신 폴리스 아저씨와 함께. 다음 택시를 기다리며.
그때 시간이 10시가 조금 넘었을 때. 아저씨는 11시 배에 저희를 맞춰주기 위해 동료
택시 기사를 불러주셨습니다.
시간이 가도 새 택시가 안 오자 어찌나 이곳저곳 급히 전화를 하시던지, 저희는 빨리
가자고 채근할 수도 없었아요.
아저씨. 우리 괜찮아요. 흑흑...우리 가방도 깨졌는걸요, 뭐...흑흑
상기하는 뜻에서 다시 한번 분홍이
결국 10시 30분이 다 되어갈 때 즈음, 어느 젊고 잘생긴 총각(?) 택시기사가 아주
럭셔리하게 꾸며진 택시를 끌고 오더군요.
저희는 떠나기 전 쥐고 있던 캔 음료를 아저씨께 전해주고 "컵쿤 카..."했습니다.
아저씨는 미안하신지 연신 고개를 꾸벅거리고...
오랫동안 아저씨의 동반자였을 택시가 크게 다친 날, 왠지 저희가 더 미안해 지더군요.
혹시 30년 무사고 경력, 오늘 저희가 탄 바람에 깨진 건 아닐까.
우리 캐리어도 깨진 애들인데...쭈앤짱 옮아서 그런 사고 생긴 건 아닐까.
괜히 미안한 마음에 지금도 아저씨 얼굴이 아른거립니다.
그 뻐드렁니, 굵은 손마디, 낡았지만 깨끗이 청소되어 있던 택시가...
그래서 저희가 차분한 마음으로 피피에 갔냐구요?
아뇨. 저희 아드레날린은 그날 정신 안 돌아왔습니다.
왜?
우린 지금 태국이니까!!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