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코타이 여행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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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코타이 여행기(3)

유토피아. 8 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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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위용 앞에 태국을 후진국이라 우길 수 있는 용기 있는 자 나와 봐.

위의 탑들 중에 하나, 하부가 열려 있어 들어가 무턱 대고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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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외로 깨끗하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부처님이 계시던가, 이렇게 텅 비어 있던가, 둘 중 하나다.

우리나라 같으면 다라니경이라던가 경전 한 필, 그리고 어느 고상한 스님의 사리 몇과 쯤 봉안했을 텐데.

모르지 내가 모르는 어떤 다른 것이 있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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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탑과 부처님들을 에워싼 장방형의 가람 배치는 어김없이 벽돌 성벽을 둘렀다.

그리고 그 밖에 일목 정연한 해자를 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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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하게도 이 히스토리칼 관광이 끝나갎 무렵에야 뺀티(태국어로 지도)가 있다는 걸 알았다. 늙은 뚝뚝이 운전사가 주머니에서 꺼냈다 넣었다하는 게 지도란 걸 나중에야 안 거다.

한심스러워서. 입장권 파는 곳에서 찾으니 있다. 30밧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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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스러운 것은 여행지마다. 이 리후렛인지 팜프렛인지. 이게 한국어판이 없는 거다. 꼭 태국만 그런게 아니다. 전반적으로 다 그렇다.

외국인을 위한 선교니 NGO 같은 건 꽤 많은 거 같은데. 자기 나라 사람 관광하기 좋도록 작은 번역 하나 해 주면 안되는 이유라도 있는지. 이거 어느 분야지. 정부쪽인가. 관광, 문화, 아니면 여행사... 그거 해 봤자 돈벌이가 안 된다고?

억울하면 영어를 기똥차게 하던지, 일어, 중국어 배워 그 걸로 번역 된 걸 읽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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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리어카 비슷한 거 앞에 앉은 게 나고, 그 뒤 리어카 밀고 있는 포즈를 잡은 게 태국인 가이드이며 툭툭이 주인이시다.

연세 70, 나 62, 한 쌍 늙은이가 죽이 맞아 새벽 5시부터 10시까지 신나게 돌아 다녔다.

돌아친 툭툭이 값은 450밧이다. 더 줄려다 너무 고마워하는 통에 내가 너무 많이 준 것 같은 생각이 불현듯 들어 얼른 접었다.

태국에 와서 나는 왜 이렇게 쫀쫀해 졌는지 모르겠다.

머리를 400밧에 깍았다니 놀란다. 400밧 * 30원 = 12,000원. 한국 국내에서의 이발 요금이다. 태국 시가에는 안 맞는 거다.

다른 사람은 60밧에 깎았다. 이게 태국 이발소에서 저렴하게 깍는 방법이다.

이상한 게 한국 음식 값이다. 태국에서 태국 재료로 한국 음식을 만들어 파는데 국내 가겨을 적용하는 거다. 점심 한 끼 해결하는데 적어도 200밧(6,000원) 안팍은 들어야 한다.

점심 한 끼 해결하는 데 태국 음식은 3, 40밧으로도 해결이 된다.

어느 날 프랑스 부부가 내게 점심을 사겠다며 동양식 식당을 정하라는데 한국 식당은 부담이 가서 안되겠고, 태국 식당은 싸지만 시끄러워서 안 되겠고, 그래서 찾은 게 일본 식당이다.

거기서 내 것을 120밧 짜리 주문해 놓고 눈치를 보니 내외 100밧 짜리로 주문을 하는 거다. 나도 얼른 100밧 짜리로 바꿔 버렸다. 선진국 사람들이라고 돈 펑펑 쓰는거 아니다.

그들이 점심 대접을 하면서 프랑스 음식을 못 사는 이유가 있는 거다. 한 그릇에 최소한 2,000밧(60,000원) 이상 이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일본은 다른 나라에서 장사를 하면서 국내 가격과 해외가격의 절충선을 찾지만 우리나라는 아니 올씨다.

태국에 사는 한국인이라 해서 서울 가격으로 길들여져 그 대로 밀고 나가는 건 올바른 상행위가 아니다.

태국내 한국인들의 물가 감각은 순식간에 서울 물가에서 태국 물가로 전이 되는 거다.

앙코르 왓에서 만난 한국 젊은 배낭객의 말이 재미 있다. "왜 여기 와서 단 돈 1,000원이란 게 이렇게 아까운 줄 도무지 모르겠다."

수쿰빗 한인타운에서 쌀을 산 적이 있다. 태국쌀은 인디카라 먹어도 먹어도 배가 안 차, 한국 자포니카를 구할려고 하니, 한국 쌀은 없다고 한다.

"한국 쌀은 값이 너무 비싸서 안돼요. 국내에서도 그렇지 않아요. 외국쌀하곤 경쟁이 안돼요. 일본 쌀을 가져 가세요. 일본 벼 종자를 들여다 여기서 농사를 지은 거예요."

한국 WTO 체제에 대처한 흔적의 일단을 보는 것만 같다. 막막한 장벽이란 게 이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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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코타이를 여기서 끝내면 안 된다. 또 다른 수코타이가 북쪽으로 1시간 거리에 있다. 툭툭이 할아범보고 가자니 1,500밧을 주어도 못 간다고 앙살이다. 버스로 가란다.

그런데 버스가 가관이다. 버스 차장이 저 앞에 보이는 안경 쓴 할머닌데. 40대는 넘고 50대쯤은 될까.

그런데 더욱 가관인 건 다음 사진이다.

개문 발차. 선풍기를 돌리다기도 출발하고 나서 문 활짝 열어젖히고 선풍기는 어느 틈에 끄고 먼지 풀풀 날리는 바람 쏘이며 달린다. 달린다. 열린 문 바로 뒤에 할머니 겁도 없다.

태연자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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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면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태국인들은 영어로, 나는 태국어로 쏼라 거리는 통에 누가 보아도 가관인 거다.

나의 태국어 동창생 어느 부인의 말로는 일본어 교과서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제발 일본 말로 해 주세요.”

시원찮은 영어 실력 발휘할 양으로 외국인만 만났다하면 기를 쓰고 영어를 구사하려 애쓴다고 한다.

그 외국인은 일본어를 배워 일본어로 말하고 싶어 죽을 지경인데.

내가 그 꼴이다.

태국어를 3개월 배워, 써 먹고 싶어 안달인데, 만나는 태국인 마다 유창한 영어를 과시하니 죽을 맛이다.

하다못해 10살 짜리 어린 애 까지.

늙은이 표정을 지어가며 떠드는 어런애 영어를 듣다못해 “야! 너 어느 학교 다녀”하니 “인터네셔널 스쿨.”

이런 염병할. 말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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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한 프라송피농.

또 다른 수코타이의 ‘히스토리칼 파크’ 첫 번째 절이다. 왓 마하탓 찰리엥.

가장 웅장하고 유물의 흔적이 뚜렷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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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원 정문에 세워진 사면상이다.

태국에 첫발을 디디며 의아한 게 집집마다 집앞에 세워진 작은 신당이며 그 신당에 안치된 불상이 하나같이 이 사면상인 거다. 이게 그 사면상의 원조격인가. 그런데 앙코르 왓에 가면 더 큰게 있다. 자야바르만 7세의 상.

나는 여기 한 자리에 앉아 사방을 동시에 보나니, 너는 일선에서 용감하고 충실히, 그리고 열심히 일하고 또 싸워라. 나 언제나 네 후방에서 든든하게 지켜 보나니.

나는 언제 어느 곳에나 편재(遍在) 하나니. 유비쿼터스 하나니...

나는 너의 책상, 너의 침실, 너의 화장실, 네가 먹는 밥 한 술, 네가 숨쉬는 공기, 너의 딸이 마시는 물 한 방울에도 존재 하는 하나님 이시니.

어쩜 기독교와 이리 흡사할까.


한 개의 작은 티끌에서

수 없는 세계들을 모두 보나니....

한 개의 티끌에서 그런 것처럼

일체의 티끌마다 모두 그러하니

온갖 세계 그 가운데 모두 들어가니

이것은 헤아릴 수 없는 일이로다.

하나하나 티끌 속에 시방 세계와

세상 모든 법이 들어있는데...

하나하나 티끌 속에 한량이 없는

여러 종류 부처 세계 들어 있는데

종류와 종류들이 한량없거늘

그 가운데 모르는 것 하나도 없고

수 없는 법계 속에 들어있는 바

가지가지 세계의 다른 종류에

여러 길과 종류들도 차별하거늘

모두 다 분별하여 능히 아네. (『화엄경』, 「보현행품」)


저 한 티끌 속의 모든 세계가

혹은 부처님이 계시고 혹은 안 계시며

혹은 잡되고 물들며 혹은 청정하고

혹은 넓고 크며 혹은 좁고 작으니라.

혹은 다시 이룩되고 혹은 파괴되며

혹은 바르게 머물고 혹은 곁에서 머물고

혹은 넓은 들의 아지랑이 같고

혹은 천상의 인드라 그물 같으니라.

티끌 가운데 나타내 보인 바와 같이

온갖 티끌 다 또한 그러하니 (『화엄경』, 「현수품」)

어때 좋은가. 외워. 외워.

이 정도 외워 두면 써먹을 데 많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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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있는 불상. 프라아 타롯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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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 철이다. 이 더운 나라에 봄, 여름, 가을이 있대. 겨울만 빼고 다 있는거다.

3모작이 가능한 나라. 세계 쌀 수출 최대의 나라다. 먹고 사는 것에 관한한 걱정없는 나라.

과일이 지천이다. 국내 과일을 좋아하지 않는 나다. 그런데 여기 와선 하루 한 번 이상은 꼭 먹어야한다.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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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산에 살으리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으리랏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여긴 한국이 아니라고.

뭐 어때. 이 정도면......

이 히스토리칼 파크 주변에 이 보다 아름다운 경치가 장관을 이룬다(찍은 사진들을 뒤적여 찾는 데 이 시원찮은 거 하나 밖에 없는 거다. 실망).

미치게 사랑하는 사람과 손잡고 여길 걸어 봐라. 다리 하나도 안 아플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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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호수 또는 해자를 만나는 날이면 미치는 거다.

...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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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마하탓 찰리엥의 주탑인 쁘랑탑이다.

기둥으로 대변하는 웅장한 전당, 그리고 크신 부처님, 그 뒤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은 옥수수 모양의 탑 수코타이 최고의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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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마하탓 찰리엥’에 들어가는 북쪽 문이다.

다리 밑이 깊다 어마어마 하다. 강은 흙탕물 넘실거리며 흐른다.

겁도 없이 오토바이를 빌려 타고(100밧) 여길 건너려는데 겁나 안 되겠다 싶어 엔진마저 끄고 질질 끌고 건넜다.

여자들도 잘도 타고 다니건만 난 여기서 완전히 쪽 팔렸다.

그래도 30여년 만에 오토바이 시동을 걸고 보니 100밧이 비싼 게 아니라 타고 싶어 죽겠는 거다.

30여년 만에 이국땅에서 오토바이를 달린다. 꽤 넓은 지역을 바람 가르며 달린다.

이곳은 천연의 요새다. 애써 비유하자면 우리나라 안동 하회마을 같은 곳이랄까. 그 보다 더 깊은 욘강이 흐르고 그 안에 성벽을 쌓아 도시를 건설했다.

도시는 불교 천국이다. 과거는 사라졌고 헐려지는 성벽과 불상과 불탑, 그리고 사람마저 두려워하지 않는 학이 떼를 지어 군무를 춘다. 거대한 목장이 있고, 아름다운 잔디밭이 끝 간 데를 모르는 곳. 웬만한 관광객은 찾지 못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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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야 역사가 무언지 알 필요도 없다. 시간과 공간의 개념도 필요치 않다.

“같은 물에 두 번 발을 담그지 못하리”란 늙은 철학자가 누군지 알고 싶지도 않다. 그냥 재미있으면 된다.

여자 남자면 더욱 좋다. 그렇지 않은가.

“사왓디 클랍(안녕하세요).”

태국어를 배운지 3개월. 태국에서 태국 말 배워 태국 사람들에게 한국말 가르치려던 계획을 접었다. 따라서 내겐 태국어가 사어(死語)로 변했다.

사어가 된 태국어를 뒤적인다.

“사바디 클랍 컵쿤, 쿤라 클랍(좋습니다. 당신은 어떠세요).” 석 달이 되도록 입 안에서 뱅뱅 맴돌 뿐 선뜻 나와 주지 않을 뿐 더러 그 질문에 대한 답 “사바디 클랍 컵쿤”이란 아주 기초적이고 쉬운 답조차 까맣게 잊고 멍한 입만 벌리기 일 수다.

태국어. 왜 자리 내어주길 그렇게 거부 했을까. 후진국 언어라 깔본 내가 미웠던 걸까. 아니면 머리 하나 자신하고 대어든 내 머리를 깨어 부수고 싶었던 걸까. 하여튼 지긋지긋하도록 미웠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건방을 떨기 시작한다.

아유타야에선 등허리 긁개에 니스 칠하는 여자를 젊은 화가로 착각하고 들어갔다가 “이거 피셋(특별히)해서리 싸게 파는 겁니다”하는 바람에 (피셋이란 말이 어제 막 배운 말이라 반가와)필요도 없는 긁개 10개를 사기도 했고, ‘땀루악’이란 단어가 이해가 안 돼, 경비실 직원들과 한참 악다구니 하다가 신문철을 들고 와 경찰 사진을 들이대는 바람에, 아 그렇구나, 한 적도 있다.

뿐만 아니다. ‘낙테.’ 장래 큰 아들의 직업이 될 것이며 매주 교회에서 만나고 설교를 듣는 목사님이란 단어를 배우자고 경비원과 한참을 입씨름하다 경비원도 지쳤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지나가는 젊은 신혼부부를 ‘낙테’라 가르쳐 주는 것을 곧이듣지 않고 돌아왔다가 5,000밧이나 하는 핸드폰을 잃어 버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달려갔지만 오리발 앞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내 더러워 태국 말 안배우면 안 배웠지 저 자식들하곤 말도 안한다고 돌아섰는데, 이 자식 나만 보면 “사왔디 캄. 캄.” 침 튀기며 인사하며 쫓아다니는데 지겨워 죽을 맛이다.

장소불문, 남녀노소막론, 직위고하무관하게 자기 자랑에 목말라 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 말 한 마디를 해도 만나는 사람마다 내가 외국인이니까 영어로 대어들고 나는 나대로 태국말로만 쏼라 거리니 누가 봐도 이상한 사람들이 엉켜 붙어 한창 난장판을 벌린다고 하겠건만 오히려 보는 이마다 부럽다는 표정이니.

그게 하루에도 열 번을 실히 되다보니 내 태국어 실력도 보통은 넘는 거다.

수코타이에선 오토바이를 빌려 타고 돌아다니다, 목이 말라 구멍가게에서 물을 사먹는데 “Where are you going”하며 맥주 한 잔을 따라주는 데 차디찬 맥주 목을 타고 넘는 맛이 기가 막힌 거다.

그 걸 마시며 얼결에 나온 말이 “폼 마 쁘라테 까오리 무앙 여주(한국 여주에서 왔다).” 이거 봐. 너는 영어만 알지. 나는 너희 나라말까지도 알잖아. 하고 빙긋 웃어 보이는 데, 이 친구 슬며시 자리를 뜬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내 무식이 빵꾸가 난거다.

‘소깝쁘로.’ 방콕 중심가를 끼고 흐르는 짜오쁘라야 강과 그 지류 ― 운하는 동양의 베니스라는 말이 나옴직한 명물로 아침저녁이면 도시의 동맥이 되어 힘찬 파도가 친다.

배 한 대면 충분히 100여명이 탄다. 방콕의 교통 혼잡은 세계적이라. 교통지옥으로 버스나 택시 안에서 장시간 허덕일 때 순식간에 미끄러지듯 빠져 나갈 수 있는 것이 운하의 배다. 그 운임이 얼마나 싼지. 돈을 내는 내가 눈물이 날 지경이다.

그 운하의 더러움은 소까쁘로의 극치다. 우리나라 청계천 최악의 2, 3배는 충분히 능가할 더러운 물이 뱃전에서 출렁이는 거다. 이 운하의 소까쁘로가 해결되는 날, 헐값으로 거래되는 태국은 천정부지로 뛰어 올라 나 같이 겁도 없이 출입하는 외국인이 엄청나게 줄어들 거다.

태국어 공부 방법은 각각의 패턴을 놓고 수많은 시추에이션을 설정해 각자 마음대로 패러디 하는 거다.

웰라 , 쿤 루숙 양아이 클랍( 경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태국에 처음 왔을 때 별 볼일 없는 후진국으로 생각했다.

다시 생각한다. 방콕은 21세기와 19세기가 혼재한다.

외국인 2, 300명이 족히 살고 있는 아파트에 ‘뉴스 페이퍼’가 뭔지 모르는 녀석이 경비를 서는가 하면, 버스 차장, 초등학교 어린이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시내버스가 개문 발차하며, 삼륜차, 오토바이가 차선을 마구잡이로 넘나들고, 지하철 지상철이 미끄러지듯 달리며, 장거리 여행버스는 에어컨을 최대한으로 가동해 손님 바짝 얼쿼 죽일 작정인지. 춥다면 에어컨을 끄는 게 아니라 담요를 덮어주는 이 친절은 비행기 스튜어디스에게서 배운 것인지 마음껏 사치를 부려보자는 심사인지.

천둥 번개가 치고 벼락이 떨어지는 비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정전이 되고 정전이면 거대 아파트도 자가 발전은 어림도 없는 곳, 그러나 더 몰, 빅 씨, 아웃렛이 버젓이 첨단의 세기를 앞지른다. 방콕은 살아 꿈틀거리는 거대 공룡의 도시.

태국어 다시 차근차근 뒤적인다. 도대체 이 별 볼 일없는 원시언어. 삼인칭이면 무조건 ‘카우’ 한 단어로 해결되는 언어. 이게 왜 내 속을 그리도 썩였을까.

남들은 한 달이면 거뜬히 뛰어 넘는 과정을 내게 두 달을 강요한 이유가 도대체 뭘까.

강의를 듣다보면 저게 태국언지 영언지 가물가물할 때가 태반이고, 강사의 설명 중 한마디만 헷갈려도 한 시간은 족히 죽을 쑤곤 한다.

이래선 안 되지. 마음 독하게 먹고 읽던 소설 책 몽땅 벽장 속에 가둬두고, 쓰던 수필 꺾어 책상 밑바닥에 던져놓고 오로지 태국어만 읽는다.

서서 읽고, 앉아서 읽고, 걸어가면서 읽고, 수영하다 읽고, 자다가 깨면 읽고, 읽다가 졸리면 자고, 자다 깨면 다시 읽는다.

그렇게 읽은 날은 어김없이 표가 난다. 선생의 말이 또박또박 들리고, 나의 답이 한 치 오차 없이 산뜻 하다.

수업은 질문과 답이다.

“눈 오는 날 산책을 하며 당신은 무엇을 생각합니까.” 이 뜨거운 열사의 나라에서 갑작스런 내 질문을 받은 프랑스 여인이 마냥 신이 나, 잊었던 옛 애인 이름까지 들춰내고 교실 안은 온통 첫 눈 내리던 날의 시계 바늘로 돌려놓았다.

삼 개월 전, 이 땅에서 버스는 물론 택시조차 혼자 탈수 가 없었던 나다. 아유타야, 수코타이 겁도 없이 그 머나먼 곳을 혈혈단신 뛰어 다니며 아무나 붙잡고 유티나이 클랍( 어디 있지요), 타우라이 클랍( 얼마지요).

여행을 하면서 잠을 자면서 밥을 먹으면서 자전거 오토바이를 타면서 언제나 들고 다닌 언어.

그러나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성조 ― 오성. 원시 언어라고 폄하한 내가 무식해도 한참 무식한 거다.

‘카우’ 이 한 개의 단어에 오성을 붙이는 날이면 10개의 단어로 확장된다는 걸 간과한 거다.

성조가 붙은 언어. 음악언어. …이 아름다운 언어 앞에 미련을 남겨도 때는 늦었다.

이제 손을 뗄 차례.

마지막 악수.

피카소의 연인 같은 여자를 만난대도 이 같은 사랑은 다시 할 수 없으리.

8 Comments
1004 2007.08.05 23:38  
  정말 재미있고 아름다운 글과 사진 잘 보았습니다.
인생의 연륜과 깊이가 느껴지는군요.
저도 태국말에 관심있어 도전 했다가 포기 했는데
선생님의 글을 읽고 다시 용기를 내어 봅니다.
동차이 2007.08.23 10:06  
  고생하셨습니다. ^^;;;
NAT 2007.08.23 12:25  
  태국여행일기엔 첨으로 답글을 답니다.
제가 태사랑 접속 한지 수년은 된듯한데...
가장 감동받고 가장 재미있었던 글 같습니다.

전 이대목..
<외국인 2, 300명이 족히 살고 있는 아파트에 ‘뉴스 페이퍼’가 뭔지 모르는 녀석이 경비를 서는가 하면, 버스 차장, 초등학교 어린이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시내버스가 개문 발차하며, 삼륜차, 오토바이가 차선을 마구잡이로 넘나들고, 지하철 지상철이 미끄러지듯 달리며, 장거리 여행버스는 에어컨을 최대한으로 가동해 손님 바짝 얼쿼 죽일 작정인지. 춥다면 에어컨을 끄는 게 아니라 담요를 덮어주는 이 친절은 비행기 스튜어디스에게서 배운 것인지 마음껏 사치를 부려보자는 심사인지. >
에서 너무너무 공감하며, 10분여간 박장대소 하였습니다.

선생님 .. 혹, 태국 다른 지역을 여행하신다면,
글 한번 더 남겨주시길 바랍니다.
항상 건강 하십시요...
Hoi 2007.08.23 16:45  
  "미치게 사랑하는 사람과 손잡고 여길 걸어 봐라. 다리 하나도 안 아플거다"  미치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수 있을까요? 오늘 따라 마음에 와닿습니다. '미치게 사랑하는 사람과 손잡고 여길 걸어 봐라. 다리 하나도 안 아플거다.'..,,,,
유토피아. 2007.08.23 19:22  
  나트님 고맙습니다. 태사랑 홈에서 요즘 뜨는 글 중 '앙코르 왓'을 보시죠. 그게 제 역작입니다.
호이님 고맙습니다.
동차이 속 보인다. 야....
narak 2007.08.24 13:42  
  역시 유토피아님의 연륜과 포스가 제대로 느껴지는 글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미쳐 생각해 내지 못하는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시는 여행기는 매번 기분이 산뜻해지며 가슴 역시 따뜻해 짐을 느낍니다. 다음번에는 어디를 여행하실지 괜히 기다려 지기도 합니다.
JLo 2007.09.02 19:35  
  웬만한 가이드북보다 훨씬 알차고 눈에 쏙쏙 들어오네요.
중간중간 태국에 대한 느낌을 쓰신 부분도 완전 공감합니다.
다음 여행은 언제쯤 하시게 될런지...또 기대해봅니다.
열정이 부러워요~^^
ThaiSun 2009.08.26 19:46  
으와-----------------------------------------------------------------------------------------------------------------!!!!!
게다가 마지막 멘트가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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