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혼자 백조 기념여행기 3. 깐차나부리 첫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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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혼자 백조 기념여행기 3. 깐차나부리 첫 날..

빨갱이꽃 14 7832




나는 깐차나부리를 사랑하기로 결심했다.
왠지... 깐차나부리가 내가 도착하는 순간부터,
태국에서의 고향은 내가 되어줄게~ 라고 사랑의 손짓을 하는 것 같았따.


터미널 도착하자마자 우르르 몰려드는 아저씨들 중
왠지 행동력이 부족해보이고 소심해보이는 (나같은 ㅋ) 맨 뒤에 서 있는
아저씨에게 다가가서 여행자거리까지 갈 비용을 흥정했다.

간단하다.

삼십밧 줘~
이십밧으로 하지?
그래!

자전거 뒷부분을 수레같이 개조한 자전차에 내가 마치 영국의 여왕이라도 된양 짐을 들고 앉아
니나노~ 거리를 바라보고
자전거를 모는 아저씨는 안장에 한번도 앉을 틈 없이 열심히 페달을 구른다.

조금 마음이 미안했따. 옛날, 지리산 노고단에 올라가는 서양인 선교사들이
우리네 할아버지들의 지게에 앉아서 올라가고 돈을 줬다지...
그 비계덩어리들을 짊어지고 갔을 깡마른 우리네 할부지들이 생각이났다.
이 아저씨도 왠지 나보다 몸무게가 적게 나갈 것 같애.. ㅠ

게다가 여행자 거리에 다 와서 어디로 갈까? 묻는걸
아직 숙소도 안 정한 나는 대충 졸리프록으로 가자고 말했다.
아무데나 내려주면 막자란 난 알아서 숙소 찾아 갈거란 생각으로.
막상 졸리프록에 도착하자, 왠지 졸리프록이 난 싫었다.
식당은 좋아보이는데, 내 생각보다 너무 시끄러웠다.

그래서 다른데서 자자 싶어서 터벅터벅 걸어나오는데, 우리 순박한 자전차 아저씨가 안 가고 날 기다린게 아닌가...

노?
한 마디 묻더니 다시 타란다... 혹시 또 타고 또 돈 원하는거 아냐?
하는 맘이 생겼지만, 왠지 이 아저씨는 믿음이 간다. ㅋ
그래서 담번으로 찍어둔 숙소를 지도속에서 찝어서 보여주자

오~ 하더니 또 열심히 페달을 구르신다..
그리고 도착한 새 숙소. 정원이 예쁘고 조용하고 뒤로 흐르는 강에도
계단으로 내려갈 수 있는 좋은 숙소.
흥정을 하고 방 키를 받아들 때까지 울 자전차 아저씨는 기다리고 계셨다.

내가 돌아보며 땡큐 하고 웃자 그제서야 오케이 하며 웃으면서 돌아가신다... 흑.. 작은 거지만 감동 받았더.. 내 숙소 찾을 때까지 데려다줄려는 그런 따뜻한 마음이라니..

숙소는 엄청나게 좋았다.
방 안에 딸린 깨끗하고 온수가 콸콸 나오는 욕실에,
목욕타월도 큰 걸로 두장, 퀸 사이즈 베드에,
TV에 에어컨에.
무엇보다 내 엄지손가락만한 굵기의 방문 빗장이!!!!!!!!!!!!!
젤로 맘에 들었다..
저 문 뜯고 들어올려면 전기톱은 있어야겠다는 거다.
방문의 빗장과 자물쇠를 보며 흐믓한 맘이 절로 들었다.
오늘밤은 안전하게 자는 거다!!



greatscenary.jpg

<사진: 내가 묵은 숙소마당에서 계단을 내려오면.. 요런 광경!>

버스를 세시간 정도 타고 오니 엉덩이도 배기고 배도 고프다..
졸리프록에서 80밧짜리 스테이키를 먹고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깐차나부리에서는 졸리프록에서만 밥을 먹었따..
우선 메뉴도 다양하고, 값도 정말 착하고, 맛도 있고.. 생동감 있고.

깐차나부리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런 것들이다.
값싸고 깔끔한 숙소.
방콕에서는 거리음식 먹을 돈으로 깐차나부리에서는 식당에서 시원하게
맛있는 밥 한끼 먹을 수 있고.
방콕에서는 마사지만 받을 돈에, 깐차나부리에서는 마사지 받고 팁 주고
남은 돈으로 콜라 한 캔 사먹을 수 있다...!
그리고 거의 매일 마사지를 받았는데, 깐차나부리에서의
마사지는.... 지금까지 받은 것 중 & 앞으로 받을 것중에서
정말 최고였따!
게다가 팁도 이십밧 주면 너무너무 고마워하고..
마사지사가 성심으로 마사지하는게 느껴지는 그런 마사지였다.
다시가면 꼭 그 집만 가야겠따... 라고 생각 중 ㅋ

밥 먹고 마사지 받고 숙소로 돌아와서 오늘은 또 쉬자.. ㅋ 라고 생각하고 있따.
내일부터 투어랑 하고 밖으로 나가보고 오늘은 좀 쉬자.. 하고 들어와서
샤워하고 침대에 드러누어 TV 채널 이리저리 돌리다가
할리우드 영화 하는 걸 보고 있는데.....




우르르 쾅쾅!!!!!!!!!

갑자기 하늘이 뚫리는 소리가 난다!

이게 뭐야... -_- 문을 열고 보니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지면서
쏟아지는 폭우..



suddenrain.jpg

<사진 : 비가 첨 내리기 시작할 때 왠지 신기해서 찍어본..
그 때까진 좋았다고~ ㅠ>

한국의 장마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그야말로 하늘에서 바께쓰로
내리 붓는것 같은 비가 오는 거다.... 뭐야. 안 그래도 TV에서는
미스테리 스릴러 그런 걸로 가슴 조마조마 하고 있는 찰라에...

비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영화를 볼 수가 없을 정도다.
볼륨을 더 높이고 본다..

뻥!

이번엔 영화속에서 사람 겁주려고 -_- (샹 욕나온다)
갑자기 등장인물이 하늘로 빨려들어가는 장면이 나오면서 나는 효과음.

움찔 했다.... 비는 오고.. 천둥번개는 치고... 난 혼자고...
깐차나부리엔 비수기가 여행자도 별로 없고... 무서운 영화는 계속 날 겁주고 있고...


그러다가 정전!!!!!!!! TV가 저절로 꺼지고 방에 불도 꺼져버렸다!

아아아아악!!!!!!

엄마아아아아!!!!!!

정전이 되니까 정말 하나도 안 보이게 어둡다. @.@
손을 덜덜 떨면서
(왠지 침대 아래에서 괴물이 나오고 욕실에 강도가 숨어 있을 것 같고 ㄷㄷㄷ)
내가 잠궈뒀던 엄지손가락만한 빗장을 푸는데 손이 떨려 풀리지도 않는다..

엉엉..
무서워 죽겠는데 문은 왜 또 안 열려...


간신히 문을 열고 나가니까 불어오는 비바람~
뭔가 막 펄럭이고... 날아다니고...
낮엔 운치있었던 정원의 열대식물들이 미친듯이 잎파리를 움직이고..
앞은 한치앞을 가릴 수 없을만큼 깜깜하다....

엉엉엉... 나 집에 갈래...... 엄마... 내가 잘못했어... 저주를 제발 거둬줘 ㅠ

손으로 더듬더듬 방을 나와 (방이 방갈로처럼독립된 구조다)
카운터쪽으로 가서 종업원들이랑 같이 있으려고 가는데..
끝 방에 어떤 서양애가 나와서 촛불을 켜고 앉아 있따.

맘 같아서는 그 애한테 엉엉 울며 너무 무섭다 같이 좀 있자 난 불도 없다
그러고 싶었지만, 얼핏 보니 잘생긴 남자앤 거다...
왠지 창피해져서
엉엉 울던걸 뚝 그치고 -_-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왔다... -_-;;;;
아직 덜 무서운게지, 그 상황에서 꽃미남은 또 알아보고 이미지 관리에
들어가다니... ㅎㅎ

방에는 무서워서 못 들어가고 방 앞에 테이블에 앉아서 기다리는데
불이 들어온다. 웃긴게 마을 전체가 정전이었나 보다.
내 방불과 동시에 카운터쪽이랑 저 멀리 불빛도 같이 들어온다 ㅋ

그제서야 욕실에 들어가 내 콧물 눈물로 범벅된 얼굴을 대충 정리하고..

다시 TV를 볼 맘도 사라져 TV를 끄고..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을 떠올리면서.... 지난날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는데.

다시 정전이 되었다 -_-;;;

엄마야! 흑흑흑...

다시 불이 들어온다..

휴...

다시 정전이 된다...

아아악....

다시 불이 들어온다...

끅끅끅.. (울음을 집어삼키는)

그렇게 불이 들어왔나 나갔다를 반복하며 밤이 깊어지고..
어느새 비가 그쳤고, 동시에 한번 들어온 불도 다시 나가지 않았따....


그 때 시각 오후 9시 -_-;;

난 한 자정은 되었을 줄 알았는데 고작 그것밖에 안된거다..

난 일기장에 친구의 소중함과 (같이 올껄... ㅠㅠ)
부모님의 감사함과 우리나라 전기공사의 노고에 대한 깊은 사색의 글을 남기며

일찍 잠자리에 든다.... 내일 그냥 집에 갈까? 왜이래~~~~~~

아냐아냐.. 내일은 타이거사원도 가고 (왠지 내가 가면 타이거가 미쳐 날뛰다가 손 한 쪽 물어뜯고 안 놔줄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지만 ㅠ)콰이강의 다리도 가고, 자전거 빌려서 마을도 돌아보고 하자...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오랜만에 기도하고 (천둥치면 왠지 가슴 한구석이 뜨끔한 인간인지라... ) 잠자리에 들었따...


여담:

졸리프록에서 밥먹으면서 방콕포스트 신문 보는데 광고가 신기해서 찍었다.
성전환 하는데 1600불이면 된단다.... ㅋ 기술이 발달해서 그런가?
그 아래가 더 웃긴다.. orchiectomy . 고환적출술은 초큼 더 싸다.
아무래도 뭔가 만들어주고 하는 것보다 떼어내기만 하는게더쉬워서?

성형수술의 천국이 한국이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태국이 한 수 위다. ㅋㅋ
성전환도 쌍껍수술처럼 광고 내는 나라~

sexchange.jpg

14 Comments
카라완 2007.12.02 22:26  
  회사는 다시 다니는 거에요?
longwood 2007.12.02 23:38  
  하이! 넘넘 잼난 글에 기쁘고 감사하구 경배하구~ 다다음주에 홀로 태국가면 칸차에서 사나흘  무의도식하려는데 위의 숙소랑 마사지샾 좀 알켜주세요. 메일도 감샤! ^-^
카오야이 2007.12.03 00:59  
  재밌게 보구있습니다..사진두 많이 올려 주세요..^^
월야광랑 2007.12.03 07:45  
  착한 자전거 수레 아저씨를 만나셨군요.
으흠... 하늘은 죄지은 자를 알아보고 심판의 벼락이... 쿨럭...
농담입니다. 나름대로 시간이 지나면, 이런 것도 좋은 추억이 되겠죠.
어머님께 변명할 이야기도 되겠군요. "엄마, 나 벌써 심판의 벼락을 맞았단 말야! " 라는 식으로요... :-)
빨갱이꽃 2007.12.03 13:17  
  회사는 아니고요.. 단기 알바입니다 -_-

클스마스와 연말을 두고 돈이 똑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ㅠ
미카링 2007.12.03 21:21  
  너무 재밌게 읽고 있어요. 저도 혼자 곧 떠나야 하는데
죄송하지만 저기 숙소 이름좀 알려주세요, 저도 마사지 샾도 알려주시면 감사하구요!
친절한쌔라씨 2007.12.04 10:58  
  저 빨갱이꽃 님 땜에 회원가입까지 했어요~ㅋㅋ
님 글을 너무 재밌게 맛깔나게 쓰시는 듯..

저두 이번주에 여자 혼자 가요!
암만 태연해 보려고 해도 초행인지라
떨리고 걱정되는 맘이었는데..
이 여행기가 저에게 정말 큰 용기를 주네요! :D
근데 저 숙소는 어딘가요 정말?
저도 알려주세요~^^
Cedar 2007.12.08 03:06  
  ㅋㅋㅋ 같은 숙소는 아니겠지만요... 숙소 빗장 얘기 하니까 생각나네요.. 전 그 빗장이 (길쭉한 나무 토막이잖아요) 그게 호신용인줄 알고.. 머리맡에 두고 잤다는... ㅋㅋㅋㅋ 나중에 알고보니 문 빗장.... ㅋㅋㅋ
섹쉬가넷 2007.12.12 16:09  
  넘 잼있당^^
야니 2007.12.15 09:13  
  글이 참 재미있어요.저두 칸차냐부리 갈랍니다. 근데 그 숙소는 어디인가요? 알려주세요. 저두 거기 가고 싶어요.
데디 2007.12.24 03:42  
  숙소를 알고 싶어하는 님들이 참 많군요.^^
얼마후 저도 갈까하는데,  숙소 풍경이 마음을 참 잔잔하게 다듬어 주는듯 하네요. 알려주심 감사하겠습니다.
아울려 맛사지 받은신 곳두요. 행복하세요^^  [[원츄]][[원츄]]
데디 2007.12.24 03:45  
  참 숙소 가격두.......배시시^^[[윙크]]
효진이 2008.01.17 11:47  
  빨갱이꽃 님...왠지 통일의 꽃이 생각나는...ㅋㅋ 글 너무 재밌게 쓰세요~
존마크 2016.09.29 17:07  
빨갱이꽃님 글 읽고 방콕보다 칸차나부리가 더 가고싶은 사람입니다.
조용조용하고 맛나고 저렴한 식사만 있다면 그곳이 천국이겠지요
첨엔 오토바이 여행 생각해봤는데 오토바이는 겁이나서ㅋㅋㅋ
저도 자전거로 살랑사랑 다녀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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