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코타이 여행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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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코타이 여행기(2)

유토피아. 3 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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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파이 르앙

거대한 탑 속에 무엇이 있을까. 음침한 그 속에 촛농과 예불 드리던 쓰레기가 모여 있다. 그리고 텅 비었다. 가끔 부처님이 계신 곳도 있긴 있다.

텅 빈 탑을 보았을 때의 인간들의 기분 어땠을까. 원래 인간사 다 그런 거 아닌가. 꽉 차던가 텅 비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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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탑을 보고 피라밋을 연상하면 오산이다. 유프라테스, 티그리스 부근의 지구라이트를 생각해도 오산이다.

순 수코타이식 벽돌로 쌓아올린 거대한 탑이 세월의 중력을 이기지 못해 부서지고 있는 중이다. 좌측 하늘에 뜬 것은 독수리가 아니다. 비둘기 한 마리다.

축소하거나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

탑은 하염없이 부서지고 있다. 부처님도 지워지고 계시다. 머리가 없어지고 팔다리가 사라지고 몸통이 사라지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부처님 자리는 텅 비거나 비둘기 시체가 차지 하기도 한다.

이게 세월의 흔적이고 역사의 뒤안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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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베드로 성당에서 남들이 하는 대로 베드로 청동 발등에 손을 얻고 기도해 본적이 있다.

그 청동 발등에 얻은 손들이 무릇 기하이랴. 2/3는 닳아 없어졌었다. 지금은 얼마나 남아 있는지.

그런데 여기 부처님은 통채로 사라지고 단정하신 부처님의 발 한 쌍만 남았다.

눈물겹도록 아름다우신 발님이시어. 부처님은 어디 계신 겁니까. 발도 없는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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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모양의 탑을 일군의 코끼리 떼가 떠받치고 있다. 하염없이 신성한 동물의 무리.

경기도 여주에 가면 신륵사가 있고 신륵사 뒷산에 나옹대사의 석종이 있다.

그걸 처음 보았을 때, 아름다움에 반했고, 웅장함에 놀랐고, 하여튼 그 석종에 꽤 심취했었다.

그리고 십 여년 후 전라도 경상도 여러 절간에서 종 모양의 석탑들을 꽤 많이 봤다. 그리고 오늘 수코타이에서 거대한 종탑을 본다.

수코타이의 역사 고려 말 문익점 할아버지 목화씨 중국에서 슬쩍 해오시던 시절, 삼별초 난이 있고, 그리고, 그리고… 나옹대사가 고려 말 개혁 정치를 하려다 이성계 신진 세력들로 인하여 남으로, 남으로 내려오시다 여주 신륵사에서 입적하시고…. 그렇게 생긴 종탑이다.

그 종탑이 스리랑카 소승 불교에서…. 그렇게 수코타이에 안착한 종탑이다. 그러니까 종탑이 성행하던 시기는 딱 맞아 떨어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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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과 벽체는 무너졌다. 기둥과 석가여래 부처님.

기둥은 내 보기에 화산석이지 싶다. 구멍 숭숭 뚫린, 그래서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가 돌이 좀이 먹었다고, 불길하다고, 그래서 승승장구하던 기개가 꺾이던 그런 돌(철원지방에서 꽤 많이 볼 수 있다)을 둥굴게 깍아 층층히 세멘트로 쌓아 올린 것이다. 이게 내 최초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니다. 홍토(라테라이트)란 거다.

땅속에선 그냥 붉은 흙이다. 흙에서 캐어냐 일정한 형태를 만들어 햇볕에 말리는 날이면 세메트 보다 강도가 강한 건축 재료가 되는 거다.

이 홍토가 캄보디아, 태국, 동남아에 지천인 거다.

우리나라는 석불, 소불, 철불하지만 여긴 부처님까지 벽돌이다. 우연히 아유타야를 가서 안 거다. 아래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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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크신 부처님 양 다리 정좌하시고 허리 윗 부분이 사라진 졌다. 부처님 무릎에 잠시 쉴 요량으로 올라보니 잘린 허리 속이 벽돌인 거다.

벽돌 부처. 우리나라 석불이나 소불에 비해 워낙 커서 어디 비교가 돼야지. 가끔 속리사나 강원도 동해안 해월선사… 를 떠올려 보지만 그 때마다 더 큰 부처님이 얼마든지 있는 거다.

기왕에 아유타야 얘기 나온거 사진 몇개 더 보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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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은 산산이 부셔지고 깨지고, 망가졌다.

노랑 가사를 걸친 대불은 버마 전쟁 때 부처가 아니다. 후대에 만들어 진 것 같다.

대불 맞은 편에 수도 없이 많은 부처님들은 하나 같이 머리가 없어지고 깨어지고 부러지고 부서지고 세월의 앙금 속에 삭아 들고 있다.

잘 안 보인다구. 우측 연단에 일렬로 좌악 앉아 계시잖아. 그게 현장에 가 보면 너무 많은 거다. 수코타이나 아유타야나 절간 구석구석 한 구석 빈자리 없이 꽉 채운게 부처님이시다. 수코타이는 거의 안전하신데, 여기 아유타야는 철저히 머리를 잘라 버린거다.

왜? 수코타이는 동일 민족인 아유타야가 합병한 거고, 아유타야는 버마군이 침략해 들어와 와장창 휩쓸어 버린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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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아유타야에서 이 사진을 못 찍었다.

인터넷에서 뒤져 채워 넣을래도 사진이 없다. 끔찍해 차마 찍지 못했을까. 하는 수 없이 책에서 스캔을 받았다.

일개 국가가 망할려면 이렇게 철저하게 망가져야 옳은거 아냐.

한 번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일국의 국모가 일본 깡패 새끼들 칼에 맞아 죽고, 거기다 시간(屍奸)까지 당해 남 몰래 불태워진...

왕족들이나 집권자들 모두 나와 배 쫙 째고 목아지 뎅겅 잘라 피 철철 흘리는 처절한 싸움 한 번 이라도 했어야 옳지 않겠느냐.

구질 구질하게 나라 말아 먹었으면 솔직히 각자 자아 반성하고 목매달아 죽거나 피를 토하고 죽거나 뭔가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아직도 한 낮 이완용이 나쁘다 나쁘다 앙살만 떨도 앉아......

내가 만든 말이 아니다. 최인훈의 소설 '서유기'에 나오는 조선총독의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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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뜨겁다. 방콕에서 견디던 생각하고 모자 하나 뎅겅 쓰고 왔다가 코피 터지게 혼나고 있다.

이 놈의 해가 어떻게 생겼길래.

이 사진을 찍을 때 카메라가 타버릴 줄 알았는데...

태양의, 태양에 의한, 태양을 위한 빛의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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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 하늘이라는 거다. 여행 중 어느 덜 떨어진 시인이 나와 자기는 날마다 하늘을 찍는대나.

여류 작가들이 하나같이 입을 떡하니 벌리고 듣는 거다.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찍으면, 찍어서, 어쩌자는 거여. 그 똑같은 파란 사진찍어서....

하여튼 그 때 생각이 나서 한 방 찍어 본거다.

이건 순 태국 하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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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경주쯤에 무영탑이 있던가. 이건 수코타이 유영탑 이다.

수코타이 모든 절집은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장방형의 벽돌 울타리를 치고, 그 밖으로 정확하게 일정한 간격, 깊이로 호수를 팠다.

이게 해자(垓字 : 지경해, 글자자)라는 거다. 나는 이걸 서양거라고만 생각해 왔다. 우리 나라에 사원이 많지만 이런 해자는 없는 거다.

고대 서양 영화에서…. 철가면이든가, 태양왕이던가, 삼총사, 몬테그리토 백작이라던가 그런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거라고.....

그런데 여기 지천인거다. 절, 사원이 있으면 무조건 해자는 필요 충분 조건으로 따라 붙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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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탑을 쌓고 주변에 수많은 부처님이 중첩되어 모셔졌고 그 아래 헤일 수 없이 많은 스님들이 합장한 채 일렬로 목하 탑돌이를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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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처님은 산책 중이실까, 불계을 찾아 장거리 여행 중이실까.

이 걷는 모습의 부자연스러움. 곰부리치의 서양미술사 초입에 그리스 로마 미술을 논하면서 초기 에집트 미술을 논하는 과정에 나타나는 그림과 어쩜 이리 흡사할까. 사람은 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다. 아는 대로 그린다. ‘상체는 정면, 다리는 옆면…’ 사람이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리는 것이다. 이 걷는 부처님이 그렇지 않은가.

이쯤에서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에서의 말을 다시 음미한다.

‘진리는 하늘 높은 곳에서 폭발한다. 그것을 천재들만 감지해 형상화 하는 것이다.’ 그 머나먼 과거 누가 서양에서 동양에서 그 먼 거리를 찾아 가르쳐 주고 배웠던 것은 아니다.

부석사 대웅보전 '배흘림 기둥'은 그리스 로마 신전 '엔타시스'로.

그 시대 하늘 높은 곳에서 폭발하는 지식을 동서양 천재들이 잽싸게 느끼고 배우고 그려서 나타낸 것들이다.

태국에서 혼돈 한다. 한국은 물론 중국과 일본 동양 쪽은 당연하다고 치자.

그런데 가끔 아프리카 미술과 간다라 미술, 서양, 그리스 로마 미술이 언듯 언듯 스치고 지나가는 것 같은데. 내가 잘못 본건지. 그 비슷한 문명이 태국 전반에 알게 모르게 스며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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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신의 가장 높은 자리다. 제디.

사면으로 부처님의 출생과 깨달음과 첫 번째 강론과 멸하심을 새겨 놓은 것이라 하여 그 멀고도 먼 한 바퀴를 돌면서 유심히 관찰했다.

그러나 부처님 포즈는 한 결 같이 같았다. 내가 책을 잘못 읽었나. 부처님께서 “너 혼 나봐라.” 뜨거운 열기에 기압을 주시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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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코타이 히스토리칼 파크 안에 수많은 절집들과 그 절집들 가장자리를 해자로 파 놓은 호수는 절경이다.

프랑스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전에 파놓은 호수를 보고 기함을 한 적이 있다. 누구의 손을 빌려 그 큰 호수를 만들었겠냐고.

여기 또한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호수를 파고 그 흙으로 벽돌을 굽고 벽돌로 울타리를 치고 절집 짓고, 탑을 쌓고, 부처님을 만들고…. 끗발 없는 중생은 예나 지금이나 고달프기는 매일반이지 싶다.


3 Comments
동차이 2007.08.23 10:05  
  잘 읽고 갑니다.
Hoi 2007.08.23 16:40  
  얼마전, 이집트 스핑크스를 촬영해 온 필름을 보았던적이 있었습니다.
스핑크스도 세월에 의해, 날씨에 의해, 그리고 사람들의 이기주의 적인 마음에 의해 많이 훼손 되었더군요, 전쟁이 무엇이고, 종교가 무엇인지...... 점점 훼손되어 가는 것들을 볼때마다 착잡할 따름 입니다.
narak 2007.08.24 13:45  
  역시 즐거운 글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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