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여행-제3합 : 수완나품 택시운전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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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여행-제3합 : 수완나품 택시운전사 2

필리핀 8 2246

새벽 2시 : 수완나품 도착, 1시간 동안 활주로에 발이 묶임

새벽 3시 : 입국수속, 고물택시 승차

새벽 4시 : 카오산 도착, 운전사와 실랑이, 경찰 출동! 겨우 합의 봄...

새벽 5시 : 취침...

아침 7시 : 기상, 몸이 아직 시차 적응이 덜 되어 한국시간에 맞춰 일어남. 어젯밤, 아니 오늘 새벽, 불과 몇 시간 전의 사건이 아련한 일장춘몽처럼 느껴짐. 아침 공기를 마시며 쌈쎈, 라마 8세교, 카오산 일대를 산책. 여행자 해방구인 카오산은 일탈을 즐기는 여행자들로 오후 늦게부터 새벽까지 활기차지만, 카오산에서 약간 벗어난 쌈쎈만 해도 한국의 어느 도시와 다름없는 일상이 펼쳐진다. 기지개를 켜며 가게 문을 여는 상인,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반찬을 파는 노점상, 말끔하게 차려 입고 출근을 서두르는 직장인, 버거운 책가방을 멘 채 버스를 기다리는 학생...

아침 10시 : 산책을 마치고 람부뜨리 거리의 한인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있는데 웬 한국 청년 하나가 벌건 얼굴로 씩씩거리며 들어온다.

청년 : 사장님 안 계세요?

나 : 아마 11시는 되어야 나오실 건데...(나는 안다. 어젯밤 이 식당 사장님이 누구 때문에 새벽 4시에 경찰을 부르고 운전사와 실랑이를 했는지... 그 새벽의 여파로 인해 오늘 평소보다 출근이 늦는 것이다...^^;)

청년 : 우쒸~ 큰일 났는데...

나 : 뭔일인데여?

청년 : 저 오늘 공항에서 돈 털렸어요!!!

나 : 엥? 얼마나?

청년 : 5만밧이여!!!

나 : 허걱! 아니, 어쩌다가???

청년 : 새벽에 공항에서(알고 봤더니 나와 같은 동방항공을 타고 왔더라) 택시 잡으려고 하니까 웬 남자가 벤츠로 안내하더라구요.(아마 리무진 택시인 듯) 그래서 탔더니 그 남자가 팁으로 500밧 달래요. 그래서 줬죠. 그런데 조금 가다가 이번에는 운전사가 팁을 1,000밧 달래요. 그래서 또 줬어요. 잠시 후 목적지에 도착해서 요금 2,000밧 달라길래 내려서 요금 주려고 지갑을 여는데 그 운전사가 지갑을 나꿔채더니 차를 몰고 달아났어요. 그 안에 5만밧 들어 있었는데... 태국 오려고 3개월이나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인데... ㅠㅠ

나 : (음... 내가 당한 운전사보다 내공이 엄청난 고수에게 걸렸구나.) 아니, 대체, 어쩌다가, 참나,(너무 황당해서 한동안 말이 안 나왔다. 잠시 후 약간 숨을 돌린 나는 그 청년에게 차근차근 묻기 시작했다.) 근데 돈은 왜 그렇게 많이 가져왔어?(건장한 체격의 그 청년은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내 아들 뻘, 아무리 높게 잡아도 내 막내 조카뻘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아서 자연스레 말을 놓게 되었다.)

청년 : 아는 선배가 태국에서 제대로 놀려면 하루에 1만밧은 있어야 한다고 해서...

나 : 그럼 그게 5일 경비?

청년 : 네...

나 : 그럼 지금 돈 한 푼도 없겠네.

청년 : 아뇨, 비상금으로 꼬불쳐 둔 2만밧 있어요.

나 : (허거걱! 비상금으로 2만밧이나? 내 열흘 여행경비보다 많잖아. ㅠㅠ) 한국에서 뭐해?

청년 : 운동선수예요.

나 : 운동선수?

청년 : 네... *** 국가대표 선수예요.(해당 종목의 명예를 위해 구체적인 종목은 밝히지 않음을 양지 바랍니다.)

나 : 아니, *** 국가대표 선수라면서 그 택시운전사를 가만 뒀어? 아구통을 날려버리지!!!(이 대목에서 내가 더 흥분했다!)

청년 :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하도 정신이 없어서 소리만 지르고 애꿎은 가방만 박살냈어요.... ㅠㅠ

나 : 나이가 몇이여?

청년 : 21살이여.

나 : 21살? 태국은 처음이야?

청년 : 네, 해외여행 자체가 처음이에요. 중학교 때부터 운동만 했거든요. 모처럼 바람 쐬러 나왔다가... ㅠㅠ

나 : (이 대목에서 나는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다. 날치기 사건에 대한 사후 처리라든가, 기타 애로사항은 현지에 살고 계시는 이 식당 사장님이나 관광 경찰이 해결해줄 일이고... 내가 이 청년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음... 하루에 1만밧씩 쓸려고 했단 말이지?

청년 : 네...

나 : 아직 2만밧이나 남았고?

청년 : 네... 근데 모자랄 거 같아서 한국에서 송금받으려구요...

나 : 음... 그럼 그 돈으로 뭐하려고?

청년 : 좋은데 가서 술도 한 잔 마시고... 그리고... @#$%&*^6^

나 : 음... 아직 총각인데다 한창 힘이 남아돌 나이니까 내 이해는 하겠는데... 하지만 이거 한 가지는 명심해!

청년 : 뭔데요?

나 : 절대로 여자를 숙소로 끌어들이지 마!

청년 : 네? 왜요???

나 : 잘못하면 여권 도난당하고, 그 여권이 위조되어 범죄에 사용될 수 있어. 그리고 못된 여자에게 신분이 알려지면 그 여자가 혼인빙자간음죄로 신고해서 공항에서 출국 못할 수도 있고...

청년 : 허걱! 그래요? 아, 이거 태국 잘못 왔나? 갑자기 무서워지네여...

나 : 암튼 자기 돈 자기가 쓰는 거니가 내가 뭐라고 간섭할 수는 없지만, 괜히 흥청망청하다가 신세 조지는 일 없도록 하라구...

청년 : 넷,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청년은 신중한 표정으로 내 말을 경청했다. 태국 초행인데다가 중학교 때부터 운동만 하느라 세상 물정에 어두운, 게다가 첫날부터 대형 사고를 당한 청년은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약간의 뻥이 섞인 이야기로 겁을 줘서 조심, 조심, 조심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었다.

잠시 후 출근한 식당 사장님께 청년을 인계(?)했다. 그날 밤, 나는 꼬 사무이 행 밤 버스를 타고 방콕을 떠났다. 그래서 그 청년을 다시 보지는 못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꼬 사무이-꼬 팡안-꼬 따오 코스로 여행을 마친 뒤 카오산으로 돌아와 그 식당에 들른 나는 사장님으로부터 그 청년에게 얽힌 기막힌 후일담을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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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중한 미모(?)를 자랑하는 람부뜨리 거리 한인식당의 종업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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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 식당의 해물이 태국에서 가장 맛있고 가격도 저렴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타이거 새우 튀김 초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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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인식당에서는 공항 픽업 서비스도 해준다. 사진은 공항픽업서비스 택시 반장인 미남 청년(아니, 유부남인가?) 저처럼 택시운전사에게 봉변 안 당하려면 픽업서비스 신청하세요... ㅠㅠ


8 Comments
세계일주하자 2007.10.10 17:12  
  한인식당 이름좀 갈켜주세요 나중에 가보게요
그리고 요즘 공항픽업 안되게 법이 바뀐거같던데
누가 설명좀해주세요
원로 2007.10.10 21:47  
  더 궁금한 사연은?
궁금하다 너무궁금해....빨리 말해주세요오오오..
월야광랑 2007.10.11 00:19  
  아마도 동쪽에 있는 커다란 문을 이야기하시는 것 같은데요. ^>^
흰머리 날리시고 뛰어 오셨다고 저번에 쓰신 것과 종업원들 사진을 보니 말입니다. :-)
공항 픽업이 안 될리 없을텐데요.
단지 10월 1일부터 대중 교통들도 공항 안으로 들어와서 손님 태워가게 바뀌었다고는 들었습니다.
그래서, 택시들도 2층 입국장 바로 앞에 기다리고 있다고... :-)
월야광랑 2007.10.11 00:21  
  근데, 5만밧에 2만밧이라... ^.^
얼마나 호화판으로 놀려고 왔길래...
그 돈이면, 별다섯개 짜리 호텔에서 밖에 안 나가고 안에서만 놀아도 되겠다. ^.^
팁도 달라는 대로 주는 거 보니, 운전기사가 그렇게 행동한 것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기 시작하네요.
어디 가나 어리 버리 하게 보이면, 눈 뜨고도 코 베이는 법입니다. ^.^
nollon 2007.10.11 13:28  
  그 청년에게 얽힌 기막힌 후일담이 더 궁금해지네요 ,,ㅎㅎㅎㅎ
김버터 2007.10.17 20:54  
  그 다음 이야기해주세요???ㅎㅎㅎㅎㅎㅎㅎㅎ
yard 2007.10.19 11:43  
  택시기사 아저씨 보니 동쪽문 전속 기사분이 확실하네요....ㅎㅎ
시나눅왕자 2008.10.14 18:03  
  좀 안타까운 사연이네요 에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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